Beautiful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5)
────────────────────────────────────
────────────────────────────────────
아무리 바빠도 밥은 굶지 마
“이 피디 이 친구는 어디로 간 거야?”
문 피디가 투덜거렸다.
좀 전에 고사 음식 남은 거 없냐고 물었더니 없다고 대답하고는 달아나 버렸다.
음식이라도 배달해 오라고 할까 봐 귀찮았나?
이 피디는 열심히 한다.
문제는 열심히만 한다는 거다.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사람은 착해서 좋다. 고분고분하고, 시킨 일은 어떻게 해서든 마무리하려고 애를 쓴다.
가끔 눈치가 없고 답답한 구석이 있어서 속을 뒤집어놓을 때가 있어서 그렇지.
잘하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짠하기도 하다.
“이 근처에 돼지머리국밥 맛있게 하는 식당 있는데 배달해 드릴까요, 피디님?”
백곰이 문 피디 옆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돼지머리국밥. 거 좋지.”
문 피디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마침 가려웠는데 그곳을 긁어 주겠다니 좋을 수밖에.
문 피디의 밝은 표정을 보니 백곰도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만 해도 뭐가 불만인지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촬영이 거듭되면서 문 피디의 표정이 밝아졌다.
기대 이상을 잘해 주는 우혁의 연기를 보고 걱정과 불안이 사라졌을 것이다.
문 피디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백곰에게 내밀었다.
“법인카드 있습니다.”
백곰이 회사 법인카드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일전에 문 피디가 안 대표와 전화 통화하면서 안 대표가 저녁이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문 피디는 불편해서 싫다며 거절하고 저녁을 사주고 싶다면 백곰에게 법인카드를 맡기라고 반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정말 법인카드를 맡긴 모양이다.
“국밥 드시고 이것도 드셔야 됩니다.”
백곰은 다른 주머니에서 보약 비닐 팩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게 뭐야?”
“보약입니다.”
“보약을 왜?”
“이 국장께서 피디님께 보약 한 첩 해드리라고 우리 대표님께 명령했답니다.”
“이 국장이? 그 양반도 참. 당신이 드시고 싶었던 모양이구만. 그런데 줄 거면 한 첩을 주던가 달랑 하나를 주나?”
“매일 제가 하나씩 챙겨드리겠습니다. 한꺼번에 드리면 잘 드시지 않으실 수도 있고 영란법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난 됐고. 우혁 씨나 잘 챙겨 줘.”
백곰이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보약 한 팩을 더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혁이 형 보약입니다. 피디님 건 나이 드신 노인들이 드시는 거구요. 이건 힘이 넘치는 젊은이가 먹는 겁니다.”
“굳이 그걸 밝혀야 하나? 배고픈데 그거라도 줘.”
“안 됩니다. 빈속에 드시면 속 쓰립니다. 식사하시고 드십시오. 이걸로 허기라도 채우고 계십시오. 금방 돼지머리국밥 배달해 오겠습니다.”
그러면서 알루미늄 호일에 싼 시루떡과 전을 나무 상자 위에 펼쳤다.
“동생 먹으려고 꼬불쳐 놓은 거 아니야?”
“아닙니다. 드십시오.”
백곰은 그렇게 말하고는 저쪽으로 서둘러 갔다.
귀여운 친구.
문 피디는 빙그레 웃으며 시루떡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국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언제 다가왔는지 백곰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가져와 문 피디 손에 건네주고 갔다.
“그 배우에 그 매니저구만. 둘 다 이뻐 죽겠어.”
문 피디는 중얼거리며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시루떡 먹고 나서 마시는 커피, 이거 괜찮네.”
문 피디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들 안 괜찮을까.
김치 케이크를 먹어도 괜찮게 느껴질 것 같다.
우혁은 NG가 거의 없었다.
얼마 전 대본 리딩 때 우혁은 대본을 아예 보지 않고 리딩을 했다.
대본 리딩은 실제 연기에 들어가기 전에 배역을 맡은 배우가 대본을 읽는 것으로 대사의 합을 맞춰 보면서 어색한 대사를 마지막으로 수정하는 단계이다.
작가가 쓴 대사를 배우가 실제 육성으로 발음해 보면 어색한 경우들이 허다하다.
신인들은 작가가 쓴 대사를 토씨 하나 바꾸면 안 되는 줄 안다. 그렇게 해서 대사가 자연스러우면 다행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사가 부자연스러우면 연기도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본 리딩 전에 배우들은 자기 배역의 대사를 충분히 연구하고 숙지해 뺄 건 빼고 추가할 건 추가해서 온다.
대본 리딩을 하러 오면서 대본조차 읽지 않고 오는 연기자도 종종 눈에 띈다.
베테랑의 경우는 처음 보는 대본으로 리딩을 해도 해결해 낸다.
하지만 그건 예외의 경우일 뿐이다.
대본 리딩 전에 충분히 대사 연습을 해보고 자연스럽지 않은 대사는 없는지 애드리브를 추가하거나 덧붙일 대사는 없는지 살피고 와야 한다.
대본 리딩 때 배우들 스스로 대사를 수정해 오거나 애드리브를 만들 때 상대 배우가 받아칠 수 있어야 하고 극의 흐름을 해쳐서는 안 된다.
리딩 때 우혁의 대사는 호흡, 딕션, 리듬, 심지어 운율과 라임까지 고려되어 있었다.
원래 대본의 대사에서 많은 부분 수정이 되었으나 상대 배우가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는 대사였고, 극의 흐름이나 내용을 전혀 해치지 않았다.
장 작가도 감탄했다.
우혁의 대본에는 밑줄, 도식, 표시, 메모들로 가득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끊어 읽어야 할 곳에 빗금을 치고, 포인트를 줘야 할 대사나 단어에 형광펜으로 표시했으며, 지문을 추가해 동선과 액션, 디테일한 표정 등을 자세히 메모했다.
대본 리딩은 대사를 고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물론 리딩을 한다고 해서 대사가 고정이 되는 건 아니다.
드라이 리허설, 카메라 리허설에서도 수정되곤 한다.
하지만 문 피디는 카메라 리허설 때 새로운 애드리브 사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상대 배우를 당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애드리브는 드라이 리허설까지다. 가능하면 대본 리딩 때 이후로는 애드리브를 확정하게 한다.
가끔 카메라 리허설이나 실전 촬영 때 애드리브를 쳐서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문 피디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고, 그때는 불같이 화를 낸다.
화를 내지 않으면 웃음이 터져서 NG가 거듭되고, 웃음을 참으며 촬영을 마쳤다 해도 연기가 부자연스럽다.
우혁은 대본 리딩 때 수정한 대본을 그대로 유지했다.
드라이 리허설을 할 때도 우혁의 손에는 대본이 들려 있지 않았다.
드라이 리허설은 동선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는 실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통곡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가 리허설 때 진을 빼버리면 실전 촬영 때 힘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대본 리딩과 리허설 때 우혁의 준비 자세에 감탄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실전 촬영이다.
대본 리딩과 리허설 때보다 못한 경우를 허다하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혁은 달랐다.
실전 촬영 때 120프로 능력치를 발휘했다.
카메라 리허설 때 몇몇 배우들은 커닝하며 대사를 쳤지만 우혁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실제 촬영에 들어갔을 때 상대 배우 때문에 NG가 난 적은 있어도 우혁 때문에 NG가 난 적은 없다.
가끔 배우들 중에 과하게 애드리브를 치거나 아역 배우가 대사를 까먹었을 때에도 유연하게 대응해 부드럽게 넘어갔다.
대본을 완전히 숙지시켰을 때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주인공인 우혁의 촬영분이 가장 많았는데 우혁이 잘해 주면서 오전 촬영분을 끝내고 오후 촬영분까지 앞당겨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제작피디로서 현장 촬영이 원활한 것만큼 기분 좋은 건 없다.
현재 시간 11시.
점심시간 전에 오후 촬영분을 찍어 두면 야간 촬영 전에 다들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간혹 촬영이 원활하지 않아 해가 떨어져 낮 촬영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고 야간 촬영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런 날은 희한하게 사고가 난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고다.
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지만 야간 촬영의 사고는 위험하다.
모든 사고는 피로 누적에서 시작한다.
오후 촬영을 일찍 마무리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야간 촬영을 꼼꼼하게 준비하면 사고 확률이 현저히 낮아진다.
“그나저나 촬영 시작해야 되는데 이 피디는 어디로 간 거야? 김군아, 이 피디 어디 갔어?”
FD 김군에게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급하게 다녀올 데가 있다면서 이거 맡기고 저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촬영 시작 전에는 온다고 했습니다.”
김군의 목에는 휴대용 확성기가 걸려 있었다.
이 피디가 ‘액션’과 ‘컷’을 외쳐야 하는데 김군에게 맡기고 간 모양이다.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촬영 스텐바이 알려.”
문 피디가 김군에게 지시했다.
“예, 알겠습니다.”
김군은 문 피디의 지시에 따라 메가폰으로 스텝들에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외쳤다.
촬영 재개를 위해 스텝들과 배우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또 다른 FD인 이군이 슬레이트를 쳤다.
“액션!”
***
이번 촬영은 우혁이 안장 없는 말을 타고 활쏘기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지미집, 드론, 레일이 총동원된 촬영이었다.
장마당 신에서 보였던 시시껄렁한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그리고 실제로 진지했고.
자칫하다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혁은 이 장면을 위해 수도 없이 연습했다.
홍길동은 벼슬에 나갈 수 없는 현실에 개탄하며 다양한 무술을 홀로 익힌다.
또한 안장 없는 말을 길들여 타는 연습도 꾸준히 한다.
안장이 있는 말보다 안장 없는 말이 많고, 안장 없는 말을 잘 다루어야 위급할 때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혁은 연습 때보다 속도를 현저히 줄이고 최대한 안전하게 달렸다.
안장 없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어려운데 그 위에서 활을 쏜다는 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좋은 장면도 중요하지만 사고가 나는 건 절대 안 된다.
연습 때보다 속도를 현저히 줄이고 최대한 안전하게 달렸다.
“우와!”
스텝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사극에서 말을 타는 장면은 어색할 때가 많다.
빨리 달리는 장면은 주로 대역을 쓰는데 기수들을 대체로 몸집이 작아 누가 봐도 배우가 아니라는 게 티가 난다.
배우가 나오는 장면은 정지해 있는 말 위에 올라가 있거나 말을 타고 천천히 걷는 정도가 다이다.
그런데 우혁은 실제로 달렸다.
연습 때 속도보다 반으로 달렸음에도 스텝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모니터로 카메라들이 찍어서 보내는 영상을 본 문 피디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림 좋아! 아주 좋아! 오케이!”
한 번에 오케이가 났다.
촬영 시간은 5분.
그런데 우혁 본인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한 번 더 가겠다고 한다.
“조심조심! 사고 안 나게!”
문 피디가 외쳤다.
김 군이 메가폰을 문 피디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촬영이 시작되고 다시 5분 만에 오케이!
처음보다 그림이 더 좋다.
화살이 날아가 표적지에 정확히 맞히는 장면을 따야 한다.
스텝들이 화살을 쏘는데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서 실패를 거듭한다.
문 피디는 우혁의 국궁 동영상이 떠올라 FD에게 지시했다.
“우혁 씨한테 부탁해봐.”
문 피디의 지시를 듣고 김군이 우혁에게 가서 부탁했다.
우혁은 활을 들고 조준한 뒤 시위를 놓았다.
탁!
명중이었다.
감탄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화살 뒤에 달아놓은 소형 카메라가 중간에 떨어져 버려 다시 쏘아야 했다.
이번에도 명중!
더 큰 감탄과 박수가 쏟아졌다.
우혁이 아니었으면 20분은 걸렸을 장면인데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오케이!”
문 피디의 목소리가 우혁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최소 한 시간을 예상했던 촬영이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문 피디로서는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피디는 도대체 어디 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야?”
그때, 이 피디가 소품으로 보이는 상을 들고 허겁지겁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어딜 갔다가 촬영 끝나니까 나타나.”
문 피디가 이 피디를 윽박질렀다.
오늘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촬영장이 떠나가라 호통을 쳤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 피디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개를 움추렸다.
“이거 좀 드십시오.”
이 피디가 상을 문 피디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과 구수한 된장찌개, 입맛 돋우는 갓김치와 반찬 몇 가지가 놓여 있는 상이었다.
식당 밥이 아니라 집 밥이다.
밥 차는 지금쯤 밥을 짓고 있을 텐데 어디 가서 밥을 얻어 왔는지 모르겠다.
“밥 구하러 갔다 온 거야?”
“예. 밥 차에 밥이 없어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늦어 버렸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그때 백곰이 비닐봉지를 들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거기 앉어.”
문 피디가 이 피디에게 나무 상자를 가리켰다.
이 피디는 나무 상자에 앉았다.
옆으로 다가온 백곰이 비닐봉지에서 돼지머리국밥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
“따뜻할 때 드십시오.”
백곰이 말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자네는?”
“저는 이따 밥 차에서 먹겠습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온데다가 고사 음식까지 먹었더니 아직 배가 들 꺼졌습니다. 어서 드십시오.”
“시루떡 잘 먹었어.”
“시루떡, 이 피디님이 피디님 드리라고 한 겁니다. 피디님만 고사 음식 안 드시는 것 같다면서 따로 챙겨 두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백곰이 물러났다.
“이 피디!”
“예, 피디님!”
“아침도 못 먹었지?”
“별로 배가 안 고파서···.”
“배가 안 고플 리가 있나. 이거 먹어.”
“아닙니다. 피디님 드십시오. 저는 소품 때문에 가봐야 해서···.”
“바쁠 거 없어. 이거 먹고 가도 늦지 않아. 오전 일정 다 끝났어.”
문 피디가 이 피디에게 숟가락을 건네주었다.
“그럼, 한 숟가락만 뜨겠습니다.”
이 피디는 숟가락으로 흰 밥을 크게 떠서 갓김치를 올린 뒤 입이 미어지도록 넣었다.
“급할 거 없다니까 천천히 먹어. 체하지 말고.”
문 피디가 돼지머리국밥을 이 피디의 밥그릇에 부어 주며 말했다.
이 피디는 밥이 입 안 가득이라 대답은 못하고 손사래를 쳤다.
배가 어지간히도 고팠나 보다. 정신없이 밥을 먹어 댔다.
이 피디는 라인피디, 속칭 새끼피디이다.
현장을 통솔하는 제작피디인 문 피디를 도와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는 피디.
하지만 그 자질구레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문 피디는 잘 알고 있다.
데이터 딜리버리, 편집, 촬영장과배우 섭외, 촬영 준비, 촬영 이후 촬영장 정리, 비용 처리와 정산, 소품, 의상, 밥 차 등 이 피디가 처리해야 할일들은 산더미였다.
이 피디 아래 두세 명의 FD가 있어서 그를 도와주지만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을 만큼 바빴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욕은 가장 많이 얻어먹는다.
제작피디, 배우들, 각 팀의 팀장들에게 욕을 먹는다. 숫제 동네북이다.
“이 피디 여기 있었어? 약속을 했으면 빨리 와야지 사람을 기다리게 하고 그래. 점심 약속 때문에 빨리 가봐야 되는구만.”
SBC 소속 직원인 소품 담당자가 이 피디를 윽박질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피디가 입 안의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밥 먹는 거 안 보여?”
문 피디가 촬영장이 떠나가도록 소품 담당자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문 피디는 그렇지 않아도 소품 담당자의 갑질에 화가 나 있었다.
나이는 이 피디와 비슷한데 왜 그리 까탈스럽게 구는지 이 피디가 애를 먹었다.
“점심시간 아직 30분 남았잖아. 당신 점심 약속은 중요하고 이 사람 아침은 안 중요해. 이게 아침이야, 아침이라고!”
“죄송합니다. 내려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소품 담당자가 문 피디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내려갔다.
이 피디도 허겁지겁 일어나려는데 문 피디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피디에게 말했다.
“앉어. 천천히 다 먹고 가. 방송국 직원들 시간 많은 사람들이야. 적어도 이 피디보다는. 지금은 이걸로 대강 때우고 이따 저녁때 나하고 식당에 가서 제대로 먹자고. 촬영이 순조로워서 저녁에 여유가 좀 있을 것 같어. 어서 먹어.”
문 피디가 자리를 잡고 앉아 국밥을 먹었다.
이 피디도 숟가락을 들고 밥을 한술 떴다.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아 조금만 떠서 입에 넣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촬영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지금까지 밥을 먹기는커녕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었다.
문 피디의 표정이 좋지 않아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문 피디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표정에 역력히 드러났다.
고사를 지내고 난 뒤에도 문 피디는 고사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표정이 풀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배가 고프다고 했다.
문 피디가 배가 고프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같은 분이 아닌가.
FD를 시킬까 하다 직접 달려갔다. 달려 내려가다가 문 피디가 시장하다고 할 때 드리려고 챙겨둔 시루떡을 백곰에게 건네주며 문 피디에게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오전 촬영 일정이 끝난 줄 알았다.
오후 촬영을 앞당겨 할 줄 알았으면 촬영장을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촬영장을 비웠으니 야단을 맞는 건 당연하다.
혼은 났지만 피디님 식사는 챙겨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굶지 마. 몸 상해. 이 피디 없으면 안 돌아가는 거 알지? 못된 제작피디 만나서 고생이 많다. 갓김치 어디서 구해 왔어. 맛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