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143
당연히 1710년대의 대해적시대가 열리려면 2,000년도 더 넘게 남았다.
졸리 로저(Jolly Roger)라는 이름의 해골 깃발이 나오는 것도 그쯤이니 외관상 해적임을 나타내는 징표 따위는 없다.
그렇다 해서 저 배 위의 드문드문 떠다니는 선원들 중에 팔다리가 고무처럼 늘어나는 놈이나, 삼도류 쓰는 놈, 요리사라면서 요리하다 담배피는 되먹지 못한 놈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해적인 걸 알 수 있었다.
“저기! 깃발을 봐! 아드라미티온에서 온 배다!!”
“죄다 약탈해라!! 여기서 단단히 한 몫 잡고 간다!!”
아카이아인이었기 때문이다.
***
아카이아 놈들은 무역을 먹거리로 하는 해상 민족이다.
고로 국가 단위로 굴러가는 망할 해적단들이라는 뜻이다.
“다, 당장 방향 틀어!!!”
“아냐! 저거 못 빠져나가! 그냥 다들 창칼 뽑고 대기하라 그래!!”
갑론을박이 몇 번 이어지다가, 결국 결전으로 결론이 났는지 선원들은 제각기 가벼운 무장을 챙기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쇄대!!”
“예, 주군!!”
“첫 해전이다! 전부 경계 태세로 전환하라!!”
다행히도 나 역시 철쇄대를 열댓 명 정도는 데려왔다.
배 하나에 보통 50여 명이 타는 시대에, 열댓 명 정도의 정예병이란 적들을 빠르게 제압하고 배를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 철쇄대가 있었지!”
“저 새끼들 싹 다 털어버리자고!”
그리고 그 사실을 방금 전까지 술 취해 있던 선원 놈팽이들도 깨달았는지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서 수평선을 노려본다.
···뭐지? 이 해적 우두머리가 된 기분은?
그러고 보니 아노이토스가 나를 배웅하면서 한 말이 있다.
“주군, 해적선이 보이면 확 그냥 다 죽이고 뺏어버리십시오. 그놈들 기고만장한 게 아주 고깝습니다.”
“···그게 해적질 아닌가?”
“예? 해적질은 아카이아인들이 하는 거고, 저희가 하는 건 떳떳한 장사죠?”
그래. 본래 상인과 해적이란 일체다.
상대방이 칼을 들고 있으면 제값 주고 물건을 사지만, 상대방이 맨손이면 공짜로 물건을 ‘받아오는’ 김에 상대방까지 노예로 팔아넘기는 것이 이 시대 상인의 본질이다.
게다가 안탄드로스와 인근 도시들은 아카이아인들이 세운 정착지!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 몸에도 어쩔 수 없는 아카이아 해적떼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다.
내 할아버지인 라오메돈만 하더라도 신에게까지 도둑놈 심보로 배째다가 해적왕 헤라클레스가 패왕의 패기로서 간단히 제압해내지 않았던가.
이것이 해적들의 싸움이다.
아무튼 전투 태세를 취한 우리 배 서너 척과 상대방의 배 대여섯 척은 점차 거리를 좁히며 서로 경계 태세를 취한다.
“이쪽의 인원들은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모두 죽이거라. 노예로 팔기에는 당장 등 뒤에 적을 두었으니 불안하구나.”
아니, 모조리 해적선으로 보이던 대여섯 척 중 두 척만이 해적선인 모양이었다. 나머지 4척은 이미 무장을 해제당하고 포박당한 상인들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xx%!!!!”
“xx$$#!!”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포로들이 항의하자, 해적선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노인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주위의 수하들에게 묻는다.
“누가 페니키아인들의 말 좀 통역해줄 수 있겠는가.”
“살려달랍니다. 노예로 삼아주면 열심히 일 잘하겠다는군요.”
“안타깝게도 그 소원은 못 들어줄 듯하구나. 죽이는 것이 낫겠군. 아드라미티온의 배가 이 배들보다 몇 배는 더 부유할 게다.”
우두머리가 그렇게 말해도 수하들을 머뭇거리며 포로들을 죽이길 망설인다. 당연히 도덕과 양심이 갑자기 이식된 건 아니고, 노예로 삼기 좋은 선원들이 아까워서다.
그 모습을 본 우두머리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끌끌 차더니 포로 겸 예비 노예 또는 예비 물고기밥들에게 걸어간다.
“그대들의 영혼이 하데스의 정원으로 향하기만을 빌지.”
“$#%#!!!! #%#%#$$!!!!!!”
“하데스 같은 야만인들의 신따위는 믿지 않는다 합니다.”
“신성모독이군. 처단하겠다.”
우두머리가 준엄하게 칼을 들어올린다. 그 꼴을 우리 선원들도, 해적선의 선원들도 모두 숨 죽인 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슬쩍 옆을 바라보았고, 선원들끼리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구, 저 아까운 걸···.”
아니, 시발.
“멈춰라!!!!”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섰다.
그러자 이 몰양심한 해적놈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나를 멍하니 지켜본다. 심지어 저 적선의 선원들과 우두머리도.
우두머리의 얼굴은··· 수염과 머리가 모두 하얗게 센 노인이다. 바로 옆의 있는 선원도 저 노인의 반의 반 정도밖에 못 살았을 것 같은 인상.
나이도 꽤나 먹은 노인 같은데 몸만 근육질이라 심히 언밸런스하다.
“나는 안탄드로스의 군주 파리스다! 무고한 목숨을 죽인다면 곧바로 나의 친위대가 그대들을 죽이리라!”
잠시 정적.
“파리스···?”
“그, 있잖나. 트로이아의 둘째 왕자.”
“그렇다면 저 배는 안탄드로스의 배인가?”
그리고 수런거림.
-쩔그럭.
갑자기 내 말 한 마디에 해적들의 우두머리가 칼을 내려놓고서 이쪽으로 걸어온다.
가까이서 보니··· 상당히 인자한 인상이었다.
심지어 나를 향해 웃어보이니 꽤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듯한···
“허허, 이곳에서 우방을 칠 뻔했다니. 미안하네.”
···내가 해적과 우방?
무슨 소리냐고 따져들기 전에 그의 말이 먼저 이어진다.
“이는 모두 이 드넓은 푸른 왕국의 주인이신 포세이돈께서 안배하신 바대로일 터이네. 꽤나 상황이 좋지 않았지만 그대를 만나 영광이네.”
갑자기 해적 우두머리의 입에서 고상한 어휘들이 튀어나오니 나는 순간 말을 잃는다. 차라리 노인의 팔이 고무처럼 길게 늘어나는 편이 덜 놀라웠으리라.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는 필로스의 왕 네스토르라 하네.”
“···.”
“크흠, 안탄드로스의 군주를 만나 영광이네.”
“···아.”
아가멤논 멘토가 왜 여기서 나와.
조우 (3)
먼 옛날···까지는 아니고, 약 우리 조부모 세대쯤 될 때.
테살리아의 왕은 조카 이아손이 왕위를 빼앗을까 걱정하여 흑해 연안의 콜키스에서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황금 양털은 나라에 행운을 가져다 주고, 반대로 잃어버리면 불행을 가져다 주는 신물(神物)이었다. 당연히 그런 보물을 아무데나 놔둘리도 없었기에 강력한 용이 지키고 있었다.
즉, 죽으라고 내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아손 역시 아카이아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남의 나라 국보를 도적질하고, 심지어 그러면서 삼촌 왕위도 뺏는다는 두근두근 모험길을 거부할 아카이아인은 없다. 삼촌도 찬탈자였으니 온가족의 마음이 이만큼 잘 맞을 수 없었다.
그렇게 테살리아의 해적왕이 되고자 마음 먹은 이아손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디 나라 하나 조져놓지 못해 좀이 쑤시던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을 한 데 모아낸다.
그 면면만 보아도 화려하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펠레우스 등등 내노라하는 이들이 모여 남의 나라 하나 망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했다.
비록 초능력자나 말하는 순록은 없더라도 꿈과 우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모험이었다.
그렇게 가는 길에 몇몇 나라들을 멸망시키며 산뜻한 마음으로 황금양털과 공주를 강탈하여 돌아온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몇 안 되는 인간.
···중에서 다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해, 아카이아 연합군의 정신적 구심점이자 오디세우스와 함께 아카이아군의 전략가 역할을 수행하는 영웅.
“···네스토르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닐세. 내가 오히려 그대를 공격할 뻔하였으니 내 쪽에서 사죄해야 할걸세.”
-쾅!
“끄아아아아아악!!!!!”
“···.”
막 반란 일으킨 노예 하나를 뱃전 너머로 던져버리며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가장 무서운 건 저 행위에 악의가 없다는 것이다. 아까까지는 나를 겁주려는 목적인가 했는데 저 태연한 표정을 보면 그런 생각이 싹 가신다.
무슨 사람 하나 골로 보내는 걸 신발끈 다시 매는 것보다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야 어떻게···.
그런 충격은 곧 그가 아카이아 연합군의 최고참 해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서야 겨우 희석되었다.
그래, 아카이아가 어떤 곳인데.
왕이 직접 이 멀리까지 해적질 나올 수도 있지.
물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는 현명하고 원숙한 이미지였던 것 같지만, 호메로스 역시 해적질에 익숙한 아카이아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딱히 오류라 볼 수는 없으리라.
아무튼 그는 반역자들 배 밖으로 던지기, 노예들 갑판 아래로 밀어넣기, 약탈물··· 아니, 교역 품 옮기기 등등의 잡무를 끝낸 뒤 내 배로 초대받았다.
아카이아인과 트로이아인의 배 모두 인근의 이름 모를 작은 섬을 찾아 정박한 채였다. 난간 밖으로 내다보니 지중해의 맑은 물결이 썩 보기 좋았다.
“아이깁토스로 교역하러 가는 중이라고 했던가?”
“예, 맞습니다.”
“안타깝군. 우리는 이미 아이깁토스에서의 ‘무역 활동’을 끝내고서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네. 혹시 지도를 가져오면 우리가 무역을 했던 도시 몇몇을 짚어 주겠네. 그곳 말고 다른 곳을 공격하게.”
‘무역’과 ‘공격’이란 단어는 아카이아인들에게 원래 유의어다. 같은 문장에서 사용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하, 감사합니다. 저는 안 그래도 데려온 이들 중 아이깁토스인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의 고향 쪽으로 갈 듯하여 위치가 겹치지는 않겠군요.”
“그거 다행이군. 아니, 괜히 아카이아인이라며 억울하게 배척받을 일은 없겠네. 하하하!”
“하, 하하···!”
···억울하게?
아무튼 간에 이런 환담을 위해서 네스토르를 인근의 섬으로 데려온 게 아니다. 나는 곧장 주제를 옮겨 원래 던지고자 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건 그렇고 우방이라서 공격하지 않는다니, 안탄드로스의 선박을 치지 말라는 이야기라도 있었습니까?”
“그렇네. 물론 원래 그런 엄포가 효과가 있는 경우는 없으나, 나와 친분도 있는 아가멤논이 부탁한 것이니 내 어찌 어기겠나?”
역시. 아가멤논의 개입이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얘기가 빨라지겠다.
“저희 시민들은 아드라미티온의 항구와 선박을 자주 이용하곤 합니다.
아소스나 아스티라, 아드라미티온 같은 저희 동맹시들의 선박에 대해서도 아카이아의 여러 군주들이 분쟁을 꺼리도록 만들 수 없겠습니까?”
“···흠, 아마 어려울걸세. 가장 알짜배기들이니.”
와! 안탄드로스 덕분에 인근 도시들이 해적 맛집으로 소문 나다니!
꽤나 복잡한 기분으로 내가 잠시 눈알을 굴리고 있자니 네스토르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한다.
“그래도, 내가 벗들에게 한번 말해보겠네. 아가멤논에게도 사정을 전해볼 테니, 그러면 이전보다야 분명 나아질 테니 걱정 말게나.”
“···가, 감사합니다.”
“아닐세. 훌륭한 왕이 다스리는 트로이아에 왕자들까지 그 명예가 드높으니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나? 곧 누구도 트로이아와 안탄드로스의 동맹시들을 범하지 못하도록 하겠네.”
···역시, 해적이든 산적이든 내 편이면 이만큼 든든하구나.
그 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 뒤 나는 네스토르에게 감사인사를 하고서 일어선다. 네스토르 역시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아는지 나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아직 목을 덜 친 노예들이 남아서.”
“···아, 예.”
“허허, 다음에 봄세. 아트레우스의 가문과 트로스의 가문이 함께하게 되었으니 에게 해가 평화롭겠군.”
그리 말하며 네스토르는 우리 배에서 하선했다. 이내 네스토르의 배가 수평선 너머의 한 점으로 줄어들 때까지, 나는 조용히 아련하게 배들의 무리를 지켜보았다.
“···주군.”
“왜 그러나, 오소르콘?”
“혹시 아카이아인들이 돌아와서 습격할까봐 지켜보시는 겁니까?”
“···.”
나는 오소르콘의 경멸 어린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의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우리 역시 잠깐의 재정비를 거친 뒤 다시 출항했다.
육지가 점차 가까워지면서 이런저런 배들을 마주치는 횟수도 늘었고, 개중에 만난 해적떼를 때려잡고 나니 우리가 쥔 재산이 출발할 때보다 오히려 늘어나 있었다.
공기는 점차 따뜻해지고, 왠지 이제까지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는 감상에 잠기게 될 때쯤에···
“항구다! 항구야!!”
“주군, 육지입니다!!”
우리는 아이깁토스의 해안에 와있었다.
***
“아마 이곳은 타미아트일 것입니다. 제 고향까지 가려면 이쪽에서 나일 강의 지류를 타고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일단은 이곳에 정박해서 물과 식량을 채운 뒤 더 남하하도록···”
“젠$··· 죽@#@!!! 살$$···#$!!”
“이게 또 무슨 소란인가?”
“주군!”
내가 선내에서 오소르콘과 아모시스를 데리고 한창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병사 하나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뭔가? 정박 과정이 순탄하지 않은가 보지?”
“순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어, 어서 나와보셔야···”
“&, 도$쳐야 @! $#! @서! $빨%!!”
“···젠장.”
“#적놈들# 쳐들@왔$!!!!”
우리의 배를 보고, 또 우리의 얼굴을 보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사람들.
알 수 없는 말로 된 비명과 애타는 외침소리가 여기저기서 장례식 곡소리처럼 울려퍼진다.
내가 망연하여 가만히 서 있자 가만히 내 곁에서 오소르콘이 내게 속삭인다.
“···무슨 뜻인지 번역해드리자면, 해적들이라고 도망쳐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자네들 언어로는 아직 아침 식사 하나 부탁 못하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통역이 불필요했네.”
이 소란은 병사들이 몰려온 뒤 급히 우리가 트로이아인임을, 원래부터 포도주 자주 사가던 그 고객들임을 증명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나는 그동안 오소르콘에게 속성으로 배운 아이깁토스 말과 만국공용어인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의사를 전달했다.
“우리, 술, 요구. 아님, 해적. 술. 술.”
“아카이아어 되니 이쪽으로 이야기하시오.”
“···우리는 안탄드로스에서 왔소. 언제나와 같이 무역을 하러 왔소만.”
“이···이게 복잡한 소란이 나고 말았소. 바로 얼마 전에 바로 옆옆 도시에 웬 흉악한 아카이아 악마들이 쳐들어와서는···”
굳이 그 악마들과 조잘조잘 잡담하고 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경비병들이 주위 시민들을 힘겹게 안심시키고 텅 비어있던 항만 쪽에 다시 사람이 드문드문 겁먹은 얼굴로 나타나게 하는 모습을 구경했을 뿐이다.
···장하다, 아카이아인들.
이렇게 자국에 대한 아름다운 이미지를 저들의 두개골 속에 새겨놓다니.
아무튼 처음으로 맞닥뜨린 해안 도시에 정박해서 하루이틀 정도 쉬어가려던 계획은 그렇게 폐기 처분되었다.
우리는 몰래 도둑놈처럼 물과 식량을 수급받은 뒤 도망치듯 도시를 떠났다.
나일 강은 수운이 발달해서 지나다니는 배들도 많았고, 강을 거슬러가니 속도도 그만큼 느려졌다.
그리고 그만큼 아이깁토스의 정경이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일 강을 중심으로 진주처럼 꿰인 도시들, 마을들.
강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사람들과 배들의 무리.
밤이 오자 나일 강의 지류를 떠다니는 배들에서 횃불을 켜기 시작한다. 강 양편으로 펼쳐진 집집마다도 불을 피우니 마치 은하수 위를 떠다니는 듯했다.
넋을 놓고서 한참 그 광경을 바라보다 나는 옆에 선 오소르콘에게 물었다.
“자네의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피람세스입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나오는 도시지요. 아흐모세(Ahmose, 그리스어로 아모시스)? 오거라.”
“예, 아버지.”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기분이 어떠냐?”
“···친척들이 무어라 하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걱정 말거라. 내가 그놈들 몰래 숨겨놓은 재산이 있으니. 일단 그것을 가지고 나눠주겠다고 하면 우릴 욕하기는커녕 신들처럼 대할 테니.”
“재산이라?”
그러고 보니, 연금술사 노릇을 아이깁토스에서도 했더라면 꽤 재산을 모았을 테다. 내가 묻자 오소르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저희가 저택이나 보물 따위를 북쪽으로 떠나면서 모두 들고 올 수 없으니 말입니다.
필요한 것만 챙겨서 디오니소스 님과 함께 안탄드로스에 정착했고, 나머지는 전부 친척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저택? 보물?”
“아, 그렇습니다. 이래뵈도 저는 상인이었습니다. 꽤 크게 장사를 벌였죠. 저 멀리 바빌론과 그 너머까지도 가보았습니다.”
“바빌론이라.”
“아, 어딘지 잘 모르십니까?”
“아니, 알고 있네. 이 세상의 배꼽 같은 도시 이야기 아닌가?”
“···오.”
“너무 대놓고 ‘야만인 족장에게 이런 교양이?’ 하는 반응을 보이지 말아주게.”
“아, 송구하옵니다. 결코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몇 번 대화를 나누자 곧 동이 터온다. 그와 동시에 오소르콘의 표정 역시 눈에 띄게 밝아진다.
“저곳이··· 저희의 고향입니다. 이 아이깁토스를 다스리는 파라오가 사는 땅이죠.”
그가 마른 손가락을 들어 저 멀리, 하중도(河中島)를 가리킨다. 나일 강의 강물 그 자체에 둘러싸인 섬 무리 위로는···
집과 집과 집과 집과 집이···
“···.”
건축물들이 안탄드로스와 비교해서 더 화려하단 사실도, 바둑판 모양으로 도로 대신 나 있는 운하의 교통망도, 이곳이 세계의 중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듯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의 표정도.
그 크기만큼 놀랍지는 않았다.
도시는, 컸다.
“피람세스(Pi-Ramesses)라 하옵니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위대한 지도자 람세스의 집이라는 뜻이지요. 이 도시는 저 아시리아와 히타이트로까지 이어지는 무역로와 곧장 연결됩니다. 상인들의 성지이죠.”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오소르콘이 자랑스럽게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