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292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프리아모스지만, 집주인은 그의 아들과 며느리다. 두 사람이 차례대로 오디세우스에게 인사를 건넨 뒤에야 프리아모스는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대의 선물은 잘 받았소.”
“감사합니다.”
“이렇게 ‘적진’ 한가운데로 찾아오는 그대의 용기에도 역시 감탄하였소.”
“···.”
그래, 우리 아직 적이다.
프리아모스의 말로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오디세우스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장수다.
오디세우스는 우리와 전쟁 중이고, 지고 있다.
일단 갑자기 찾아온 게 놀랍고 저 뻔뻔함이 놀라워서 그렇지, 오디세우스가 이곳에 온 이유는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찾아갔으면? 오디세우스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콜로나이로 나아간 내가 그에게 항복을 제의했더라면 오디세우스는 기껏해야 항복 문서에 도장 찍는 것 말고는 못 한다.
그 다음에는 대강 줄줄이 소세지로 오디세우스랑 아킬레우스랑 파트로클로스랑 끌고 와서 칼리폴리스에서 개선식도 벌이고 재밌게 놀 수 있었으리라.
···아쉽네.
아무튼 그 신세를 피해보려고 이렇게 온 거겠지.
아직 동등한 관계로서 만날 수 있을 때, 이렇게 와서 키크노스의 아들딸도 관대하게 풀어주는 시늉도 하려고.
그래서 항복이 아니라 동맹 체결로 결정을 보려고.
“아버지?”
그런데 우리가 왜 그렇게 해줘야 하지?
“파리스, 왜 그러느냐?”
“키크노스의 아들딸들은 전쟁에서 패하여 포로가 된 몸입니다.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로서도 다른 장수들을 설득하여 이리 데려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네 말이 맞다.”
“오디세우스가 그들의 몸값을 받기를 거부했다고는 하지만 그는 옳지 못한 처사입니다.
우리에게 금이 모자란 것이 아니고, 빵이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그에게 포로들에 대한 정당한 몸값을 주어 동맹들에 대한 트로이아의 신의를 널리 밝혀야 합니다.”
선물 같은 거 안 받으면 그만이다.
“···.”
“···.”
내 말을 들은 오디세우스의 표정이 아주 찰나 동안 구겨졌다 펴진다.
그리고 나는 그를 향해 싱긋 웃어보인다.
마찬가지로 프리아모스도 나를 향해 미소짓는다.
“···네 말이 옳구나. 키크노스의 자식들은 저들의 정당한 전리품이고, 또한 우리의 연이 깊은 동맹이다. 그들을 위해 몸값 하나 지불해주지 못하겠느냐?”
“프리아모스 왕이시여,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오디세우스는 순전한 친교와 우애의 의미로서 이 자리에 온 것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어렵겠구려, 이타카의 왕이여. 자신의 왕에 대한 충성과 자신의 벗에 대한 신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니오?”
프리아모스는 오디세우스에게 단호하게, 아주아주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대의 벗과 동맹들이, 그리고 오디세우스 그대 자신이 우리 트로이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소?”
그냥 돌직구다. 물샐틈없이 완벽한 팩트에 오디세우스는 뭐라 입을 열려다 합, 하고 다문다.
역시 오디세우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리면 곧장 골로 갈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여, 그대의 선물은 잘 받았소. 그대는 손님으로서, 사절로서 왔으니 이곳에 온 뜻을 이루시오. 우리 트로이아인들이 손님을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오.
그대를 위해 이 도시를 다스리는 내 아들 데이포보스가 더운 물을 풀어 그대가 씻을 수 있도록 할 것이오. 그대를 위해 만찬을 내놓을 것이며, 그대는 오랜 전쟁의 피로를 풀고 이곳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프리아모스의 말이 청산유수로 흘러나온다. 나는 저렇게 못 한다.
“그런 다음에는 돌아가시오.
그대의 지휘관이자 그대보다 많은 사람을 다스리며 그대의 왕중왕에게서 왕홀을 받은 메넬라오스의 곁으로. 그에게 동맹으로서의 신의와 지휘관에 대한 존중을 지키시오.
그와 우리는 큰 싸움을 벌이는 중이니 다시 만날 때는 전장에서 보겠구려.”
수십 년 동안 왕 노릇한 짬밥이 쌓여야만 저렇게 예의바르게 사람을 엿먹일 수 있다.
“오늘의 만남을 소중히 기억하겠소. 우리의 환대가 그대에게 흡족하기를, 그대의 훌륭한 풍모와 지혜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를 빌겠소.”
해석.
돌아가. 안 돼. 안 봐줘. 봐줄 생각 없어.
···오.
여기까지 왔으면 그냥 웃으면서 보내는 사형선고다.
옆에 앉아 있기만 하던 나조차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다른 군주들 역시 감히 웃거나 떠들지 못하고 잠자코 듣고만 있는다.
내가 오디세우스였다면 여기서 맨정신으로 버티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
미동도 없다.
선 채로 죽었나?
궁지에 몰리더니 아예 맛이 갔나? 그럼 안 되는데? 오디세우스가 얼마나 써먹을 데가 많은 인간인데.
프리아모스는 내 쪽을 한번 살핀다. ‘뭔가 아는 것 있느냐?’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내가 저 인간 속내를 알 리가 있나. 나와 오디세우스 사이의 관계는 홍X영 선생님의 걸작 학습만화를 빼면 사실 그리 깊지 않다. 몇 번 만나본 게 전부인데.
내 눈빛에 담긴 당혹감을 확인한 프리아모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침묵으로 한참이 지난다.
혹시 심장은 뛰고 있는지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야 하나 싶던 참에, 오디세우스가 입을 연다.
“하하··· 프리아모스 왕이시여, 그리고 이 자리의 모든 군주들이시여.”
오디세우스가, 고개를 치켜든다.
“제게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에게 신의와 존중을 지킬 의무가 없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다.
“그 무슨 뜻이오?”
“그는 거짓 명분으로 수만의 장정들을 허무하게 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무의미한 전쟁을 강요한 악인입니다.”
“말을 조심하시오. 그대는 그의 진중에서 그가 주는 빵과 고기를 들지 않았소?”
“···그렇지요. 사실 전쟁의 명분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리도 많은 이들이 죽었는데.”
오디세우스의 눈이··· 맛이 갔다.
“메넬라오스의 명분이 거짓이든 아니든 그대는 그에게 부역···”
“트로이아의 왕이시여, 저의 부인은 이카리오스의 딸인 스파르타의 페넬로페입니다. 헬레네의 사촌이며 그녀와 같은 궁정에서 자라났습니다.”
“···.”
“그리고 제 부인은 이타카 땅에서 저 사악한 메넬라오스가 자신의 육친과 벗들을 도살하고 추방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 자는 저의 지휘관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지금껏···”
“그 부도덕한 자의 압제로 말미암아 제 장인께서는 오랜 고향을 떠나 이타카로 망명을 오셨습니다! 어찌 헤라 여신의 가호 아래 부인께 충실하기로 맹세한 자로서 그에게 복수를 다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디세우스여, 진정···”
“제 심장의 피를 모조리 빼서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그 작자가 죽는 꼴을 지켜보고야 말겠습니다!! 아트레우스의 자손들에게··· 아니, 아니, 메넬라오스와 저 동방의 사악한 동맹자들에게 저주만이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
“으아아악! 메넬라오스!! 저주받을 이름이여!!”
갑자기 몸을 마구 뒤틀며,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다.
프리아모스나 다른 군주들이 뭔가 진정을 시키든 반박을 하든 하려 할 때마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중간에 아트레우스의 자손이 어쩌구 말하려다 이피게네이아(아트레우스의 장손녀)를 보고 말을 바꾸는 등 횡설수설하면서.
···어, 아니겠지?
저거 말실수 아닌 거 아니겠지? 일부러 뭔가 정신줄 놓은 듯한 느낌 주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자리에 모인 우리 동맹 군주들은 할 말이 많아 보이지만 일단 손님이 저리 열변을 토하니 입을 다문다. 사실 말을 꺼내려 해도 오디세우스가 다물게 했다.
정말 반박할 말이 천지다.
아니, 그렇게 메넬라오스랑 원수를 졌으면 전쟁 나기 전에 메넬라오스한테 결투 신청이라도 하든가.
그게 아니라도 전쟁이 난 뒤에 우리한테 연통이라도 넣으면서 첩자 노릇이라도 하든가.
결국 간만 보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된 주제에 뭔. 저런 쇼도 한순간이면 끝난다.
진짜로 저러다가 ‘여기서 뭘 하는 거요!’라고 프리아모스가 호통 한번만 쳐도 오디세우스는 추방이다. 그 다음에는? 별 수 있나, 트로이아와 맞서싸워야···
···설마.
“진정하시오, 이타카의 왕이여. 진정하시오!”
“그, 그 작자에 대한 저의 원한을 말로도 다 잇지 못할 듯하니···
우···우욱.”
-툭. 투투툭.
오디세우스의 입에서 검붉은 무언가가 쏟아져나온다.
피다.
저, 미친놈이 각혈했다.
“으어···어어윽···.”
-철푸덕.
그대로 이타카의 왕, 라에르테스의 아들, 신과 같이 지혜로운 오디세우스가 자기가 뱉은 피웅덩이 위에 쓰러지니.
모두가 당황하면서도 의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저··· 저··· 미친놈.
***
“상태는 어떤 것 같나?”
“피를 토하고, 전체적으로 몸이 쇠약한 것 같지만 일단 몸 자체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흠.”
프리아모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신관들을 물린 뒤 내게 곧장 묻는다.
“파리스, 자작극일 가능성은?”
“가능성을 따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마 반드시 자작극일 테니까요.”
이 미친놈이 알현실에서 각혈까지 하면서 노리던 게 뭐냐, 그게 더 중요하겠지만.
아무튼 내 대답에 만족한 듯 프리아모스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프리아모스, 헤카베 그리고 데이포보스와 이피게네이아는 천천히 문을 열고서 방 안쪽을 바라본다.
깨끗한 침대에서 막 정신을 차린 오디세우스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음, 으음···.”
“정신이 드시오?”
“아··· 추태를 보였군요.”
오디세우스가 목을 가다듬으며 입을 연다.
“이 칼리폴리스의 군주 되시는 분들과 트로이아의 왕중왕께 사죄드리고픈 마음뿐입니다.”
“아니오. 우리는 우리의 날개 안에서 고통받는 이를 비난할 생각이 없소. 휴식과 함께 기력을 되찾았으면 하는구려.”
“감사합니다.
아··· 파리스, 그대도 왔구려.”
볼이 살짝 패인 오디세우스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한다.
“벗이 이렇게 함께 있어주는데 뭘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뭔가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시오. 트로이아인들은 그런 곳에서 인색하지 않소.”
“아닙니다. 전 그저···”
오디세우스는 나를 흘깃 바라본다.
“벗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눌 시간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군요.”
역시나.
프리아모스와 헤카베는 서로 짧게 시선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피게네이아와 데이포보스 역시 빠르게 받아들인다.
“그럼, 파리스.”
“이타카의 왕이 무리하지 않도록 지켜보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그리 말하며 다른 이들이 방에서 빠져나간다.
-턱.
곧 문이 닫히고.
“···후우우, 뒤질 뻔했구려. 혹시 여기 어디 먹을 거 없소? 굉장히 시장한데.”
곧장 오디세우스는 기지개를 키며 입을 떠벌거린다. 방금 전까지 예의를 차리던 모습과는 딴 판이다.
나는 그에게 사과 바구니를 던져주었다. 오디세우스가 내게도 한 알 권했지만··· 나는 원래 사과 잘 안 먹는다. 이노가 주거나 하는 거 아니면.
···아무튼 그렇다.
의아해하던 오디세우스는 곧 내게서 신경을 끄고 사과를 씹으며 기력을 차린다.
“으어··· 이제야 살 것 같군.”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요? 갑자기 시기 좋게 각혈까지 나오고.”
“며칠 식음을 전폐했다가, 배 타고 오면서 돼지피 들이키기. 먹으면 토하는 약초 먹기.”
“···.”
···미친놈인가?
“죽지 않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소?”
“안 죽을 수도 있잖소. 그냥 항복하면 되는데.”
“어우, 장인어른께 맞아죽을 소리를.
‘그 웬수 같은 메넬라오스랑 같이 전쟁 나갔다가 노예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허허. 몸값 좀 내주시죠.’ 같은 소릴 지껄였다간 그대로 내 목이 부러지겠구려.”
“···.”
“물론 그 이유만 있는 건 아니지. 역시 그대와 독대하는 게 말하기 편해서 좋구려. 다른 이들이 많으면 불편해서 말이오. 특히 트로이아의 왕께서는 워낙 능수능란하시니.”
“나만 부른 게···”
“복잡한 거 다 떼놓고 이야기하는 게 내 취향이라. 그동안 메넬라오스 같은 인간이랑 같은 공간에서 숨쉬는 것만으로도 답답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런 고생을 하고 싶진 않군.”
“···.”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수십의 군주들 사이에 둘러싸여 압박받으며 프리아모스와 대화하는 것보다는 나 하나 상대하는 게 낫다 이거지.
그리고 프리아모스는 그의 의도대로 나를 이곳에 혼자 남기고 갔다.
내가 오디세우스를 맞상대할 수 있으리란 판단에서, 내게 모든 걸 위임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 믿음에 부응해서 최대한 이 인간은 구워삶아야···
“아, 그쪽도 많이들 급한가 보오?”
“음?”
“나 같은 적장이 궁정까지 달려와서 그렇게 아득바득 살려달라고 우겨대는 데 바로 쫓아내지도 않고···”
설마.
“하투샤 때문에 그렇소?”
“···무슨 소리요?”
“살짝 망설였군. 잡아뗄 생각 마쇼. 프리아모스 왕 같은 분과 대화하면 이런 게 잘 안 된다니까.”
“···.”
오디세우스가 순간 말을 잃은 내게 능글맞게 웃어보인다. 들고 있던 사과조각을 통째로 씹어삼키며.
역시.
이 인간도 알고 있다.
뒤처리 (3)
“그, 내가 아까 횡설수설하면서 뭐라 그랬는지 기억하오?”
“본인이 횡설수설한 건 잘 아나 보군.”
“그야 물론이오. 그 정신 없이 쏟아지던 말이 작전의 핵심인데.”
횡설수설이 핵심이라니.
···역시, 우리의 태도를 재보고 있던 건가?
적장이 갑자기 와서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살려달라며 떼 쓰는데 내쫓지 않는다?
이상하지. 뭔가 마냥 내쫓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 말이다. 역시 거기서 우리를 떠본 거다.
우리가 하투샤의 개입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튼 내가 그때 했던 말 중에 뭔가 특별히 걸리거나 하는 건 없었단 말이로군.”
“갑자기 메넬라오스와 거리를 두려던 뻔뻔함 정도 빼면, 역시 걸리는 건 딱히 없었소.”
내 말에 오디세우스는 한쪽 입꼬리를 씩 들어올린다. 뭐지?
“‘메넬라오스와 저 동방의 사악한 동맹자들에게 저주만이 있기를 빌고 있습니다!’”
“···뭐?”
잠깐.
나는 머릿속으로 오디세우스가 아까 방언처럼 쏟아내던 발언들을 되새겨본다.
-“···그 작자가 죽는 꼴을 지켜보고야 말겠습니다!! 아트레우스의 자손들에게··· 아니, 아니, 메넬라오스와 저 동방의 사악한 동맹자들에게 저주만이 있기를···”
‘저 동방의 사악한 동맹자들’.
“아무도 이 말을 듣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캐묻지 않더군.”
젠장, 당했다.
“잘 몰라도 정신이 없으니 그냥 넘어간 것이겠소? 아니면 정신이 없어서 모르는 척하는 걸 잊고 대수롭지 않게 거겠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는데··· 뭐, 더 잡아떼도 소용 없소. 내가 트로이아의 왕 면전에서 그 미친 짓을 벌였다면 이미 그 정도는 확신하고 있던 것 아니겠소?”
오디세우스가 괜히 모두의 앞에서 발광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하투샤에 대해 알고 있는지 확인한 거다.
처음에는, 우리가 그의 무례를 참아주는지 않는지 확인하면서.
다음으로, 슬쩍 하투샤에 대한 암시를 흘렸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서.
우리는 그의 무례를 참아주었다. 하투샤와의 일전 전에 힘을 빼고 싶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의 암시를 흘려넘겼다. 정신도 없었고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으니까.
그리고 거기서 오디세우스는 확신을 얻었다.
내가 뭐라 대꾸하려고 하자 오디세우스는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력적으로 말한다.
“생각의 실마리는 트로이아의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잡혔지.
프리아모스가 트로이아를 버렸다? 그 프리아모스가? 어째서 자신의 기반을 뒤흔드는 일을 하면서까지 아카이아와의 정면대결을 피했을까?”
“···.”
“아,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그 계책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오. 최소한의 힘으로 적을 제압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보다 나은 방법이 없지.
···그런데, 프리아모스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트로이아의 운명을 걸 만큼 중대한 이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더군.
그래서 생각했지. 혹시 뭔가에 쫓기고 있는 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