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31
31화. 푸르게 푸르게
고전기 그리스, 폴리스들이 융성하고 지중해 곳곳에 그리스인들의 식민도시가 건설되던 시기.
인구 부담이 늘자 삼림을 벌채해 땅은 농지로, 목재는 땔감으로 사용하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산들이 민둥산이 되고, 토양 유실도 가속화된다.
그 똑같은 예시가 바로 조선 후기의 자연 파괴. 18세기 이후 조선의 인구가 오히려 줄어든 것도, 삼림 파괴로 인한 기근과 생태계 교란 때문이 컸다.
그렇다면 숲과 산과 강과 개천마다 신과 요정들이 살아숨쉬는 이 시대의 트로이아에서는 어떨까?
숲이 황폐화되어 곧바로 요정들이 죽어나가고, 말라버린 수맥들에 분노한 강의 신들이 인간에게 보복한다면?
환경 파괴는 몇 세대를 걸리는 느긋한 재앙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찾아오는 신들의 복수극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고대인들도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풀과 나무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신화와 민담 속에 그렇게 강렬하게 박아두었던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을 우선 베어내고, 그 외에 높은 데 있는 가지들을 쳐낼 것입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내어 숲을 관리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으리라.
내게 호의적이던 요정들의 눈빛이 일변한다.
[나무들을, 죽이겠다고?] [그 팔다리를 자르겠다고?]“모든 수목에 요정들이 깃들어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요정들께서 허락해주신다면 그런 나무들만 선별하여 잘라내겠습니다.”
[안 돼!]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차라리 잘라내고서 사죄를 구하는 거라면 몰라도!] [미리 알리고서 우리에게 막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뻔뻔스럽기도 하지!]격분하고 놀란 것은 요정들뿐만이 아니다.
“아, 아무리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이상하군요···.”
“숲의 노여움을 샀다가는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는데···”
숲을, 그것도 연령이 오래된 숲의 나무를 훼손한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몸을 움찔거린다.
사실 대장장이라면 이미 숯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직종일 텐데, 스클레오스를 비롯한 이들마저 내 말에 거부감을 일으킨다.
그게 고대인들 사이에서 삼림 훼손이 의미하는 바였다. 신성의 모독, 삶의 터전에 대한 파괴.
그렇지만 대강이나마 생태학에 대한 이해가 있는 현대인으로서, 나는 말해야 했다.
“숲에 키 큰 나무가 너무 빽빽히 자라면 다른 나무나 풀들이 자라기 힘들어져 오히려 숲이 단조로워지지요. 가지를 치고, 몇몇 나무는 적당히 자랐을 때 베어내어 주는 것이 숲에는 이로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간들의 도시에 사자를 풀어놓겠어. 많은 이들이 죽겠지. 하지만 남은 이들은 더 좋은 삶을 살아간다면?]요정 중 하나가 튀어나와 말한다.
“비유가 부적절합니다. 도시에서 노인은 죽습니다. 그래서 후세대가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나 숲에서는 그러는 일이 흔치 않지요.
키 크고 늙은 나무가 너무 빽빽해지면 그 아래로 햇빛이 닿지 못합니다. 요정이 깃들지도 않은 늙은 나무들 때문에 어린 나무들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키 큰 나무들 간의 영양분 경쟁이 심화되는 것도 문제고.
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요정들에게 겁먹지 않았다.
나는 열두 명의 신을, 한 자리에서 마주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그러니, 숲의 빽뺵한 정도를 줄이면서 우리가 함께 상의한다면, 저희는 목재를 얻고 숲은 풍요로워질 터입니다.”
내 얼굴을 향해 불어오는 바람은 점점 더 차갑고, 매서워진다. 선명한 적의가 그 속에서 묻어나온다.
“그리고 야생을 수호하시는 아르테미스께 맹세코, 저희는 저희가 베어내는 것보다 훨씬 넓은 숲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베는 것만큼 저희는 심을 것입니다. 아니면 베어내는 것보다 더 많이 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당연히.
[헛소리!] [이건 말도 안돼!] [나무들이 죽을 거라고!!]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도끼를 들고 걸어오던 인부들은 어느새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고 자비를 빌었고, 야생의 것들을 수호하는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모두 예상했던 바대로다.
나는 거센 바람을 뚫고 일어서서 말했다.
“여러분, 부디 기회를 주십시오. 저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시켜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확인?] [기회?]“네, 기회 말입니다. 몇 년 동안만 기다려주신다면 분명 제 말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실 겁니다. 수백 년을 사시는 분들께 수 년은 찰나처럼 짧은 시간이겠죠. 부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너희는 몇 년만에 숲을 모두 죽일 수 있지!] [고작 몇 년의 말미도 우리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어!]“압니다. 그렇다면 요정이 깃든 나무들에만 표시를 해두겠습니다. 너무 어린 나무들은 베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나이 들고 커다란 나무만 베어가겠다고?]“네.”
[너희들의 도끼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굵고 튼튼한 나무들이랑 씨름하다가 일이 틀어지면 어린 나무들을 또 베어가려 하겠지.]원하던 질문이 나왔다.
이제 준비해둔 대답을 할 때다.
“그건 걱정 없습니다.”
나의 말을 신호로, 정신을 차린 인부들이 준비해둔 제물을 바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철로 된 날이 번뜩이는 도끼날이 끼어 있다.
[쇠붙이를, 도끼에 쓴다고?] [지하의 재보 중에서 인간들이 가장 애지중지하던 게 쇠붙이 아니었어?]“이젠, 아니게 될 겁니다. 그 도끼들로 늙고 힘없는 나무들만 베어내겠습니다. 어린 나무들은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인부들이 부딧돌로 불을 붙이고 그 속에 돼지와 양들을 던져넣자 숲의 요정들도 천천히 다가와 그 냄새를 흠향하기 시작한다.
“저희의 진의를 받아주십시오. 저희는 이 땅의 풍요를 해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천천히 바람이 멎어간다. 요정들이 하나둘씩 숲에서 나와 제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반드시 더 풍요롭고 넓어진 숲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스틱스 강을 걸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어.] [맞아. 그건 너무 가혹하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 정도 제물이라면···.] [제물뿐만이 아니지. 강철까지 희생해서 약속을 지키겠다면야···]“부디, 부탁드립니다.”
나는 오른무릎을 꿇었고, 요정들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자신들까지 수근거렸다.
잔바람이 살랑거리며 나무들 사이에서 속살거렸고, 나뭇잎들과 나뭇가지가 끊임없이 스치며 부드러운 파도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물론입니다.”
모두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이듯 한 마디 대답이 나왔고,
내가 수긍하자 곧 요정들은 공기 중으로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아마 다시 나무나 풀꽃의 모습으로 돌아갔으리라.
“고마워, 이노.”
“아냐! 이제 언니들이 네 말을 들어줄 테니까. 혹시나 나도 너랑 어울린다고 이상한 애 취급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이노도 내게 손을 흔들며 저 숲 쪽으로 사라진다.
이제 인간들만이 남았다.
“이제, 어쩌지?”
“어쩌긴.”
한 인부의 말에 스클레오스 아저씨가 웃었다.
아저씨는 손뼉을 부딪히며 발걸음을 대장간 쪽으로 돌렸다.
“이제 다시 일해야지.”
***
“···계획을 생각하면 이걸로는 모자랄 텐데.”
“일단 다른 방법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이 방식대로 연료를 수급하도록 하죠.”
괜찮다. 당장 대규모로 삼림이 유실되는 건 아니니까.
이전처럼 적당히 나무 베면서 신들과 요정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용서를 구하면서, 거기에 가외로 가지치기와 수목의 머릿수 줄이기로 나무를 베어가면 그만이다.
당장은.
내가 생각하는 제철 사업의 규모는 그저 작은 대장간 하나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당장은 괜찮아도 땔감의 수요는 점점 커질 테고, 그럴수록 삼림 파괴의 위협은 커진다.
“···갈탄.”
예전에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와의 대화’인가 뭔가 하는 책의 북콘서트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의 저자인 중증 터키뽕 환자가 내게 말해줬던 게 기억난다.
-“터키는 석탄이라고는 갈탄뿐인데, 그게 에너지 생산량의 3할을 차지하고···”
아니, 당신 이름이 케말이야? 대체 왜 남의 나라 에너지 산업을 꿰고 있는데.
아무튼 간에 트로이 주변에 갈탄 산지가 있는 건 기억한다. 비교적 가까운 것도 안다.
“파리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아··· 아닙니다.”
하지만, 써먹을 수는 없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이 시대에 쓰이지 않는 자원을 채굴해서 원거리로 수송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눈에도 띄리라.
“결국에는, 삼림을 계속해서 심고 적당히 유지하는 수밖에 없나?”
아무튼 산과 숲의 요정들이 존재하니까, 그 덕에 이 지역의 산이 우리 때문에 모조리 민둥산으로 변해버리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거면 됐다.
땔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 뒤, 우리는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수차는 결국 동력을 발생시키는 게 전부다.
중요한 것은 수차에 연결되어 실제로 풍압을 끌어올릴 풀무의 존재, 그리고 그 풍압을 통해 이전보다 고온으로 불타오를 불꽃을 견딜 새로운 괴철로의 설계다.
“여기서 중요한 건 풀무일세. 수차의 돌아가는 힘을 이 풀무에 전달해서 돌아가게 해야 하니. 수차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괴철로를 설치해서···.”
“그런데, 그게 괴철로가 맞습니까? 무슨 집처럼 커다랗지 않습니까?”
“이전보다 내부에 들어가는 불꽃도 훨씬 강할 걸세. 그러니 이만큼은 규모를 키워야 걸세.”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는 내 쪽을 슬며시 돌아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아저씨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헤파이스토스 맙소사, 그래서 땔감 걱정을 한 게로군.”
“이렇게 거대한 괴철로라면 어마어마한 양의 숯을 소모하겠습니다.”
비록 내가 가진 지식이 한정되어 있고, 내게 실무 경험이 전혀 없다지만, 나는 미래인이다.
그리스는 암염광산도 있는 동네이니 염전에 대한 지식은 쓸모가 없었다. 흑색화약의 이상적인 배합비 따위도 아무 의미 없는 지식이었다.
그래도 몇 가지 미래 지식은 건질 수 있었다.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망치도 매달죠.”
“망치라···.”
“수차가 돌아가는 힘으로 알아서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들면 분명 괴철이 아무리 쏟아져 나와도 견딜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중세 후기의 대장간 구조라든가.
대단한 기술적 지식은 없다. 그저 막 떠오른 천재적 영감인 것처럼, 어린아이의 순수한 질문처럼 생각의 씨앗들을 던질 뿐.
“흐으음, 이 정도 규모의 괴철로라면 그냥 흙으로 메꿔서 만드는 정도가 아니겠군요.”
“벽돌을 촘촘히 쌓아올려가야겠어. 웬만한 성벽만큼 튼튼해야 하나?”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그 뼈대에 살을 붙인다.
물론 내가 말한 그대로가 마법처럼 실현되지는 않는다.
“수차, 수차 찌그러진다! 당장 멈춰!!”
“수문 닫으라고!!”
이전의 공정에서 단순히 규모만 늘어난 게 아니다.
더 복잡해지고, 더 위험해진 만큼 쇠를 다루는 법도 훨씬 어려워졌다.
괴철로 내부의 구조라든가, 사용 방법에 대해서도 새로 익혀야 했다.
그리고 급히 새로 수혈한 인부들에게 이 공정들의 필요성과 효과를 납득시키는 일도 필요했다.
스클레오스 아저씨에게는 그 모든 게 ‘헤파이스토스의 가호를 받는 소년의 영감’이었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새롭고 위험한 모험이었으니.
기껏해봐야 드럼통 하나 만하던 괴철로를 창고 크기로 키운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비유하자면, 00년대 초에 ‘핸드폰으로 인터넷이랑 게임도 하고, TV도 보고, 화면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만들죠?’라고 말하는 것처럼 황당한 일.
그만큼 지난한 설득과 실험의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한편, 거기에 필요한 땔감을 구하는 일도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숲에서는 이노의 도움을 받아 요정이 사는 나무에만 끈으로 둘레를 묶어놓아 표시했다. 실수로 베어버리지 않도록.
[멈춰!]“멈추시란다!”
“그만! 그만! 이 나무가 아니야!!”
혹시 모를 사고도, 요정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감시하는 통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나무꾼들에게 가위를 들려보내 적당히 오래되고 무성한 가지들을 쳐내게 하였다.
어느 정도 숲의 하늘이 개이자, 햇빛이 이끼 깔린 부드러운 바닥까지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이러면, 숲이 풍성해지는 게 맞아?”
“당연하지. 내가 너희 언니들한테 없는 소리를 했겠어?”
숲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새로운 나무들이 그 옆에 심어지고 있는지 이노와 함께 주기적으로 감독을 가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이 붙나?”
“붙는다!”
“스클레오스 님? 스클레오스 님? 성공입니다!!!”
“파리스, 와보거라!!!”
마침내 건설된 괴철로에 불이 붙는다.
첫 괴철 덩어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침을 꿀꺽 삼키며 대장장이들은 그 덩어리를 두드려 패고, 이물질을 긁어낸다.
“이쯤 하면 됐어요! 이제 접어요!”
“집게 가져와!!”
그렇게 쿵쿵거리는 거대 망치 아래서 괴철 덩어리들이 강철검으로 화(化)한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첫번째 완성품인 칼로 돼지 갈비를 가로베었다.
-카가가가가각!!!
뼛조각이 비산하고, 고깃조각이 사방에 튀어 굶주린 들개들을 유인했다.
“뼈가 깔끔히 잘려나갔다!!”
“성공이야!!!”
누군가는 그 덩어리에서 돈을 보고, 명예를 봤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승리를 봤다.
트로이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 강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