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동료들
대강 안탄드로스로 올 때부터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군주로서 부도덕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으리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순간이 이리 일찍 다가올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파리스 님. 여기 들으시죠.”
“아, 그래··· 고맙네. 그건 그렇고 요새 소문만 들어도 대단하더군. 전차도 아닌데, 자네 상단에서 쓰는 수레는 죄다 바퀴축을 강철로 바꿨다고?”
“아! 소식을 들으셨군요! 그게 얼마나 돈이 깨지··· 아니, 큼, 별 거 아닙니다. 어차피 이 도시에서는 농기구 만드는 데도 쓰는 게 강철 아닙니까?”
그렇게 애써 겸손히 말하면서도 아노이토스는 내 말에 눈을 빛낸다.
“아니야. 대단한 일이 맞지.
아무튼 이제 자네는 명실상부하게 안탄드로스에서 가장 큰 상인이 되었잖나? 아니, 한참 전부터 그랬겠지만 이제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을 거야.”
“하하! 안탄드로스의 모두가 그렇게 말할 겁니다.
너무 교만하지 않으려 했지만, 보십시오!”
아노이토스는 양팔을 벌리며 자랑스레 주위를 돌아본다.
여전히 익숙한 그 저택이다.
이 자리에서 내가 카시우스를 처음 만났지···.
사람도 처음으로 죽여보고···.
음, 추억의 장소에 온 듯해서 기분이 아련해진다.
어쨌건.
저 얼룩덜룩한 게 아마 표범 가죽이겠지. 이 시대에는 아직 소아시아 땅의 표범이 멸종하지 않았을 테다.
상처 하나 없는 상등품인 것 같은데 아노이토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깔아놓고서 마구 밟고 다닌다.
게다가 이런저런 문양이 새겨진 의자도, 탁자도 모두 저 멀리 남쪽 아이깁토스 너머에서 수입해 왔을 것 같은 새까만 흑단나무.
지나가는 시종들에게까지도 품위를 지키라며 금실로 수놓아진 망토를 둘러놨다.
“이런 곳에서 손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안탄드로스에서 가장 큰 상인이 아니라면 뭐겠습니까? 아마 안탄드로스의 다른 상인들이 가진 선박과 수레의 수를 다 합해도 제 것만큼은 되지 못할 겁니다.”
“지금까지 이룬 업적에 걸맞은 사치지. 카시우스의 아들 아노이토스는 이 정도쯤은 누릴 자격이 있어. 자부심을 느껴도 좋아.”
“진실에 뿌리를 둔 자부심을 말이죠.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저희가 쥐고 있는 도로 건설 사업과 철괴 무역 덕분에요.”
그리 말하며 아노이토스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내게 절한다.
“그러니 제가 아무리 부유해도 파리스 님께는 비기지 못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아무리 부유해도 나는 못하고, 자네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네.”
나는 탁자 위의 견과류를 들어 살펴보다 말한다.
“자네 입으로 말했다시피 자네가 동원 가능한 선박의 수는 다른 상인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자네가 에게 해, 아니 지중해 곳곳을 누비면서 쌓은 관계와 요령도 안탄드로스의 여느 누가 범접할 수 없지.”
“과찬이십니다.”
아노이토스는 그리 말하면서도 내가 비행기 태워주니 웃음기를 감추지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이다.
“이게 과찬이 아니니까··· 내가 지금 자네에게 어려운 부탁을 건네려 하는 걸세.”
뭔가 짐덩이를 떠넘기기에 말이다.
내 말에 아노이토스의 표정이 잠시 굳는다.
그 모습에 어쩐지 돈가스 사준다 해놓고 자식을 치과에 데려온 어머니가 된 기분이다.
아노이토스가 뭐라 말을 꺼내기 전에 나무판 하나를 건넸다.
아노이토스는 의아한 듯 그 나무판을 받아들고는 그 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읽어보게.”
“음··· 각종 열매 또는 채소, 밀이나 보리 같은 곡식, 곡식과 함께 기르기 좋은 콩··· 이게 뭡니까? 온갖 작물들의 목록인 것 같은데.”
“그게 내 부탁일세.”
“···예?”
“내가 제분소를 지으면서 깨달은 건데, 밀 낱알이 크면 나와, 농부들과, 지주들 모두가 가져갈 몫이 늘어나지 않았겠나?”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자네가 그 큰 낱알을 찾아오게.”
“저··· 무슨 말씀이신지?”
“지중해 전체를 다 뒤져서 그 명단에 있는 것들의 씨앗은 다 뒤져서 와줬으면 하는데.”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잘···”
나는 이제야 교수들이 중간고사 문제로 ‘xx에 대해 아는 대로 논하시오.’ 같은 문제를 출제하는지 알겠다.
“당연히 자네가 구할 수 있는 건 다 구해야지?”
“어, 예?”
시키는 쪽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부담 없고,
시킴당하는 쪽은 자연스럽게 안간힘을 쓰게 된다.
아노이토스는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지 한동안 어리둥절하다, 서서히 얼굴이 새파래지기 시작한다.
나는 아노이토스가 나를 절규하며 붙잡기 전에 가까스로 저택을 빠져나왔다.
안탄드로스의 군주는 잔혹하게도 지역 유지 아노이토스에게 짬때리기를 시전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
잠시, 트로이아와 히타이트가 서로를 향해 전쟁을 준비하는 이 미친 세계에서 벗어나보자.
그리고 호메로스와 뭇 시인들이 그렸던 그 전설과 신화 속 영웅들의 세계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한··· 기원전 1,200년대에서 1,190년대 정도 된다고 생각해 보고.
이 시절에는 이집트에 19번째 왕조가 세워졌을 시점이고, 아시리아와 히타이트가 중동에서 힘겨루기를 하던 때다.
그리고 아카이아에서는 헬레네의 앞에 구혼자들이 몰려든다. 그 가운데는 ‘제우스와 같이 현명한’ 오디세우스 역시 끼어있다.
구혼자들은 스파르타의 왕위를 가져다 줄 신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두고 서로 다툰다.
말그대로 구혼자들이 온 아카이아에서 몰려온 만큼 여기서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가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스파르타가 멸망할지도 모를 험악한 상황.
그 상황을 타개해낸 게 바로 오디세우스다.
오디세우스가 내놓은 합의안은 간단했다.
1.결혼 상대는 당사자인 헬레네가 고른다.
2.헬레네의 결정에 모든 구혼자들은 승복한다.
3.누군가 헬레네의 결혼을 방해한다면, 이 자리의 모든 구혼자가 힘을 합쳐 그놈을 조진다.
누가 스파르타의 차기 왕으로 뽑히든, 책임 소재는 적절히 뭉개지고 나중에 딴 소리 할 여지도 없애는 탁월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 합의가 이뤄지고 몇 년 뒤, 현명하기 그지 없는 오디세우스는…
자기 혼자 졸렬하게 미친 척을 하고 그 합의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그 ‘미친 척’이란, 보폭이 서로 완전히 다른 당나귀와 황소를 같이 묶어서 쟁기를 끌게 하고, 밭에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는 일이었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iMac 컴퓨터로 고사양 게임을 돌리고는, 뜨거워진 본체를 식히겠다고 위에다 시원한 콜라를 붓는 정도의 짓이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그 수작질을 간파한 팔라메데스가 쟁기 앞에 오디세우스의 갓난아기 아들을 데려다 놓자, 당연히 제 자식 죽일 생각은 없었던 오디세우스가 피해 가서 미친 ‘척’을 들킨다.
그 뒤로는 강제 참전.
참고로 오디세우스는 이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나중에 팔라메데스에게 배신자 누명을 씌워서 죽여버린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는 건, 성질 더러운 놈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교훈만이 아니다.
바로 이 시대에 이미 쟁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외에도, 신화 속에서 쟁기에 대한 언급은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목동 자리는 쟁기를 발명해 데메테르를 기쁘게 한 목동이 별자리가 된 것이라 한다.
이아손은 황금양털을 찾아 콜키스로 떠난 뒤, 콜키스의 왕에게 놋쇠 발을 지닌 소를 쟁기에 매어 밭을 갈고 용의 이빨을 뿌리라는 과업을 부여받는다.
즉, 이 시대에는 이미 소가 끄는 쟁기와 우경(牛耕)이 퍼져 있었다. 적어도 신화상에서는 그렇다.
지금 내가 데려온 농부도 소를 데리고 밭갈다가 내게 끌려온 것이니 말 다했다.
“저 쟁기, 내가 직접 몰아보고 싶군.”
“주군께서 쟁기 손잡이를 내려놓으라 하신다.”
근처에 선 병사의 명령에 얼떨떨한 표정의 농부가 비켜서자, 나는 소에게 가볍게 채찍질을 하고 땅을 갈아본다.
가볍다.
힘이 별로 안 들어간다.
그리고···
“얕군.”
“무엇이 말입니까?”
“쟁기의 보습이 흙 아래로 파고들어가는 깊이가 생각한 것보다 한참은 부족해. 이건 그냥 땅의 표면을 긁는 수준이 아닌가?”
“예··· 원래 그렇지요? 아무튼 그렇게 긁어줘야 작물이 잘 자란다고, 저는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그렇겠지.
이 시대에는 딱 이렇게 생긴 쟁기 말고는 본 적이 없을 테니.
이 가볍고 단순한 형태의 쟁기를 일컬어 아드(Ard)라고 한다.
인류 농경의 역사를 놓고 살펴볼 때 상당히 원시적인 형태의 쟁기 중 하나고, 가벼운 만큼 남유럽의 모래 섞인 토양에서는 나름 쓸 만했다.
어디까지나 ‘나름’일 뿐, 중세에 이르러 다른 개량된 쟁기들에 밀려나지만.
여기서부터는 내 서글픈 인생사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파, 파리스 님? 괜찮으십니까?”
“···눈에 땀이 들어가서. 수건 어디 없나?”
“자네들! 어서 깨끗한 수건 가져오게!!”
“예, 아노이토스 님!”
“그건, 그렇고 우선 보습 위에 볏(Mould board)부터 달도록 하지. 보습이 밀어올린 흙을 완전히 부숴줄 부분이 없군.
그리고··· 바닥쇠(Land side)가 없어서 안정성이 떨어져. 보습날이 통통 튄다고.”
“파, 파리스 님?”
“그렇게 부품을 추가하면 자연스럽게 무게감이 생겨서 흙이 더 깊이 파이겠군. 아, 이 망할 나무 보습도 당장 강철로 바꾸지. 아직도 보급이 안 되어 있단 말이야?”
“파리스 님? 그, 농사 관련한 지식은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아노이토스, 나는 노예였고 각종 잡무를 겪으며 굴렀던 사람이야. 자네도 잘 알면서.”
“주군을 어렸을 때부터 뵈어왔지만 농삿일을 맡던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대체 어떻게···”
“···살다 보면 다 알게 돼.”
···어릴 적의 잘못된 선택으로, ‘농사’ 과목이 있는 대안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면 말이지.
그리고 거기서 경운기 타는 박찬호마냥 말 많은 농사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더더욱 확실히.
나는 차마 거기까지는 다 말하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 내 모습에, 주위에서 웅성거리며 군주가 밭 가는 모습을 구경하던 농부들은 침묵했다.
나를 호위하러 트로이아에서부터 따라온 병사들은 일부러 딴 곳을 보았고.
아노이토스 역시 눈치를 발휘하여 적당히 모른 척 주변의 시종에게 방금 내용 잘 받아적었냐며 타박했다.
아마도 내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기 때문이리라.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
···오늘 날씨 참 더럽게 나쁘네.
***
쟁기는 시작일 뿐이다.
낫과 삽, 괭이와 갈퀴, 스랑···.
저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농기구들 중 태반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 시대다.
정말 간단한 발상조차도 3,000년 전의 과거에서는 혁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 지긋지긋하도록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여기에 고작 판 하나를 더 덧대는 수준으로 농사 기술이 1,000년은 넘는 발전도상을 생략하기도 하고.
다시 저기에 바퀴를 달고, 손잡이를 하나 더 다는 것만으로도 들어가는 노동력이 반으로 줄기도 했다.
아주 약간의 지적과 손길만으로도 농기구들이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물론 내가 각 잡고 노력한다면 훨씬 복잡한 농기구들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근데, 그게 도입될지 여부도 나는 모른다. 그걸 유지할 수 있을지의 여부도.
“그래서, 여기 가로대를 하나 더하면 무게가 효과적으로 분산되죠. 아마 이런··· 식으로 훨씬 끌고 다니기 편해질 겁니다.”
그만큼 간단하고 간편한 혁신만을 나는 퍼뜨렸다.
“재밌구나. 네 가벼운 손길 몇 번으로 일손이 이렇게 줄어든다니.”
내가 그리는 도면을 보고서 턱수염을 쓰다듬는 스클레오스 역시 내 속내를 얕게나마 알아챈 듯싶었다.
“원래 신들께서는 이런 세부적인 데 기뻐하시는 법이죠.”
나는 왠지 공감이라도 받은 듯 기분이 좋아져 스클레오스에게 말한다.
“보세요. 여기 이 집게에 가로대를 빼면?”
“곧바로 조임이 더 강해지지.”
“정확해요. 문제를 맞추셨으니 이것들은 다 선물로 드릴게요.”
나는 이런저런 설계도면(나무판 위에 그려진)을 스클레오스에게 건넸다. 스클레오스는 제법 묵직해진 판자 뭉치를 저 한쪽으로 밀어 치워낸다.
아주 오랜만에, 둘이서만 헤파이스토스가 내려준 대장간에 자리잡고 앉아있다. 나무판과 점토판을 산처럼 쌓아놓고서.
뭔가를 생각하거나 고민할 때는 여기만 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이걸 해보죠.”
나는 스클레오스를 데리고 새로 만든 기물 앞으로 데려갔다.
회전하는 원통 표면 곳곳에 가시처럼 쇠로 된 고리가 달려있는, 마치 멀리서 보면 고문기구처럼 보일 무언가다.
나는 옆에 묶어놓은 밀이삭 다발을 들고서 그 원통 위에 올려놓고··· 그 원통을 천천히 돌린다.
“이렇게 밀이삭을 쥐고서 이 부분을 돌리면··· 자, 빠르게 밀의 낟알이 밑으로 떨어져 내리겠죠. 여기 설치해 놓은 쇠고리들이 마구 이삭을 두들겨줄 겁니다.”
“그게 물론 사람 힘으로 두드리거나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물론이죠.”
“이건 또 뭐라 부르면 될까? 지난번에 말해줬던 다른 기물처럼 아이깁토스나 ‘머나먼 동방’에서 부르는 말이 따로 있니?”
“이건··· 특별한 이름은 없고, 그냥 탈곡기라 하죠.”
“정말 별 거 없는 이름이구나.”
스클레오스가 가볍게 웃으며 “탈곡기, 탈곡기라···”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다 직접 밀이삭을 쥐고는 원통을 가볍게 발로 돌려본다.
무수히 많은 밀알이 바닥에 떨어지며 파도 같은 소리를 낸다.
“···.”
어딘가,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끔 만드는 소리다.
“파리스.”
“예, 아저씨.”
스클레오스는 잠시 나와, 굳게 닫힌 대장간의 문을 번갈아 본다.
“우리 참 많이도 이뤘구나.”
“그렇죠.”
“쉴 새 없이 달려왔지. 누군가는 평생을 다해도 얻지 못할 것들을 쟁취하면서.”
스클레오스가 웃는다.
“나는 그래도 충분히 쉬엄쉬엄 걸어왔다.”
“아저씨가 노력해오신 걸 제가 아는데요?”
“아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네게 비하자면.”
스클레오스가 저 멀리 화로를 내다보며 말한다. 춤추며, 일렁이며, 깜빡거리는 불꽃을.
“너는, 정말로 쉴 새 없이 달려왔지. 무언가에 쫓기듯이. 나는 그 이유를 네게 묻지는 않았다.”
“···.”
“그래도 내가 네게 의지할 만한 사람은 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내가 아니더라도··· 약간 미덥지 못해도 아노이토스가 있고, 다른 대장장이들이 있으며, 또 너를 존경하는 안탄드로스의 시민들이 있으니까.”
“아저씨.”
“그러니까.”
스클레오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마주본다.
“가끔은 의지하거라. 쉬어가기도 하고.”
스클레오스는 지팡이를 짚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너 먼저 궁전으로 돌아가 있거라. 네 연인에게 편지라도 쓰는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겠지. 여긴 내가 정리하고 갈 테니.”
그리 말하며, 절뚝, 절뚝, 스클레오스는 빗자루 쪽으로 걸어간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대장간 문 쪽으로 향했다. 지금 그의 호의를 거부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무례한 것임을 알기에.
다만 문을 닫고 나서기 전에 뒤돌아서 한 마디를 말했을 뿐이었다.
“···고마워요.”
아저씨는 뒤돌아선 채, 가만히 내게 손을 흔들어보일 뿐이었다.
그뿐이었고.
나는 그날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