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the chief of Jurassic Defense RAW novel - Chapter (168)
168. 취조
키르케.
저놈의 존재는 대단히 위험했다.
결정적인 순간, 저번과 같이 이곳의 데몬족 유닛들에게 ‘스피릿 링크’라도 걸어버린다면?
혹은 ‘드림 이터’를 통해 다른 곳의 병력을 이곳으로 워프라도 시킨다면?
그야말로 대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
나는 곧바로 키르케를 가리키며 외쳤다.
“조니! 저쪽 멀리 보면 한 여자가 서있다. 보이나?”
“저거라고 하시면… 저 멀리 보이는 검은 로브의 여자 말씀이십니까?”
“제거해야 한다. 위험한 여자니까. 가능하겠나?”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해보는 게 아니라, 해내야 했다.
뭐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이건 호오의 영역이 아니라 필요의 영역이란 말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도 없는 것이, 조니는 지금껏 이보다 먼 거리의 저격도 수월하게 성공시킨 전력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터- 트으으을-!!》
어느새 다가온 거대 괴수.
등딱지가 온갖 종류의 철제 무기로 뒤덮인 강철 거북이, ‘아이언 터틀’이 디바인 타워를 두들기자, 조니의 에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쿵-! 쿵-!
놈이 부딪칠 때마다 어마어마한 흔들림이 타워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큭… 진동 때문에 저 멀리 있는 놈은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키르케, 이 개자식!
과연,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는 전장에만 기어 나오는, 이 게임에서 가장 교활한 유일보스다웠다.
– 꺄하하하핫!!
멀어서 보이지는 않지만, 녀석을 클릭하면 나오는 간사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씹, 브릿지에는 암살 영웅 없냐?’
이곳의 모든 데몬족 유닛들의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모든 유닛들에게 ‘스피릿 링크’가 걸려버린 것이다.
“어째서?”
“갑자기 적들이 단단해졌습니다!!”
벌써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키르케는 대상 유닛 1기를 유혹하여 완전히 아군으로 만드는, 사기적인 궁으로 유명한 데몬족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궁이 유독 시그니처 격으로 유명해진 것일 뿐.
사실, 실질적인 성능으로 따졌을 때 키르케의 가장 무서운 스킬은 바로 저 ‘스피릿 링크’였다.
유닛들을 엮어 HP의 50%를 공유하게 만드는 스킬.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그 성능은 일전의 딱딱이들에게서 한 번 증명된 적 있었다.
물량전의 규모가 커질수록 빛을 발하는 씹사기 스킬.
‘데몬족이 사기인 이유 AtoZ’가 있다면 중 당당히 그 첫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밸런스가 터져 있는 스킬이었다.
하지만 데몬족의 비슷한 서포팅형 영웅, 레프티레스 코아틀의 스킬 한 방 한 방이 그러했듯, 키르케의 ‘스피릿 링크’ 또한 그 소모값이 매우 컸다.
‘놈은 현재 그걸 두 번이나 사용한 상태지.’
혹시 모르는 위험 상황을 대비해 직접 나서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 방법’을 쓸 타이밍인 듯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기회다.’
저 녀석은 지금, 자기가 닿지 않는 곳에 있다고….
충분히 안전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완전한 착각이지.’
이미 한 번 선보인 바 있듯, 내게는 특이하고 아주 레어한 뼈피리가 하나 있었으니.
[내세의 인도자(전설)]종류 : 피리
OP : 3
빛 없는 세상 : 내세에 있는 동안, 대상 유닛의 능력치를 50% 흡수합니다.
사용시 – 배삯 : 유닛 하나를 끌고 내세로 진입합니다. 재사용시 내세를 빠져나오며, 그러지 않을 경우 최대 24시간 동안 머무를 수 있습니다.
【빛 없는 세상을 지배하는 침묵의 노래. 앞을 보지 못하는 두 눈이 그대의 고통을 먹고 산다.】
과거 하이랜드에 쳐들어온 리치를 조져버렸던 나의 숨겨진 비대칭 전력, ‘내세의 인도자’.
비밀의 방에 한 놈을 가둔 뒤 뒤질 때까지 팰 수 있는, 1:1 전용 사기 아티팩트였다.
“도레미-”
피리리-
뼈피리의 구멍을 통해 기묘한 소리가 울리자마자, 그것은 곧 시각화되어 내 시야에 표시되었다.
피리 소리는 공기라는 매질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고, 마침내.
희미하지만 저 멀리 있는 키르케의 몸을 순식간에 에워쌌다.
《…!!》
놈도 뭔가를 깨달았는지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눈치챘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다.
놈이 아무리 빨라 봐야 소리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
《잠… 잠깐, 이건…!!》
노을이라도 내리쬐는 듯 하늘이 피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디바인 타워를 무너뜨릴 듯 뒤흔들던 아이언 터틀의 모습도 사라지고, 그 밖의 모든 데몬족 유닛들도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당연하지만, 아군의 모습도 마찬가지.
나는 타워 위에 선 채, 광활한 죽음의 벌판 위에 주저앉아 있는 검은 로브의 여자를 확인했다.
“저기요!”
키르케는 곧바로 일어나 반대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공포에 걸려서 그런지, 스탭이 어지간히도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즉시 타워에서 뛰어내린 뒤, 놈에게 이어 외쳤다.
“잠깐만 얘기 좀~ 어딜 그리 급하게~”
[2스킬, ‘배틀 오더스’가 사용되었습니다.]《이익…!》
[‘배틀 오더스 – 강제 명령’이 적용 중입니다.]W의 효과로 키르케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얼굴이 선해 보이시네요!”
[3스킬, ‘워크라이’가 사용되었습니다.]철퍼덕.
Q의 ‘공포’ 효과와 E의 ‘넉백’ 효과가 동시에 적용되었고, 키르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흐… 흐아아아아!!》
“…?”
나는 녀석을 향해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그런데 그런 와중,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눈썹을 찌그러뜨렸다.
‘어째 반응이… 인게임에서 알고 있던 거랑 조금 다른데?’
원래 내가 아는 키르케의 모습은 ‘꺄하하하핫!’ 웃으며 폼 잡는 여자의 이미지였다.
저렇게 무아지경으로 공포에 떠는 모습이 아니라.
그때, 키르케가 온 힘을 다해 검보랏빛 기운을 흩뿌렸다.
저건 아마도 타겟팅 유닛을 공룡으로 바꾸는 Q, ‘크리플’이거나, 혹은 유닛을 빼앗아 버리는 R, ‘몽유병’일 터.
“응, 안 통해~”
《어째서…? 오, 오지 마!!》
현재의 나는 5분 동안 마법 면역이었다.
언젠가 놈과 마주칠 순간을 대비하여 항상 들고 다니던, ‘항마의 두루마리’를 찢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미 많이 봤지?”
캠페인 14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유일보스, 키르케.
이놈은 데몬족의 악랄한 유틸 계열 서포팅 영웅이었다.
패시브인 ‘꿈추적’을 통해 접근한 적에게는 피해를 입힐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직접 공격 능력이 전무한 캐릭터.
《미… 미안해…! 나에게도 사정이…!》
“흠, 반말이라? 흥미롭군.”
《죄… 죄송해욧…!》
나는 넘어진 채 저도 모르게 뒤로 기어가려 하는 녀석의 얼굴로, 붕 떠 있는 ‘자루 없는 도끼’를 들이대며 말했다.
“죄송하면 일단 좀 맞고 시작하자.”
이어, ‘자루 없는 도끼’가 용서 없이 놈의 정수리를 찍었다.
깡!
《마, 말로 해요… 어째서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폭력을…!》
“어째서냐고…?”
일단 기억을 되살리는 동안 한 방.
깡!
놈에게 조종당한 뒤 현재 폐인이 되어 교화소에 갇혀있는 내 둘째 형, 스탠리.
이놈에게 조종당해 아들과 싸우다 사망한 에렌드리엘.
정찰 도중 이놈을 만나 사망한 루센트와 브릿지의 전사들까지.
“너, 지능이 떨어지는 거냐? 양심을 탯줄 자를 때 같이 자른 거냐? 어째서냐고 했냐, 방금?”
《그,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이 했던 일이에요!》
“그래? 누가 너한테 칼 들고 협박했냐? 다 유혹한 뒤에 죽이라고?”
《그, 그건…!》
“누가 그랬어? 말이나 해 봐.”
《그건… 그건 태고의 악께서…》
“호오, 그 태고의 악이란 게 뭔데?”
깡!
《저도 몰라요! 그런데 왜 자꾸 말하는데 때리시는 거…! 꺄아악!》
깡!
“시간 있을 때 부지런히 HP를 깎아 놔야지. 일단 안 죽게 때리고 있으니까,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신경쓰지 말고 계속 말하도록.”
《얘, 얘기하면… 살려주실 건가요?》
“봐서.”
녀석이 자꾸 징징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유일보스 보정을 받는 영웅이긴 했지만, 키르케는 타 보스들에 비해 유난히 HP가 적었다.
하여 놈을 딸피까지 깎아놓는 데는 아크한의 허접한 딜량으로도 충분했다.
《태고의 악에 대해서 궁금하신 거죠…?》
“응.”
《하지만, 그건….》
“그건?”
나는 말없이 쇳덩이를 녀석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예상 외라고 할까.
키르케는 생각보다 근성이 있는 마물이었다.
《저… 저도 잘 몰라횻…!》
항마의 두루마리 지속시간은 아직 몇 분 남았지만, 키르케의 HP는 벌써 거의 바닥나 있었다.
대충 처맞으면 술술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라면 의외였다.
“허허.”
하지만 의외는 의외고.
‘자루 없는 도끼’는 자비 없이 키르케의 정수리에 또 한 번 떨어졌다.
깡!
명쾌한 소리.
이번에 처맞은 뒤.
정말로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느꼈는지 키르케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저, 정말로 몰라요… 저도 그냥 강제로 불려와서 부려먹히는 입장이라…!》
“넌 어디서 왔는데?”
《말해도 모르실 텐데….》
“아무래도 지능이 낮은 게 맞는 것 같군. 대답할 땐 좀 생각 좀 하고 해라.”
깡!
《히이이이익!!》
바닥에 웅크리고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새된 비명을 지르는 키르케.
결국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얼핏 보면 순진무구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저건 사특한 데몬족 마물이 보이는 악어의 눈물에 불과했다.
“대체 너는 아는 게 뭐냐, 응?”
《재성해욧… 제발 이제 그만… 저 정말 죽어욧!》
깡!
키르케가 파리가 손을 비비듯 하며 살려달라 빌었다.
이름 : 키르케
HP : 4/585
DP : 1 (비무장)
– 공포
이제 진짜로 한 대만 더 치면 죽는 상황이었다.
슬슬 마법을 막아주는 ‘항마의 두루마리’의 지속시간도 다 되어갔다.
갑작스러웠지만, 간만에 말이 통하는 데몬족이라 뭐라도 알아낼 게 있나 싶었는데.
아쉽지만 이대로 끝내야할 것 같았다.
“잘가라.”
《…….》
“악의는 없으니, 너무 원망 말고.”
그렇게 마지막으로 쇳덩이를 내리꽂기 위해 마나를 흘려보낸 순간.
줄곧 살려달라고만 빌던 키르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웃어?”
《감히… 이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욕을 선사하다니.》
죽기 전의 유언인가 싶었다.
***
《가만 안 둘 거야, 당신… 그거 알아? 그 누구도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 무사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절대로,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갑자기 꼭지가 돈 것 같이 구는 키르케.
나는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은 이미 E스킬, ‘드림이터 소환’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하지만 아무런 전조도 없었는데?’
찰나의 순간.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저걸 사용하기 위해서는 ‘신호석’이라는 아이템을 땅에 박아넣어야 한다.’
하지만 놈이 비슷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쉴 새 없이 놈을 쥐어팼다.
저런 스킬을 사용할 틈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어떻게?
그 순간, 나는 이어서 깨달았다.
놈의 앞에 떨어져 있는 한 방울의 시커먼 눈물 자국을.
그 검은 눈물은 땅에 스며들지 않고, 딱딱하게 뭉쳤다.
그리고 이내 손톱만한 쐐기석, ‘드림 이터 신호석’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시발…!’
그러나 이제 와서 깨달아 봐야 헛수고였다.
신호석이 박혀 있던 땅이 쫘악 갈라졌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악!!》
튀어나온 것은 거대한 검은 벌레.
때로는 데몬족의 대규모 병력 이동수단이기도 하며, 때로는 키르케가 펼치는 궁극의 탈출기이기도 한 소환수, ‘드림 이터’였다.
《아크한 가이… 재미있는 인간…》
그것이 튀어나오며 일으킨 충격에 의해, 내 몸과 키르케의 정수리를 내리치려던 ‘자루 없는 도끼’가 힘없이 튕겨 나갔다.
“큭!”
《너는 오늘 후회할 짓을 한 거야. 조만간 반드시 내 발밑에 엎드려놓고 싹싹 빌게 해주겠어… 그때를 기대하라고… 꺄하하하핫!!》
키르케의 몸이 드림 이터의 거대한 입에 집어 삼켜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
하지만 그때, 나는 가까스로 눈동자를 굴려 시야 상단을 가리켰다.
[∥]삐빅-
[‘일시정지’를 사용하셨습니다. 남은 횟수 2/3]익숙한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세상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멈춰버린 세상.
그 동안 몇 번 써봤다고, 이제는 꽤 적응되어 버렸다.
닫혀가는 드림 이터의 아가리의 틈으로 나를 노려보는 키르케의 눈빛이 보였다.
대충 눈알을 굴려 확인해 보니, ‘자루 없는 도끼’는 저멀리 튕겨 날아가고 있었다.
나 또한 묘한 자세로 허공에 떠올라 멈춰 있었다.
이를 전부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긴장을 풀고 지금 벌어진 상황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설마 키르케의 눈물이 ‘신호석’의 재료일줄이야.’
인게임에서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충전되는 아이템이었기에, 거기까지는 미처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역시 악어의 눈물, 마물의 눈물다웠다.
아무튼,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신속히 일시정지를 사용하긴 했지만, 문제는….
방어전을 치르랴, 취조를 하랴.
나의 남은 마나는 이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리치 때는 포션으로 성채 스킬을 뽀려와서, 마나가 무한이었는데…!’
이 시간정지 스킬은 마나 소모가 크다.
숨을 쉬고, 눈을 깜빡이는 정도로는 딱히 마나 소모가 거의 없지만, 막상 그 이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마나가 쭉쭉 빠지는 가성비 극악의 스킬이었다.
하물며 현재의 마나는 함성 한 번 지르기 어려울 정도로 바닥인 상황.
‘이대로면 몸의 자세를 다잡는 것만으로 일시정지가 풀린다.’
‘신비로운 물’을 마셔서 마나를 회복한 뒤, 함성을 지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건 즉시 회복 포션이 아니었다.
서서히 차오르는 마나를 기다릴 시간에 키르케는 사라질 것이다.
손에 든 둥근고리 큰칼을 던져서 놈을 마무리한다?
그 정도를 기대하기에는, 아크한의 무기 투척술에 대한 신뢰도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운좋게 맞으면 좋은 것이고, 빗나가면 그것대로 끝인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이 상태로 키르케를 마무리지을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아… 하지만.’
문득, 예전에 토기깡을 통해 얻은 아이템.
작은 유리병에 담긴 핑크색 액체를 떠올렸다.
그때는 딱히 쓸 곳이 없어서 아껴두었던 아이템이었다.
‘차선책인가.’
[매혹의 묘약(전설)]종류 : 포션
매혹 – 대상 적 유닛을 우군으로 만듭니다. 인간형 적에게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죽이고, 자르고, 베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고 포옹하면서도 실패하는가?】
‘내세’에 들어온 뒤, 키르케를 패는 동안 차오른 마나는 고작해야 15.
과거 여러 번의 ‘일시 정지’의 테스트 경험상, 이 마나는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날아갈 만큼 적디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 이 마나는, 단 한 번의 동작 정도는 충분히 펼칠 수 있는 마나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쓰레기통에 뭘 던져넣는 정도는 말이지….’
포션을 잡고 엄지로 ‘매혹의 묘약’의 뚜껑을 따니 ‘뽕’ 소리가 났다.
나는 즉시 드림 이터의 아가리 속을 향해 포션을 힘차게 던져넣었다.
핑크빛 액체가 회색 허공을 가로지르는 순간, 내 마나가 0이 되었다.
삐빅-
[‘일시정지’가 해제되었습니다.]《어…?!》
키르케는 바보 같은 목소리를 내뱉으며, 눈앞에 나타난 흩날리는 핑크색 액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덥썩!
드림 이터는 키르케를 물어버린 채 차원의 균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
그렇게 키르케를 보낸 뒤.
나는 한동안 마나 고갈에 의한 극심한 현기증으로 인해 바닥에서 신음하며 뒹굴었다.
그러다 자연 회복에 의해 마나가 0에서 1이 되는 순간, 간신히 몸을 털고 일어났다.
“…일단 돌아가자.”
키르케를 놓친 건 아쉬웠지만, 당장의 방어전에서 가장 큰 위협이 될 문제는 사라졌다.
어쨌든 이번 턴에는 이 정도의 성과로 만족해야 할 듯했다.
삐리리-
‘내세의 인도자’ 뿔피리에 바람을 집어넣자, 맑은 공명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붉은 하늘과 대지가 다시금 데스랜드의 그것과 같이 검게 변해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음?”
서있던 디바인 타워가 사라져 있었다.
‘타워가 없다고?’
다시 보니, 그냥 지우개처럼 없어져 있는 게 아니었다.
타워는 다 무너져 폐허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우글거리는 데몬족의 유닛들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