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1006)
1006화 그동안 다른 곳에서는….. (11)
채산성을 따져본다면 이런 방식의 수송은 매우 비경제적이었다. 그렇기에 유럽인들이 ‘대순환 항로’라며 ‘대’자까지 붙이자 제국인들은 고개를 갸웃한 것이었다. 물론, 유럽인들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항구들만 마음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사탕주 증류소들이 있는 남신지 제도의 항구들만 보면서 군침을 삼키는 유럽인들이었다. 그 항구들만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글로리아의 개발은 물론이고 대순환항로의 운용효율도 몇 배는 올릴 수 있을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탕주 수송’이라는 핑계를 대고 들어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물론이고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도 슬그머니 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저 섬들을 우리 것으로 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 * *
남신지제도의 섬들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유럽의 열강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고 가장 먼저 포기한 방법은 ‘무력’이었다.
“우리는 대서양을 가로질러야 하지만 저놈들은 코앞이라고, 너무 불리해.”
“거리도 거리지만, 신지에 있는 제국군들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지 잊었어?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전쟁을 생각해 봐. 멀리 떨어져 있으면 포탄들을 미친 듯이 날리고, 가까워지면 미친 듯이 총탄들을 쏴대고, 더 가까워지면 도끼들을 날리던 인간들이야.”
무력을 투사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와 군사력의 차이를 이유로 유럽의 열강들은 무력사용을 포기했다.
“지금은 무리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일단은.
* * *
제국도 유럽 열강들의 사용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향과 현, 그리고 완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서신들이 오갔고, 관료들도 이를 놓고 연일 의견을 나누었다.
“사탕주 증류소들을 넘기는 것이 하책이었다고 봅니다.”
“소탐대실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완과 대신들을 대표해 현이 문제를 제기하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일 수 있소. 하지만, 사탕주 증류소들은 넘겨야만 했소. 너무 압도적인 이득을 봤거든.”
“넘겨주지 않았다면 저들이 제국을 적대했을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마도.”
향의 대답에 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총리들과 장관들도 비슷한 말을 하기는 했습니다. 저 아래쪽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더군요.”
현의 말에 향은 코웃음을 쳤다.
“흥! 일 터진 다음에 그딴 식으로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소인배들이 보이는 가장 흔한 특징이지. 군자라면 일이 터지기 전에 목숨 걸고 간했을 것이오. 대인배라면 현실을 인정하고 가장 좋은 대처법을 찾을 것이고.”
그렇게 단언한 향은 사관들을 노려봤다. 향의 시선에 움찔한 사관들은 열심히 타자기를 두들겼다. 밑에서 돈다는 소문을 일축한 향은 현에게 말을 이었다.
“사탕주 증류소가 있는 남신지 제도의 섬들이 걱정이기는 하지만, 좋은 점도 있지 않소?”
향의 말에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현이 눈을 빛냈다.
“당랑재후(螳螂在後)의 계(計)입니까?”
‘사마귀가 매미를 노리를 것에 정신이 팔려 뒤에서 자기를 노리는 새를 보지 못한다.’라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가 언급되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오.”
답을 한 향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제국의 이익이 가장 크게 걸린 곳은 신지 본토다.
-유럽 열강들이 남신지 제도의 섬들에 정신이 팔린 틈을 이용해 우리는 신지 본토의 지배력과 방어력을 강화한다.
-제국이 신지 본토를 확고히 장악한다면 유럽 열강들은 당분간 신지 본토를 욕심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제국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방어력을 더욱 강화한다.
-이런 순환이 반복된다면 제국의 국경은 더욱 안전해질 것이다.
-아! 그렇군요! 사탕주 증류소들을 넘기면서 발생한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새로운 계책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것이로군요!”
“그렇소.”
향의 설명에 환한 얼굴로 대답하던 현의 얼굴이 곧 어두워졌다.
“하지만, 예산이 문제입니다. 지금도 국방부에 배정되는 예산이 과하다는 상소가 줄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의 말에 향은 인상을 구기며 대답했다.
“그런 멍청이들이 제일 시끄럽다는 것이 문제요.”
매년 연말과 년 초가 되면 제국 조정은 전국 관아에 예산과 관련된 게시문을 붙였다. 연말에 붙는 게시물은 내년 예산이 어디에 얼마가 쓰일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었고, 년 초에 붙는 것은 작년에 얼마나 썼는지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때마다 상소문이 홍수처럼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상소는 국방비의 비중이 너무 높다고 비판하는 것들이었다.
“흥!”
향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뭐라더라? 소인의 고향을 지키는 성벽이 낮아도 장정이 쉽게 넘을 수 없고, 해자가 얕아도 뛰어넘을 수 있는 이가 없습니다. 이 제국의 사방으로는 넓은 바다가 둘러쳐져 있으니 이는 천연의 해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제아무리 강력한 화포의 화탄도 바다를 넘을 수 없으니, 천혜의 요새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예로부터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무예를 갈고 닦기보다 덕을 갈고 닦아 사방을 교화하는 것이 진정한 왕도입니다. 쯧쯧쯧!”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차는 향의 모습에 현은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그걸 다 기억하고 계십니까?’
“하도 어이가 없어서 기억하게 됐소. 뭐, 제아무리 강력한 화포의 화탄도 바다를 넘을 수 없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다니! 헙!”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이야기한 향은 다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현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설마 가능한 것입니까? 혹시, 이미 궁리하신 것이라도?”
“아….그게……”
말을 더듬으며 얼버무리려던 향은 현의 표정을 보고는 포기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말은 나왔고, 뒷일은 내가 알 바냐!’
“산화신기전을 궁리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소.”
“흐음…..”
“생각이오, 생각.”
“흐음…..알겠습니다.”
묘한 표정을 지은 현이 뒤로 물러나자, 향은 다급히 마무리를 지었다.
“유럽의 열강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포기를 모르는 족속들이니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생각하오. 그렇다고 조정과 백성들의 살림살이에 무리를 줘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하오. 황제께서 이미 이것을 잘 알고 계실 테지만, 노파심에 말하오.”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 모두 나가고 방에 홀로 남은 향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슬아슬했다. 그나저나 나도 갈 때가 다 되었나? 많이 풀어졌네. 그나저나….”
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전쟁의 냄새가 다시 진해지는 군. 만약, 유럽의 열강들 가운데 하나라도 무연화약을 만들어낸다면 진짜 레이스의 시작이다.”
한편, 얼마 지나지 않아 51구역과 바다 건너 52구역까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태상황께서는 바다 너머까지 화탄을 날릴 수 있는 화포가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니다! 산화신기전으로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래애~?”
소문을 들은 장인들은 눈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향의 걱정하던 일이 발생했다.
잉글랜드에서 무연화약이 나온 것이었다.
* * *
일의 시작은 잉글랜드의 사우샘프턴 외곽에 자리한 마을이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약 60여 호의 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르에는 특이한 존재가 있었다.
망상가, 몽상가, 허풍선이, 미친놈 등과 같은 안 좋은 별명이 다 붙은 아마추어 연금술사였다. 이웃들은 문제의 연금술사를 볼때마다 혀를 찼다.
“쯧! 예전에는 그래도 착실한 친구였는데.”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는 친구였는데….”
“그놈의 폭은이 뭐라고…..”
“제일 불쌍한 것은 그놈 마누라지.”
이웃들이 혀를 차게 만든 아마추어 연금술사, 도비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프랑스에서 폭은을 만든 이가 돈방석에 앉았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였다. 평소에 화약에 관심이 많았던 도비는 소문을 듣자마자 일생의 목표가 생겼다.
“폭은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그렇다면, 화약! 화약이다! 동방 제국의 화약이 연기도 적으면서 강력하다지? 그런 것을 만들어낸다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어!’
목표를 정한 도비는 이후로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도비의 가정에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도비가 연구에 매달리면서 가계의 유지를 부인이 전적으로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2~3년 동안은 도비의 부인도 큰 불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5년과 10년을 넘어가면서 도비의 부인도 참을 수가 없어졌다.
“이 망할 종자야! 언제까지 되지도 않을 일에 매달려 있을 거야! 일해야 할 것 아냐!”
“조금만 기다려 줘. 조금만 더하면 될 것 같아.”
“그 조금만이 벌써 몇 년이야! 이 망할 종자야! 일을 해, 일을!”
이런 구박 속에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도비는 연구를 계속했다. 그런 어느 날, 연구실-정확히는 부엌 겸 거실-에서 연구를 진행하던 도비는 사고를 치게 되었다.
쨍그랑!
실험용 책상 위에 놓였던 황산병과 질산병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이런!”
도비는 다급히 치클 장갑을 낀 손으로 주변에 있던 타월을 잡고 바닥을 닦았다. 코를 찌르는 질산의 냄새를 참아가며 바닥을 닦은 도비는 엉망이 된 타월을 보고는 기겁했다. 그것은 타월이 아니라 부인이 아끼는 앞치마였다.
“이걸 어떻게…..”
엉망이 되어버린 앞치마를 멍하니 바라보는 도비의 귀에는 벌써 아내의 욕설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도비의 이성이 날아갔다.
“나만 왜! 나도 성공하고 싶다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로 이성을 잃은 도비는 앞에 있던 벽난로에 앞치마를 집어던졌다.
순간.
펑!
앞치마가 벽난로의 불길에 닿는 순간 불길이 폭발적으로 솟아올랐다. 불운하게도 화덕 주변에는 이런저런 탈것들이 잔뜩 있었고, 여기에 불이 옮겨 붙었다.
“불이야! 불이야!”
집안으로 불이 번지자 도비는 다급히 밖으로 튀어나왔다. 화재를 발견한 이웃들이 급히 달려와 불을 끄는 동안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도비는 갑자기 눈을 빛냈다.
‘화염, 마치 폭발과도 같은…..폭발? 폭발!’
순간, 도비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하!”
“뭘 잘 했다고 웃어! 이제는 더 못 참아! 이혼이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럽 최초의 무연화약, 일명 ‘이혼(Divorce)화약’. 또는 ‘D-화약’이라 불리는 화약이 탄생하게 되었다. 첩보를 입수한 유럽의 열강들은 뇌물과 스파이를 동원해 잉글랜드에서 무연화약의 비밀을 알아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열강들은 비슷한 무연화약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개발한 무연화약으로 도비가 돈방석에 오른 것과는 별도로, 이는 유럽의 제2차 군비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나니와의 일본 상인들이 피냄새가 섞인 돈냄새를 맡게 된 것도 이 때쯤이었다.
-전쟁은 돈이 된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를 확실하게 각인하고 있던 나니와의 일본 상인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