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환상의 나라, 환장의 나라. (1)
임자년(세종14년, 1432년) 5월.
진평대군의 사저(私邸)인 명례궁(明禮宮)에서 첫째 아들인 현동의 백일잔치가 벌어졌다.
우리 민족이 전통적으로 좋아했던 숫자인 3과 7을 조합한 초이레(7일)와 세이레(21일)는 진평 가족들끼리 조용히 넘어갔지만, 백일은 좀 크게 잔치를 열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명례궁으로 향하면서 향은 작게 중얼거렸다.
“백이라는 단어 자체가 제대로 다 갖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까….”
실제로도 고어에서 ‘100’을 뜻하는 단어는 ‘온’이었다.
“그나저나 이 자식들은 뭐가 이리 빠른 거야? 호르몬이 좀 다른가? 아니면 뭔가 다른 요인? 나 몰래 뭐 따로 챙겨 먹었나?”
가볍게 손가락을 짚어 가며 숫자를 세 보던 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첫아들을 낳은 진평의 나이가 열셋이었다. 그리고 다음 달에 백일잔치를 치르는 안평의 나이는 12세였다. 물론, 햇수로만 따지면 각기 15세, 14세였지만 빠른 것은 빠른 것이었다.
“아무리 조혼(早婚)이 일반적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상황에 투덜거리는 향이었지만, 향이 계속 잊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의 아비인 세종이 첫 자식을 얻었을 때 나이가 열넷이었다는 것을.
* * *
향이 명례궁 앞에 도착했을 때, 명례궁의 대문 앞은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훠이~. 물렀거라! 세자 저하 행차시다!”
앞서 나간 내관의 외침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땅에 엎드렸다.
말에서 내린 향은 대문 앞에 넢죽 엎드려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사람들이 많은데, 무슨 일인가?”
“백일 떡을 받으러 왔습니다요.”
“백일 떡? 아….”
백서의 대답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일을 맞은 아이가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떡을 돌리는 것은 반상을 가리지 않았다.
“저하! 이리도 와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옵니다!”
향이 왔다는 소식에 안에 있던 진평이 급히 나와 향을 맞이했다.
“아우님의 첫아들이 백일이 되었다는데 와 봐야지. 축하하네.”
“감사하옵니다!”
직접 안내를 하는 진평의 안내를 받아 명례궁으로 들어선 향은 안뜰로 들어서자 눈을 크게 떴다.
실물의 절반 크기로 만들어진 철마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건?”
“예! 제가 좀 더 연구를 하고자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런 덕후 같으니라고! 진짜 철덕은 답이 없다더니, 사실이네!’
진평의 대답에 향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돈과 권력을 가진 덕후가 덕질을 하면 뭐가 만들어지는지 제대로 증명하는 진평이었다.
내관이 집사에게 축하 예물을 건네주고 있을 때, 대청에 오른 향은 잔치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가 참 똘망똘망합니다. 앞날이 기대되는군요.”
“감사하옵니다.”
향의 덕담에 진평의 부인인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 윤씨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 대부인의 모습과 진평의 모습을 본 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애와 애가 만나 애를 낳았네.’
다른 이들이 들었으면 ‘남 말 하고 앉아 있다!’라고 욕했을 발언을 하는 향이었다.
백일잔치라 떡과 차가 놓인 상을 앞에 놓고 향은 진평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영민해 보이는 것이 앞으로 미래가 기대되는구나.”
향의 덕담에 진평이 헤벌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저도 저 아이가 빨리 자라기를 빌고 있사옵니다! 얼른 자라서 자기 동생들과 함께 저를 도와 이 조선 전역에 철로를 까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꿈이 참….”
뭐라고 하려는 것을 억지로 참던 향은 곁눈질로 대부인 윤씨의 모습을 보고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아이를 안고 진평의 대화를 듣던 윤씨가 이마에 손을 얹고 작게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향은 진평에게 물었다.
“이제 겨우 첫째인데, 벌써 동생을 운운하냐?”
“하하! 미리미리 준비해야지요! 이 조선에서 철로 하면 저와 제 자식들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고, 저와 제 자식들의 이름이 나오면 바로 철로가 나오게 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진평의 얼굴을 보며 향은 조용히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갔다.
‘나도 덕후기는 하지만, 너는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어쨌거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향을 상대로 진평은 자신이 가진 철로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드러내며 철로의 중요성에 관해 역설했다.
“…해서, 철로야말로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조건 중히 써야 할 물건이옵니다.”
진평의 발언에 향은 짧게 대답했다.
“이 자식아, 그 철마와 철로를 만든 게 나다.”
“아….”
순간 입을 다문 진평이었지만,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저하. ‘동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옵니다. 너무 진척이 늦은 것 아니옵니까?”
“조선의 역량이 아직은 강하지 못하니 그리 보이는 것뿐이다. 그런데 너까지 아는 것을 보니 한성에서 모르는 이가 없겠구나?”
“하하! 소제야, 철로를 깔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하느라 알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아바마마와 저하께서 신하들을 닦달하셔야 하옵니다. 조선의 모자라는 역량은 강역(疆域)을 넓히면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사옵니다! 최대한 빠르게 강역을 확장하고 철도를 깔아야 합니다!”
“이 자식아! 나….”
순간적으로 ‘이 자식아, 나가!’라고 외칠 뻔한 것을 억지로 참은 향은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따갚되라니! 따갚되라니! 야, 이 미친놈아!’
‘따서 갚으면 된다.’의 준말인 ‘따갚되’. 2차 대전, 미국을 전쟁에 참전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일본의 전략이 가장 유명한 ‘따갚되’였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백일잔치에 참석하고 환궁하는 길에 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 자식하고 군이 엮이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겠군. 하아~. 철도를 깔기 위해 땅따먹기를 하자니….”
* * *
와르릉! 쾅!
요란하게 천둥 번개가 치는 밤. 강녕전에 앉은 어린 임금 앞으로 중년의 진평이 걸어왔다.
피와 살점이 범벅이 된 철추(鐵鎚)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은 진평을 보며 어린 임금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숙부, 꼭 이러셔야 했습니까?”
“그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나라의 교통에 가장 중요한 철로의 노선을 자기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 결정하려 했습니다! 이는 죽어 마땅한 죄입니다!”
꽈광!
순간 요란하게 천둥이 내리쳤다. 천둥소리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진평의 서슬에 겁을 먹은 것인지 부들부들 떨던 어린 임금이 입을 열었다.
“숙, 숙부의 뜻대로 하세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 진평은 절을 하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돌려 나갔다.
강녕전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진평의 모습과 함께 사극에서 익숙하게 듣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해서, 진평은 자신의 뜻에 따라 철도와 관련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었다. 사가들은 이때의 일을 일컬어 ‘계유철난(癸酉鐵亂)’이라 했다.
그때, 광화문 앞에 만들어진 해태상이 우렁차게 포효했다.
“왈왈왈!”
* * *
“허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향이 몸을 일으키자, 옆에서 같이 자고 있던 세자빈도 놀라 몸을 일으켰다.
“저하! 무슨 일이이시옵니까?”
놀란 세자빈의 물음에 향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안 좋은 꿈을 꾼 것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친 호흡을 하는 향을 보며 불안해진 세자빈은 계속 물었다.
“어의를 부르겠사옵니다.”
“괜찮습니다.”
“숨이 거치십니다. 이보게, 양 상궁! 거기 있는가!”
“예, 마노라.”
“당장 어의를 불러오게!”
“예.”
상궁에게 명령을 내린 세자빈은 향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한 것을 보고는 적삼의 고름으로 식은땀을 닦아 주기 시작했다.
“이를 어째….”
잠시 후, 급히 달려온 어의는 향을 진맥하고는 처방을 내렸다.
“요즘 과로하셔서 기가 살짝 허해지신 듯하오니다. 기를 돋워 주는 탕약을 처방하겠사옵니다.”
어의의 대답에 세자빈이 당부를 잊지 않았다.
“잘 부탁하네.”
“예, 마노라.”
* * *
날이 밝고, 향 부부의 아침 문안을 받은 세종과 소헌왕후는 하나같이 밤에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걱정의 말을 잊지 않았다.
“살짝 피곤해서 그랬던 것뿐입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합니다.”
“오늘 하루는 일을 쉬는 것이 어떠하냐?”
세종의 말에 향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바마마께서도 쉼 없이 국정을 보시는데 제가 쉰다는 것은 불효입니다. 어의가 지은 약을 먹고 좋아졌으니 심려 놓으셔도 됩니다.”
향의 대답에 세종은 다시 주의를 주었다.
“조심 또 조심하거라. 너는 이 나라의 세자니라.”
“명심하겠습니다.”
* * *
51구역의 사무실에 혼자 앉은 향은 팔짱을 낀 채 빈 종이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개꿈이냐, 예지몽이냐….”
간밤의 꿈을 떠올리던 향은 자신의 배를 만져 보며 중얼거렸다.
“아바마마만이 아니라 나도 ‘무병장수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하나? 요즘 한동안 무술 수련을 안 했지?”
입고 있던 장포를 벗어 옷걸이에 걸은 향은 벽에 걸어 놓은 거울을 보며 슬쩍슬쩍 자세들을 취해 봤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던 향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불량 콩나물 같은 녀석.”
진평을 떠올리며 투덜거리는 향이었다.
* * *
철저히 성리학에 입각해 궁중 법도를 짠 조선이었지만, 다음 대(代)의 군주인 세자를 교육하는 과정을 유학 중심으로만 짜지 않았다.
유학 경전의 교육만큼이나 무술 교육도 필수였다. 때문에, 제대로 훈육을 받은 세자라면 문무겸비(文武兼備)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존재였다.
“문제는 그렇게 무예를 가르치고 체력을 키우는 것이 씨 잘 뿌리고, 왕이 된 다음에 쉽게 뻗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런 것 같지만 말이야….”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향은 성장기에 맞춰 착실하게 무예 수련을 하며 신체를 발달시켰다.
‘진평에게 밀리면 안 된다! 밀리면 내 자식이 엿 먹는다!’
향으로서는 자신의 건강을 지켜야만 하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평이 철도에 덕통 사고를 당한 이후로, 진평에 대한 경계심은 많이 느슨해진 상태였다. 그렇게 경계심이 느슨해지고, 이런저런 덕질에 집중하면서 한동안 무예 수련을 등한시했었다.
하지만, 지난 백일잔치에서 철도에 관한 진평의 집착은 충분히 경계할 만한 것이었다.
결국, 향은 한숨을 쉬며 시간표를 재조정해야 했다.
“후우~. 세상살이라는 것이 참 쉽지가 않아….”
그렇게 시간표를 재조정하던 향은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내가 끼어든 이후로 역사는 얼마나 변한 것일까? ‘역사는 항상성이 있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내가 알던 역사로 돌아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향이 끼어든 이후로, 조선의 역사는 경악할 정도로 변했다. 그런 변화 가운데에는 향이 알면서도 개입한 것들도 있었지만, 향이 모르는 것들도 있었다.
그렇게 향이 모르는 가운데 벌어진 변화에는 이번에 태어난 진평의 첫째 아들도 있었다.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 진평, 아니, 수양의 첫째 아들은 6년 후에 태어났었다. 만약, 이번에 태어난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죽지만 않는다면 또다시 역사가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향이 알면서도 바꾼 역사는 향의 결혼과 득남(得男)이었다. 지금 태어난 아이가 탈 없이 성장한다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처럼 향이 일찍 죽더라도 충분한 기반을 갖출 수 있는 나이와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이었다.
* * *
작가의 말.
안녕하십니까?
‘블랙기업조선’을 쓰고 있는 국뽕입니다.
우선 어제 연재 펑크를 낸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자면 ‘고장 난 컴퓨터는 반드시 고쳐 쓰자.’입니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지난번 사고 친 데탑이 잘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데탑에서 신나게 작성하고 연재분 편집을 위해 블록 저장하는 순간… 컴이 나갔습니다.
물론, 자동백업 설정을 해 놨지만, 공황 상태에서 마구 클릭하다 보니 백업파일까지 날렸네요.
덕분에 처음부터 다시 작성해야 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신경 써서 작성해야겠네요.
덧. 그렇게 공황 상태가 되니 넋이 나간다는 말이 실감되더군요.
휴재 공지 요청하고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1시간이 넘게 그냥 지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