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723)
723화 선위 (5)
진평과 티격태격하면서 가볍게 몸을 푼 향은 말에 올라 신지 행궁으로 향했다.
“상당한 규모라고 했는데….”
약 5리(2km)정도 떨어진 행궁으로 향하며 향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 * *
신지를 발견하고 지금은 초시라고 불리는 교두보를 확보한 제국-당시는 조선-은 교두보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건설 공사에 돌입했다.
당시, 건설 작업에 들어간 병사들은 미친 듯이 벌목을 해야만 했다.
“이제는 도끼만 봐도 신물이 넘어 온다!”
공병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공공연하게 돌 정도로 초시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벌목을 해야만 했다. 주변이 모두 삼림지대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삼림지대의 규모였다.
신지의 삼림지대는 제국인들의 인지영역을 가뿐하게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동빙항 북쪽의 삼림지대도 대단했는데, 신지는 그 몇 배는 되는 것 같군.”
동빙항 건설 과정과 이후 북방 삼림지대 개척에 참여했었던 노련한 고참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넓이였다.
하지만, 이런 불평불만들이 쏟아져나와도 벌목을 멈출 수는 없었다.
본토에서 보내오는 보급품을 쌓아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둘이다. 하나는 바다를 메우는 것, 다른 하나는 저 빌어먹을 나무들을 다 베어 넘기는 것. 어느 것으로 할까?”
행정보급업무를 맡은 간부들의 말에 병사들은 바로 입을 다물고 톱과 도끼를 집어 들었다.
거주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베어 넘긴 나무들은 잘 말린 다음 건물을 짓기 위한 재료로 탈바꿈했다.
이때부터 상황은 재미있어졌다.
* * *
“이거 회죽이 모자랄 것 같은데? 철근도 그렇고 말이야.”
“그렇지? 그렇다고 식량과 의약품, 화약을 줄일 수도 없고 말이야.”
본토에서는 회죽과 철근이 나무를 밀어내고 주요 건축 재료의 자리를 차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본토에서 공급을 받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던 신지에서 회죽과 철근을 사용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았다.
그리고 신지 개발 초기만 하더라도 사이 좋은 부족보다 적대적인 부족들이 더욱 많은 상황이었기에, 탄약 보급을 줄일 수도 없었다.
결국, 지휘관들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나무로 짓자고! 사방에 넘치는 것이 나무니까!”
다행히 공병부대의 하급과 중급간부들 사이에는 목수나 석수 출신들이 상당했다. 이는 당연한 것이었는데, 공병부대의 창설 시작부터 향이 적극적으로 목수들과 석수 등을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방에 넘치는 것이 나무고 돌이었던 덕에 이들은 그야말로 신나서 건물들을 지어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목질이라니! 본토에서 이런 나무로 집을 지으려면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꿈도 못 꿨는데! 이런 좋은 재료를 공짜로 쓸 수 있다니! 오메, 좋은 거!”
거기에 고급 간부들과 관리들의결정도 한몫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보급품들과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 확실하니, 짓는 김에 크게 짓도록!”
“예!”
“공간이 부족해? 그럼 나무 좀 더 베어내!”
“예!”
높으신 분들의 결정에 따라 초시의 건축물들은 시작부터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게 되었다.
이후, 동진을 시작하면서 중간중간 지어지는 요새와 주둔지 역시 큼지막하게 지어지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공병부대 소속의 목수들과 석수들의 솜씨는 일취월장했다.
덕분에 동쪽으로 가면 갈수록 지어지는 건축물들은 점점 웅장해졌고, 세련되어졌다.
단순히 크고 웅장해진 것만이 아니었다. 방어시설의 경우에도 나무와 흙, 돌을 이용해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졌다.
이런 건축물들은 뜻밖의 효과도 가져왔는데, 웅장한 건물들을 본 인근의 부족들이 우호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 천둥소리 부족이 머무는 곳 가 봤어? 어떻게 저렇게 큰 건물들을 만들 수 있는 거지?”
당시 북미 지역 원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중남미의 원주민들과 달리 거의 신석기 수준에서 멈춰 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들소와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에서 생활하는 수준이었다. 소수의 부족이 나무와 흙, 돌을 이용해 집을 지었지만, 철기는 고사하고 청동기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은 움집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군이 세운 웅장한 건물들과 요새는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때문에, 주변의 부족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정점이 미쉬가마에 지어진 행궁이었다.
* * *
동쪽으로 오면 올수록 삼림지대의 나무들이 점점 더 치밀하고 단단한 목질을 가진 수종으로 변하고 있었다.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 벌어졌던 미영전쟁 시기에 악명을 떨친 미국 함선들의 단단한 선체는 이 동부 지역에서 벌목한 목재들로 만든 것이었다.
덕분에 제대로 다듬기만 한다면 최고의 건축 재료를 너무나도 쉽게 구하게 된 것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대호군(大湖群, 지금의 5대호 지역)을 발견한 다음이었다.
주변에 여러 자원 지대가 널려 있고, 조금만 더 동진하면 동해안이 나오는 지역이었기에 세종은 이곳을 신지 개발의 중심으로 결정했다.
물론, 여기에는 향이 듬뿍 MSG를 친 것도 한몫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를 놓칠 수는 없지!”
세종의 결정이 내려졌기에, 신지 개척단은 거점 도시를 어디에 지을 것인지 꼼꼼히 따졌다.
“졸지에 무학대사가 되어버렸구먼!”
“그럼, 여기가 왕십리인감?”
농담 반 진담 반이기는 했지만, 새로운 도읍을 찾는 무학대사의 심정으로 개척단은 대호군 주변을 뒤졌다.
그렇게 고심 끝에 정한 곳이 미쉬가마였다. 토착 원주민들의 말로 ‘큰 물, 많은 물’이라는 뜻을 가진 미쉬가마는 5개의 대호 가운데 4개와 접하고 있었다.
“어차피 철로도 깔겠지만, 그전까지는 수운을 이용할 수 있으니 최고의 지역이네.”
“호수 자체가 천연의 방어시설이 되니 그것도 좋군.”
이렇게 자리를 잡은 개척단은 교두보-이후 초시로 명명-와의 연결로를 확실하게 닦기 시작했고,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보고를 받은 세종이 대규모 개발단을 보내면서 미쉬가마의 건설은 더욱 속도를 올렸다.
특히나, 51구역을 본뜬 52구역의 건설과 운영을 위한 장인들이 대규모로 도착하면서 미쉬가마의 관리들은 큰 그림을 그렸다.
“한성-지금의 서울-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도시를 만들어 버리자!”
“그거 좋지! 어차피 기록에 남는 거! 내 이름 석 자 한번 제대로 남겨야지!”
‘기록의 나라’답게 모든 행정업무에는 관련자들의 이름을 빠짐 없이 기록하는 것이 제국이었다.
거기에 세종이 선위한 다음 신지로 옮겨와 진두지휘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이렇게 상황이 신지에 머물면서 신지를 관리하는 것이 세종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시작부터 확실하게 하자!
문제는 자금이었다.
하지만, 사방에 널린 것이 나무였고, 필요한 철재는 52구역 건설을 위해 온 장인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해 보였다.
장인들에게 공급할 광물의 문제는 주변에 자리한 부족들을 잘 구슬리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이리저리 재고 따져본 결과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선 관리들과 군인들은 의기투합했다.
“그래, 하자!”
“가자!”
* * *
그런 개발 배경이 있었기에 향은 미쉬가마에 지어진 행궁에 호기심을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행궁 정문에 도착한 향은 입을 떡 벌렸다.
“이게 행궁이라고?”
향의 물음에 관리는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로 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상당히 넓군.”
“예, 좀 넓사옵니다!”
관리의 대답에 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금성이 초라해 보이는군.’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동서로 5리(약 2km)이며, 남북으로 6리(약 2.4km)이옵니다.”
관리의 대답에 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천조국 스케일이 사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땅덩어리에서 나온 것이었냐! 좀만 더 키웠다면 서울 전체랑 맞먹는 덩치가 나왔겠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고개를 흔들던 향은 관리에게 물었다.
“규모가 너무 큰 것 아닌가?”
“그것이 업무의 효율을 높이다 보니, 덩치가 커졌사옵니다.”
“업무의 효율?”
“예, 행정부의 건물들과 제국군 주둔지를 가깝게 두다 보니 덩치가 커졌사옵니다.”
“그러니까, 육조의 건물들과 궁과 미쉬가마를 방어하는 군의 주둔지도 저 안에 다 있다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거기에 유사시에는 밖에 거주하는 백성들이 피난할 장소도 같이 넣다 보니 덩치가 커졌사옵니다.”
관리의 설명에 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합당하군… 알겠네. 들어가세.”
“예. 폐하.”
관리의 안내를 받으며 향 일행은 행궁의 정문으로 향했다.
“충!”
정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군례를 받으며 정문을 통과한 향은 직선으로 쭉 뻗은 대로를 보며 다시 한번 고개를 흔들었다.
“궁 안에서도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겠군.”
“청결 문제와 효율을 위해 순환마차를 운영할 계획이옵니다.”
“순환 마차?”
“예.”
관리의 대답에 향은 다시금 고개를 흔들며 속으로 외쳤다.
‘아바마마! 도대체 무엇을 만드신 것입니까!’
* * *
내궁이자 본궁에 도착한 향은 짐을 풀자마자 바로 관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미쉬가마의 지도를 가지고 오도록.”
“여독부터 푸심이….”
“여독은 여독이고 일은 일일세. 가지고 오도록.”
“예, 폐하.”
관리가 가져온 대형지도를 확인한 향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향의 중얼거림을 들은 관리는 잠시 주저하다 향에게 서찰 한 통을 내밀었다.
“무엇인가?”
“만약, 상황 폐하께서 지도부터 찾으시면 상황 폐하께 전달하라며 태상황께서 남기신 서찰이옵니다.”
관리의 말에 서찰을 건네받은 향은 봉투를 뜯고 서찰을 꺼냈다.
세종의 필체가 확실한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
-내가 시작한 거 아니다. 부채질만 했다.
“하하하….”
허탈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린 향은 지도를 살피다 관리에게 명했다.
“진평공작에게 오라고 전하게.”
“예, 폐하.”
관리를 내보낸 향은 지도를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동서 횡단 철도보다 시내 순환 철도부터 깔아야겠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것만 안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을 만날 줄이야.”
* * *
“부르셨사옵니까?”
진평이 도착하자마자 향은 지도를 가리키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미쉬가마 안을 도는 철도부터 건설해야겠다.”
“예?”
진평이 의문을 표하자 향은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이런 ㅆ….”
지도를 보자마자 바로 튀어나오려는 욕을 억지로 참은 진평은 향을 돌아봤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이 지도를 보지 못했사옵니다. 이것을 왜 지금 보여주신 것이옵니까?”
“내가 그런 것 아니다.”
“예?”
의문을 표하던 진평은 곧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상황께서 서울에 돌아오시기 진짜 싫으셨나 보옵니다.”
“동감이다.”
신지에서 계속 머물고 싶었는데 서울로 돌아와야만 했던 세종의 작은 복수였다.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던 형제는 곧 결론을 내렸다.
“서울에서 익숙했던 거리나 무게 개념은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렇사옵니다. 이거 신지의 덩치를 너무 우습게 봤사옵니다. 요동도 대단했는데, 여기는 요동도 우습게 보이는 상황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