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739)
739화 비수 (9)
한택길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들은 이길손은 사무실로 돌아와 상황을 확인했다.
“피해는?”
이길손의 물음에 부하직원이 종이를 뒤적여가며 대답했다.
“사망이 다섯, 부상이 스물입니다. 그 가운데 중상이 여덟입니다.”
“노예는?”
“부상을 당해 실려 온 노예들의 수는 약 320구(口)입니다. 사망자의 수는 아직 파악을 못 했습니다. 남은 노예들의 수와 함께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부하직원의 모습에 이길손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지금 확인해봤자 늦었어. 태반은 넘게 도망갔을 거다. 그리고, 노예 부분은 동맹의 책임이니 신경 쓸 필요 없어. 고용된 현지민들의 피해는?”
“대략 20명 정도 죽고, 70명 정도가 다쳤습니다.”
“의외로 피해가 적군?”
“도적들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도망쳤습니다. 그래도, 습격이 끝나자마자 돌아와 현장을 수습했습니다.”
“사망자의 유가족들과 다친 이들에게 충분히 보상금을 지급하고, 현장 수습에 동참한 이들에게도 포상금을 지급하도록.”
“예.”
“지금 현장의 상황은 어떻한가?”
“긴급 출동한 동명군이 현장을 경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다음이 문제입니다.”
부하의 지적에 이길손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력이 부족하지. 정확히 말하자면 도적은 점점 늘고 있는데, 증원이 안 되는 상황이지.”
* * *
수에즈 쟁탈전이 끝난 다음, 동맹국들은 수에즈에 주둔하는 병력들의 수를 대폭 감축했다.
협정을 믿어서가 아니라, 전비(戰費)와 정치 투쟁 때문이었다.
이 시기 전쟁의 주역은 용병이었다.
전통적인 냉병기뿐만 아니라 최신 무기인 총과 대포까지 가장 익숙하게 다루는 이들 대부분은 용병에 속해 있었다.
때문에, 수에즈에 대규모로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천하의 메디치 가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상비군을 주둔시키는 것이었는데, 두 번째 이유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은 여전히 귀족과 국왕의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바르셀루스 백작 아폰수와 그 일파를 숙청한 브라간자 공작은 아폰수 5세가 성인이 되자마자 섭정에서 물러나 왕국 재상으로 활동했다.
재미있는 것은 군권과 정권을 장악한 브라간자 공작의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왕권을 강화하는 것에 몰두했다.
문제는 이렇게 강해지는 왕권의 주인이 될 자가 아폰수 5세가 아니라 그의 아들인 주앙 2세라는 것이었다.
이는 아폰수 5세의 선택이 가져온 결과였다.
바르셀루스 백작이 생존했을 당시 아폰수 5세는 그와 손을 잡고 브라간자 공작을 밀어내려 했었다.
하지만, 브라간자 공작의 역공으로 바르셀루스 백작과 귀족파들이 숙청당했다.
눈앞에서 바르셀루스 백작과 귀족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아폰수 5세는 브라간자 공작이 왕국 재상으로 물러났음에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여전히 브라간자 공작에게 권력을 맡긴 채 술과 여자에 빠져 일상을 보내는 아폰수 5세였다.
“글렀군.”
아폰수 5세의 상황을 확인한 브라간자 공작은 아폰수 5세의 정비(正妃)이자 자신의 딸인 이자벨라가 낳은 주앙 2세를 위해 왕권을 강화에 집중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프랑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샤를 7세의 가장 큰 정적이 그의 아들인 루이 11세 라는 것이었지만.
* * *
이런 상황이었기에 동맹국들은 수에즈에 많은 병력을 배치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동맹국들은 기병대를 주력으로 운영했다.
동맹국들이 운영하는 기병대는 기존의 유럽과 중동 지역의 기병대와 매우 달랐다. 부유한 평민이나 귀족들이 자비를 들여 구성한 기사단이 아니라 제국과 비슷하게 국가에서 관리하는 기병대였다. 무장 역시 제국과 유사하게 장총이 주력이었다.
어느새, 수에즈 주둔 동맹군들은 이 기병대를 ‘드라군(Dragoon)’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용기병의 출현이었다.
강력한 전력을 가진 기병대였으나, 지켜야 할 지역에 비해 그 규모가 적었다.
때문에, 도적인지 맘루크의 기병대인지 모를 이들이 설치기 시작했고, 이번에 크게 당한 것이었다.
* * *
동맹군의 치명적인 약점에 투덜거리던 이길손은 부하에게 명령했다.
“제국군이 움직이게 되었다. 제국군이 쓸 수 있게 철마에 바로 준비하도록.”
이길손의 명령에 부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드디어 움직이는 겁니까!”
“그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크게 대답한 부하는 바로 밖으로 달려갔다.
“우와아!”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제국인들이 지르는 함성에 이길손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당하고는 못 사는 인간들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길손도 제국인이었다. 이길손은 벽에 걸린 지도를 노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재미를 봤으니 신나서 또 오겠지. 그날이 네놈들 제삿날이다.”
* * *
‘제국인들이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
소문을 들은 동맹군 지휘관들과 사신들은 곧장 밖으로 나와 철도 공사 본부로 향했다.
“흐음….”
“호오?”
제국인들의 움직임을 본 동맹군 지휘관들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기존과 달리 2대의 철마가 하나로 묶였고, 큼지막한 평판차들이 철마의 앞, 화차들의 중간, 그리고 최후미에 추가로 연결되었다.
제대로 연결된 것을 확인한 제국인들은 현지인들과 노예들을 동원해 모래포대를 평판차에 쌓기 시작했다.
모래포대로 방어시설이 준비되자 제국군이 병식 화차들과 비격진천회를 발사할 완구들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동맹군 지휘관들의 표정은 진지함을 넘어 심각함으로 바뀌었다.
“움직이는 요새라 부를 수 있겠소. 철마를 두 대나 동원한 이유를 알겠군.”
포르투갈군 지휘관의 말에 동맹군 지휘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포르투갈군 지휘관의 평가에 고개를 끄덕이던 오스만군 지휘관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제국이 지상에서 어떻게 싸우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소?”
“그렇지….”
“병력지원을 해줘야겠군.”
* * *
병력을 지원해주겠다는 동맹군의 제안에 제국군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필요 없다. 우리가 받은 것은 우리가 갚는다.’
“오만하군.”
프랑스군 지휘관의 말에 피렌체군 지휘관이 말을 받았다.
“병력이 너무 많으면 도적들이 덤비기 않을 것이니 필요 없다고 합디다.”
“잘해야 200에서 300 정도로 보이는데, 그걸로 가능할까?”
결국, 동맹군 지휘관들은 믿을 수 있는 부하 몇을 현지 주민으로 위장해 투입하게 되었다.
* * *
중무장한 철마를 이용해 현장에 자재를 공급하며 공사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바로 습격이 이어지지는 않았고, 제국군은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날도 더워 뒤지겠는데, 올 거면 좀 빨리 와라!”
평판차에 세운 천막으로 해를 가렸지만, 더위는 여전했다. 때문에 더위에 지친 제국군은 더욱 건절하게 도적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지 삼칠일(21일)이 지났을 때, 드디어 제국군과 맘루크 기병대가 만나게 되었다.
* * *
공사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 언덕.
등성이에 몸을 숨긴 채 맘원경으로 현장을 살피던 마흐디는 가볍게 혀를 찼다.
“쯧! 역시 방어가 강화되었군.”
“어떻게 할까요? 물러날까요?”
옆에서 같이 살피던 부하의 물음에 마흐디는 몸을 돌려 언덕아래를 바라봤다.
언덕 아래에는 그의 부하들이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표정들인 부하들을 바라보던 마흐디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현장을 살폈다.
“지금 우리가 2,000… 저 놈들은 아무리 봐도 300을 넘지 못해 보이는데, 문제는 화차다….”
마흐디는 망원경으로 철마에 달린 화차들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지난 전쟁에서 화차에게 당한 쓴 기억 때문에 마흐디는 화차의 존재가 가장 신경 쓰였다.
“없군….”
커다란 덩치에 6개의 총열이 달린 화차를 찾지 못한 마흐디는 결심을 굳혔다.
“화차가 없다! 그렇다면, 친다!”
* * *
“덥다, 더워….”
더위에 지친 제국군 병사들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종소리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땡땡땡!
“적이다! 적이다!”
사람들의 외침에 늘어져 있던 제국군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디야!”
“저기! 저기!”
철마로 달려오는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제국군들의 눈에서는 지루함이 사라져버렸다.
멀리 떨어진 모래언덕 꼭대기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휘감은 수천의 기병들이 제국군을 노려보고 있었다.
“노동자들과 노예들을 대피시켜!”
“전투준비! 전투준비!”
철도공사 직원륻이 노동자들과 노예들을 대피시키는 동안 제국군 병사들은 화차의 대포를 덮고 있던 포장을 치우고는 전추준비에 들어갔다.
부사수가 탄통에서 탄띠를 꺼내 화차의 탄입구에 집어넣자, 사수는 몸통에 달린 회전축을 힘차게 돌렸다.
철컥! 철컥!
“준비 완료!”
화차부터 완구, 일반 총병들까지 준비를 끝낸 제국군들은 큰 목소리로 준비 완료를 알렸다.
그때, 언덕 위에 있던 적들이 돌격을 시작했다.
“온다!”
* * *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울리는 가운데 제국군을 지휘하는 지휘관들은 마상총을 손에 쥔 채 병사들에게 외쳤다.
“대기! 대기! 좀 더 기다려!”
“좀 더 기다려!”
지휘관들의 명령에 대기하던 병사들은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기다리라고? 이미 코앞인데?’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총질이 아니라 주먹질을 해야 하는 거 아냐?’
달려오는 적들의 살기 가득한 눈동자가 보일 때쯤, 지휘관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방포하라!”
타타타타타탕!
지휘관들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병식 화차의 사수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눌렀다.
병식 화차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하자, 지옥이 열렸다.
기세 좋게 돌격하던 맘루크 기병들과 그들이 탄 말들이 동시에 피투성이가 되어 땅을 구르기 시작했다.
철마 앞 50장(약 150m).
이 자리가 공사 현장을 덮친 맘루크 기병들의 생과 사가 갈리는 자리였다.
그 선을 넘은 맘루크 기병들은 극히 소수였다. 하지만, 그들도 기다리고 있던 총병들에게 걸려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어 땅에 떨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새로운 화차가 있었나!”
학살의 현장을 본 마흐디는 이를 갈며 자신의 실수를 통탄했다.
저런 화력을 보이는 존재는 화차만이 유일했다. 하지만, 알라에게 맹세코 자기가 알던 화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은 알라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 이교도들이 새로운 화차를 만들어냈다는 소리였다.
“후퇴! 후퇴를….”
퍼퍼펑!
마흐디가 막 후퇴를 결정했을 때, 기다리던 완구들이 일제히 비격진천회를 발사했다.
일부러 점화시간을 짧게 잡은 잔꾀로 비격진천뢰는 맘루크 기병들의 머리 위에서 일제히 폭발했다.
예상치 못한 강철 파편의 비를 맞은 맘루크 기병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말과 함께 땅에 쓰러졌다.
그 가운데에는 마흐디도 있었다.
* * *
한 시진(약 2시간) 정도 지나자 전투는 끝이 났다.
잔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도망친 맘루크 기병들은 채 30을 넘지 못했다.
“알라시여….”
전투가 끝나 돌아온 현지인들은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보자마자 신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