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760)
760화 조우(遭遇) (5)
향의 명령서는 바로 신지 주둔 제국 해군 사령부로 전달되었다.
사령관인 신인손 제독은 향의 명령서를 낭독한 다음 함장들에게 내밀었다.
“확실히 암기하고 명령에 맞춰 행동하도록.”
“사본은 없는 것입니까?”
함장 가운데 한 명이 질문하자, 신인손 제독은 짧게 대답했다.
“상황 폐하의 기밀 명령이다. 사본은 없다.”
신인손 제독의 말에 함장들은 돌아가며 명령서를 정독했다.
향의 명령서가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오자, 신인손 제독은 다시 물었다.
“질문 있나?”
신 제독의 질문에 함장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5년 동안 동해(東海)의 바다에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확실하게 안 것은 동해의 바다, 특히, 겨울 바다는 북내해(北內海)-지금의 베링 해협-만큼이나 거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겨울만이 아닙니다. 여름 바다도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바다를 건너오려면 단단하게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원들도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 * *
신지가 발견되고 지도로 상징되는 지리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향이 알던 이름들이 아닌 제국식 이름들이 정해졌다.
가장 먼저 서해는 서내해(西內海)로 바뀌었고, 동해는 내해(內海)로 개명되었다.
유일하게 개명이 안 된 바다는 남해였지만, 범위가 달라졌다. 남해는 서남도까지 이어진 넓은 바다가 남해가 된 것이었다. 물론, 중간에 유구가 있었기에 호리병박 표(瓢)자를 사용해 표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대마도와 왜국 사이의 해협은 ‘대한 연방제국’에서 따와 대한해협이 되었다.
그리고, 향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에서 태평양으로 불린 바다는 중해(中海)라 이름이 붙었었다.
물론,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클 대(大)를 붙이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바로 각하되었다.
스스로 중화(中華)라 일컫는 명때문이었다.
“훗날, 저놈들이 뭔 헛소리를 할지 모른다.”
이런 이유로 대(大)를 뺀 중해가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 이유라면 가운데 중자도 문제지! 차라리 사이 간(間)자를 쓰자! 본지와 신지 사이에 있는 바다니까!”
결국, 격론이 이어진 끝에 태평양은 대간해(大間海)라는 이름이 붙었다.
마지막으로 대서양은 동해가 되었다. 제국의 동쪽 바다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모든 작명이 끝나자 향은 복잡한 표정으로 지도를 살폈다.
“저 거대한 태평양과 대서양이 그저 제국의 바다가 되어버렸네.”
* * *
그 질문에 동료 함장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본지에서 신지로 오는 가장 항로인 북내해는 험악한 겨울 바다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배 위의 모든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다까지 얼어붙었다.
그뿐만 아니라 파도까지 험악해졌기 때문에, 북내해 항로를 자주 오간 선장들은 다른 바다에서 경험을 쌓은 선장들보다 경력을 높게 쳐주었다.
그런 선장들도 바짝 긴장하는 곳이 겨울의 북동해였다.
함장들의 모습에 신인손 제독은 바로 대답했다.
“물론, 처음부터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겠지. 하지만, 10척이 나서서 단 1척이 성공하고 돌아간다면, 그때부터는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게 된다. 그 1척의 경험을 쌓은 선원들이 다른 배들로 퍼지면 1척이 2척으로 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십 척, 수백 척이 저 외동해를 건너올 것이다. 우리도 그랬지 않은가?”
신인손 제독의 말에 함장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함장들을 바라보며 신인손 제독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완벽히 준비를 갖출 때까지 유럽인들의 진출을 막으면 최고겠지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제부터 동쪽에서 접근하는 배들은 무조건 왜구나 해적들이라 생각하고 대처하도록.”
조선이 제국으로 변하는 동안 왜구들과 해적들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멸종까지는 아니었는데, 수에즈까지 가는 항로에 자리한 국가들의 사정때문이었다.
내정 불안, 부족 사이의 무력 분쟁, 생활고 등을 이유로 해적들은 끊임없이 생겨났고, 토벌의 대상이 되었다.
덕분에 수에즈 항로를 오가는 제국의 배들은 미확인 선박이 보이기만 하면 우선 포좌의 덧창부터 열었고, 미확인 선박들은 백기부터 올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왜구와 해적을 상대할 때와 같이 대처하라.’
신인손 제독의 명령에 함장 하나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저들이 우리가 제국의 배임을 알고 백기를 걸면 어떻게 합니까?”
“우선 나포하고, 저항하면 격침시키도록.”
그 질문을 끝으로 회의는 끝났고, 함장들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동쪽에서 올 유럽의 배들을 대상으로 한 ‘65호 명령’ 전달이 끝나고 빈 회의실에는 신인손 제독과 휘하 제독들만이 남았다.
신인손과 함께 신지로 온 제독들은 그동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직접 배에 올라 해안선을 관찰하거나, 말을 타고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며 군사적 요충지들을 찾아봤다.
교두보를 확보하기 좋은 지역을 찾아내면 일일이 지도에 해당 지점을 기록했고, 신인손 제독과 군사적 가치를 분석했다.
그런 분석 끝에 군사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에는 방어시설과 군항을 건설하고 함대를 주둔시켰다.
해당 군항과 방어시설을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으로 부임한 제독들은 휘하의 함선들은 운영해 주변을 탐사했다.
행정병들이 준비한 흑두차와 다과를 나누며 신인손 제독은 제독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황 폐하께서는 남쪽 지역을 탐사함에 있어 각별히 주의하라는 당부를 남기셨소.”
“당부입니까?”
“당부요.”
신인손 제독의 대답에 제독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 * *
제국의 군인들과 관리들 사이에는 예전부터 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황제의 당부를 절대 무시하지 말라!
“조금 신경이 쓰이는군. 주의를 당부하오.”
어떤 사안에 대해 향이 이런 말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십중팔구 문제가 생겼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제국의 관리들과 군인들 사이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생겼다.
-향의 당부 = 바짝 긴장하고 꼼꼼히 살피고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라.
-향의 명령 = 내가 당부했던 것 잊지 않았지? 당장 움직여!
이런 일들 덕분에 군인들과 관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도 돌았다.
“혹시 신내림이라도 받으신 건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이런 소문을 들으면 향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것을 나만 알고 있는데, 뭐라고 설명하겠어? 그냥 당부나 해야지…”
* * *
‘향의 당부’를 곱씹어보던 가운데 남쪽 해안을 담당한 제독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남쪽으로 가면 갈수록 밀림이 우거진 것이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곳은 아니죠.”
“동감입니다. 루손 근처의 섬들이나 테마섹 근처를 탐사할 때를 생각하면 절대 좋은 곳은 아니죠.”
제독들은 제국이 아직 조선이었을 때부터 열대 밀림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수에즈로 향하는 항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피할 수 있는 기항지가 필요했다.
수에즈 항로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조선에 꼭 필요하지만, 조선에는 없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 루손과 테마섹 인근의 부족들과 접촉하고 지리 정보를 확보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체득한 것이 ‘밀림의 무서움’이었다.
사방에 나무들이 우거진 곳이었지만, 안전과는 거리가 먼 곳이 밀림이었다.
온갖 독충이나 독을 가진 짐승, 또는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밀림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수의 문제였다.
사방에 나무들이 우거졌기에 금방 식수를 찾을 것 같았지만,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이 아니면 제대로 된 식수원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빽빽한 밀림 속에서는 나침반이 있어도 길을 잃기 쉬웠다. 만약, 식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바로 목숨이 경각에 달하는 위기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단지, 자연만이 적이 아니었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절대 친절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부족이 아니라면 전부 다 적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원주민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평화적인 접근은 무리였다.
덕분에 향의 당부에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린 제독들의 얼굴이 심각해진 것이었다.
* * *
남쪽 지역을 담당하는 제독들은 새로 갱신된 지리 정보와 지형도를 앞에 펼쳐놓고 신인손 제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는 여기 이곳 무명(無名)반도까지 진출한 상황입니다.”
보고를 맡은 제독이 짚은 곳은 플로리다 반도였다.
제독의 보고에 신인손 제독의 눈이 반짝였다.
“반도였던 것인가?”
“예. 해안선이 돌출된 것인 줄 알았는데 반도였습니다. 그리고 동남쪽으로 섬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독의 설명에 신인손과 다른 제독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넓어도 너무 넓군.”
“신지가 아니라 신대륙이라 불러도 무방하겠습니다.”
탐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점점 넓지는 신지의 크기에 신인손과 제독들은 표정이 아득해졌다.
‘우리 제국이 이 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억지로 시도하다가 배가 터져 죽어버리는 것 아닐까?’
신인손과 제독들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들은 군인이었지만, 경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매년 예산 문제로 재경부와 싸우면서, 명과의 전쟁에서 전비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낀 그들이었다.
– 예상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엄청난 영토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엄청난 예산이 들어간다.
– 태상황과 상황을 거쳐 당금 황제까지 신지를 개발하는 것을 보면 본지인들의 이주와 더불어 원주민들의 귀부를 적극 유도하는 방식이다.
– 하지만, 지금 신지의 원주민들 상황을 보면 그 수가 너무 적고, 너무 넓게 퍼져있다. 때문에, 예상보다 비용은 많이 들고 효율을 떨어진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제독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역시 노예가 최선의 답일까?’
제독들에게 있어서 노비는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세종이 시작한 경장을 통해 제국에는 관노를 빼고는 노비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독들이 어렸을 무렵에는 반가마다 사노비들이 흔했었다.
거기에 수에즈까지 가는 교역로에 자리한 나라들과 수에즈 너머 유럽의 나라들에는 아직도 노예가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신인손은 상황을 분석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증기기관과 다른 기물들이 아주 유용하기는 하지만, 비용과 효율을 생각하면 노예가 더 이득일 수 있어. 하지만…’
신인손은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여기서 노예제를 주장했다가는 내 목이 잘리겠지. 태상황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정책을 역행하는 것이니까.’
신인손의 말처럼 노예제를 도입하는 것은 세종 시절부터 이어져 온 노비 감소 정책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이는 역대 황제들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었고, 당장 세종부터 이를 용인할 리가 없었다.
그 어떤 명분을 갖다 대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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