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Corporation: Joseon RAW novel - Chapter (830)
830화 계륵(鷄肋) (4)
처음 ‘계륵 작전’을 제안하고 기획안을 만들었을 때, 향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이 작전의 대상이 남방에 있다는 ‘미지의 대륙’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직 남미의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는 세종과 향의 정책 때문이었다.
신지를 유럽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세종과 향은 신지의 동부부터 먼저 장악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신지에서 덩치를 키우는 제국 해군의 전력 대부분은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부 지역은 본지와 신지를 연결하는 북방항로 유지가 전부였다.
물론, 혹시 모르기 때문에 대설도에 주둔한 제국 해군은 일본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다.
일본이 동쪽으로 배를 띄우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니까.
결국, 이 시기에 남미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는 제국인은 향이 유일했다.
하지만, 남미 대륙까지 ‘계륵’의 범위에 넣고 있었던 향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호주는 오히려 포기가 쉬웠는데, 남미가 여전히 걸려.”
향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쩝! 다른 곳이 아니라 남미가 진짜 계륵이야. 쩝쩝….”
계속해서 입맛을 다시던 향은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고무….”
고무 때문에 향은 남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향이 고무에 집착하는 것은 단지 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무는 지금 슬슬 정체기에 들어서고 있는 제국 경제에 다시 한 번 추진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가장 먼저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방수용 소재였다.
비가 오면 제국의 도회지에서는 기름먹인 종이로 만든 슈룹(우산의 우리말)을 들었고, 시골에서는 삿갓에 도롱이를 썼다.
양손이 자유로워야 하는 군인이나 포청의 포졸들은 기름을 먹인 가죽으로 만든 장포를 걸치고 다녔다.
여담으로 이런 차림, 특히, 향이 트렌치코트의 디자인을 가져와 만든 장포와 기병 장화의 조합은 상당히 멋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회의 멋쟁이들이 이를 본떠 비슷한 차림을 하고 다녔다.
군인과 포졸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모자였다.
펠트로 만든 모자를 쓴 군인들과 포졸들은 그냥 돌아다녔지만, 말총이나 비단으로 만든 갓을 쓰던 멋쟁이들은 그 위에 갈모를 덧씌웠다.
문제는 이렇게 기름먹인 종이나 가죽은 완벽한 방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방수용 소재가 필요한 곳은 의류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제국의 가정집마다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는 작두식 양수기의 패킹이나 개스킷에도 유용하게 사용이 가능했다.
물론, 증기기관처럼 고온, 고압을 견뎌야 하는 곳에는 구리로 만든 패킹이나 개스킷을 사용해야 했지만, 다른 많은 부분에서는 고무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구리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인력거와 견인차의 바퀴를 시작으로 사용처가 무궁무진한 물건이 고무였다.
때문에, 향이 고무에 집착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고무나무가 자리한 곳이 문제였다.
예전에 인도에서 고무나무의 일종을 찾아냈지만,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접어야 했다.
“21세기에 유명했던 동남아 고무농장의 고무나무들은 그 출처가 거의 다 남미였었지… 후우~.”
그 부분에서 향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결론은 아마존을 뒤져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게 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니….”
아마존의 덩치를 떠올린 향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 * *
결국, 향은 남미를 거의 포기하게 되었다.
“아마존을 뒤지고 돌아다니는 것은 득보다 실이 커. 그 부분은 돈에 미친 유럽인들이 적격이야. 유럽인들이 찾아내면 그때 움직이는 것이 나아. 아직 유럽인들이 그 가치를 모를 때 말이지.”
차선책을 선택한 향은 남미도 유럽에게 넘기는 것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 ‘메시카 사태’가 발생하면서 향은 귀순 원주민들과 만날 기회가 생겼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고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향은 이징옥에게 별도의 명령을 내렸다.
-메시카를 정리한 다음, 치클이 나온다는 나무의 존재를 확인할 것.
이 시기에는 ‘고무’라는 이름조차 없었기에 향은 원주민들이 붙인 ‘치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메시카를 정리하고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치클 무를 찾았다는 보고서가 올라온 것이었다.
보고서를 확인한 향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후우~. 이제는 진짜 마음 놓고 남미를 떡밥으로 던질 수 있겠군. 물론, 가능하다면 칠레의 초석광산은 손에 넣어야겠지.”
향은 벽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인도에서 걱정 없이 들여오고 있는데, 영국이 걱정이지. 아니, 유럽 전체가 걱정이지.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인도는 여전히 황금향이니까. 그래서 손을 써두고는 있는데….”
* * *
인도의 벵골 술탄에서 초석을 대량으로 입수하게 되면서 조선, 이후 제국은 화약 부족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대량의 초석을 수입하면서 상당한 자금을 써야 했지만, 전통적인 염초생산법으로 생산하는 비용과 생각하면 압도적으로 저렴했다.
또한, 제국의 물품을 시장에 팔면서 결과적으로는 흑자를 보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이 명을 꺾고 제국이 되면서 벵골의 술탄은 제국의 무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들이 독립해 나온 델리 술탄 왕조때문이었다.
두 번의 전쟁 이후 큰 전쟁은 없었지만, 벵골 술탄 왕국과 델리 술탄 왕국 사이에서는 언제라도 전쟁이 다시 벌어질 수 있었다.
특히, 제국과의 교역으로 벨리 술탄국이 부유해지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진 상황이었다.
이에 벵골의 술탄은 제국에게 무기를 팔 것을 요구했다.
벵골 술탄국의 요구에 제국은 그동안 여기저기에 팔고 남은 갑식 장총을 냉큼 갖다 팔았다.
장총만이 아니라 이제는 창고에서 썩고 있던 신기전용 화차까지 갖다 팔아먹었다.
주로 수성전을 벌여야 하는 벵골 술탄국의 입맛에 딱 맞는 무기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도입한 제국의 무기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교관들이 선발되어 벵골 술탄국에 파견되었다.
* * *
벵골 술탄국에 도착한 교관들은 벵골 술탄국의 병사들과 장교들을 훈련시키며 술탄국의 주요 지도층들과 접점을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웃지못할 일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하나가 ‘약포 사건’이었다.
갑식 장총은 퍼커션 캡을 사용하는 전장식 장총이었다. 때문에, 총탄을 발사하기 위해서는 화약과 총탄이 들어있는 종이 포장을 이로 뜯은 다음 화약을 붓고 종이와 총탄을 장전 봉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그런데 이 화약과 총탄을 포장한 종이가 문제가 된 것이었다.
“종이가 물에 젖으면 문제가 생긴다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총탄과 화약을 포장한 종이는 기름을 먹인 것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물기는 걱정 없습니다.”
교관의 답변에 술탄군의 장교들과 병사들은 표정이 안 좋아졌다.
“무슨 문제라도?”
“기름이 문제요.”
이시기, 일반적으로 기름은 요리에 들어가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기름의 대부분은 동물성이었다. 식물성 기름은 주로 향을 내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우리 병사들의 일부는 힌두교도들이고, 나머지는 이슬람교도들이오. 힌두교도들은 소를 먹을 수 없고, 이슬람교도들은 돼지를 먹을 수 없소. 기름도 마찬가지. 그런데, 듣기로 제국인들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다 먹는다고 했소. 그럼 저 종이를 적신 기름 역시 소나 돼지의 기름이 아니겠소?”
술탄군 장교의 지적에 제국 교관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콩기름과 야자 기름인데요?”
“응?”
이후, 술탄국의 병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종이 포장을 물어뜯었다.
* * *
제국의 무기로 무장하면서 벵골 술탄국의 입지는 단단해졌다.
하지만, 제국은 상황을 낙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기 인도는 델리 술탄국과 벵골 술탄국만이 아니라 크고 작은 국가들이 난립해 있었다.
그리고, 그 국가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합종연횡을 반복하고 있었다.
향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도판 춘추전국시대’였다.
이런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도의 군주들은 국방 강화에 필사적이었다.
이들 역시 제국에 선을 대었지만, 제국은 이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구형 무기의 재고가 다 소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팔아먹자고 구형 무기를 다시 생산하게 되면 제국군에 보급할 무기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었다.
이 시기 제국군은 을식을 넘어 병식 장총과 화차가 한창 보급 중이었다.
병식 장총과 교체되어 돌아온 을식 장총과 화차들이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지만, 이들을 파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벵골 술탄국에 갑식 장총을 팔았는데, 다른 이들에게 을식 장총을 판다는 것은 득보다 실이 더 큰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큰손들이 을식 장총과 화차들을 미리 찜해 놓은 상황이었다.
당시 수에즈를 놓고 전쟁을 벌이고 있던 동맹국들이 그 큰손들이었다.
제국에게서 퇴짜를 맞은 인도의 군주들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들의 눈이 향한 곳은 명과 왜국이었다.
명과 왜국의 무기를 살핀 인도의 군주들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왜국의 총은 명의 것보다 못하고, 명의 총은 제국의 것보다 못하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인도의 군주들 가운데 경제력이 되는 이들은 명에서 총기를 구매했고, 경제력이 부족한 이들은 왜국에서 총기를 구매했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이 당시 아시아 국가들의 선택이었다.
제국과 친하고 경제적으로 협력관계에 있는 국가들은 제국의 무기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 한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명이나 왜국에서 무기를 구매했다.
가장 최고급은 제국이고 그 다음은 명, 마지막이 왜국.
이런 인식은 무기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동일했다.
사람들은 충분한 돈이 있으면 제국의 물건을 샀고, 그렇지 않으면 명의 물건을, 마지막으로 왜국의 물건을 샀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왜국이 일본으로 바뀌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일본은 이런 인식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일본이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을 때, 강력한 경쟁자들이 등장했다.
유럽의 국가들이었다.
* * *
아시아로 진출한 유럽이 주력으로 삼은 상품은 노예와 무기였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의 노예상인들에게서 구한 노예들을 인도와 동남아의 술탄들에게 팔았다.
노예로 거래의 물꼬를 튼 유럽인들은 뒤이어 무기시장에 진출했다.
유럽에서 벌어진 종교 분쟁과 이어서 벌어진 수에즈 전쟁을 통해 유럽의 무기는 많이 발전했지만, 제국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무기시장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무기를 구입하는 이들은 해당 국가의 지도층들이었고, 이들과의 선을 계속 유지해야만 앞으로의 거래가 잘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럽인들의 이런 선택은 아프리카의 지도층들을 대하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만약, 아프리카였다면 총과 대포로 겁박하면서 거래를 트거나 식민지로 삼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향이 개입한 이후의 아시아에서는 이런 방식을 사용할 수 없었다.
유럽인들이 대포를 꺼내면 아시아인들도 대포를 꺼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