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aired oil tycoon RAW novel - Chapter 102
102 늑대와 함께 춤을(3)
야밤에 말을 탄 무리가 구릉 지대를 내달리고 있었다.
“쿠투는 곰머리 길목에, 와칸카는 뱀또아리 협곡으로 가라.”
“넵!”
“맡겨만 주십쇼. 좀 이따가 봅시다, 추장.”
선두에서 수신호로 지시를 내리는 이는 체로키족 젊은 추장 타왕카 이요카였다.
그의 명령에 따라 인디언 무리는 일사분란하게 몇 갈래로 흩어졌다.
그리고 얼마쯤 내달리다 또 다시 몇 무리가 갈라지고 석유 파이프가 보일 쯤에 타당카를 따르는 주력 부대는 대여섯 명이 남았을 뿐.
하지만 그 숫자면 충분했다.
“라산카와 마차푸트는 경계, 치루베는 말을 잘 봐. 나머지는 나를 따라서 저걸 부순다.”
“옙!”
말 떨어지기 무섭게 저마다 토마호크를 꺼내서 파이프를 거칠게 난도질했다.
물론 금속 파이프가 그렇게 쉽게 부서질 리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까앙─! 까아앙──!
인디언들의 숙련된 도끼질에 집중적으로 공략 당한 몇 곳에 흠집이 생겼다.
거기서 몇 번 더불꽃이 튀자 이내 구멍이 뚫렸다.
심지어 벌어진 틈만 노려서 두드려대자 파이프 옆구리가 찢어졌다.
끼기기기깃──쫘아악──!
“캬, 이거 시원하게도 찢어졌구만. 속이 다 시원해.”
“그만하면 충분해. 다음으로 간다.”
악마가 할퀸 것 같은 자국이 파이프에 새겨짐과 동시에 타왕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슬슬 경비대 놈들이 붙을 테니까 쿠투와 라산카가 시선을 끌어라. 무리하지는 말고 처음 헤어진 곳에서 합류해.”
인디언들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이 마치 거짓말인 듯 일제히 말에 올라서 내달리더니 속속 흩어졌다.
“대장, 저기 도망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어서 쫓아. 놓치면 안 돼.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그리고 아까 파이프에 대고 신나게 도끼질을 했던 위치에서 성난 외침이 들렸다.
타타탕──타타타탕──!
어느 지점에서는 벌써 인디언들과 경비대가 부딪쳐 교전이나 추격전이 벌어지는지 총성이 울려 퍼졌다.
다만 타왕카는 물론 그를 따르는 인디언 그 누구 하나 초조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총성을 듣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기실 총성 따위로 가슴 졸이기에는.
인디언이었기에···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산 모든 날들이 칼끝을 거니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로웠다.
타타탕─────!
어느새 자신들 뒤로 총성이 터져나오고 있었지만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웃을 정도로.
‘늘 뺏기고 쫓겨왔던 삶······.’
단지 인디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들은 삶의 터전도 빼앗겨야 했다.
‘하지만 이제 기회가 왔어. 이번에 그의 뜻대로 되면···쫓기지 않아도 괜찮다.’
오하이오주 서쪽으로 강제로 이주당한 동포를 데리고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느 백인이 이런 약속을 했다면 믿지 않았겠으나 그는 동양인이란다.
태평양이라는 큰 바다 건너 사는 이들이라는데··· 사실 피부 색깔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파이프라 했던가. 솔직히 태선이 단지 파이프를 지키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그냥 우리와 전면적으로 싸웠을 테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훨씬 번거로운 길을 택했다.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마음을 얻으려고 하면서.
타타타탕──!
기실 겉으로 보기에 경비대원들이 추적하는 것 같지만 저 총알들은 제대로 조준하고 쏘는 것들도 아니었다.
애초에 자신들이 오늘밤에 벌였던 파괴 공작도 그렇다.
‘다음은 들소 언덕이었지. 그다음에는······.’
자기네가 어떻게 흩어져서 어디를 부수고 경비대가 언제쯤 나타나서 쫓을지 이미 다 정해진 터였다.
쉽게 말해 짜고 치는 판···물론 파이프가 찢어진 피해는 진짜였지만 그건 태선이 감수하겠단다.
혹시 경비대 내부나 이쪽 부족에 있을지 모를 첩자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란다.
‘그러면 겉으로 보기에 어쨌거나 우리는 아주 성공적으로 파이프를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겠지.’
아무리 본인인 감당하겠다고 했다지만 태선에게 자못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심정은 얼마 뒤 예정대로 파이프 곳곳을 부수고 거점에서 부족원들을 다시 만나 보고 받으면서 더 커졌다.
“곰머리 길목에서 파이프를 제대로 찢었습니다.”
“우리도 들소 언덕에 곰이 할퀴어놓은 것처럼 온통 난자질 해놨습니다.”
“겨우 그 정도냐. 우리 쪽은 말이지 아예 뭉갠 벌집처럼······.”
이렇듯 하루에만 파이프를 찢거나 구멍 뚫어놓은 곳만 십여 곳에 달했다.
하물며 이런 일을 하루이틀 벌였던 것도 아니었다.
“나흘 전에도 했고 그 닷새 전에도 했는데 그놈들 쪽도 못 쓰고 당해버렸구만.”
“그러게 말이야. 오랜만에 통쾌하군!”
“다 족장님 덕분이지.”
신나서 떠들어대는 부족원의 말에서 언급되듯 며칠씩 간격을 두고 이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선의 말에 따르면 슬슬 이쯤 되면 그쪽에서 다시 접근할 수도 있다고······.’
기실 태선이 기껏 공사한 파이프가 파괴되는 피해를 감수한 것도 그래서였다.
자신도 그 꼬리를 잡기 위해 나름 태선 못지않은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짜고 치는 판이라고 하더라도 보이기에 그럴듯하게 경비대와 총격전과 추격전을 벌이는 건 간단하지 않기에.
“죽은 자는 없는 것 같고··· 부상자는?”
“트즈푸와 타쿠포가 총상을 입었습니다. 이푸와 와잔첸카는 어깨를 맞았고요. 큰 부상은 아닌데 당분간 그 넷 말 타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총알에 눈 달린 것도 아니니 부상자가 나왔다.
오늘만 네 명이 나왔고 그 전부터 누적된 수를 합치면 십여 명이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점점 불어나겠지.
‘정말로 온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는데.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부상자들의 상태를 살피며 타왕카가 속으로 침음성을 삼키고 잇을 때.
“족장님, 그자가 왔습니다.”
최측근 심복 라산카 쿰이 다가와서 말했다.
“그 서양인 놈?”
“예!”
그는 태선과 자신이 짠 이번 파괴 공작에 대해 알려준 측근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부족으로 하여금 태선의 파이프를 파괴하도록 부추긴 그 서양인이 다시 찾아온 행동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 거점 밖에 소용돌이치는 협곡에 기다리게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가보시겠습니까?”
“그래, 가자. 라산카, 쿠푸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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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체로키족은 미국 육군에 의해 오클라호마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여기 남은 이들은 미국 입장에서는 반동분자였다.
그들이 시스템에 입각해서 지켜줄 울타리가 없는데 만약 발각당한다?
갑자기 잡혀가서 어디로 이주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잘 되면 이 숲을 벗어날 수도 있는 걸까요?”
라산카가 이렇게 묻는 것도 그래서였다.
“그건··· 앞으로에 달렸겠지.”
부족원들 중 누구 하나라도 괜히 성질 고약한 백인 무법자 혹은 사냥꾼에게 잡혀가는 불상사를 막으려고.
만약 태선의 계획대로 되면 그가 기꺼이 자신들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우리도 마냥 받지만은 않고 힘을 빌려주겠지만.’
제발 그런 미래가 부디 와주기를 바라며.
타왕카는 지나온 흔적을 지우면서 복잡한 길을 지나 거점을 나왔다.
도착한 곳은 산 중턱, 만약 포위나 매복이 있더라도 이쪽이 지리에 밝아 즉시 알아차릴 수 있는 장소.
“오랜만입니다, 타왕카 족장!”
나뭇잎 사이로 비스듬히 달빛이 스며드는 산 중턱 트인 곳에 서있던 백인 남자가 타왕카를 발견하자 반갑게 웃었다.
“우리가 한 번 만날 인연은 아니었나보군.”
반면 타왕카는···태선을 위해 나오긴 했지만 감정을 숙이고 억지로 미소 지을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에는 가시가 돋혀 나왔다.
“···타이슨 킴블리 씨.”
단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마치 야수가 으르렁거리는 듯 목소리가 깔렸다.
그나마 평소 무표정하고 목소리가 저음이라 감정의 드러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증거로 저쪽은 오히려 이름을 불리자 기뻐하고 있었다.
“하하하, 당연하지요. 저는 인디언들이 온당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인연이 이어지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꽈아악───!
손도끼 손잡이 쥔 타왕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튼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그럼 우린 이제 친구라 봐도 되겠지요.”
친구? 타이슨 킴블리는 가명 아닌가. 이름조차 제대로 대지 않으면서 친구?
타왕카는 저 가증스러움에 구역질이 나다 못해 당장 저놈의 머리통에 도끼를 내리쳐 두개골을 쪼개버리고 싶었다.
하지만···꾹 눌러 참아야 했다.
“혹시 모르니 모두 주변을 경계해라.”
이 주변 지형에 훤한 부족원들에게 경계하라는 이유로 물러나게 한 것.
여기 데리고 온 녀석들은 진실을 알려준 심복들이었다.
‘나만큼이나 저 녀석들도 열불이 치밀겠지.’
아닌 게 아니라 어둠 속에 있건만 그들의 어금니를 꽉 문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그나마 가장 침착한 성격의 라산카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싶었다.
역시 추적 임무는 녀석에게 맡겨두길 잘했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잘못하면 그동안의 울분이 이 가증스러운 백인놈에게 튈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부족원 중 누구 하나라도 우발적으로 폭발하면 곤란해진다.
부하들이 숲으로 사라진 걸 보자 타왕카는 시선을 돌려서 타이슨 킴블리라고 이름을 댄 서구인에게 물었다.
“네가 말한 대로 금속관이 있더군. 그게 정말로 우리에게 해로운 물건은 맞겠지?”
“물론이죠! 제가 왜 거짓말하겠습니까. 말이 나와서 말이지 타왕카 족장님과 부족원들의 활약은 저도 들었습니다만 정말 잘하셨더군요.”
한마디 물었더니 놈이 기다렸다는 듯 술술 말을 토해낸다.
“그걸 안 부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다행히 한 고비는 넘기셨는데······.”
“부족원 중에 부상자도 있고 길게 말할 때가 아니니 용건만 말해라.”
말허리를 잘랐는데 저쪽도 용건부터 내지고 싶었는지 냅다 받아들였다.
“아, 알겠습니다. 제가 다른 정보를 가지고 왔는데 일단 이 지도를 한번 봐주시죠.”
그는 품속의 지도를 꺼내 펼치더니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표시된 곳이 보이십니까. 파이프···그러니까 그 금속관의 중요한 부분인데 이곳도 파괴하면 부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훨씬 좋을 겁니다.”
‘과연··· 우리가 성과를 내면 욕심 내서 더 부수라 부추길 거라더니.’
타왕카는 무표정하게 타이슨 킴블리···라는 놈이 건넨 지도를 챙겼다.
“그럼 용건은 끝이겠지. 이만 가봐라. 다음에 또 정보가 생긴다면 찾아오도록.”
“하하, 물론이지요! 그럼 부족원들의 쾌유를 기원하겠습니다.”
***
도와주러 왔다면서 정작 타왕카에게 지도를 건네고 도망치듯 자리를 뜬 타이슨 킴블리.
“당신···은밀···움직이는 솜씨···제법이군.”
“하하, 내가 어린 시절에 알칸곤족과 같이 살았거든.”
“그러고 보니···그날···그 여자 알칸곤족···관계가 있는 겁니까?”
그 뒤를 추적하는 인영 두 개가 있었으니 어눌한 영어를 하는 쪽은 타왕카의 심복 라산카.
“동생이야.”
그에게 답하는 다른 하나는 에릭 스미스였다.
“그럼···여기서부터···맡기고···돌아가겠다.”
다만 라산카의 역할은 숲 인근에서 에릭이 이쪽을 찾아오기 전까지 타이슨 킴블리를 추적하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
“예, 타왕카 족장에게 안부나 전해줘요.”
그리고 부족 거점 인근의 숲에는 에릭을 비롯해 몇몇 정예 대원이 대기하면서 흔적을 찾아다녔다.
그중 에릭이 가장 먼저 라산카가 남긴 흔적을 찾았다.
그리고 타이슨 킴블리라는 가명을 쓰는 저놈을 쫓는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래, 잘 가는구나. 원래 바퀴벌레도 떼로 우글거린다지. 패거리가 더 있다면 얼른 소굴로 안내해보라고.’
타이슨 킴블리는 꿈에도 몰랐겠지만 산을 내려와 심지어 말 타고 마을에 갈 때까지 에릭은 그의 뒤에 그야말로 유령처럼 따라붙었다.
근처 마을에서 하루 묵는 동안에는 다른 대원까지 합류해서 놈이 오른 기차를 같이 타고 뉴욕까지 다다랐다.
‘뭐야, 저 녀석? 이렇게 좋은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녀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확인한 뒤 에릭은 다른 대원들은 돌려보냈다.
대신 자신은 바로 킴 스탠다드 오일 사무실로 찾아갔다.
“오, 에릭 대장이 오다니 뜻밖이네요.”
마침 태선이 자리에 있었고 맡긴 임무가 있던지라 찾아온 용건을 예상했는지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간질하는 쥐새끼 꼬리를 잡은 겁니까?”
“예, 막 보고 오는 참인데 맨해튼으로 가더군요.”
‘맨해튼에 사무실을 둘 정도로 잘 나가는 사람이라··· 록펠러나 밴더빌트, 그리고 또···.’
태선이 잠시 생각하는 사이 에릭은 제인에게 부탁해서 펜과 종이를 가져달라고 하더니 슥삭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캐리커쳐도 하거든요. 이 일을 하다보면 범법자 놈들 용모파기도 해야 할 일이 많아서요.”
이내 에릭은 스케치한 걸 태선에게 건넸다.
간단한 선이었지만 사람의 특징이나 인상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몽타주였다.
그렇기에 태선은 그걸 보자 자신이 몇 번 본 얼굴과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혹시 태선 사장님이 아는 사람입니까?”
에릭이 묻자 태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밖의 사람입니다만···제이 굴드라는 자입니다.”
그는 일전에 저스틴의 저택 파티에서 밴더빌트와 같이 있던 제이 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