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Haired U.S. Army Marshal RAW novel - Chapter (226)
226_자유의 횃불 (1)
대영제국, 런던.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자들의 동맹이, 전 세계의 자유 국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결속한 모습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4시.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했습니다. 독일군은 거짓과 기만이라는 흑막 아래에서 백해에서 흑해까지 기나긴 국경을 따라 침공을 준비해 왔습니다.
바로 1시간 전까지 두 나라 사이의 동맹과 우정을 논하던 주러 독일 대사는 4시가 되자마자 두 나라가 전시 상태가 되었음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였습니다. 그 어떠한 선전포고나 최후통첩도 없이 독일제 폭탄이 러시아 도시 위로 쏟아졌습니다.
나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나는 항상 히틀러의 야심을 경고했고, 세상 모든 이들에게 경고한 것처럼 스탈린에게도 정확하고 똑똑히 경고하였습니다.
히틀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피와 약탈에 대한 갈망으로 미쳐버린 사악한 괴물입니다. 그의 파괴 욕망은 지구 반대편 일본인들을 감염시켰고, 저열한 습성을 가진 일본인들은 이제 히틀러에게서 배운 바 그대로,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평화를 향한 미국인들의 바람을 배신하였습니다….”
처칠의 연설이 전파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송출되는 동안, 루즈벨트 또한 의회 연단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치욕의 날로 기억될 1939년 6월 25일 어제. 미합중국은 일본제국 해군과 항공대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미합중국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왕국과 전시 상태에 돌입하였으나 일본제국과는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일본은 우리가 독일에 선전포고했을 때 참전할 기회가 있었으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비난하며 우리와 우호선린을 유지하겠노라 선언한 바 있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요청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에서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회담을 진행 중이었으며, 저들의 외무부 장관은 워싱턴 D.C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국무부 장관과 회동하였습니다.
일본 항공대가 미국령 하와이에 폭격을 개시한 지 1시간 후, 주미 일본 대사는 일본의 공식 서한을 전달하였습니다. 해당 서한에는 진행 중인 회담의 무의미함을 비난하는 내용이 가득하였으나, 군사 행동 혹은 전쟁을 암시하는 그 어떠한 내용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젠 나도 정말 모른다.
원 역사에선 미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적도 없었고, 일방적으로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저지른 후 히틀러의 즉흥적 결단으로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정말 두 나라가 합의하에 거사를 준비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마셜이 저번에 했던 말대로, 대개 상황은 긍정보단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 그나마 낫다.
그리고 FDR은 구태여 진실을 캐내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가장 자신에게 유리한 진실을 취사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일본과 하와이 사이의 거리, 그리고 유럽 서쪽과 아시아 동쪽의 두 나라가 연계한 기습 공격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공격은 몇 달, 혹은 몇 년 전부터 치밀하게 모의된 음모가 분명합니다.
또다시 히틀러와 그 일당은 체코를, 폴란드를, 영국을, 프랑스를 농락할 때와 마찬가지로 소비에트 연방과 미합중국을 기만하며 세계정복의 마지막 단계에 돌입하였습니다.”
세계정복.
어린애들 보는 삼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미국 대통령의 입으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저 사탄의 군세는 명백히 모든 구질서의 종말을 목표로 온 세계를 불태우고 있었다.
오대양 육대주에 걸친 이 전쟁의 목적이 세계정복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이 사전계획된 침략을 격퇴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미국 시민들은, 정의로운 힘을 한데 모아, 절대적인 승리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와아아아아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미합중국 의회와 시민 여러분들은 결코 이런 비열한 배반에 굴복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그 어떤 협잡과 위협으로도 우릴 꺾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1939년 6월 25일 일요일, 일본제국의 저열하고 일방적이며 비열한 기습공격이 개시된 시점에서! 미합중국과 일본제국이 전쟁 상태에 돌입하였음을 선언해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는 바입니다.”
거인의 포효가 온 세상을 뒤흔든다.
무수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일장기와 하켄크로이츠를 불태우고, 도조와 히틀러의 인형을 짓밟고, 성조기를 휘날리고 국가를 제창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준비해 온 대계가 진행되었다.
“꼼짝 마! FBI다!”
“무, 무슨―”
“현 시간부로 일본제국 재향군인회 미주지부를 스파이 기관으로 지목하며, 직원과 관계자, 그리고 기금을 납부한 전원을 스파이 용의로 체포한다.”
가장 먼저 커팅하는 것은 당연히 돈 관련 분야부터.
누가 파쇼 국가 아니랄까 봐 일본 또한 무슨 기금이니 무슨 의연금이니 하는 걸 디립다 많이 걷었는데, 그놈의 애국이 엮인 탓에 아주 납부가 생활 습관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후버의 FBI가 가장 먼저 덮친 곳은 이런 민간단체였고, 이들이 가진 장부에 이름을 많이 올린 순서대로 ‘일본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드높은 자’의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쪽발이를 죽여라!”
“잽스를 끌어내라!”
“전부 진정! 진정하시오!!”
“사적제재를 멈추시오! 일본인에 대한 증오는 린치가 아니라 자원입대로 푸시오!”
시민들의 반응은 아주 폭발적이어서 당장 눈에 보이는 잽스란 잽스는 전부 쳐죽일 기세였고, 미리 준비해 놓은 자경단은 거리로 달려 나와 일본계 미국인들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는 걸 수습하느라 바빴다.
애꿎은 소시민의 집에 불을 지르고 일가족을 총으로 쏴 죽이는 건 너무 야만스러운 일 아닌가. 질서를 사랑하고 야만을 혐오하는 미 서부의 유색인종들은 절대 린치 같은 일은 하지 않았다.
“가와구치 선생. 평소 일본계 미국인들이 뿌리를 잊어선 안 된다고 강연하고 다니셨지요?”
“누, 누구시오! 이탈리아계가 대관절 왜!”
“우린 무솔리니랑 친구 아니거든. 형제들을 때려잡은 인간백정을 왜 좋아하겠어?”
“이, 이거 놓으시오! 읍! 읍!”
모름지기 수술이란 가장 국소적으로, 최소한의 부위에 메스를 대야 하는 법.
평소 친일적인 발언을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하나둘씩 사라졌지만, 이들은 모두 일본제국이 평화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 박아 놓았던 간첩이란 사실이 발각되고 말았다. 아, 너무 무섭다.
그리고 샌―프랑코 사무실은 때아닌 접견 신청으로 몸살을 앓았다.
“유신 킴 회장님, 부탁드립니다.”
“일개 기업가인 제가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이대로 있다간 일본계 미국인들이 전부 학살당할 판입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진정들 하세요. 일본계의 사정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마는….”
유신은 잠시 생각에 빠지는 듯하더니, 이들 일본계 지도자급 인사들에게 말했다.
“제 주관적인 견해라는 점이라는 점 알아 두시고, 제가 봤을 땐 우선 충성심을 의심받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저희는 오직 미합중국에 충성할 뿐입니다!”
“그럼 그걸 증명해야지요.”
샌―프랑코는 최소한 서부에선 아시아인을 비롯한 여러 유색인종과 주류 백인 집단의 가교 역할을 해 왔고, 이는 김유진이 대공황 이전부터 항상 강조해 온 바였다.
― 내가 군대에서 한번 해봤거든? 인종차별 누그러뜨리는 거?
― 일단 섞어.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 전부 섞어서 같이 일하고 같이 밥 먹게 해.
― 그냥 섞어 두면 서로 죽빵만 날려대고 사이 안 좋아져. 그러니까 그 인종 혼합 공동체를 다시 몇 토막으로 쪼개고, 공동의 목표랑 공동의 적을 만들어 주는 거야. 그럼 지들끼리 또 친해진다?
영국식 디바이드 앤 룰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일개 회사가 할 만한 수단은 이 정도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추축국이라는 훌륭한 모두의 적이 생긴 이 상황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 아닌가.
“우선 일본계 커뮤니티 내에서 자체적으로… 불순분자를 좀 걸러내 주셔야 할 겁니다. FBI의 손이 닿지 않더라도, 여러분들은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다 알고 있잖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즉시 나라에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원입대를 최대한 독려해 주십시오.”
“자원입대는 물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집의 패물을 내놓아 애국 채권을 매입하겠습니다. 무엇이든 할 테니 부디!”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습니다. 일단 하늘이 감동할 정도로 최대한 정성을 들여보시지요.”
툭. 툭툭.
유신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번 기회에, 아직 폐쇄적인 나머지 아시안 커뮤니티를 모조리 분해해서 융화시켜야 한다.
일제가 패망하면 제법 많은 조선계가 귀국할 터. 고학력자들이 한반도로 돌아가야 독립 조국이 번성할 수 있지만, 그만큼 미국에서의 조선계 영향력이 깎이는 건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애초에 한중일 커뮤니티가 완전히 한 덩어리가 되는 모양새가 가장 이상적인데… 이런 걸 할 줄 알면 정치를 했지 어디 사업을 했겠는가.
사람이 할 일은 다 했으니 나머지는 하늘에 빌 뿐이었다.
“이딴 일이나 맡겨 두고.”
참 평생 걸쳐서 일거리만 주는 못된 형을 둔 업보가 깊고도 깊었다. 전생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이런 인생을 살게 되는 거지?
창문 바깥으로 또 어느 일본계 미국인의 상점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미국은 더 많은 피를 요구하고 있다.
* * *
현시점에서 연합국의 공식 입장은 아주 간단했다.
‘모든 게 다 히틀러의 음모다.’
원 역사에서 진주만 공습이 터진 후 미국 시민들의 분노는 말 그대로 임계점을 넘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지만, 그 대신 ‘왜 진주만을 불태운 건 잽스인데 독일 먼저 공격하느냐’는 여론의 질타 역시 감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히틀러가 잽스를 용병으로 부리고 있다!”
“진주만의 배후는 히틀러다!”
음모론이 아니다. 공식 입장이다.
일본으로서는 기적의 면죄부를 얻은 셈이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히틀러 대가리 따고 나선 ‘아 히틀러가 지시한 게 아니었네? 이제 너 패러 간다 딱 기다려라’라고 태세전환 할 테니까. 정치가 다 그렇지.
따라서 가칭 아프리카 원정군의 준비는 놀랍도록 쾌속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국이 미군의 아프리카 전선 투입 검토를 요청해 왔습니다.”
“아시아 전선이 열리면서, 영국군의 부담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 영국은 ANZAC, 즉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자치령에서 파병된 군대를 북아프리카 전선에 써먹었다.
하지만 진주만이 2년 일찍 터지고 일본군이 동남아로 진군해 오는 지금, 북아프리카는 얼어 죽을. 해적 놈들이 그토록 안 놔주려고 발버둥 치는 인도가 위협받는데 어쩌겠나.
“1개 군단, 아니 1개 사단이라도 좋습니다. 조속한 파병을 희망합니다.”
“우리 군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소.”
그리고 이 대답 또한 너무 익숙하다.
수십 년 전 퍼싱이 앵무새처럼 했던 말을 다시 마셜이 반복하고 있잖은가. 그때와 달라진 건 음… 프랑스가 사라졌다는 점 정도?
하지만 카이저와 달리, 히틀러는 훨씬 더 강력한 최종보스였다.
“웨이벌 장군이 롬멜에게 패했습니다. 조만간 이집트가 위협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군은 아직 준비가… 후,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아직 병사들이 미숙하다는 맥네어의 격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FDR과 마셜은 국민정서와 여론을 위해 당장 전과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시 투입 가능한 병력이 얼마 없네. 많은 걸 바라지 않아. 적어도 롬멜의 뒤통수를 간지럽혀서 이집트에 대한 압력을 줄이기만 하면 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나는 묵묵히 대답한 채 총장실에서 물러 나왔고, 똥 씹은 것처럼 죽상을 쓰고 있던 패튼이 문이 닫히기 무섭게 내 어깨를 붙들었다.
“뒤통수를 간지럽혀? 압력을 줄여? 후배님, 저런 소릴 듣고도 군말 없이 네네 할 정도로 타락해 버렸나!”
“아니,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기갑부대가 사막에 파병되는데 기동을 제약받고 어찌 싸우나!!”
롬멜 그 새끼도 원래 맡은 임무는 리비아 방어였잖아. 어디 한번 똑같이 당해보라지.
“뒤통수를 간지럽히랬잖습니까.”
“그래!”
“뒤통수에 칼을 꽂아도 간지럽지 않을까요?”
이탈리아군에게 등 맡기고 이집트에서 싸우든가, 그게 쫄리면 점령지 다 토해내고 나한테 허겁지겁 달려오든가. 둘 중 뭘 고르든 아마 굉장히 좆같겠지?
양면 전선은 독일군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어디 한번 혼자서 열심히 뺑이쳐봐라, 사막여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