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Wind Pyo Country Strongest Eater RAW novel - Chapter 135
청풍표국 최강식객 135화
135화.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2)
그녀와 사내, 살막주 칠조구는 오래전 은밀한 의뢰를 주고받던 사이였다.
각연사태는 산서상인의 뒤를 봐주면서 아무도 몰래 처리해야 할 일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하지만 항산파는 비구니 문파였고,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래서 더러운 일을 해줄 이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택한 이들이 바로 살막이었다.
살막주는 깔끔한 일 처리와 본인이 가진 인피면구의 실력 때문에 맡기는 모든 일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기염을 토했다.
그래서 점점 맡기는 의뢰가 늘어났고, 그런 항산파의 든든한 뒷받침 속에서 산서상인도 승승장구해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살막이 큰 횡액을 당해 거의 멸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는 소식과 함께 살막주로부터도 연락이 끊겼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살막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원하는 게 뭔가…?”
그녀의 물음에 칠조구가 씨익 웃었다.
각연사태는 미소 짓는 칠조구가 순간 부처의 깨달음을 방해한 천자마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흐흐. 사태. 더러운 일은 우리가 다하고 그 결실은 항산에서 가져간 걸 다 알고 있소. 상단의 양대 산맥인 산서상인의 엄청난 지원이 항산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뭐, 다른 건 없소. 같이 먹고살자는 것이지.”
“…그동안 뭘 하고 있다가 왜 이제 와서 이 난리지?”
“쩝. 나도 충분히 재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하지만 이제 천하제일 살수문을 노리는 혈곡에서 어지간히 방해를 해야 말이지. 밀리다 밀리다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찾아온 거요. 내 상황도 좀 이해를 해주시오.”
이런 독대 자체가 문제가 될 일이지만 사실 그들이 골치 아픈 일을 많이 해결해 준 것도 사실이다.
“후우. 알겠네. 맹주가 무슨 일이 있는지 회의를 며칠 미뤘네. 그 회의만 마치면 바로 항산으로 향할 테니, 자네도 그때 항산으로 오게. 그때 다시 얘기하세.”
“흠흠. 그동안 생활할 생활비도 좀 주시오. 애들 밥 굶고 있소.”
“쯧. 저잣거리 왈패도 아니고….”
턱.
“금자 열 냥일세. 이 정도면 되겠나?”
“휘유. 역시 강호팔문의 수장이시군. 금자 열 냥을 소매에 아무렇지도 않게 넣고 다니시고.”
느끼하게 웃으며 전낭을 챙기는 칠조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각연사태가 일어서려 할 때였다.
“사태.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 내치지 않아 준 감사의 뜻으로 내 좋은 정보 하나 알려주리다.”
“정보?”
각연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사실 강호에 손에 꼽힐 정도의 살수단체가 되면 어지간한 정보단체보다도 빨랐다.
그리고 칠조구가 하찮은 정보로 허투루 입을 열 사람도 아니다.
“이번에 사태의 속가제자가 있는 단목세가가 봉문했다는 소릴 들었소. 가주와 소가주를 척살한 흉수가 묵천이라는 정보단체의 수장이라는 것도.”
“쯧.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나?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군.”
각연사태는 속가제자였던 고용화의 도움 요청을 거절한 기억이 떠올랐다.
홀홀단신의 몸이었다면 당연히 도우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항산파라는 거대단체의 수장인 그녀로서는 모험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목인을 무너뜨린 절대고수의 등장.
우내십존이라 불리며 추앙을 받고는 있지만, 아직 절대의 경지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섣불리 나섰다가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장로들의 격렬한 반대도 한몫했다.
그런데 잊혀 가던 그 이야기가 나오니 각연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흐흐흐. 그 단목세가주를 죽인 자가 묵룡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실 테고… 그 묵룡의 진짜 정체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각연사태가 실눈을 뜨며 칠조구를 노려봤다.
“무슨 소린가. 진정한 정체라니? 자넨 그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후후후. 이거야말로 엄청난 정본데 이번엔 그냥 드리죠. 사실 그의 정체는 파천도군이라는 자입니다.”
“뭣이!”
각연사태가 벌떡 일어섰다.
“지금 혜성처럼 등장해 진천비무제를 우승하며 세인의 이목을 끌고 있는 그 파천도군을 말하는 건가? 그 말 확실한가?”
“누군 안전이라고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과거 제가 그의 스승과 부딪힌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지요. 확실합니다. 그의 스승이 바로 20년 전 당시 단목세가주였던 단목형을 죽이고 혜성처럼 등장했던 묵천군입니다. 크큭. 그러고 보면 스승이자 제자나 똑같이 단목세가를 제물로 삼았군요.”
“그러니까 묵룡이란 자가 파천도군과 동일 인물이다?”
“그렇지요.”
“그런데 왜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지?”
“뭐, 아무래도 정보단체의 수장이라면 진정한 정체는 아무도 모르는 편이 좋을 테니까요. 하오문도 그렇지 않습니까? 솔직히 각 성의 지부장 얼굴도 제대로 모르죠. 적어도 강호의 한 축인 개방 정도의 무력과 인원을 보유한 게 아니라면 모르는 게 좋지요.”
“으음….”
“흐흐.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직접?”
“예. 스승을 밝히지 않는 것과 대놓고 물어보는 스승을 부정하는 것과는 다르죠. 대놓고 물어보십시오.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음… 알겠네. 좋은 정보 고맙군.”
각연사태는 다른 말을 할 생각도 못 한 채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후후후. 골탕 좀 먹어봐라.’
칠조구는 임요성을 본 이후 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정보를 토대로 범인을 산출하는 것과 범인임을 특정하고 증거를 모으는 것은 천양지차.
칠조구는 몇 가지 정보의 교차확인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임요성이 묵천군의 제자이며, 묵룡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지면 꽤 시달릴 것이다.
단목세가와의 은원, 그 뒤에 있는 항산파. 그리고 항산파와 연관된 산서상인.
그리고 과거 묵천과 척을 졌던 곳들까지 튀어나올 것이다.
강호의 은원은 깊고도 넓어서 한 번 맺으면 벗어날 수가 없다.
칠조구는 소매의 전낭을 툭툭 치며 특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층계를 내려가던 그가 흠칫 놀라 멈췄다.
막 방을 나오던 임요성과 정통으로 마주쳤기 때문이다.
칠조구 정도면 이미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기에 이렇게 정통으로 마주친 것이었고, 이는 칠조구를 당황케 했다.
놀라는 그를 보며 임요성이 물었다.
“우리가 전에 본 적이 있소?”
“…아니오.”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시오?”
“하하. 뭔가 깊이 생각하다가 갑자기 마주쳐서 놀란 것뿐이오. 그럼.”
칠조구가 황급히 층계를 내려갔다.
임요성이 그런 칠조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운이 묘하군.’
일반적인 무인의 기도가 아니었다. 보다 은밀하면서 농축된.
자신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살수나, 정보단체의 세작인가?’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천천히 칠조구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젠장. 뭔가 눈치챈 건가?’
칠조구는 금세 임요성이 자신을 미행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임요성이 어떤 확신을 가지고 미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느낌이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뭔가 이상한 느낌에 시간이나 때울 겸 칠조구를 쫓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고수들이 있는 내성이라 여러 기운이 간섭된 사각을 파고들었다.
‘헉!’
하지만 어느샌가 보면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연 대악귀의 제자라 이건가?’
칠조구가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파천도군. 상천십좌를 쓰러뜨린 괴물.’
권웅을 꺾는 모습을 직접 봤다.
황보웅이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파천도군의 실력은 진짜였다.
이렇게 도망만 쳐서는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조구는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빠져나갈까 궁리하며 겉으로는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러는 사이 둘은 내성을 지나 외성까지 나아갔다.
내성과 외성 간의 경비는 그렇게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서 나다니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임요성 역시 아무렇지 않게 그의 뒤를 밟았다.
내성에서 제법 화제를 모으긴 했지만 아직 그의 얼굴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내성은 주로 무림맹을 찾는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하는 객잔이나 주루, 다루 등이 있다.
무림맹에서 별도로 챙길 정도의 인물이 아니라며 대부분 내성의 객잔을 이용한다.
그래서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를 풍긴다.
고수들이 많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들이 많다 보니 서로 조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외성은 그보다는 훨씬 분위기가 자유롭다.
이곳은 무림맹과 거래하는 상단이나 표국, 또는 여러 단체의 아랫사람들이 머물렀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치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외성에 이르도록 둘의 추격전은 은밀하고도 조용히 이어졌다.
칠조구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은신술을 펼치며 틈만 생기길 노렸다.
그렇게 외성문까지 나설 때였다.
“아빠!”
소년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순간 임요성의 주의가 그쪽으로 쏠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칠조구가 소년의 목을 그었다.
“끅…!”
소년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 * *
임요성이 칠조구를 쫓아 외성문을 향할 무렵 외성문 인근에서 한 사내가 장한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었다.
“저 가진표국의 가진표입니다! 저 신용 아시지 않습니까? 조금만 일자를 미뤄주시면 이번 일에 대한 보상금은 꼭 드릴 테니 제발 저희 표국만은 남겨주십시오!”
“거 참.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내가 단주님도 아니고.”
“그럼 홍 대인을 좀 만나게 해주십시오! 홍 대인께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씨 진짜 귀찮게 하네. 그럴 필요 없다니까?”
장한이 귀찮다는 듯 귀를 후비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냥 돈으로 보상을 하든 표국을 담보로 잡혔으니 표국으로 해결을 하든 그 두 가지뿐이네! 대인께서 그리 전하라고 했으니 그리 알게.”
사내는 절박한 말투로 홍 대인, 하남제일상단의 단주인 홍치국을 불러달라고 했으나 장한은 짜증 나는 표정으로 손짓을 했고, 어디서 달려왔는지, 하남상단의 무사들이 그를 끌고 외성 밖으로 나가버렸다.
“대인! 대이인―!”
누구도 그를 측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무림맹성 앞에서는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다.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과 끈을 맺고 있는 상단이나 표국의 유력인사들은 맹을 자주 들락날락했고, 그런 이들에게 또 콩고물을 주워 먹고사는 중소단체의 수장들이 연일 그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성수비대들도 그냥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했고, 끌려 나가는 그를 보고도 경비무사들도 헛기침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놀란 목소리로 아비를 부르는 소년의 모습에 하남상단의 무사들에게 짓밟히던 가진표의 몸이 굳어버렸다.
“현아… 네가 어떻게…?”
집을 나올 때 어디 가냐던 아들의 물음에 무림맹에 간다고 했던 것이 실수였다.
소년은 아무 생각 없이 아버지를 만날 생각으로 맹으로 향했고, 외성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밖으로 끌려 나와 얻어맞는 아비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리고,
퓩!
마침 그 순간 칠조구가 소년을 지나고 있었고, 전광석화 같은 비수가 소년의 목을 그었다.
“현아―!”
남자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내가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채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본 임요성 역시 소년에게 달려가 급히 혈도를 점했고, 소매를 북― 찢어서 목을 칭칭 동여맸다.
다행히 곧바로 지혈을 하고 응급처치를 해서 생명에 지장은 없어 보였다.
“우, 우리 현이 괜찮겠습니까?”
사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임요성에게 물었다.
“괜찮소. 그리고 여기….”
임요성이 호패를 내밀었다.
“무림맹 의각으로 가서 내 호패를 주고 치료를 받도록 하시오. 내 별호가 파천도군이니 그렇게 말하면 알 거요.”
“이,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생명에 지장만 없다면 제가 따로 의원에 가서….”
“개의치 말고 그리하시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빨리 치료받아야 하니.”
“아… 예. 감사합니다.”
그때 하남상단의 무사들이 다가왔다.
“흠흠. 그러게 괜히 맹까지 와서 귀찮게 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니오. 더 이상 우리 단주 열 채우지 말고 빨리 보상이나 하시오.”
아이가 누군가의 칼에 맞아 쓰러진 상황에 할 말이 아니었다.
찌릿!
임요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만 하면 되지 않았나?”
이거 또 뭐야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상단의 무사들이 임요성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하남제일상단의 무사들 정도면 무공도 무공이지만 눈치도 상당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대들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크음.”
헛기침을 하며 상단의 무사들이 내성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대협. 감사합니다.”
사내가 일어서서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그 역시 잔뼈가 굵은 표국의 국주.
분위기만 봐도 상당한 고수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무림맹 인근.
괜히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는 곳이 이런 곳이다.
동네 마실 나온 호랑이를 잘못 건드려 뒈지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몸은 괜찮소?”
“예. 대협 덕분에 그리 많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를 업은 사내, 가진표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내가 말한 대로 하시오. 난 잠깐 볼 일이 있으니.”
그렇게 말한 임요성이 고개를 돌렸을 땐 자신이 쫓던 이의 자취는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임요성을 자극했다.
‘나에게서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은가.’
임요성의 눈빛이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