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6
제 226화
76장. 의외의 전쟁 – 4화
같은 시각, 사비오의 연구실.
사비오는 자레드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통신석을 통해 긴급 연락이 온 것을 확인하고는 놀랐다.
타넥스에 문제가 생긴 일 따위가 아니라면, 거의 연락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자레드, 무슨 일이야?”
-타넥스가 필요해. 지금 내가 사용하는 기체 말고, 예비 기체들 말이야.
“무슨 일이야?”
-렌투스 제국이 데스먼드 제국의 도움을 받아, 신데르스 왕국을 공격하고 있어.
“뭐라고?”
사비오도 나스 대륙의 세력 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마도국에 대한 악명도 익히 알고 있었고.
하지만 지금 소식은 의외였다.
신성 제국 연합 소속의 국가가 마도국의 도움을 받아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 없어. 예비 기체, 보내 줄 수 있어?
“마력탄 방출 장치가 아직 불안정해. 효율이 50%밖에 나오지 않을 거야.”
-다른 기능은?
“거의 완성됐어.”
-전부 보내 줘. 비용은 확실하게 지불할 테니까, 한 기도 남기지 말고 전부!
“알았어! 어디로 보내면 될까?”
-부스토레 산맥!
교신이 끊겼다.
부스토레 산맥이라면 여기서 타넥스를 전속력으로 남하시켜도, 3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물론 기체의 피해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최고 속력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엔진이 과열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자레드의 다급한 목소리로 보아 전황의 급박함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제길, 기체 좀 열심히 모으나 했더니만……. 죄다 고철 덩어리가 되겠군.”
사비오가 툴툴거리며, 최종 공정을 기다리고 있는 10기의 타넥스 기체로 향했다.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오래전부터 공들여 만든 자레드의 본 기체가 아닌 양산형 타넥스의 활약도 보고 싶었던 참이니까.
삑삑. 삑삑.
사비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렌투스 제국군을 공격할 타이밍을 재던 나는 생각지도 않은 퀘스트 메시지를 마주하고 있었다.
[특수 퀘스트 ‘냉철한 단죄’가 활성화됩니다. 해당 퀘스트를 모두 완료해야 8클래스의 마법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특수 퀘스트 : 냉철한 단죄 1/2 – 첫 번째] [보상 : 8클래스 달성] [안젤루스 링의 효과로 첫 번째 퀘스트가 자동 완료되었습니다.] [두 번째 퀘스트가 이어서 연속적으로 발동됩니다.] [렌-세븐의 일곱 구성원을 모두 제거하십시오.]“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쨌든 안젤루스 링 덕분에 첫 번째 퀘스트가 무조건 면제된 것은 희소식이었다.
최상위 클래스로 갈수록 퀘스트는 토가 나올 정도로 어려워지는 것을 생각하면, 진정한 의미의 하이패스였다.
문제는 두 번째 퀘스트였다.
상대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렌-세븐(Ren-Seven).
갈라딘 공작의 수족과도 같은 일곱 명의 심복이자 일곱의 정예 남매가 하나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살인 기계들이기도 했다.
‘큰 산.’
갈라딘 공작과 렌-세븐이라는 존재가 내게 주는 의미였다.
각국에 내로라하는 네임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도 갈라딘과 렌-세븐은 압도적이다.
그들은 데스먼드 제국의 마탑주 이카젤라를 제외하고 대륙에 알려진 최상위 마법사, 소드 마스터들 중에서 가장 걸리는 상대다.
바꿔 말하면.
이들을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가속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유인계를 써야겠군.”
전략 수립은 끝났다.
갈라딘과 렌-세븐의 단점이 하나 있다면,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호전적이라는 것이다.
나 홀로 렌투스 제국군 전체와 싸울 수는 없지만, 렌-세븐을 이끌어 내서 싸울 수는 있을 듯했다.
렌-세븐의 손발만 확실히 묶어 놔도 신데르스 왕국군의 부담은 확실히 덜어진다.
“그렇다면!”
쿠아아아아!
망설일 것 없이 무게중심을 아래로 힘껏 실은 뒤, 급강하를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전쟁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확실하게 끝을 볼 생각이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렌-세븐은 그 여정 속에서 걸리게 된 ‘돌부리’ 정도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1분 후.
“도대체 저건……?”
갈라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밤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낙화(落火)의 향연에 경악했다.
그것은 마치 투석기 따위로 날린 거대한 불덩이를 보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추락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적의 대응이다, 피해라!”
당연히 신데르스 왕국군의 대응 공격이라 생각했던 병사들은 지휘관의 지시 속에 황급히 피했다.
“아냐. 적들이 아니라, 한 놈이란 말이다!”
갈라딘이 소리쳤다.
이것은 마법이었다.
그것도 한 사람이 펼쳐 낸 마법.
이런 비정상적인 마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는 나스 대륙을 통틀어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자레드.”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 자레드였다.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혈혈단신으로!
“각하, 대응할까요?”
갈라딘의 옆에 있던 렌투스 마법사단의 단장 오스카가 물었다.
그는 7클래스의 마법사로, 갈라딘을 따라 함께 전장을 휘젓고 다니며 잔뼈가 굵어진 마법사였다.
“아냐, 렌-세븐만 붙인다.”
갈라딘은 냉정하게 대응했다.
누가 봐도 자레드가 시간을 끌기 위해 되지도 않는 ‘수작질’을 하려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여기서 자레드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면, 북진이 늦어진다.
이번 전쟁의 생명은 속도전.
갈라딘과 렌투스 제국의 황제 루틀러 4세의 생각은 같았다.
크리비아 제국이 지원군을 보내기 전에 신데르스 왕국의 남부를 확실히 장악하는 것이다.
어차피 알맹이가 없는 신데르스 왕국의 북부는 필요 없으니, 남부의 알짜배기만 취하려는 속셈이었다.
최초의 1일.
갈라딘은 첫날의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이카젤라의 협력으로 얻게 된 절호의 찬스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원스넬.”
“예, 각하.”
“너희가 자레드를 죽여라. 죽일 수 없다면, 어떻게든 놈의 손발을 묶어라. 크리비아의 주공(主攻)에 저놈이 없다면, 나머지는 내 선에서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스넬이 남은 렌-세븐 남매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했다.
먼저 시작한 것은 주술 3형제로 불리는 포우, 파시벤, 세난이 상공에 펼친 왜곡 역장이었다.
“전부터 죽이고 싶었던 XX였는데……. 참으로 잘됐군.”
원스넬이 왜곡 역장의 간섭으로 플라이 마법을 거둬들이고 강하하는 자레드를 보며,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주인인 갈라딘의 앞을 사사건건 막아섰던 존재, 자레드.
드디어 확실하게.
놈의 숨통을 끊어 줄 때가 왔다.
* * *
“제법이군. 역시 렌-세븐이야.”
유명은 허명(虛名)이 아니었다.
그들이 까다로운 존재로 불리는 이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곱 남매들이 각각 특화된 분야가 달라, 적을 다방면으로 공략하기에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주술 3형제는 앞으로도 계속 내 동선과 마법 시전을 막으려들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갈라딘의 90% 정도, 하위 호환 버전인 원스넬은 쌍검술의 달인이다.
난전에 능하고, 기동력이 매우 우수하여 마법사들에게는 저승사자로도 통한다.
그리고 투카와 7남매의 홍일점으로 불리는 쓰루나는 암수의 달인이다.
클로이보다는 낮은 스탯을 가지고 있지만, 두 녀석이 한 몸처럼 움직여 그 역시 상대하기 아주 까다롭다.
마지막으로 여섯째인 시클루스는 7클래스의 마법사다.
다만 그는 공격형 마법사라기보다는 탱커형 마법사에 가까웠다.
무슨 말인가 하면, 마법사 특유의 기동성을 바탕으로 다른 남매들의 방어를 전담한다는 뜻이다.
공격을 전부 포기하고,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여 모두의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핵심 구성원이었다.
“자레드……!”
지면에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내게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원스넬이었다.
두 자루의 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핏자국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검날에 죽어갔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올라, 착용 이후 적의 검격에 대응한 완벽한 방어 모드로.’
-명령을 수행합니다.
지시와 함께 타넥스가 내 몸에 완벽하게 착용됐다.
원스넬은 놀라지 않았다.
타넥스를 종종 전장에서 활용해 왔기에 녀석에 대한 소문이 제법 많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아압!”
까앙! 까앙!
일갈과 함께 원스넬의 검이 내 시야를 교란하며, 거칠게 파고들었다.
타넥스 몸체로 검격을 받아 낼 때마다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다.
나는 실드를 펼칠 준비를 하다가, 바로 캐스팅을 중단했다.
주술 3형제가 펼친 다른 왜곡 주술이 일찌감치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성 왜곡의 주술이다.
여기서 내가 실드를 펼치는 순간, 어떻게 되느냐?
실드의 방어 역장 자체가 하나의 기폭제가 되어, 주술과 반응하여 터져 버린다.
나를 둘러싼 공간이 전부 폭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탐색이 필요해.’
감정을 살짝 가라앉혔다.
렌-세븐만 보내고 갈라딘은 오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신속하게 진군하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내가 그들의 발목을 잡으려 하듯, 그들도 나를 붙잡고 있으려 하는 것이다.
역시 보통내기들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엉덩이가 무거운 쪽이 이긴다. 서두르는 쪽이 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고생 좀 하겠구나, 타넥스.’
나는 신형으로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타넥스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일 대 칠의 전투는 단기전이든 장기전이든 껄끄럽다.
더군다나 각기 다른 직업군의 조합으로 유기적인 협력을 하는 렌-세븐이라면 더더욱.
나는 타넥스를 제물로 삼아, 렌-세븐의 수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그렇다면…….’
괜찮은 생각이 떠오른다.
에서도 적을 기만한 뒤, 확실한 한 방을 먹일 때 종종 썼던 수법.
그 방법이 왠지 통할 듯싶었다.
* * *
“크하하하! 천하의 자레드도 별수 없구먼? 그간 쭉정이 같은 놈들만 상대해 왔으니, 오만해질 수밖에!”
원스넬은 신나게 자레드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역시 렌-세븐의 연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일품이었다. 자화자찬이 부끄럽지 않게 완벽한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다.
자레드는 오직 방어로만 일관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초월체를 착용하고 있지만, 그뿐이었다.
“어림없다, 자레드!”
쿠우웅!
초월체에서 방출되는 마력탄은 시클루스가 막아 줬다.
“멋지구나, 시클루스.”
“제가 마땅히 할 일이죠, 형님.”
블링크, 헤이스트, 퍼펙트 실드.
이렇게 삼단 연계로 신속하게 남매의 빈틈을 방어해 주는 시클루스의 대응은 환상적이었다.
바로 그때.
휘리리릭!
등 뒤에서 단도 하나가 날아드는 소리가 들렸다.
쓰루나가 날린 단도였다.
물론 원스넬을 노린 것은 아니고, 자레드를 노리되 사각지대에서 던진 단도였다.
“훗.”
원스넬이 웃으며 고개를 살짝 꺾자, 목 옆을 아슬아슬하게 단도가 지나갔다.
완벽한 기습!
“……!”
원스넬은 순간 당황한 듯한 자레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쑤우욱!
초월체의 노출된 빈틈을 파고들며, 자레드의 입가에 단도가 명중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초월체 안에 있어야 할 자레드는 온데간데없이, 단도가 닿은 것은 자레드의 허상이었던 것이다.
“설마……?”
밀려드는 불길한 예감. 위험을 직감한 원스넬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