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97
흥미로움. 즐거움. 기쁨.
이런 감정은 그녀에게는 특이한 것이었다. 대지의 수호자인 그녀는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끝없는 무료함을 느끼기만 해 왔으니까.
물론 무료함은 친근한 것이었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관계없다는 무심에 가까운 감정이 그 전에는 없었다.
전익현이 왔다가 사라진 후에야 그녀는 무료함과 외로움이 얼마나 두려운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전익현을 다시 만나게 된 지금. 심장이 두근거리며 다시 뛰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똑바로 해. 말하는 대로 못하면 화낸다? 카드팩 5개가 걸려 있다고! 집중해! 알겠어?”
‘분노로 심장이 뛰는 것일지도.’
이 감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했다. 모호한 감정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전익현의 옆에 더 오래 있을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소원권으로 전익현이 자신을 주인님으로 모시도록 할 속셈이었다.
전익현의 시종을 50년이고 60년이고 받다보면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리라.
“뭐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한 느낌인데.”
“꽃샘추위란 게 본디부터 그런 거지.”
“꽃샘추위가 아니라 엄청난 짐짝이 우리집에 생기려고 하는 것 같은 구체적인 위화감이라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몸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일이겠군.”
그런가. 전익현이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무슨 문제인지는 몰라도 시합 끝나고 생각하지 뭐.”
[투기장 시합이 시작됩니다!] [덱 메이킹 페이즈가 시작됩니다!] [바닥에서 카드의 짝을 맞추세요!]전익현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덱 메이킹 페이즈가 시작됐다. 스핑크스는 앞을 향해 뛰어나갔다.
“저 여자. 뭐지? 왜 저렇게 빨라!”
“네 발로 뛰는데?”
“저거. 그, 스핑크스 아니야?”
“스핑크스?”
“왜. 옛날에 수호자였던…!”
자신을 알아보는 인간들의 말을 들으며 스핑크스는 투기장의 중심부로 내달렸다.
‘투기장의 형태는 원형. 카드들을 줍기 위해서는 중심에서부터 움직이는 게 가장 효율적이야.’
물론 그만큼 격전이 이루어지는 곳도 중앙이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질을 날렵하게 피한 스핑크스는 전익현의 신호를 기다렸다.
전익현은 투기장의 외곽의 가장 안전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말해라!”
“왼쪽 발로 밟고 있는 카드!”
꽤나 먼 거리인 데다가 소란이 겹쳐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랬을 거라는 의미지만.
+
【가위-로봇】
【1 mana】
【무속성】
【‘보’카드들에게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2/2】
+
1마나 카드 치고는 꽤 괜찮은 카드다. 하지만 이 투기장 룰에서는 한 장 카드를 집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제대로 카드를 얻기 위해서는 이 카드와 똑같은 카드를 수없이 많은 카드더미에서 찾아내야 한다.
흩뿌려져 있는 카드들은 어림잡아 봐도 천 장은 된다.
확률은 1/1000. 똑같은 카드가 네 장, 혹은 여섯 장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희박한 확률이다.
아무리 전익현이라고 해도 한 번에 카드의 짝을 맞출 수는 없으리라.
결국 초반에는 카드를 계속 뒤집어 가며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10미터 이동! 거기서 제일 가까히 있는 카드!”
“그냥 주변에 있는 카드를 뽑으면 안 되나?”
“잔말말고 듣기나 해!”
눈을 보아하니 반쯤 돌아가 있다. 말을 해 봤자 들을 리가 없으니 일단은 그 말을 따라 줄까.
스핑크스는 전익현의 말에 따라 카드를 집어올렸다.
+
【가위-로봇】
+
“…뭐야.”
이번에도 「가위-로봇」카드다.
[보유 카드 매수 : 2]“어떻게 안 거지?”
“눈 앞에서 싸우는 두 명 발 밑에 있는 카드! 바위-철벽골렘!”
+
【바위-철벽골렘】
【3 mana】
【무속성】
【‘가위’카드들에게 데미지를 입지 않습니다.】
【4/4】
+
“시계 방향 10시로 달려!”
전익현의 말에 따라 주운 카드는 이번에도 짝이 맞았다.
카드가 뒤집히는 것을 봤나? 아니다. 이쪽은 사람이 아무도 온 적이 없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전익현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한 쌍의 카드가 스핑크스의 손에 들려 나갔다.
* * *
“생각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은데?”
사실 투기장에 처음 왔을 때는 카드를 모두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지도 않은 카드들을 한 쌍씩 뽑아서 카드들을 맞춘다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마. 이전의 세계였다면 그랬을 것이다.
“왼쪽 아래에 있는 카드!”
나는 카드의 상단부에 Z자로 스크래치가 난 카드를 골랐다. 덱에 들어갔을 때에 보 덱에서 최후반 템포를 잡아주는 「보-보보보-보보보」다.
이 카드와 쌍이 되는 카드는… 카드 중심부가 미묘하게 튀어올라 있는 카드.
“눈 앞에 있는 남자가 들고 있는 카드!”
타아악! 스핑크스의 몸이 튀어올라 남자의 손에서 카드를 뺏어올렸다.
“좋았어!”
카드 뒷면에 나 있는 수많은 스크래치들이 내게 카드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소커아」세계관에서의 카드는 굉장히 특별한 물건이다. 쉽사리 잘리고, 부서지고, 폐기되지 않는 특별한 물건.
설정상 ‘듀얼혼’이 어쩌고 세계의 균형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중요한 건 아니고.
그래서 중요한 건 듀얼 중이 아닌 이상 웬만한 물리력에도 카드가 상처나거나 잘려나가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서윤하의 말에 따르자면 숙련된 듀얼리스트는 카드를 던져서 권총의 격발을 막거나 총알을 막을 수도 있다나.
카드를 집어던지는 놀이나 하는 놈이 숙련된 듀얼리스트라고는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 정도로 튼튼한 물건이라는 뜻이다.
“지금 카드 몇 장이야?”
“58장!”
하지만 지금의 카드는 다르다. 여전히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듀얼혼’이 사라진 상황이라서 그런지 투기장 바닥에 방치된 카드들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많이 나 있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듀얼리스트가 아니지.
나는 이전에 이뤄진 투기장 게임에서 이 필드에 있는 모든 카드들의 뒷면을 외웠다.
그리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아마 평범한 소울 커맨더스 프로라면 죄다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뭐, 그걸로 최선의 덱을 투기장에서 얻어내는 것은 또다른 일이지만.
스핑크스의 신체능력이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던 덕분에 최적의 덱을 짜 낼 수 있었다.
“마지막! 카드 겟!”
“잘 했어!”
스핑크스가 원반 문 개처럼 내게 달려왔다. 입 밖으로 내뱉었다면 앞발을 한 대 맞았겠지만, 아무튼 모양이 그랬다는 말이다.
“두 번째 덱, 나한테 줘.”
상성상 미묘하게 두 번째 덱이 더 좋다. 나는 스핑크스의 손에서 덱을 받아들었다.
“이제 좀 쉬어도 되는 건가?”
본래라면 여기서 덱 제출하고 쉬는 게 정석이겠지만….
[잔여 시간 : 10분]아직 시간도 많고, 덱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으니.
“조금만 방해를 해 볼까?”
##외전#1 : 스핑크스(4)
카드 게임의 플레이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플레이 방식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바라는 정석적인 플레이를 계속해 나가는 방식.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상대를 방해하는 플레이를 하는 방식이지.”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스핑크스에게 내 계획을 설명했다.
“…그래도 되나?”
“안 된다는 말 없잖아.”
“그야 그렇지만.”
스핑크스가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고민에 빠졌다.
“수호자는 소울 커맨더스의 법칙을 수호하는 존재인데.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것인지.”
“너 잘렸잖아.”
“잘린 게 아니라 내 스스로 수호자를 그만둔 것이다!”
꼭 능력 없어서 해고당한 애들이 그런 말 하더라.
“할 거면 여기. 카드 케이스.”
스핑크스는 군말 없이 카드 케이스를 받아들었다. 30장짜리 덱을 받아서 그런지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이 심상치 않다.
“저는 여기서 퇴장할게요.”
경비원에게 덱을 제출한 나는 투기장 바깥으로 몸을 옮겨서 관중석에 앉았다.
“호우! 형씨. 엄청난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운이 좋았죠.”
관중석에 앉자마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기인은 이래서 힘들다.
그보다 스핑크스와의 거리가 너무 멀어져 버렸네. 이 거리라면 스핑크스라고 해도 제대로 듣지 못할 것 같다.
“양아치 고양이! 생활비 축내는 기계! 밥 먹고 핫팩 말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밥순이!”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역시나 제대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확성기를 구해야 될 텐데. 사기는 좀 부담스럽다. 안 그래도 새 확장팩이 마구마구 출시되고 있는 시점이라서 돈을 최대한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 있는 확성기를 들고 있던 관객에게 물었다.
“혹시 확성기 빌릴 수 있나요?”
“공짜로?”
거 참. 사람 사이에 이렇게 돈을 당당하게 요구하다니. 확성기 좀 빌려줄 수도 있는 거잖아.
“확성기 빌려 주시면 어떻게 카드 짝 맞췄는지 알려드릴게요.”
“정말인가?”
확성기를 들고 있는 남자의 눈이 빛난다. 남자가 섬광처럼 내게 확성기를 건냈다.
“자. 어떻게 카드들을 죄다 알 수 있었던 건가?”
“뒷면을 보고 구별하면 돼요.”
“…뒷면을 보고? 어떻게?”
“잘요.”
나는 설명을 끝내고 확성기를 켰다.
“그 옆에 있는 카드 주워! 9마나의 「가위-파괴자」다!”
내 말에 스핑크스는 카드를 주워들었다.
“파괴자래!”
“9마나의 핵심 카드잖아!”
“주워! 빨리!”
스핑크스가 파괴자를 집어들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스핑크스를 붙잡으려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