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d Academy 1st Hit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91
“교사라면, 해야 할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방향도 좋지만, 그것도 교사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해야 있는 거 아닐까요?”
“······.”
“지금 교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평정심입니다.”
내 조언을 들은 권보람의 숨소리가 가라앉는다. 빠르게 움직이던 흉부의 움직임도 줄어들고, 달아오른 얼굴도 빠르게 가라앉는다.
엄청 빠르게 냉정해지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문의 수호자」필드는 몬스터가 있어야 처리할 수 있는 필드인데···.”
“문의 수호자는 굳이 몬스터가 있어야만 처리할 수 있는 필드는 아닙니다.”
나는 가져온 트렁크를 열어서 여분의 카드들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이 상황을 돌파할 만한 카드들은 갖춰져 있었다. 덱의 최적화를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상황을 돌파하는 데에는 덱의 최적화따위는 필요 없으니 상관없다.
나는 드로우 카드들과 필요한 카드를 넣어서 빠르게 덱을 완성했다.
“문의 수호자 필드는 단순히 필드일 뿐입니다. 몬스터가 있는 곳에 등장하는 진 형태의 필드라서 몬스터가 필요하다고 일컬어지는 것 뿐.”
“···그 말은?”
“몬스터가 없이, 사람 두 명이 있어도 문의 수호자 필드는 발동한다는 말입니다.”
“···아!”
권보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제서야 상황의 윤곽이 잡힌 모양이다.
“맞습니다. 저희 둘이서 듀얼하는 걸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말이죠.”
끝
“듀얼!”
듀얼을 외치자 끔찍한 소음과 함께 문이 움직인다. 문 가까히에 서 있던 나와 문에 있던 나뭇가지들이 연결된다. 으음. 썩 좋은 느낌은 아니군.
[「관문의 수호자」가 발동합니다.] [「문」의 힘이 깃듭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여 문이 파괴되기 전까지 이 효과는 지속됩니다.] [문의 힘 : 이 플레이어가 가하거나 받는 데미지는 두 배가 됩니다.] [Quest : 1레벨부터 10레벨까지의 몬스터를 한 번씩 파괴할 것.]“역시. 퀘스트 옵션은 그대로네요.”
“하지만··· 듀얼을 시작했단 건···.”
“내 턴, 드로우.”
나는 권보람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게임을 시작했다. 여한설이 얼마나 버텨 줄 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극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략 이삼십 분 정도는 버티지 않을까 생각이 들 뿐.
대화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최선의 플레이는 최대한 빠른 공략을 하는 것 뿐.
다행인 점은 문 파괴용 퀘스트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 정도일까. 본래 이러한 필드들이 만들어진 설정 자체가 몬스터를 엄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오브젝트인지라, 함께하는 퀘스트까지 어려운 경우는 거의 없다.
내 덱은 1레벨부터 10레벨까지의 몬스터들 가운데 체력이 낮은 몬스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불꽃 광전사를 소환!”
+
【불꽃 광전사】
【3 mana】
【타오르는 불꽃의 수호신이자 위대한 불꽃의 제단을 수호하는 광전사. 이 광전사를 추종하는 열렬한 추종의 무리가 종종 존재한다.】
【5/1】
+
“···그런 카드를 잘도 가지고 다니시는군요. 철저한 대비능력 그 자체.”
사실 오늘 카드 분리수거일이라 버릴 카드들 가지고 나왔다가 버리는 걸 까먹은 건데.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지.
불꽃 광전사가 권보람의 「빛의 심판자」의 공격을 받아 스러졌다. 이걸로 4레벨까지의 몬스터들은 모두 처치.
퀘스트 진행은 꽤 빨랐다. 물론 최선의 속도는 아니었다. 권보람이 최선의 선택들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요.”
“···최대한 빨리 하고 있는 겁니다.”
거짓말이다. 권보람은 전 턴에도, 이번 턴에도 쓸 수 있었던 「날개의 수호령」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 양 쪽 덱을 합쳐서 두 장 밖에 없는 10레벨 몬스터.
그녀가 날개의 수호령을 소환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날개의 수호령」은 소환시 적 전체에 데미지를 주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내가 데미지 좀 받아도 괜찮으니까 빨리 끝내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 턴에도 날개의 수호령은 나오지 않았다.
권보람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빨리 소환하세요. 빨리 끝내야 다음 문으로 갈 수 있어요. 빨리 날개의 수호령을···.”
“날개의 수호령, 안 들고 있습니다.”
“다 카운팅하고 있어요.”
“안 들고 있다니까!”
권보람이 소리질렀다.
과거에 소울 커맨더스 온라인이 패치 중인 상태인 데다가 실물 듀얼을 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메일로 왔던 캐릭터 시트의 설정란을 읽어본 적이 있다.
그 중 꽤 앞에 있던 게 권보람의 캐릭터 시트였다.
[권보람. 과거 아카데미의 최고 인기 강사. 하지만 트라우마로 인해 학생들과의 듀얼을 극도로 꺼리며 현재는 이현일의 보좌관 역할만을 맡고 있다.]그 이후에는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들이 구구절절히 쓰여 있었다. 20명의 학생들이 돌발 게이트에 휘말려 권보람과 함께 떨어졌으며,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권보람이 그 중 대다수. 그러니까 19명의 학생들을 구조했다는 것과, 나머지 한 명을 구하기 위해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상황에서도 게이트를 나가지 않으려고 버텼다는 것.
그리고 1명이 결국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까지.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흔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정이라도 해 달라는 겁니까?”
“동정? 당신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겁니까?”
“당신이 겪은 불행이 있다고 해서. 당신의 물렁한 플레이가 용서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로 사연 많은 인간이라 이거다. 백억에 낚여서 이 세상에 떨어지기 전만 해도 구구절절 사연이 한 트럭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외부의 상황에 휘둘려 물렁한 플레이를 한 적 없다.
목숨줄이 왔다갔다 하는 상태에서도 우승을 한 인간이라면 이 정도 꼰대질을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라면, 선생이라면. 아니,
그 이전에 듀얼리스트라면.
“좋은 수가 있는 것을 아는데도 돌아가려는 짓은 결코 용납될 수 없어. 강사가 돼서 학생들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그러는 것은 더더욱.”
권보람이 나를 째려봤다. 얼마 전에 츄르에 물 탄 것을 알아챈 스핑크스가 나를 쳐다보던 것과 똑같은 표정이다.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군. 보아하니 나를 ‘같은 편’이 아닌 ‘적’이나 ‘상종하기 싫은 사람’정도 수준까지는 인식하는 모양이다.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의 반응이다. 이제 나를 공격하는 데에는 망설임이 없어지겠지.
“···나는 날개의 수호령을 소환.”
+
【날개의 수호령】
【10 mana】
【소환 : 적 전체에 5 데미지를 줍니다.】
【7/7】
+
촤라라라락! 수천 개의 깃털이 내 필드에 쏟아졌다. 필드 위에 올려놓은 몬스터들이 쓸려 나간다.
몬스터들이 다 쓸린 다음의 대상은 나다.
내 온 몸에 깃털이 박히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바늘에 찔린 기분이다. 하지만···.
[8레벨 몬스터가 처치되었습니다.] [9레벨 몬스터가 처치되었습니다.] [「머드 골렘」의 유언 효과로 「날개의 수호령」이 처치됩니다.]한 번에 남아 있던 퀘스트가 다 깨졌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문」이 파괴됩니다!]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문이 부서져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듀얼만 제대로 끝내면 된다.
“자. 이 다음은 듀얼을 끝내면 되겠네요.”
“그러면 이제 당신을 처치하면 됩니까?”
어떻게 그런 끔찍한 발상부터 떠올리지. 듀얼이 곧 생활 방식인 세상의 사람답다.
“아뇨. 이제 둘 중 한 명이 패배 선언만 하면 됩니다.”
“···제가 하도록 하죠.”
[「권보람」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듀얼에서 패배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 세상의 사람들치고는 꽤 빠른 판단이다. 학생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겠지. 꽤 괜찮은 교사상이다. 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할 수 있는.
“자. 갑시다.”
찌릿.
···나를 쳐다보는 눈이 좀 무섭긴 하지만.
혹시 킬각 잡는 건 아니겠지?
스핑크스의 경우에는 근래 살해시도 빈도수가 부쩍 오르긴 했는데, 권보람이 그 정도로 악랄한 인간은 아니다.
그래도 상기는 시켜 놓도록 하자.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미리 말해 두지만. 제가 죽으면 저 너머에 있는 학생들 못 구합니다.”
“을그···있습느드···.”
이 꽉 문거 봐. 이번 일 끝나면 당분간은 피해 다녀야겠다.
***
“조금 이상하군. 이 깊은 곳까지 몬스터들이 없다는 게.”
여한설은 던전 안을 둘러봤다. 던전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몬스터가 없는 곳인가? 그녀가 수트를 받은 후 몰래 몬스터를 사냥한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던전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신분 검사가 반쯤 필수적이었기에 던전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기가 가장 깊은 곳인데도 몬스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
장백호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몬스터들의 위치를 조정하는 것은 「심장」이 한 일일 것이다. 던전의 몬스터의 위치를 바꾸는 것은 법칙에 위배되는 짓이기는 하지만 그리 큰 일은 아니니 패널티가 크지는 않을 터였다.
전익현이 오지 못하도록 문을 만들어낸 것은 출혈이 조금 클 수 있겠지만.
장백호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나무꼬리들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조금 멀리에서 들려왔다. 죽음을 앞두고 잡담 조금 할 정도 시간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재미있지 않나?”
“뭐가 말이지?”
“카드뭉치 따위가 인간의 성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말이야.”
“그게 뭐가 신기하단 거지?”
“···그 반대. 이를테면 성격이 우선 만들어지고, 그 성격에 맞도록 우리가 쓸 덱과 인생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군. 말대로라면 내가 자긍심이 높기 때문에 청노두에 태어났다는 뜻인데, 선후관계가 전혀 맞지 않아.”
그럴지도.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도. 장백호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여한설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남자는 왜인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모든 세상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네 재미없는 농담에 어울려줄 시간은 없어.”
“그래. 시간이 없는 건 확실하지···.”
키이익! 키익!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수 마리··· 아니. 최소한 열 마리는 넘는다.
“곧 죽을 테니까.”
장백호의 섬뜩한 눈. 하지만 여한설은 장백호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몇 번이고 겪고 나면 어느 정도의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듀얼!”
우당탕! 듀얼 필드가 생겨나고,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나무꼬리들이 저 멀리로 밀려났다.
[튜닝 시간입니다.]여한설은 옆을 바라봤다. 장백호도 듀얼을 선언해 필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혀 움직일 낌새가 없다. 의도적인 시간 지연임을 알아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왜? 의문이 떠올랐지만 금세 사라진다. 지금의 듀얼과 아무 관계없는 생각들이었기에.
지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장백호가 의도적인 시간 지연을 하고 있다는 것. 여한설은 손에 있는 스마트워치를 바라봤다. 매핑(mapping)된 구역에서 자신이 온 지역이 벽으로 메워져 있었다. 돌아올 수 있는 경로까지 막히지는 않았지만 한참을 돌아야만 한다.
즉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을 교수진의 지원이 늦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간을 지연하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최선은 눈 앞의 나무꼬리들을 처리하고 빠르게 벗어나는 것.
‘어떻게?’
본래라면 가져온 대 몬스터용 덱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나무꼬리의 수가 적었다면 어둠 속성의 덱으로도 충분했을 테고.
그러나, 나무꼬리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러니 힐(heal)카드들을 다수 확보해 총 체력량을 늘려야만 했다. 힐 카드들의 실제적인 효율은 듀얼상의 효율의 절반을 밑돈다. 그러니 듀얼이 계속되면 신체적 데미지는 계속해서 누적된다.
그녀는 빠르게 덱에서 우선순위가 낮은 카드들을 빼고 힐 카드들을 추가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고, 덱을 구축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젠장.”
여한설은 자괴감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튜닝하는 데 이렇게 기민한 몸놀림이라니. 이래서야 튜닝 광신도나 다름없지 않은가. 방금의 속도는 신하연이 덱을 튜닝하는 것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전익현의 수업을 돌려듣는 횟수를 줄여야겠다. 최소한 수면 전에는 안 듣는 게 좋아 보인다. 굳게 다짐을 한 여한설은 필드의 덱 홀더에 덱을 꽂아넣었다.
끝
[「문」을 파괴하셨습니다.] [「권보람」이 패배를 인정했습니다.]“후우. 대체 문이 몇 겹이나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