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덕팔의 미국 체류가 길어지고 있었다. 만인들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화려한 신년행사가 TV로 방송되고 있었다.
“덕팔씨,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왜요? 여기가 싫어요?”
덕팔이 TV를 보며 팝콘을 우물거렸다.
“여기가 싫은 것은 아닌데.. 그럼 여기서 쭈욱 살까요? 덕팔씨가 SAT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가면! 어때요?”
“또? 또 공부를 해요?”
“덕팔씨는 공부 잘하잖아요. 호호호”
“흐음.. 이번 생은 입시만 봐야 할 팔자인가?”
“진짜? 그럼 미국에서 살 거예요?”
“… 그럼 좋겠지만, 아무래도 영감님 문제를 해결한 후에나 가능하겠죠?”
“치이… 그래서 언제 한국에 갈 건데요?”
“전화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곳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게 있어서.”
“미국에서요?”
“네, 마이클인가, 마이콜인가 하는 놈을 아직 못 잡았잖아요.”
“그거야, FBI가 나섰으니…”
“그걸로 될까요?”
덕팔이 은혜를 바라보았다. 은혜에 눈에 비친 덕팔의 눈동자 속에서 알 수 없는 열기가 느껴졌다.
“덕팔씨…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훈이 일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건 알겠는데…”
“영훈이 때문이 아니에요. 은혜씨는 그 참담한 상황을 보지 못해서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았다면 은혜씨도 틀림없이…”
덕팔이 감정적인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덕팔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타인의 시선을 거의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다. 덕팔의 행동은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도를 걷고 있었기에 덕팔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 왔었다. 그런데 덕팔을 만나고 처음으로 덕팔이 자신에게 이해를 구하고 있다.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자신이 없는 것일까?
은혜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덕팔의 손을 잡았다.
“제가 덕팔씨와 그 모습을 함께 보았다면 분명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분노하여 그 사람을 응징하려고 했다면 덕팔씨는 틀림없이 절 말렸을 거예요.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면서요. 그렇지 않나요?”
“…….”
덕팔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덕팔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TV를 보고 있었지만, TV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한동안 TV만을 응시하던 덕팔의 눈이 다시금 은혜로 향했다.
“저는 참 운이 좋은 남자인 모양입니다. 예쁘고 착한데.. 현명하기까지 한 여자가 절 좋아해 주니…”
“흥,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말아요. 덕팔씨가 절 좋아하는 거예요.”
“네네, 아무렴요. 제가 은혜씨를 많이 사랑합니다.”
“어머? 부끄럽고로…”
은혜가 덕팔의 품에 안겨 왔다.
**
재활 운동을 마치고 거실로 돌아가던 영훈이 걸음을 멈추었다. 준민이 영훈의 뒤를 따르다가 영훈의 등에 코를 박곤 뭐라 말을 꺼내려 하자 영훈의 손가락이 입술을 막았다.
“저기 봐요.”
거실 안에서는 덕팔과 은혜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지만, 마이클이라는 말과 응징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흐음..”
준민이 덕팔의 손을 바라보았다.
“신투 장갑이 힘을 잃고 있어..”
“말려야 해요. 저 때문에.. 형이…”
“최 교수님께서 잘 대처해 주실 거다. 최 교수님은 현명한 분이니..”
영훈과 준민이 몸을 돌려 수영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안에서 은혜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이!!”
아무리 심각해도 깨를 볶는 저 남녀에게 웃음을 빼앗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덕팔이 귀국을 선언했다. 준민과 영훈도 덕팔을 따라나서기로 했다.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사장님, 마이클이 잡혔답니다.”
“어디에 있었대요?”
“뉴욕의 유명한 호텔 VIP룸에 있었다고 하네요.”
“네?”
“유명인사의 자제가 그를 그곳에 숨겨 준 모양입니다.”
“호텔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었던 거죠?”
“오히려 그런 유명 호텔 VIP룸이 더 안전할 수도 있죠. 호텔이 공개된 장소라는 심리적 허점도 있고, VIP룸은 대여자 외에는 신분이 철저히 보장되는 장소인지라 들어갈 때 CCTV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 안에서는 완전한 자유지역입니다.”
“흐음.. 멋진 나라네.”
덕팔이 슬쩍 비꼬자 준민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왜 잡혔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러게요. 그렇게 안전한 곳이었는데 왜 잡힌 거랍니까?”
“개 버릇 못 고친다고 그 안에서 안정이 되니 콜걸을 불러 파티를 한 모양입니다.”
“아… 완전 미친놈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자기 딴에는 신경 쓴다고 가면 파티를 했다는데.. 크크 콜걸 중에 한 명이 마이클을 알아본 모양입니다.”
“가면을 썼는데 어떻게?”
“전에 그를 접대한 적이 있어서 그의 신체적 비밀을 알고 있었다네요.”
“신체적 비밀? 궁금한데..”
준민이 덕팔의 귀에 머라 작게 속삭이자 덕팔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진짜요?”
“네.. 그래서 개를 키우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사장님!”
“허얼.. 응징할 생각이 사라지네요.”
덕팔이 고개를 흔들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영훈이 슬며시 준민에게 다가와 귀를 디밀었다.
“말해 봐요.”
준민이 웃으며 영훈의 귀에 뭐라 속삭여 주었다.
“네? 외불알요? 그게 뭐죠?”
“어릴 때 개한테 불알 한쪽을 헌납했단다.”
대답은 방안에서 덕팔이 해주었다.
**
인천국제공항.
3남 1녀가 멋진 선그래스 차림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뉴욕커! 아싸!”
“사장님, 저희는 L.A에 있다고 왔습니다.”
“미국 갔다 왔으면 다 뉴욕커! 예에~~”
덕팔이 어색한 랩을 하자 은혜가 슬쩍 덕팔과 거리를 두었다.
“영훈아, 사장님한테 뭘 가르친 거냐?”
“아뇨. 저는 그냥..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랩은 잘 할 수 있다고…”
“노래를 못하는 게 신경 쓰이긴 했나 봐요. 호호”
은혜가 준민과 영훈 사이에 끼어 덕팔의 뒷담화에 가담하였다.
“랩도… 심각한데요.”
“제 말이요.”
“다 제가 죽일 놈이죠.”
영훈이 자책을 하는 사이 커다란 밴 한 대가 도착했다.
“더 파르야!!!”
오랜만에 보는 배정환이었다. 배정환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인상을 썼다.
“오늘 네가 온다고 기자들에게 연락해 놨는데 이것들은 다 어디 간 거야?”
덕팔의 귀국 환영을 기자들의 프레쉬 세례로 기획한 모양이었다.
“안에.. 아이돌 애들이 기자님들하고 놀고 있던데?”
“누구? 누가 우리 국민배우 더파르의 프래시 샤워를 가져간 거야?”
배정환이 분한지 발을 동동거렸다.
“형님, 오버 그만하시고 가시죠.”
덕팔이 차에 올랐다. 배정환이 운전을 하는 사이 덕팔이 엔터 사무실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었다. 토끼 숙녀의 약진과 대장군 구혜성의 예능 섭렵, 크레이지걸스의 성공적인 데뷔로 엔터 회사의 규모가 부쩍 커졌다고 하였다.
“근데 걸그룹 이름이 크레이지걸스가 뭡니까? 미친X라는 말이잖아요?”
“우리 덕팔이 영어 공부 다시 해야겠다. 크레이지걸스는 광적으로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운 아가씨들이라는 뜻이야.”
“그 짧은 단어에 그 긴 의미가 담겨있어요?”
덕팔의 눈이 가늘어지자 배정환이 씨익 웃었다.
“인생이 원래 다 그런 거다.”
“뭐래요.”
덕팔이 피식거렸다. 그리고.. 잠시 차 안에 침묵이 흘렀다. 덕팔이 작은 목소리로 정환에게 수줍게 고백을 했다.
“여기까지 나와 주셔서 고마워요.”
“자식.. 너랑 나랑 남이냐? 넌 내 동생이야. 형이 그 정도도 못 해주면 가족이 아니지.”
“가족이라.. 좋네요. 형”
덕팔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져갔다.
***
한 달 만에 돌아온 집이었지만 떠날 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덕팔을 맞이해 주었다.
덕팔의 집에는 미리 온 손님들이 있었다.
“어서 오게. 사위”
“아버님, 제가 찾아뵐 텐데 여기까지는 웬일로…”
“자네가 큰일을 해주지 않았나? 귀국 파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준비했네.”
많지 않았지만, 뷔페식으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 애들도 너 보고 싶다고 스케줄 빨리 끝내고 온데..”
배정환이 거들었다.
“민수랑, 아영이도 일 끝나는 대로 오기로 했어. 근데 내 선물은?”
향숙이 덕팔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위! 잠깐 부엌에서 나 좀 봐!”
황예리가 덕팔을 끌고 부엌으로 가려고 하였다. 부엌에서는 닭백숙이 끓고 있었다. 아무래도 덕팔이 없는 사이 닭백숙을 하다가 실패한 모양이었다.
덕팔이 이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가족이구나..”
**
호텔 뷔페에서 공수했다는 음식들이었다. 무척 맛이 있었지만, 예상인원을 크게 초과하는 바람에 음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구 덕팔은 엄동설한 1월에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삼겹살을 구워야 했다.
은혜가 덕팔 옆에 쪼그리고 앉아 고구마를 구우며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훈이 덕팔을 돕겠다며 마당으로 나왔다가 눈치껏 사라졌다.
“소룡이가 왜 안 보이죠? 덕팔씨가 오면 가장 먼저 달려올 줄 알았는데… 아래층 몽달씨도 없어요.”
“다들 바쁩니다. 그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거구요.”
“그렇구나… 여름씨 보고 싶었는데..”
“아마 밤 늦게 만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열심히 삼겹살을 구워내던 덕팔이 하나둘씩 손님들이 가자 뒷정리를 시작했다. 은혜도 최진학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귀국 환영파티라고 하더니 결국 사장님이 다 하셨네요.”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죠. 사실 한자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분들이 아니잖아요?”
“하긴 그렇네요. 정상급 아이돌 그룹 두 팀에, 대세 예능배우, 무엇보다 대한 그룹 총수님 내와 아닙니까?”
“김향숙 변호사님도 쉽게 뵐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돈을 보따리로 싸가지고 가도 상담 한번 하기 힘들다고 해요.”
“그래요? 같은 건물에서 퀭한 눈으로 일을 하는 모습만 봐서 그런지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당해보고도 그런 소리를 해요?”
“크크크 멘탈이 너덜너덜해지긴 하더군요.”
근로계약을 할 때 당해봤던 준민이 웃음을 흘렸다. 대충 청소가 끝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영훈이는 이미 잠자리로 들어갔고 준민은 샤워를 하고 나왔다. 덕팔이 그런 준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잠시 외출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간에요?”
준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준민씨는 그냥 주무십시오. 저만 다녀오겠습니다.”
“어딜 가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덕팔이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작게 속삭였다.
“은밀히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
준민이 덕팔을 불러 세웠다.
“네?”
“신력 말입니다.”
“쉿!”
덕팔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윙크를 해주었다.
“하지만…”
“곧 보충할 겁니다. 그러니 염려 마세요.”
“그런 상태로 계속 소모만 하시면 조만간.. 아시죠?”
“네, 잘 조절하고 있습니다.”
덕팔의 모습이 사라졌다.
**
한적한 시골 마을의 작은 병원.
늦은 새벽인지라 병원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이 병원에 단 3개밖에 없는 병실. 그 병실 안에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어르신!”
병원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던 노인이 힘들게 눈을 떴다.
“…왔느냐?”
“위험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대로 숨이 끊어져도 서운하지 않을 나이인데.. 이 모진 목숨이 또 이어진 모양이야..”
김상필이 힘없는 목소리로 덕팔과 대화를 이어갔다. 김상필의 앙상한 손이 덕팔의 손을 잡았다.
“덕팔아.. 미안하구나.”
“어르신께서 미안하실 일이 아니죠.”
“아니야, 아니야. 돌이켜 보니 다 내 잘못이었다. 이공에게 그런 결혼을 강요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흐음…”
“그를 이해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그는 확실히 비뚤어졌어.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돌이킬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죗값을 받으셔야 할 겁니다.”
“그렇겠지. 내가 말하는 것은 너의 용서다. 손자인 너의 용서!”
“피가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과 저는 가족이 아닙니다.”
“… 그래… 그렇지.”
“못 다한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못 다한 이야기라…”
김상필이 눈을 감더니 아주 오래전 이야기부터 꺼내 놓았다. 대부분 덕팔이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김상필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되더니 마지막으로 이연성을 만났을 때 나눴던 이야기로 흘러갔다.
“저쪽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겠다구요?”
“그렇단다.”
“그래서 그를 이용하는 겁니까? 차라리 저에게 말을 했으면 열어줬을 것인데.. 왜 이런 짓을?”
“이공은 직접 그 문을 열고 싶어 한다.”
“직접요?”
“그래,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 그쪽 세상에서 영생을 얻고자 해.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지. 그러기 위해서 그 천문도룡도와 직접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단다.”
“그분은 신속의 능력자라서 천문을 개방할 수 없다면서요?”
“인신선생이 그 방법을 고안했다고 믿고 있더구나.”
“스승님께서요?”
덕팔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저는 스승님께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 방법을 고안해내셨다면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리 없어요.”
“너는 신안의 능력자, 너에게는 불필요한 방법이니 말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 말에는 덕팔도 동의를 하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흐음.. 그분은 그걸 찾고 계시는군요. 그걸 찾으면 문을 열고 그곳으로 가시는 겁니까?”
“이공이 그 방법을 찾게 해서는 아니 돼. 너도 알고 있지 않니? 천문이 열리면 발생될 재앙을?”
“그건 그분과 잘 협상을 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말이죠. 굳이 그 방법을 여기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응?”
“차라리 저에게 속내를 말해줬다면.. 적당한 컨설팅을 해 줬을 텐데.. 그 양반도 참!!”
덕팔이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두 손으로 김상필의 손을 잡아주었다.
“어르신께서는 몸을 회복하세요. 제가 침을 놓아 드렸으니 회복하시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조만간 모시러 올게요. 당분간 저와 함께 사세요.”
“…덕팔아… 내가 밉지 않으냐?”
“글쎄요. 미워도 일단 잘 드시게 하고 잘 입혀드리고 그렇게 돌보면서 미워하고 싶네요. 그러니 아무 생각 마시고 푸욱 쉬세요.”
덕팔이 스르륵 사라졌다. 김상필이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가로등불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