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the ghost munchkin! RAW novel - Chapter 87
87화
덕팔이 몽달귀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복잡하군. 자네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네. 배움이 끝났다면 세상으로 나가면 그만일 것인데 그 자격증? 인가 때문에 다시 배움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인생이 꼬이고 또 꼬이고 있네요.”
“그래도 너무 풀 죽지는 말게. 인생은 새옹지마의 연속이니! 좋은 일도 있을 것이야. 그나저나 그 아가씨가 자네 마음을 움직였다고?”
“그녀의 눈이 절 닮았거든요. 그 눈을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자네, 사랑은 그런 게 아닐세. 그것은…”
“동정이라구요?”
덕팔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요. 그 사람과 있는 것이 가장 편합니다. 제 분수를 찾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몽달귀신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말했던가?”
덕팔이 다시금 고개 짓을 하자 몽달귀신이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나도 모른다네. 단지 이 나무 아래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 누군가가 나에게 이 나무 아래에 있으라 말을 하는 것 같아. 그래서 수백 년간 이 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있네. 하지만 나는 이 나무를 사랑하지는 않아. 그저 나의 족쇄일 뿐.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덕팔이 몽달귀신을 바라보았다. 몽달귀신도 덕팔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하하하.. 내가 어르신인 게 맞나?”
“모르죠.”
“그럼 그냥 친구를 할까? 수백 년을 살면서 내게 말을 걸어주고 내 곁에 앉아 나와 같은 것을 본 이는 자네뿐이라네. 그 정도면 친구 아닐까?”
“이름이?”
“그냥, 몽달이라 불러주게. 내가 내 이름을 알았다면 이곳에 머물지도 않았겠지?”
“그래, 그래.. 몽달! 자네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
“술이라도 한잔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겠지? 나중에 먼 훗날에 기회가 된다면 술을 한잔하세.”
덕팔이 웃었다.
“안주로 어울리는 음식이 뭘까?”
“글쎄? 나는 김치전이 먹고 싶군.”
“그럼 술은 막걸리로 준비해야겠군.”
“그것도 좋지.”
두 친구가 밝게 웃었다.
***
민경환 교수의 저항이 있었지만, 김정학 교수가 나서니 해결되지 못할 일이 없었다.
통합의학과 교수회의.
민경환이 불참한 가운데 교수 넷이 모여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다.
“김 선배님, 그 아이가 인신 선생의 유지를 받들었다는 말이 사실이길 바랍니다.”
“걱정하지 말게. 틀림없으니.. 단지…”
“뭡니까? 지금에 와서 말을 바꾸시면 그 아이는 절대 졸업을 못 할 겁니다.”
50살은 훌쩍 넘긴 것 같은 교수가 반쯤 빠져버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흥분을 하였다.
“그런 게 아닐세. 단지.. 인신 선생이 40년간 한의학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셨다면 자네들이 그 의미를 고스란히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네.”
“저희가 인신선생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각자 맡은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들입니다. 그런 걱정하지 마시고 그 아이가 가지고 있다는 책이나 주십시오.”
“그래, 그래. 그럼 그 아이는 내 연구생으로 두면 되겠군.”
“…네?”
“자네들은 알아서 잘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아이는 내가 직접 돌보겠네.”
“선배님, 그것은 이것과 다른 문젭니다.”
반백이 된 다른 교수가 나섰다.
“그럼 자네가 연구생으로 받아들이겠나?”
“그거야…”
거세게 반대를 하고 있는 민경환의 눈치가 보였는지 즉답을 못 하고 있었다.
“민 선생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낫지 않겠나?”
“그야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불러 쓰면 될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하면 되겠군요?”
작고 통통한 교수가 반색하였다.
“그렇게 하세.”
“석좌를 받아들이실 생각이십니까?”
“그 아이가 졸업할 때까지는 곁에서 봐줘야 하지 않겠나?”
“저희도 있는데 굳이…”
“그때까지일세. 자네들은 아직 정년이 많이 남아 있으니 이 늙은이가 자네들의 발목을 잡을 일은 없을 것일세.”
“그러시다면이야..”
세 교수가 모두 안도하는 얼굴이 되자 김정학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업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석학들이었지만 자리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리 알고 이만 가보겠네.”
“그럼 오늘 중으로 처리를 하겠습니다. 선배님.”
“고맙구먼. 내일 보세나.”
김정학이 자리를 뜨자 세 교수가 남았다.
“오덕팔이라는 친구가 인신선생의 후예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민 선생이 더 중요한 인물이네.”
“그렇죠.”
“적당히 가르쳐서 졸업을 시키자고! 법대의 요구사항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니 쉽게 한의학계에 발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야.”
“뭐, 인신 선생의 연구 자료만 있다면 그 친구가 필요하겠습니까? 적당히 졸업을 시키고.. 우리는 민 선생을 키워야 합니다.”
세 교수가 뜻이 하나가 되자 만족한 얼굴로 회의실을 나섰다. 통합의학과를 책임지는 정교수들의 작태로 보아 덕팔의 미래가 그다지 평탄해 보이지 않았다.
**
덕팔의 재입학과 전과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에 따라 덕팔의 시간표도 바뀌었다.
“휴우…”
덕팔이 긴 한숨을 내쉬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강의실을 찾았다. 덕팔이 강의실에 나타나자 본과 1학년생들이 술렁거렸다. 벌써 소문이 돌았는지 표정들이 좋지 않았다. 덕팔이 특혜를 받았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덕팔이 빈자리를 찾아 앉으니 얼마 후, 본초학 강의를 할 머리가 반쯤 벗겨진 이연성 교수가 입장하였다.
“오덕팔군?”
“네, 교수님.”
“반갑군.”
이연성 교수가 덕팔과 눈을 한번 맞추곤 학생들을 돌아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부터 이 수업은 대담형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네. 내가 질문하고 오덕팔 군이 대답을 할 것이네. 물론 중간 중간에 여러분들에게도 질문할 것일세. 오덕팔 군보다 대답이 부족하거나 아예 대답을 못 하는 학생은… 다들 알지?”
감점하겠다는 말을 저리 해맑게 웃으며 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이연성 교수는 수업을 매우 부드럽게 시작하고 있었다.
“먼저, 복습의 의미로… 덕팔군. 본초의 유래에 대해서 아는가?”
덕팔이 자리에서 일어나 작게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본초란 중국사람 반초가 기술한 한서에서 ‘본초석지한온’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방약본초’, ‘방술본초’라 하여 의술적인 측면뿐 이니라 방사들에 의해 신선도와 깊은 관련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본초의 개념은 전한 무제 이후 성제에 이르는 100여 년 사이에 정립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의술의 대부분으로 취급되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며 침, 경락과 같은 다양한 분야로 의술이 확장되면서 의약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습니다.
본초는 ‘초근목피’ 즉, 뿌리와 껍질.. 궁극적으로는 천연약물에 대한 전반적인 영역을 의미하며 동양의학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했네, 이 정도는 교과서에도 있는 내용이니 교과서를 참고하도록 하고.. 오늘은 황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지. 황기는 일상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약재이지. 덕팔군, 황기가 무엇이지?”
덕팔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을 시작했다.
“황기는 콩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인 개고황기의 뿌리를 칭하는 말입니다.”
덕팔이 앉으려 하자 이연성 교수가 질문을 이었다.
“황기는 어떻게 약재로 사용하나?”
“황기는 봄과 가을에 캐어 잔뿌리와 근두를 제거하고 건조시켜 사용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강원, 함경남북도의 산지와 고산지대에 자생하는데, 최근에는 전국 각지에서 재배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중국에서는 산서, 흑룡강, 내몽고 지역이 주산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효능은 어떤가?”
“황기는 맛이 달고 따듯해 승발의 기능을 갖추고 그 효능이 비와 폐에 있어 비를 보호하고 기를 북돋는 데 효과가 있어 양기를 승거시키고, 밖으로 기표에 달하므로 보기승양하여 원기의 하함을 승거하게 하고, 보기고표하는 효능으로 지한하며, 보기함으로써 생혈하고, 정기를 고무 시켜 탁독생기하며, 양기를 따듯하게 옮겨 이수소종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덕팔의 입에서 한문이 튀어나오자 학생들의 손이 빨라졌다. 예습해오지 않은 학생들은 멍한 얼굴로 덕팔의 입만 바라볼 뿐이었다. 학생들의 표정을 살핀 덕팔이 웃으며 한마디로 정의하였다.
“폐와 오장의 하나인 지라를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고, 양기를 보충하고 몸속의 독소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잘했네. 그럼 황기는 어떤 병증에 좋은가?”
“비와 폐가 허하여 생기는 소기라언과 식소변당을 치료하고 중기하함으로 인한 구사탈항, 자궁하수, 기가 섭혈하지 못하여 나타나는 붕루변혈, 표허불고로 인한 자한도한, 기혈부족으로 인한 창옹내함과 농성불궤 혹은 궤구불렴 및 기허실운으로 인한 소변불리, 피부수종 등의 병증에 모두 적용됩니다.”
모든 학생이 손을 놓았다. 덕팔이 최대한 말을 천천히 하였지만, 글이 말보다 빠를 수는 없는 법!
그러자 덕팔이 이를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학생들의 표정이 펴졌다. 필기를 포기했던 학생들도 하나둘씩 다시 필기하기 시작했다. 덕팔의 설명이 10분쯤 더 이어지자 학생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이연성 교수가 그런 학생들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후 이연성 교수가 흔치 않은 약재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지만 덕팔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교수 본인조차도 저렇게 달달 외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덕팔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대답을 해주면서도 이해를 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눈높이 설명까지 곁들이고 있었다. 완전한 이해가 없다면 저런 설명은 불가능 한 것이었다. 덕팔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었다.
“덕팔군, 잘했네. 제군들 오늘 덕팔군이 대답한 내용은 모두 제군들이 가지고 있는 교제에 빠짐없이 나와 있는 것들이네. 덕팔군이 여러 제군들을 위해 비교적 풀어서 설명해 주었으니 제군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덕팔군 덕분에 진도가 너무 빨리 나갔군. 오늘은 이쯤에서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네.”
이연성 교수가 강의실을 나가자 학생들이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덕팔의 자리로 모여들었다. 여학생들은 덕팔에게 사인을 요청하였다. 그러면서도 수업을 걱정하고 있었다.
“선배님, 08학번이시라면서요?”
“응”
“법대생이 뭐 하러 이 지옥구덩이로 들어오셨어요. 저 같으면 법대 다니겠다.”
“야, 보면 모르겠냐? 이 선배님, 한의원 집안 자제잖아.”
“아, 그런가? 안타깝네요. 그냥 연기해도 될 것 같은데…”
“형님, 저는 형님 수업 못 따라가겠습니다. 나중에 요약 특강 부탁드려도 될까요?”
남학생이 용기 있게 특강을 요청하자 덕팔이 웃었다.
“내가 특강을 해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말을 할 때마다 내용이 더해지거나 빠지기도 할 거야. 그런데 교수님은 이 수업에서 주고받은 문답에 대해서만 수업내용으로 인정할 것이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글쎄요?”
“녹음기?”
“휴대폰에 녹음기능이 있던데?”
여학생이 치고 나오자 덕팔이 빙그레 웃으며 보충을 하니 학생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휴대폰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