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198)
소청명은 피식 웃었다.
직접 안 봐도 안다. 이미 겪었으니까. 자신이 뿌려 놓은 독을 그렇게 말끔히 태워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던 그 사람이라면 가능하려나?’
자신은 안 만나봤으니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 사람이라도 오늘 만난 그 젊은 공자보다는 못하지 않을까?
소청명은 그런 생각을 하며 똥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갑시다.”
사내가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네. 어서 가세. 솔직히 내가 자네에 대한 얘기는 끝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었네. 내 마음 알지?”
“내가 형님도 아니고 그 마음을 어찌 알겠소? 안에 구렁이가 들었는지 여우가 들었는지.”
“어이구, 그렇게 말하면 섭하지. 나도 머리통이 부서질 뻔했다니까?”
소청명이 피식 웃었다.
“어서 가기나 합시다. 내가 약 함부로 쓰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 말도 안 들어놓고선.”
“절대 함부로 안 썼네. 가끔 그 짓 할 때만 조금씩 썼는데, 그거야 남자라면 누구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번엔 진짜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니까? 그 약 전부 다 쏟아 부었네. 무서워서.”
소청명의 걸음이 멈췄다. 그는 심각하면서도 차가운 눈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그걸 전부 한 사람한테 썼단 말입니까?”
“아니, 그 안에 내 부하들도 있었으니까 한 사람한테는 아니고······ 내 부하들은 해약도 충분히 먹었고······.”
“그걸 견뎌냈단 말입니까? 그 사람은?”
사내가 그제야 표정이 좀 풀려서 과장된 몸짓을 섞어가며 말했다.
“어이구, 견뎌내다 뿐인가? 회오리를 만들어서 그 모든 약을 싹 하늘로 날려 보내더니 그냥 모조리 불꽃으로 만들어 버리더군. 캬! 불꽃 비가 내리는 그 광경을 자네가 꼭 봤어야 하는데.”
소청명의 굳은 표정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소청명에게 사내가 은근한 표정과 목소리로 조용히 물었다.
“한데, 그 약 다 써서 그런데, 조금만 더 얻을 수 있나? 내 요즘 밤일이 좀 시원찮아서······.”
소청명이 차갑게 잘라냈다.
“일 없습니다.”
소청명이 빠르게 걷기 시작하자, 사내가 그 뒤를 얼른 따라붙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내 이번에는 진짜 조심하겠네. 응?”
* * *
소청명은 놀란 눈으로 앞에 있는 두 노인을 바라봤다.
다름 아닌 천추신의와 일침괴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청명은 정중히 인사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영광이라 생각했다.
천추신의나 일침괴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
또한 스승인 의선 아래에 있을 때, 의선이 직접 두 사람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천추신의는 일침괴에 비해 유명세를 얻은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십 년 정도 꾸준히 활동한 의원이었다.
“의선의 제자라고?”
일침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청명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물었다.
“지금은 아닙니다.”
“응?”
“쫓겨났습니다.”
쫓겨났다는 말에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천추신의였다.
천추신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듣기로 의선의 인덕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던데, 너도 어지간 했나보구나. 그런 분이 쫓아낼 정도면.”
소청명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일침괴가 천추신의의 뒤통수를 때렸다.
빡!
“크억!”
“야! 무슨 농담을 그딴 식으로 해?”
소청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엔 정말 깜짝 놀랐다. 설마 저렇게 세게 뒤통수를 때릴 줄은 몰랐다.
“네가 이해해라. 나이만 처먹었지 철이 안 들어서 그래. 뭐, 사정이야 말하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 어쨌든 의선의 제자였던 만큼 실력이 대단하겠구나.”
“보잘 것 없습니다.”
“공자님 말씀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던데?”
공자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소청명의 눈이 반짝였다.
안 그래도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은 했는데, 휘하에 이렇게 뛰어난 의원이 둘이나 있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의선을 제외하면 이 둘이 천하제일의 아닌가.
“대체 공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두 분께서 몸을 의탁하실 정도면 보통 분은 아닌 듯한데······.”
천추신의가 뒤통수를 문지르며 히죽 웃었다.
“너도 그거 아니까 여기로 온 거 아니야?”
일침괴가 천추신의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몸을 의탁한 것이 아니야. 공자님을 모시는 거지. 너도 입장을 똑바로 정해라.”
소청명은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일침괴가 말이다.
“그나저나 궁금하긴 하구나. 의선이 그렇게 대단한지 말이야.”
의선과 자신의 실력을 비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앞에 있으니 없던 호승심도 생겨날 판이었다.
일침괴의 번득이는 눈빛에 소청명이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형님, 그러다 애 심장 떨어지겠소. 야야, 긴장 풀어라. 그냥 의술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나 좀 해보자는 거야. 겸사겸사 네 옛 스승이 얼마나 대단한지 썰도 좀 풀어주고.”
천추신의가 얼른 소청명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부터 했다.
그는 팔로 목을 거의 휘감듯이 걸치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얼른 들어가자. 밖에 오래 있으면 몸 상한다.”
천추신의가 소청명을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해서 안으로 데려갔다.
“커흠.”
일침괴는 그걸 보며 멋쩍은 헛기침을 흘리고는 슬그머니 따라갔다.
* * *
“공자님, 혁련휘가 남창에 들어왔습니다.”
화옥의 보고에 벽태산의 눈이 한 차례 번득였다.
화옥은 벽태산을 바라보며 보고를 이어갔다.
“이미 한 차례 황보세가와 충돌했습니다.”
“그럼 나도 슬슬 움직여야겠군.”
혁련휘의 목적은 남창에 있던 자신의 세력을 모아서 남창 밖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그러니 늑장을 부리면 자칫 혁련휘가 도망칠 수도 있다.
그 전에 잡아야 한다.
혁련휘는 무명에 대한 정보를 정말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예전 혁련균은 혼백이 피로 물들어 있어서 제대로 된 정보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유도 대충 알고 있으니 이번엔 확실히 그놈의 영력을 쥐어짠 다음에 혼백을 구울 생각이었다.
아마 제법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알아낼 수 있으리라.
“위치는 파악했느냐?”
“예. 하지만 잠시도 한 자리에 머무는 일이 없는지라 중간에 감시가 끊기는 순간이 잦습니다.”
혁련휘 정도 되는 고수를 지속적으로 쫓아다니며 감시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춘 자가 나선다면 모를까, 하오문도나 비천단원 중에는 혁련휘를 감당할 만한 실력자가 없었다.
그의 날카로운 감각을 속여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있겠는가.
아무튼 그렇기에 혁련휘의 감시는 제자리를 지키는 하오문도나 비천단원이 꾸준히 자신들의 근처를 확인하고, 혁련휘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위치를 파악하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그조차 실력이 떨어지면 혁련휘의 위치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
그나마 암영보를 되찾아 실력이 껑충 뛰었기에 하오문이 감당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으리라.
“현재 혁련휘가 데려온 고수들이 무명의 무사들을 규합하고, 혁련휘는 직접 나서서 황보세가의 조직력을 망가뜨리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 듯합니다.”
“남창을 벗어나려면 크게 한 번 싸울 수밖에 없겠군.”
“예. 양측 모두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아무튼 상황을 보면 당장 급하게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럼 새로 찾은 근거지부터 털어야겠군.”
벽태산의 말에 화옥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위치는 이미 파악했고, 감시자까지 붙여두었다.
그들은 지금 몸을 한껏 움츠린 채였다.
황보세가가 나서서 혁련휘의 조직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자신들을 건드리거나 조사하는 자들이 딱히 없으니 납작 엎드려 버티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가자.”
벽태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화옥이 얼른 따라가며 길을 안내할 하오문도를 불렀다.
두 사람은 곧장 무명의 근거지 중 한 곳으로 향했다.
이동 속도는 정말 빨랐다.
하오문도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냈고, 벽태산과 화옥은 어렵지 않게 그 뒤를 따라갔다.
“저곳입니다.”
하오문도가 가리킨 곳을 보니, 제법 그럴듯한 건물이 하나 서 있었다.
약간 규모가 작긴 했지만, 그리 낡지도 않았고, 관리도 잘 되어 있었다.
“인원은 열다섯입니다.”
하오문도의 말에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 움직이려는 찰나, 저 멀리서 약간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오문도들이네요.”
화옥이 그쪽을 보며 말했다.
그녀는 하오문도들이 보내온 신호를 확인하고 다급히 벽태산에게 말했다.
“다른 쪽 근거지를 향해 황보세가 무사들이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으로도 같은 수의 무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에 대한 정보가 황보세가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벽태산은 담담히 말했다.
“머리만 잡고 간다.”
화옥과 하오문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벽태산이 몸을 훌쩍 띄웠다.
이미 저 건물 안은 벽태산의 감각 안에 들어와 있었다.
저 중에서 누가 가장 강한지, 또 누가 가장 지위가 높은지 정도는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삼 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벽태산은 한 번 뛰어서 바로 삼 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 뛰어내렸다.
끝
황보세가의 무사들이 우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 있는 삼 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다.
그곳이 무명의 소규모 근거지 중 하나라는 정보를 입수해서 부랴부랴 무사들을 보낸 것이다.
정보에 따르면 적의 수는 열다섯 명이었다.
황보세가에서는 서른 명의 무사를 보냈다. 최정예 무사는 아니었지만, 상당한 실력이었기에 열다섯 명의 적을 물리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막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황보세가 무사들의 표정에 살짝 의아함이 깃들었다.
왠지 분위기가 어수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적을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일 조는 정문으로 이 조는 이 층 창문을 통해 진입한다. 삼 조는 밖에서 대기하다가 도망치는 놈을 처리한다. 자, 서둘러!”
인솔자의 지시에 황보세가 무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일부는 입구를 통해 우르르 들어가고, 일부는 이 층으로 뛰어올라 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다.
싸움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무명의 무사들은 상당한 실력이었다.
다만 다들 전력을 다해 적을 물리치려 하지 않고 일부가 몸을 빼다가 밖에서 대기 중이던 황보세가 무사들과 얽혔다.
그렇게 전력이 분산되고 나니, 안 그래도 수가 모자랐는데, 더더욱 싸움이 어려워졌다.
그렇게 무명의 근거지 하나가 사라졌다.
그리고 똑같은 싸움이 멀리 떨어진 비슷한 건물에서 벌어졌고, 결과도 비슷하게 끝났다.
싸움이 끝나자, 인솔자가 상황을 확인했다.
“몇이나 당했나?”
“일곱이 죽고 다섯이 다쳤습니다.”
인솔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적의 저항이 너무 거세서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 컸다.
안 그래도 무명과의 싸움에서 계속 피해가 누적되는 바람에 이러다가 세가의 위상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여기에서까지 이렇게 큰 피해를 입었으니 상당히 심란했다.
“적은?”
“열하나를 죽였고, 셋을 사로잡았습니다.”
“셋?”
인솔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하는 무사를 바라봤다.
열하나에 셋을 더하면 열넷 아닌가. 분명히 열다섯 명의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도망친 자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오기 전에 한 놈이 몸을 뺀 모양입니다.”
인솔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골치 아프게 되었군. 살아남은 놈들을 심문해서 도망친 놈도 잡아야겠어.”
물론 그걸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세가의 어르신들이 될 것이다.
인솔자는 세가의 어르신들 역시 같은 선택을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한 곳의 근거지에서도 지금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 * *
벽태산은 두 군데 근거지에서 각각 한 놈씩 잡아왔다.
두 군데 전부 열다섯 명씩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하기도 하고 책임자임이 분명한 놈을 잡아온 것이다.
하오문도들이 벽태산이 잡은 놈들을 잘 포장해서 객잔으로 옮겼기에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
객잔 별채의 전각 꼭대기 층에 잡힌 두 놈이 온몸을 꽁꽁 묶인 채 널브러져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만나 정말 크게 놀랐다.
서로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창에서 오다가다 자주 만나던 사이였다.
다만, 둘 다 서로가 무명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만나 그걸 알게 되었고, 새삼 무명이 얼마나 대단하고 지독한 곳인지 깨달아 무서워졌다.
그리고 그런 자신들을 이렇게 간단히 잡아온 벽태산이 두려워졌다.
아무튼 두 사람이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벽태산은 다시 객잔을 나서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심문은 일단 하오문에서 일 차적으로 맡기로 했다.
언제나 벽태산은 가장 마지막이었다.
어차피 혼백을 뽑아 태워 버리면 더 이상 심문 같은 걸 할 수 없게 되니까.
벽태산은 느긋한 걸음으로 객잔을 나섰다. 벽태산 바로 옆에 화옥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화옥은 그렇게 말하며 한 발 앞장섰다.
벽태산을 혁련휘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근거지 두 군데를 찾아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곳에 무사들을 보내는 바람에 전체적인 천라지망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황보세가가 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고? 예전이랑은 너무 다른데?”
벽태산의 기억에 있는 황보세가는 주먹을 앞세우긴 해도 겉으로 보는 것처럼 단순 무식하지만은 않았다.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렇게 보일 정도로 뒤를 보지 않고 밀어 붙이지만, 그 전에는 지나칠 정도로 따지고 또 따져서 계획을 세운다.
“그 정도 구멍은 있어도 상관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상관없는 구멍이 어디 있어? 수뇌부가 한 번 싹 물갈이 되었다더니 변했군.”
그 수뇌부를 그렇게 물갈이 하게 만든 원인을 천마가 제공했다.
황보세가 수뇌부의 절반 이상이 천마에게 죽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