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onicles of the Demon Faction RAW novel - Chapter 844
외전 194화. 자줏빛 벼락 속 (4)
끼이익.
뇌옥 문이 열리고 찌꺼기도 별로 없는 국과 다 식은 밥이 들어왔다.
도헌이 고개를 들었다.
형법당 일 조장 전오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간수가 밥 주는 걸 까먹었다고 하더군요. 드십시오.”
“……아는 얼굴이군.”
“벌써 제 얼굴 잊으셨습니까?”
“이 조장이었나, 삼 조장이었나?”
전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투마장에서 투마 하나를 빼돌린 일로 소환장을 들고 갔을 때도 도헌의 반응은 똑같았다. 그때는 광마각이었고 지금은 형법당의 뇌옥이라는 사실이 다를 뿐.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전오는 이내 미소를 되찾았다.
“내가 몇 조를 맡고 있는지 죄인께서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 배고플 텐데 밥이나 드십시오.”
“죄인에게도 존대하다니 예의가 엄청나게 바른 사람이었군.”
“그래도 광마대주셨던 분인데 나름의 예의는 차려야지요.”
대주셨던 분.
심상치 않은 의미를 지닌 말이었다.
“앞으로는 제가 하루에 한 번씩 밥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간수들이 멍청해서 자꾸 까먹더라고요. 죄인이라도 밥은 먹여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냄새가 심하군.”
“원래 뇌옥이 다 그렇지요. 중죄를 지은 자들을 가두는 곳이 청결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밥이라도 주는 걸 다행이라고…….”
“자네 입에서 말이야.”
“…….”
“이빨 관리 잘하게. 늙어서 이 다 빠지면 죽 먹기도 힘들다더군.”
무시무시한 눈으로 도헌을 노려보던 전오가 히죽 웃으며 쪼그려 앉았다.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제가 너무 생각이 짧았습니다.”
짐짓 공손하게 말한 그가 다 식은 밥을 국에 말았다. 그러곤 맨손으로 잔뜩 주물러 섞었다.
“퉤!”
죽처럼 된 밥에 침까지 뱉은 뒤, 도헌의 발치로 그릇을 밀었다.
“이 상할 나이에 식은 밥 씹어 먹다가 체하면 무슨 창피입니까? 잘 불려서 드십시오.”
다분한 악의에도 도헌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유한 눈으로 전오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전오는 도헌의 저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정말 기분 나빴다.
형법당원이 행차하면 누구라도 덜덜 떤다. 그게 당연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도헌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혐오하거나 질색했다면 화가 덜 났을지 모른다. 도헌은 형법당원도 다른 부대원들 보듯 봤다.
그게 전오의 신경을 꾸준히 건드렸다. 그런 작자가 형법당주 휘하로 들어왔으니, 정말이지 이 몇 달간 없던 위장병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몇 년 묵은 체증이 싹 가라앉는군.’
전오가 발로 그릇을 쳤다. 그릇에 섞인 밥알과 국물, 걸쭉한 침이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우리 당주님께선 말입니다, 내 사람은 어떻게든 챙기려 들지만 눈 밖에 나면 자비가 없는 분입니다.”
“…….”
“뭔 짓을 하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당신 인생도 끝났다는 말이지요.”
“재미있군.”
도헌은 끝까지 담담했다.
“공무외가 당주로 들어온 건 얼마 되지 않았어. 그런 사람을 잘도 우리 당주님이라고 하는군.”
“월급 주는 상관에게 뭘 더 바라겠습니까? 따박따박 월급만 제때 줘도 우리 같은 놈들한테는 모실 맛이 나는 주인입니다.”
“편하게 살아서 좋겠군.”
전오의 입술이 씰룩였다.
“이봐, 도헌.”
더는 존대가 나가지 않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법이야. 너는 이제 끝났어.”
“죽어 봤나?”
“뭐?”
“죽어 보지도 않았는데 이승이 나은 줄 어떻게 아나? 나중에 죽어 보고 나서 다시 말하게.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대충 지껄일 줄이나 아는 놈이 인생을 논하는 거 아니야.”
전오의 얼굴에 살기가 일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철창을 닫았다.
“넌 죽어도 그냥은 못 죽을 거다.”
저주인지 다짐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 전오가 사라졌다.
도헌은 바닥에 흩뿌려진 밥알을 내려다보았다.
이틀 동안 식사를 못 했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생각할 게 너무 많았다.
‘그 자리에 오지도 않았고 나를 뇌옥에 가두기까지 했다…….’
답은 하나다.
‘줄을 갈아탔군.’
공무외는 직접 백골신마에게 찾아가 자소대마의 비급까지 줘 가며 꼬리를 말았다.
뼛속까지 썩었지만,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저지르는 배신이 본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끌어낸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배신했다는 건 백골신마급 고위 인사가 적극적으로 공무외를 꼬셨다는 뜻이었다. 그 과정에서 높은 직책과 입이 떡 벌어지는 뇌물까지 받았을 것이다.
‘내가 서필 부각주에게 밀마조장 자리를 제안받았다는 소리도 들었을 거다.’
그런 상황 하나하나가 모여 공무외의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도헌은 공무외에게 실망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백골 어르신이 어떻게 나오느냐가 문제다. 자칫 잘못하면 이 일에 연관되지 않은 사람도 죽을 수 있어.’
도헌이 벽에 머리를 기댔다.
이천상이 떠올랐다.
‘나는 대가를 바라고 너를 도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연은 소중하지만, 언제나처럼 냉정하게 사태를 주시해라. 나 하나 구하자고 무리하다간 안 죽어도 될 사람이 죽게 될 거다.’
그는 이천상이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다.
실제로 그럴 확률이 높았다. 몸 상태도 좋지 않거니와 백골신마 역시 정치를 아는 사람이라, 무리하게 움직였다가 거센 후폭풍이 터지면 큰일이 난다는 걸 알 것이다.
진심으로, 도헌은 이천상이 움직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저 이천상이 승승장구하여, 훗날 비참하게 추락한 신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길 기원했다.
* * *
공무외의 눈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따뜻한 차를 마시던 이천상이 담담히 말했다.
“도 대주를 석방하라 했소.”
“이 미친놈이!”
공무외가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처음 이천상이 만나자고 왔을 때, 그는 무시로 일관했다.
솔직히 불러다 놓고 욕이란 욕은 다 쏟아 낸 후 쫓아 버릴 생각이었다. 감히 외전의 각주 나부랭이가 형법당의 수장을 보자고 찾아오다니, 예의를 다해 청해도 무시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연락이 왔을 때, 그는 이천상을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감히 내 앞에서 죄인을 석방하라 명령해?”
“서신 안 받았소?”
“……!”
“그리고 이건 명령이 아니오. 협박이지.”
“이 새끼가 정말!”
“공무외.”
콰득.
이천상의 손에 잡힌 찻잔이 조각나 부서졌다.
손이 피범벅이 되었는데도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시간 끌지 말고, 다 죽는 걸 원한다면 지금 당장 그러자고 해라. 어차피 반 시진 안에 내가 나가지 않으면 환희원주가 일을 진행할 거다.”
“이익!”
공무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야말로 통탄할 일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이런 외전의 말단 무사 놈이 자신 앞에서 반말에 협박까지 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천상은 평소처럼 무심한 얼굴로, 평소와 다른 불같은 어조로 쏟아부었다.
“배신은 자유지만 결과는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너는 이번 한 번의 행동으로 많은 것을 얻었고, 동시에 많은 사람의 표적이 되었다.”
“닥쳐라!”
“그중 한 사람은 마왕 중에서도 수좌를 다툰다는 백골신마다.”
공무외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백골신마는 바보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똑똑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쉬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개도 주인을 보고 패라고 했다. 공무외가 잡은 줄은 백골신마 못지않은, 어떤 의미론 그 이상의 줄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백골신마가 앞뒤 안 가리고 죽이려 든다면, 천하의 공무외라도 죽은 목숨이다. 같은 마왕이라도 백골신마의 무공을 감당할 만한 사람은 셋을 넘지 않는다.
“백골이 나를 노릴 수 있을 것 같으냐?”
“확인해 보고 싶다면 직접 찾아가서 물어봐. 내가 너에게 해 줄 말은 없다.”
공무외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는 처음부터 이천상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이천상은 도헌이 아끼는 개일 뿐이었다. 도헌을 위해 도움을 주었을 뿐, 이천상의 냉정하고 무심한 태도는 공무외에게도 껄끄러웠다.
하지만 그리 비천하게 여겼던 놈이 직접 찾아와 덤비니, 그야말로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공무외는 분노에 말까지 더듬었다.
“내, 내가 너를 뇌옥에 처박지 않은 이유를 아느냐?”
도헌이 내란죄로 이어질 수 있는 명목으로 갇혔다.
당연히 그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천상도 소환해야 했다. 뇌옥에 가두지는 못하더라도 진즉 소환장을 발부하여 데리고 와야만 했다.
이천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거 아닌가? 나까지 뇌옥에 처박는다면 넌 진짜로 백골신마 장로님께 죽는다.”
“닥쳐라! 내가 널 소환하지 않은 이유는 도헌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그 배려를 이따위로 망쳐 놔? 감히 너 따위가!”
“그래서 어쩔 텐가.”
“뭐, 뭐라고?!”
“어쩔 거냐고 물었다.”
이천상이 바닥을 뒹구는 찻잔 조각을 발끝으로 툭툭 걷어찼다.
“나는 협박을 하러 왔고 대답을 들으러 왔다. 빈대처럼 여기저기 붙어 다니는 벌레의 악다구니 따위는 들을 생각이 없어.”
“……!!”
“협박은 다 했다. 그러니 대답만 해라. 석방할 거냐, 아니면 다 죽을 거냐.”
공무외의 눈에서 살기를 넘은 광기가 일었다.
“밖에 있느냐!”
문을 열고 당원 하나가 들어왔다.
“지금 당장 도헌을 처형장으로 옮겨라! 거열형(車裂刑)으로 다스릴 것이다!”
느닷없는 명령에 당원조차 당황한 것 같았다.
“거, 거열형 말씀입니까?”
“이 비천한 놈이 어디서 감히 되물어! 죽고 싶은 것이냐? 당장 움직이지 못해!”
“죄, 죄송합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때였다.
이천상이 소매 안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들었다.
“잠깐!”
본능적으로 위화감을 느낀 공무외가 당원을 막았다.
이천상이 구슬을 매만졌다.
“결정됐군. 한번 다 죽어 보도록 하지.”
“……설마 그거, 화탄이나 독탄 따위는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지.”
“이제는 네가 날 우롱하는구나!”
“많이 녹슬었군.”
“뭐?”
“허구헌 날 업무 보랴, 어디 가서 아부하랴, 돈 세랴 바쁘기도 했을 것이다. 익힌 무공은 일류인데 관절이며 내공이며 다 녹이 슬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겠어.”
“……!”
“네가 당원들을 호출해도 십 합 안에 내 손에 사로잡힌다. 지금 당장 해볼까?”
“이, 이놈!”
“이 구슬이 터지면 추종향이 퍼진다. 이 향을 ‘누군가’가 맡는 순간 내전이 제법 시끄러워질 것이다. 너는 십중팔구 목이 달아날 것이다.”
“……!!”
“네가 배신을 한 것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더 높은 자리를 위해서야.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외전의 말단 무사에게 목숨줄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이천상이 땅에 구슬을 내려놓고 발로 슬쩍 밟았다.
힘을 조금만 주면 구슬이 부서지며 추종향이 퍼질 것이다.
“목숨 걸고 자존심을 챙겨 보겠나? 아니면 치욕적이라도 패배를 인정한 후 훗날을 도모해 보겠나?”
“이이익!”
부들부들 떠는 공무외.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그를 보던 이천상이 돌연 버럭 외쳤다.
“빨리 결정해!!”
공무외가 흠칫했다.
터져 나오는 일갈에 실린 무시무시한 분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와중에도 그는 이천상이 보인 분노에 깜짝 놀랐다.
진짜로 목숨을 건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지 못한다.
공무외는 망설였다.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그 꼴을 가만히 보던 이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결정을 내려 주지.”
이천상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공무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깐!”
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