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Fantasy Genius Dem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3
23화
흑마법사
다행인지, 불행인지.
레이나의 혼란은 크지 않았다.
고민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이나의 선택지가 그 짧은 시간 안에 하나는 사라지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단 의미였다.
케겍! 켁!
뀌이익-!
끼긱! 끽!
“갑자기 이놈들 뭐야!”
“마, 마수들이……!”
항상 앞서 공격을 막아주던 전위가 사라지자 후위에 금방 문제가 생겼다.
보통의 마수와 달리 간교한 그림자난쟁이를 위시한 마수들이 후위를 덮친 것이다.
마수가 아니다.
마수‘들’이다.
첫 스타트를 끊은 그림자난쟁이의 암습이야 몇 번이고 겪어봤던 터라 손쉽게 막아낼 수 있었지만, 몰려오는 마수들은 전혀 처음 보는 생소한 그림이었던 것이다.
결국,
“레이나!”
그들은 레이나를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고, 레이나는 가온을 추격하는 걸 멈추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제까짓 놈들이 감히!”
쟈올이 분노를 터트리며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손끝에 붙은 불씨는 곧 화살 형태를 갖추었고 마수를 향해 쏘아졌다.
물총개미가 턱을 딱딱 부딪치며 물을 쏘아냈다.
물과 불, 상극의 대결.
승리한 건 불이었다.
마주했던 물은 위력을 잃고 무기력하게 증발해 사라졌고, 불화살은 물총개미의 외피를 뚫고 몸에 꽂혔다.
치이익-
강렬한 화상을 동반한 관통상은 놈의 내부를 한바탕 거하게 익혀버렸다.
“끼익-.”
짧은 단말마를 뱉으며 고꾸라지는 물총개미.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마수가 놈 하나뿐이 아니었다.
물총개미만 해도 족히 서넛은 됐고, 그 외 다른 녀석들까지 모두 합하면 얼핏 세도 열다섯 이상.
쟈올의 마법과 아베르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처리할 수 있는 수는 애석하게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정신없는 상황을 잘 파고드는 게 바로 그림자난쟁이였고.
전투 시작과 함께 패퇴했던 녀석은 어느새 그림자를 타고 이동해 아베르의 발밑에 도달해 있었다.
놈은 언제든 틈이 보이면 바로 몸을 일으킬 심산으로 일렁거렸다.
하지만 놈의 계획은 채 시도해보기도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여지껏 널 잡지 못해서 놔둔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쟈올이 코웃음 치며 발광석을 발동시켜 도주각을 좁혔고,
“「윈드 커터 Wind cutter」”
어느새 다가온 레이나가 쏘아낸 바람 마법이 놈의 몸을 양단해버렸다.
놈이 기생한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고통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이그니션 Ignition」”
마무리로 아베르의 발화마법까지.
그림자난쟁이를 순식간에 처치한 그들은 곧장 눈길을 다른 마수들에게로 돌렸다.
이들을 지독히도 괴롭혔던 그림자난쟁이의 결말이라 보기엔 지나치게 허무한 엔딩이었다.
맞다. 애초에 이들에게 그림자난쟁이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존재였던 거다.
“에오-”
“켁! 케켁!”
“끼긱! 끽!”
각종 마수의 울음소리와 함께 온갖 공격이 쏟아졌다.
불덩이, 물총, 돌멩이 그리고 어느새 뒤를 점하고 솟아오른 벼락두더지의 번개까지.
놈들의 공격은 뭐랄까,
지나치게 조직적이었다.
마수들이란 본능에 이끌려 맹렬한 공격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존재였으므로.
“젠장. 이놈들 뭐야.”
마수들을 마주한 셋에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건데?”
“…….”
“이거 뭐냐고! 아베르!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무리 닦달해도 알지 못하는 건 알지 못하는 거다.
상황은 점점 더 여의치 않게 흘러갔다.
단일 개체를 처리할 땐 그리 어렵지 않던 녀석들이 조직적으로 행동하고 나서는 도통 쉽게 죽어주질 않았으니까.
불화살을 쏘면 남은 물총개미 모두가 불화살을 향해 물을 쏴 무위로 돌린다.
막무가내로 달려들어야 할 놈들이 철저히 다른 마수들의 지원 아래에서만 다가왔다.
레이나가 틈을 타 애써 파고들어도 곧장 지원사격이 쏟아졌고, 결국 마땅히 힘을 쓰기도 전에 물러서야만 했다.
기승을 부리는 벼락두더지의 기습에 전열이 자꾸만 무너져내렸다.
“젠장! 이 잡것들이 정말! 레이나, 아베르! 시간 좀 벌어줘!”
결국 쟈올은 제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하여 분노를 터트렸고,
“이 상황에 캐스팅을 하겠단 말이야? 안돼.”
아베르는 쟈올을 말렸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쟈올은 입으로는 주문을, 손으로는 수인을 맺으며 마나를 주무르기 시작했으니까.
“아니, 대체……!”
결국 아베르는 밀려드는 공격을 막아내느라 입을 앙다물어야만 했다.
셋이서 나누어 막던 공격이 둘에게 과중된 상황.
겨우겨우 유지하던 일말의 여유도 증발해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밀릴 듯 밀리지 않던 아슬아슬한 전황은 쟈올의 외침으로 단숨에 반전되었다.
“아베르! 레이나!”
앞을 막고 서 사력을 다해 쟈올을 지키던 두 사람이 돌연 뒤로 물러났다.
“「스프레드 플레임 Spread flame」”
쟈올은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던 두 손 사이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던 불꽃을 앞으로 밀어냈다.
푸화악───!
응축됐던 불꽃이 발산됐다.
술사에 의해 한정된 공간 안에 갇혀있던 화염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목표에 도달한 불의 파도는 마수들을 집어삼켰다.
──────!
──────!!
마수들의 비명에 숲이 진동한다.
3레벨의 마법.
다만 3레벨의 마법이라고 보기엔 그 위력이 강력했다.
“됐어!”
이 한 수를 위해 과하게 마나를 끌어 쓴 쟈올이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환호했다.
열풍에 휘감겨 온 살 익는 냄새가 성공을 확신하게 했다.
동원된 마나를 태우고 사라지기 시작하는 화염.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광경엔 족히 절반은 돼 보이는 마수가 시꺼먼 숱이 되어 있었다.
“얼른 공격해! 나머지 녀석들부터 모조리 죽여버……컥!!”
기쁨에 겨워 환호하던 쟈올이 돌연 나자빠졌다.
“끄아아아악!”
쟈올은 단숨에 온몸으로 퍼진 격통에 눈을 까뒤집고 바들바들 떨어댔다.
“쟈올!”
놀란 아베르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야 알게 됐다.
쟈올을 무너트린 게 무엇인지를.
“마, 마기?!”
경악한 아베르의 새된 비명에 전방을 경계하던 레이나조차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구멍이 뻥 뚫린 오른쪽 가슴에선 펑펑 피가 솟아오른다.
동시에 새어 나오듯 흐르는 검은 연기.
마기가 분명했다.
“으음.”
동료의 상태를 확인하곤 다시 고개를 전방으로 돌리는 그녀의 입술에선 짙은 침음성이 흘렀다.
쟈올의 분전으로 단번에 많은 마수를 죽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절반은 남아있었다.
거기에 갑자기 날아든 흑마법.
‘이곳에 흑마법사가 있다.’
게다가 아무리 큰 마법을 써 마나 공백 상태였다고 하지만, 일격에 쟈올을 쓰러트릴 수 있었던 흑마법의 위력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커다란 관통상, 지속적인 고통 유발, 흩날리는 환부의 마기.’
“페인풀 스피어…….”
페인풀 스피어 Painful spear.
강력한 관통 효과와 고통 유발 저주를 담은 4레벨의 흑마법.
“맞아. 페인풀 스피어가 맞는 거 같아.”
쟈올의 상처를 확인하던 아베르가 레이나의 판단에 동의했다.
마수 너머 그 어딘가에 흑마법사가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다.
경계심이 극도로 치솟았다.
숲을 응시해 보지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레이나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관찰만으로 찾을 수 있을 거였다면, 애초에 모습을 드러내도 드러냈을 테니 말이다.
대신 빠르게 판단을 마쳤다.
“아베르.”
잘 입을 열지 않던 레이나가 입을 열었다.
“말해.”
“응급조치는? 끝났나?”
“포션은 먹였고, 지혈제를 쓰긴 했는데……환부가 너무 커서 지혈이 젠장, 잘 안 돼. 시간이 걸릴 거야.”
레이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들쳐 메라.”
“알았어.”
신체적인 여건은 아베르보다 레이나가 더 낫다.
하지만 아베르는 두말하지 않고 레이나의 결정에 따랐다. 쟈올을 업곤 천으로 칭칭 감아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했다.
힐끔. 아베르가 시선을 돌려 전방을 살폈다.
쟈올이 피워 올린 붉은 빛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가지.”
아베르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레이나가 아베르의 뒤를 점하고 무방비 상태의 쟈올을 보호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은 짧았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스프레드 플레임이 조금이나마 남아 마수의 접근을 막아줄 때 이동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사방이 트인 이곳에선 둘러싸이는 순간 끝장일 수밖에 없다.
엄폐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공간,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들 앞엔 그런 공간이 존재했고.
끼긱!
케겍!
뀌이익!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흉험하게 뒤통수를 긁어댔다.
아베르와 레이나는 서둘러 저택 안으로 몸을 숨겼다.
원래 목적지였던 저택에 마침내 그들은 발을 딛었다.
물론 이런 식의 도착을 바란 건 아니었겠지만.
저택 안으로 들어온 레이나는 곧장 쟈올의 상처를 살폈다.
“오른쪽 가슴…….”
“불행 중 다행이지.”
말끝을 흐리며 탄식하는 레이나에게 아베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왼쪽 가슴이었다면 이렇게 버티지도 못했을 테니.”
“심장이 터지면 죽는 건 누구나 똑같으니까.”
“그나마 거의 어깨 바로 아래쪽이라 주요 장기가 상하지 않았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군.”
“흑마법사가 숨어있을 줄이야.”
아베르가 쟈올의 상처에 추가 처치를 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통제를 받고 있을 거라던 네 말이 맞았어.”
레이나가 문틈 사이로 밖을 살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뭐?”
“숲을 헤맬 때 했던 말.”
“아!”
쟈올에 정신이 팔려있던 아베르는 뒤늦게 기억을 떠올렸다.
‘그림자난쟁이가 하는 짓을 생각해봐. 전투가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도망가잖아. 마수가 호전성을 이렇게까지 통제할 수 있다고?’
‘한두 번도 아니고 도주 타이밍이 너무 딱딱 맞잖아. 뭔가가 놈을 조종하고 있는 거 같은 느낌이야.’
“마수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마치 군대 같았지.”
“……설마?”
레이나의 말을 듣던 아베르의 자그맣던 눈이 커졌다.
레이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배종……이라고?”
“그래.”
“왜? 지배종은 마수 중에서도 5급 이상에서, 그것도 드물게 나타나는 특수 개체라고.”
아베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여긴 3급 마수의 영역이야. 놈이 나타날 곳이 아니야.”
“나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 물어봤자 대답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아닐 가능성은?”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어.”
“…….”
“…….”
참담한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레이나도, 그리고 아베르도 생존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활로를 찾기 위해서 맹렬하게 두뇌를 회전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지배종이 아닐 수도 있어.”
고민 끝에 아베르가 입을 열었다.
“근거는?”
“지배종이라면 우리가 마주했던 마수 무리가 단일 개체로만 이루어져 있었겠지. 지금처럼 난잡하게 섞여 있었던 게 아니라.”
말을 하면서 판단에 확신이 섰는지 다소 느릿하던 아베르의 말이 점차 빨라졌다.
“너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을걸? 퀸, 그리고 식스테일.”
“물총개미의 군집체를 통솔하는 퀸.”
“불꼬리여우를 다스리는 식스테일.”
아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을 떠올린 레이나의 말을 이어받았다.
“군대를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는 퀸과 식스테일이야. 만약 그들이 이곳에 존재한다면 고작 이 정도만 동원했을 리 없잖아.”
“그럼 저 마수들은 뭐지?”
“그거야 알 수 없지. 중요한 건 우리의 상황이 영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란 거지.”
“그렇다고 희망적인 것도 아니지.”
“…….”
“…….”
돌고 돌아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나름의 계획을 세워봐도 그럴수록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쟈올의 빈자리가 치명적이라 암담하기만 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저택의 더 깊숙한 곳.
“도와줄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크 판타지의 천재 마수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