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7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77화
밤 11시경.
“…무사히 구출됐고, 하루 정도 입원할 예정이다.”
-아…… 다행이다.
1인 병실 앞 고요하고 어두운 복도, 나는 목소리를 낮춰서 통화를 했다.
-넌 몸 괜찮고?
통화의 상대방은 큰세진이다.
보통 이런 류의 보고는 리더인 류청우에게 들어가는 게 맞으나, 부재중 전화가 이 녀석에게 온 이유도 알았다.
‘…수습 중이겠지.’
류청우는 지금도 회사와 대화 중인 것이다.
아직도 내게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거의 확실했다.
그럴 만도 했다. …멤버가 갑자기 콘서트에서 탈주했으니까.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형, 콘서트…….
내게 콘서트에 대해서 되묻던 큰달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망연자실한 얼굴로 의사의 검진을 받고 있다.
본래라면 적당히 그럴싸한 이유를 들먹이며 별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일부러 대답하지 않은 게 아니다.
대답할 것이 없었다.
…나도 확인해보지 못했으니까.
스마트폰은 손에 들려 있었으나 인터넷 페이지로 연결되진 못했다.
지금까지도.
“……그래.”
그래. 일부러 피했다. 내가 충격 없이 제대로 사고하고 추리하기 위해서.
그러나 감당할 수 없을 결과를 이제 열어볼 때가 온 것이다.
나는 큰세진에게 물었다.
“…콘서트는.”
-당연히 잘 끝났지. 문대문대, 우선 걱정하지 말고 내일 아침까지 쉬고 있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이 나온다. 그러나 큰세진은 무슨 지랄이 났더라도 태연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놈이었다.
……그래도 내일도 콘서트인 상황이니 더 현실적인 답변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도 말하지 않고 뭉개버린다는 건…….’
곤란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어떻게 된 건지, 경과를 제대로 물어볼 찰나였다.
-무, 문대 전화야?
“…!”
스마트폰 너머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박문대라고?
-야!
그리고 여기저기서 탄성과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잘 구출되셨대!
-정말 다행입니다!
-고생했어 박문대, 정말…….
소식을 전해 들은 전화기 너머에서 안도와 기쁨이 넘쳐난다.
나 때문에 X 같은 상황에서 콘서트를 끝냈으니 더 지친 기색이 묻어날 법도 했는데, 기뻐하는 기색만 역력했다.
일부러 더 그러는 거겠지.
이상한 녀석들이었다.
“…….”
나는 말을 삼켰다가, 다시 이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어??
“팀에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한 거요.”
당황한 의성어가 빗발치더니, 곧 내 말에 화들짝 반박한다.
-뭐가 죄송해! 할 일을 한 거지!
-콜택시는, 메, 멤버들이 같이 부른 거야…!
-Hey, 들어요! 그거 형의 선택 아니에요. 우리 함께 이야기했어요. 청우 형이 말했잖아요. 기억해요?
나만 일방적으로 득 보는 게?
사회는 그걸 ‘함께’가 아니라 ‘배려’라고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마침 잘 언급했다.
“그래. 그래서… 청우 형은 지금 어딨는데.”
-아.
그 순간, 오묘한 분위기와 함께 답변이 잠깐 끊겼다.
-아~ 잠깐 회사랑 이야기 중이셔, 왜? 뭐 전달할 거 있어?
큰세진이 얼른 밝게 대답했지만, 이미 깨달았다. 내 예측이 맞았다는 걸.
역시 회사가 뒤집어졌군.
까놓고 말해서 고소감이니 당연하다. 나는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
“청우 형한테 내가 회사랑 직접 이야기할 테니까 그냥 전화 돌리라고 전달 좀 해줘.”
-뭐?
“회사가 화났다고 해도 당연히 이해하는데, 그걸 그 형이 받을 필요는 없다고.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야, 잠깐만….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큰세진의 말을 끊고 들어온 것은 김래빈이다.
나는 녀석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줄줄 준비한 것 같은 대사가 튀어나왔다.
-형, 몇 년 전 제가 할머니의 건강 문제로 스케줄을 빠져야 하는 상황을 고민할 때, 형께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
기억한다.
-일하다 중간에 가도 아무 문제 없어.
괜찮다고. 그런 말을 했었다.
-저 역시 형께 같은 말씀을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김래빈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위기에 처한 가족을 구하러 가는 것은 아무 문제 없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멤버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는 얼굴을 손을 감쌌다.
고맙지만….
‘아니.’
그건 다르다.
김래빈은 법적으로 할머니가 양육자다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욕하는 새끼들이 사이코패스지.
하지만 말이다.
‘나는… 가족이 아니라고.’
박문대에겐 가족이 없다.
그건 내가 데뷔할 때부터 공인된 사실이다. 날 검색해 본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나는 그냥 지인 문제로 콘서트 직전에 무작정 택시를 타고 떠난 것이다.
이건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이 공연을 기다리며 휴가를 낸 사람, 약속을 취소한 사람, 숙소까지 잡아서 공연장 근처로 올라온 사람, 부모님께 특별한 선물로 표를 받은 사람…….
그 사람들이, 자신이 쏟은 시간과 비용이 휴지 쪼가리가 된 상황에서 ‘친구가 조난을 당했어요. 넘 무섭고 슬퍼서 전 콘서트 쨌어요ㅠ’ 따위의 변명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가.
‘나라도 못 한다.’
손끝이 서늘했다.
그러나 여기서 이딴 소리를 줄줄 늘어놓으며 김래빈에게 반박하는 짓이야말로 꼴불견의 정점일 것이다.
이미 X발 투어 첫날을 초쳐놓고 애먼 이 녀석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이로 혀를 씹었다.
“……그래. 고맙다.”
-아닙니다!
김래빈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안심한 듯, 통화 건너편의 분위기가 살짝 풀렸다.
그걸로 됐다.
-문대야, 우리… 콘서트 정말로, 무사히 했어. 안심하라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어설프지 않았다고, 생각해.
“…알아.”
그래서 더 속이 쓰렸다.
미치게 잘하는 걸 목표로 했던 콘서트가 내 탈주 때문에 망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는 게.
물론 이것도 지껄일 말은 아니고.
“믿어.”
-…으응.
그 순간, 통화 너머에서 불쑥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맞아요. 그리고 문대 형 완전히 착각한 거 있어요.
“뭘.”
차유진이 진지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형보다 저 보러오는 사람 많아요.
“…….”
-문대 형만 보는 관객 별로 없어요.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걱정해요? 쓸데없어요. 다들 저 좋아했….
-차유진!!
-김래빈이 폭력 썼어요! 김래빈을 혼내요!
정말 익숙한 개판이었다.
순식간에 대화에서 밀도가 쭉 빠져나갔다.
“하…….”
-형 웃었어요? 기분 나아졌어요?
“그래.”
나 없어도 잘한 이유 한번 잘 들었다.
이놈들이 탈주한 새끼 기분 풀어주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데, 헛웃음이 안 나오는 게 더 이상했다.
“정신 차리고, 내일 복귀할게.”
-으응!
그 후로는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갔다.
이런 제안도 나왔고.
-혹시 너만 괜찮으면, 그, 병원에 우리도 같이 가면 어떨까 하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내일도 콘서트잖아요.”
-크흠, 그렇긴 하지만.
내일도 콘서트인데 쉬는 게 맞았다. 그리고 지금 멤버들이 문병을 오면 큰달 녀석은 죄책감에 누렇게 뜰 것이다.
나는 양측의 체력과 멘탈을 고려해 너무 나간 이야기들을 끊어냈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았다.
그렇게 몇 번의 사양과 조절 끝에 전화도 끊겼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그래!
-푹 자, 문대야…!
뚝.
좋은 말들이 귀에 남았다.
하지만 끝까지, 내 탈주 때문에 파탄 난 여론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관객들에게 어떻게 설명했는지, 그래서 어떤 반응이 나왔는지.
저 녀석들이 먼저 꺼내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내가 계속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꺼냈어야 했는데.
아니, 그 전에… 진작 체크해 보고 대화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
“…….”
나는 얼굴을 손으로 눌렀다.
여차하면, 이번 투어만 끝내고 나는… 활동을 중단해야겠다.
자숙의 의미로.
일단 논란과 연관된 놈이 테스타 활동에서 좀 빠져줘야지 그룹 이미지가 회복될 것 같았다.
‘…정규 앨범에 안 좋은 꼬투리를 붙일 순 없지.’
그 기간에 쓸데없는 짓은 아무것도 안 하고 연습만 하면서 처박혀 있으면, 다음 앨범 즈음에는 여론도 조금 가라앉겠지.
…아니, 아닌가. 활동 중단을 하면 도리어 여론이 악화되나?
모르겠다.
“하.”
나는 실소했다. 어제까지만,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얼토당토않은 고민이나 하게 될 줄도 몰랐으니까.
‘본래라면…….’
지금, 첫 콘서트를 끝내고 머리끝까지 흥분한 상태여야 했다.
아쉬움이든 만족감이든 모조리 한계까지 쏟아낸 상태.
몸은 축축 처지지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축하와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다음 콘서트를 위해 빠릿빠릿하게 몸과 멘탈을 다시 준비해야 했다.
그래, 내일.
‘…내일도 콘서트인데.’
지금 나는…….
“…….”
물론 류청우의 판단은 옳았다.
고마웠다.
나도 안다. 내가 콘서트에 있다가 정말로 큰달이 얼어 뒈지기라도 했다면 그건 정말로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며 복도에 내려앉았다.
스마트폰 화면은 꺼졌다.
소란스럽고 따스했던 것들이 다 가고, 남은 건 어두운 겨울밤 병실 복도다.
“…….”
어쩐지 지독하게 추웠다.
* * *
“……형.”
병실로 돌아가자, 검진을 마치고 혼자 조용히 침대에 앉아 있던 큰달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저기,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요. 제가 글을 쓰면 어떨까요? 인터넷에… 그, 형이 저 때문에 콘서트를 못 하신 거니까, 형 탓이 아니라는 걸 잘 설명하면…….”
“안 돼.”
그럼 화살이 누구에게 간다고 생각하냐.
-무단결근하다가 지발로 산 들어가서 출입금지 구역에서 조난 당했대 미친 새끼 아님? 세금 낭비 오졌고
-곰머야 네 X목질 인맥은 정병 인맥이야?
-오르빗에서 얼마 받으셨어요?ㅋㅋㅋㅋ
큰달은 말 그대로 개같이 물어뜯길 것이다.
아무리 이 녀석이 잘 다듬어서 올린다고 해도 개빡친 사람들은 욕하고 신상을 털 것이다.
직장 동료나 오며 가며 소문만 들어본 사람들도 튀어나와서 온갖 소리를 지껄일 텐데. 그걸 왜 하냔 말이다.
일반인인 이놈 여론만 추가로 X 될 뿐 내 여론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 마라.”
“하지만…….”
“다른 방법 생각 중이니까 안 해도 된다는 거야. 직접 글 올릴 생각은 하지 말고.”
“……예.”
큰달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치를 보듯이 말을 꺼냈다.
“…저, 형. 이제 돌아가셔서 쉬세요. 방금 의사 선생님도 제 상태가 괜찮대요.”
이 분위기에 돌아가면 이놈이 또 무슨 우울한 상태에 빠질 줄 알고.
“피곤해서 숙소까지 돌아가기 힘든데, 쫓아낼 거냐.”
“아, 아니요!? 편안히 있다 가시면 되는데요!?”
쉽군.
“그럼 화장실 좀 쓴다.”
“옙!”
나는 드디어 얼굴을 씻어낸 후, 1인실 옆에 딸린 간병인용 간이침대에 누웠다.
내일 스케줄에 늦지 않으려면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무슨 사태가 일어나도, 혹시 공연장에 보이콧 문구가 붙어 있더라도 무조건 공연해야 했다.
‘컨디션 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확히 새벽 여섯 시에 깨어났다.
삑.
진동은 큰달을 깨우기 전에 빠르게 껐다.
하지만 즉각 몸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 대신,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소리 없이 심호흡했다.
“…….”
확인의 시간이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사실 자기 전에 확인할까도 고민했지만, 혹시라도 잠을 설칠까 봐 미룬 것이다.
오늘 콘서트까지 망칠 순 없으니까.
‘…새벽 6시부터 6시 30분.’
인터넷 이용자가 적어서, 끝없이 갱신되는 여론에 붙잡히지도 않을 시간.
‘지금 확인하고, 간다.’
나는 모니터링용 SNS를 눌렀다.
“…….”
클릭하자마자 상단에 인기 글이 떠올랐다.
-문대 어떡해ㅠㅠ
누가 봐도 비꼬는 도입부에, 눈이 멈췄다.
‘읽어.’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 눈을 움직였다.
글이 완성된다.
-문대 어떡해ㅠㅠ 오늘 콘서트 나와요? 나올 수 있는 상태 맞을지 너무 걱정되는데..
“…….”
비꼬는…… 건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새로운 인기글들이 계속 눈앞에 나타났다.
새벽에 쓴 글들, 콘서트가 막 시작할 무렵에 뜬 글들까지 마구 뒤섞여서… 계속.
-박문대 불참 공지 실화야?
-아 미친ㅠㅠㅠ
-한 달 전부터 덥앱에서 콘서트 이야기만 나오면 신나는 거 주체 못 하던 앤데 진짜 지금 박문대 심정 어떨지 짐작도 안 가
-그냥.. 넋부랑자됨 첫콘이 이렇게 되냐 나랑 박문대 모두 불쌍해죽겠음
-왜 안 나와?;;; 개당혹스럽고 빡치는데 내 돌은 걱정되고 ㅅㅂ 밤 샜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변하지 않았다.
나를 죽도록 욕하는 글은, 별로 없다.
“…….”
나는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스크롤을 올렸다.
그리고 아까 읽은 인기글을 다시 보았다.
-문대 어떡해ㅠㅠ 오늘 콘서트는 나올까요? 나올 수 있는 상태 맞을지 너무 걱정되는데.. 아 미치겠다
그리고 이제는 끝까지 제대로 읽어서 문맥을 확인했다.
이건 비꼬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내가 콘서트에 나올 수 있는 상태가 맞는지 걱정하는 글이었다.
“……아.”
나는 손을 움직였다.
새로운 글들이 계속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