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26
“하하!”
우진의 웃음보가 터졌다.
준안이 형, 센스 보소.
“오늘은 가볍게 받아쳐 줬다고 했지? 잘했어. 다음에 또 정신 못 차리고 적반하장이면 그땐 짓밟아버려, 아주.”
준안이 우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차에 탑승했다.
“그나저나, 웬일로 본가야?”
“아, 라 감독님이 집에 USB 보내주셨거든요.”
“USB?”
“네, 파일 담긴 거요.”
우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엄마랑 누나랑 같이 영화 한 편 때리려고요. 힐링하고 와야지.”
“크으, 말만 들어도 좋네. 자, 얼른 가자!”
준안이 시원하게 액셀을 밟았다.
115화
어느새 촬영의 마지막 달, 11월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크랭크인인 7월 3일부터 크랭크업인 11월 28일까지는 무려 149일
그중,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처럼 뺄 수 없는 개인 스케줄이나 공휴일, 또는 전 출연진이 동일하게 갖는 정기 휴차를 제외한다면.
족히 120일이 넘는 시간을 촬영장에서 보내야 했던 긴 여정의 끝이 서서히 눈에 보인다는 뜻이기도 했다.
점점 종장에 가까워질 때마다, 왜 이렇게 아쉬운 건지.
그래도,
라호찬 감독의 첫 번째 장편작이자, 우진의 첫 단독 주연작.
동시에,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 수상작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영화 의 국내 개봉일이 확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으로 그 아쉬움을 한껏 달랠 수 있었다.
무려 12월 5일.
첫 방영 날짜와 겹친다.
이런 우연이?
이에 대해,
– 하하하! 제가 신경 좀 썼지요.
우진에게 깜짝 소식을 전달한 라 감독은 늘 그랬듯, 호쾌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는 는 물론이요, 의 대박까지도 기원한다는 의미로 개봉일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우연의 일치를 가장한 라 감독의 의도.
이미 몇 번이나 촬영장에 커피차를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거늘.
이렇게 소소한 부분에서까지 매번 신경을 써주신다.
감독이 배우를 진정 아끼고 있다는, 진심 어린 마음이 담긴 응원.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 많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드라마 일정 속에서도, 우진이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유다.
우진의 옆에서 같이 소식을 전해 들은 준안은,
“흠… 연말까지 정신없겠군!”
말의 내용과는 정반대로 들뜬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서서히 우진‘화(?)’가 완료된 준안은 요즘,
‘바쁜 게 최고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이에 동감하는 우진 역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네요.”
“응? 뭐가?”
“올해까지만 미친 듯이 일하고, 새해가 되면!”
그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편한 마음으로 푹 쉴 거예요.”
준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 입에서 ‘푹’ 쉰다는 말이 나올 줄이야.
처음 아닌가?!
“쉰다고?”
“네, 혼자 여행 좀 다녀올까 생각 중이에요.”
“웬일이야, 네가?”
“웬일이라뇨. 저 작품 다섯 개나 연달아서 했잖아요. 이젠, 충전이 좀 필요해요.”
그, 그건 그렇지.
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해가 되면, 우진은 데뷔 3년 차가 된다.
지난 3년 동안, 그가 휴식기를 가진 적?
단 한 번도 없었다.
우진의 일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 당장 휴식 선언과 함께 잠적하는 일이 발생해도 아마 무죄라고 수긍할 것이다.
오히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삶이, 크랭크인 중의 삶보다 더 쉴 틈 없이 치열하다고 주변에서 말할 정도니까.
그런데도, 막상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진의 입에서 쉰다는 말이 나오니까 준안으로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루, 이틀의 휴식이 아닌 장기간의 휴식을 예고하는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혹시, 저번에 제가 형한테 말씀 안 드렸었나요? 끝나면 좀 쉴 생각이라고.”
“아냐,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난 그냥 네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준안이 말을 이었다.
“네가 쉰다고 하니까 반갑긴 한데, 왜 이렇게 어색하냐? 하하!”
“그럴 수 있죠. 워낙 숨 가쁘게 달려왔잖아요.”
“그러니까. 아, 우진아!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네?”
“네가 촬영하는 동안, 차에서 대기하다 보면 매니저들끼리 모여서 노가리도 까고 할 거 아냐?”
“그렇죠.”
“얘기하다 보면, 듣던 사람들이 매번 놀라는 게 하나 있다. 그게 뭔 줄 알아?”
“뭔데요?”
우진이 급 관심 가는 표정으로 묻자,
“바로! 이 차 킬로수가 다른 애들 거랑 비교하면 두 배가 훌쩍 넘는다는 사실이지.”
준안이 뿌듯하다는 듯, 핸들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두 배는 그냥 기본이고, 심지어 다섯 배가 넘게 차이 나는 것도 봤어. 너보다 한참 먼저 데뷔한 배우 차량인데도 말이야.”
그의 으쓱한 어깨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서 뿌듯하네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막상 쉬겠다는 말 들으니까 형이 좀이 쑤셔서 안 되겠어.”
준안이 핸들을 잡았다.
“킬로수 적립하러 간다잇!”
언제나처럼, 촬영장으로 향했다.
* * *
안종훈은 첫날 이후로 조용했다.
순한 양이 된 것처럼, 감독과 작가가 시키는 곧이곧대로 움직였고 우진과 트러블 또한 일절 없었다.
준안이 형의 조언처럼 한 번만 더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는 식’으로 행동했었다면, 대놓고 짓밟아줄 용의도 있었건만.
뭐, 덕분에 ‘유치하게 굴 필요’가 없어져서 굉장히 편했다.
– 콰아아아앙!
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장면.
바로, ‘국회의사당 테러’.
민주주의 국가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국회 건물을 파괴함으로써,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서른한 명의 청년들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국가에는 더 이상의 정의가 없다!’
‘그러므로, 참된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직접 보여주리라. 그게 유일한 생존자인 나, 저스티스의 정의다!’
라는 이진태의 경고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하이라이트 씬이었다.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요!”
처참하게 무너진 건물 사이로,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 펑! 퍼엉!
애처로운 비명마저 잠재우는 폭발음이 연이어 들렸다.
이미 무너져내린 건물이었건만, ‘리클룸’… 아니, 이진태에게 자비란 없었다.
아예 건물의 뿌리까지 뽑아내겠다는 듯, 폭발에 폭발을 멈추지 않았다.
가차 없는 무자비함이었다.
현장에는 무너진 국회를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시민들, 그리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국가정보원·소방관 등등 대규모의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아아….”
뒤늦게 이진태의 계획을 알아낸 이정혁이 기를 쓰고 달려왔지만,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 털썩.
끝내 무너져내린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자마자 그의 무릎이 힘없이 내려앉았다.
‘이진태 당신,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속셈인 거야… 이만하면 됐잖아!’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야 하는 거냐고!’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분한 외침이 속에서 맴돈다.
– RRRRR.
그때였다.
주체할 수 없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던 이정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윤태오였다.
“여…보세요?”
이정혁이 힘겹게 응답했다.
그러자, 윤태오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 범인이 자수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 방금 자신이 국회의사당 테러 사건의 주동자라고 밝힌 인물이 우리 지검으로 이송됐습니다. 자세한 건, 와서 말씀 나누시죠!
핸드폰 너머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테러 현장이 정신없이 돌아가듯, 서울중앙지검의 분위기 역시 조금의 여유도 없는 모양이었다.
전무후무한 사태 앞에서 오직 한 사람.
이진태를 제외한다면, 그 누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 꽈악.
이정혁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의 발걸음이 윤태오에게로 향했다.
* * *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수사실.
“한민재, 1983년생….”
윤태오가 파일철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2010년, 정부가 비밀리에 주도했었던 북파 공작 계획에 선발됐었던 전력이 있습니다.”
창을 통해 범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윤태오가 이정혁에게 조용히 읊조렸다.
두 손에 수갑을 차고 앉아 있는 한민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북파 공작 계획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윤태오가 이정혁에게 파일철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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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북한 잠수정에 의한 어뢰 공격으로, 대한민국 해군 소속 ‘아산함’이 침몰하였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은 아래와 같다.
1. 대한민국 정부는 이 문서를 기점으로, 해당 사건을 이하 ‘아산함 피격’이라 칭한다.
2. 북괴에 의해 발발한 ‘아산함 피격’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자, 대한민국의 안전 및 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테러 행위로 간주한다.
3. 북괴는 ‘아산함 피격’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며, 향후 대책과 더불어 진심 어린 사과를 표명할 것을 촉구한다.
4.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북괴는 ‘아산함 피격’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을 확고히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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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담긴 주요 내용을 읽고 있는 이정혁에게 윤태오가 말을 덧붙였다.
“북파 공작 계획이 비밀리에 진행된 배경입니다.”
“…4번 내용처럼, 북한이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었군요.”
“네, 북한은 끝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자작극이라며 부인했습니다.”
윤태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북파공작원을 선발하기 시작했고, 비밀리에 계획이 진행된 겁니다. 한민재가 그중 한 명이었죠.”
“설마….”
“짐작하시는 바가 맞습니다. ‘저스티스’ 이진태와 한민재, 똑같습니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이요.”
2010년에 정부가 주도했던 북파공작원 선발 계획은 일명 라 불렸다고 한다.
몇 명을 선발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민재를 비롯한 대원들은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달려갔었다고.
하지만….
“2011년 총선을 앞두고, 경색되어있던 남북관계에 갑자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어요.”
“하!”
이정혁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뿜었다.
2010년에 국가가 북파공작원을 운용했었다는 사실 자체도 색달랐지만, 어떻게 1983년… 그러니까 27년 전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은 행태를 취할 수가 있단 말인가!
더 듣지 않아도 이미 예상이 된다.
“이미 한민재를 포함한 선발된 대원들이 사지로 나간 후였죠. 당연히 정부는 이들의 존재를 부정했고요. 본인 말로는 자기가 유일한 생존자라 주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정혁 씨가 오기 전, 한민재가 진술한 내용은 여기까지예요. 이후부터는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더는 알 수 없네요”
이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오가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나머지는 이정혁 씨와 함께 오면 말하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