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42
김태곤이 우진의 어깨를 붙들고서는 연신 말을 이어갔다.
얼마나 반가우면, 폭풍 같은 잔소리가 멈출 줄 몰랐다.
어깨를 잡았다가, 얼굴 양 볼을 감싸기도 했다가… 반가움의 감정이 솟구치는 제스처의 연속이었다.
“그나저나, 왜 살이 더 빠진 것 같지? 캐릭터 설정 때문에 그래?”
“네? 아니요. 저 영국 와서 하루 세끼 열심히 먹었는데… 살이 빠진 것처럼 보이세요?”
“꼬박꼬박 잘 먹이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거늘… 가만있어 보자. 준안이가 어디 갔지?”
“하하하… 팀장님! 저 오늘 점심도 준안이 형이 손수 해준 집밥 먹고 왔다고요!”
우진은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김태곤을 진정시키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다 저를 위하는 마음인 거, 너무 감사하고 알겠는데요!
잠깐만 놔주시면 안 될까요….
입안에서 공허하게 맴도는 말이었다.
“우진 배우님! 배우님 것도 있어요. 얼른 받아 가세요!”
“아, 네!”
때마침 응원단 쪽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굿 타이밍!
우진이 미소 지으며 다가갔다.
“여기요, 배우님 선물!”
“실물이 훨씬 멋있어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이렇게 저희 공연 팀을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진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팬들의 반응이 한껏 달아올랐다.
– 찰칵.
소속사 팀장과 거리낌 없이 친밀한 모습에다가,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수줍은 면모까지.
평소 쌓았던 친분 덕에 김태곤 일행에 슬쩍 발을 끼워 넣을 수 있었던 오민상 기자는 이 광경을 놓치지 않고 모두 찍었다.
‘단독… 특종!’
좋은 기회를 얻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좋은 사진들을 기사에 싣겠노라는 의지로.
그러다가,
– 툭.
“죄송합니다. 촬영하시는데….”
“아닙니다. 제가 기자님을 못 보고 부딪쳤네요.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요. 그나저나, 혹시 YTV 다큐 촬영 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엔터 데일리’의 오민상 기자라고 합니다.”
“아, 예! 저는 YTV 다큐멘터리국 심현석 PD입니다.”
오민상이 심현석 PD에게 명함을 ‘스윽-’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얼떨결에 자신과 명함을 주고받은 심 PD가 손을 맞잡자, 오 기자는 정중한 어투로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PD님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부탁이요?”
“다름이 아니라… 저는 사전에 공식적인 협업 논의가 없는 상태에서 온 거라서요. 아직 초연 공개 전인데, 제가 연습 장면을 카메라로 찍기가 좀 그렇습니다. 찍었다가 혹여나 우진 배우님과 한국 스태프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요.”
“그럴 수 있죠. 저희도 다큐 촬영분에 대해서는 매번 루카스 본부장님과 함께 검수합니다. 필름 보관이나 가편집 작업도 웬만하면 WMAC 사내에서 하는 편이고요. 아무래도 초연 전까지는 단 1프로의 유출 가능성이라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매우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초연이 끝나고 나면, PD님 팀에서 찍으셨던 기존 연습 과정 영상에서 몇몇 장면들만 스틸컷 형식으로 뽑을 수 있을지요? 기사 메인에 넣으려고 합니다.”
“아….”
오민상의 솔직한 물음에, 심현석은 잠시 고민했다.
사실, 문제가 될 여지는 없었다.
애초부터 WMAC에서 ‘보안’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이유도, 기준점도 전부 ‘초연’ 시점에 맞춰져 있으니까.
우진의 영국 활동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매체는 현재까지 오민상 본인이 가장 유일하다.
취재 욕구가 마구 솟아오를 텐데도, 모두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 본인의 욕심을 접고 먼저 양해를 구하는 기자의 정중한 태도라니.
앙숙과도 같은 YTV 보도국 놈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인지라, 심현석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에서는,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덤이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정말 감사합니다, PD님!”
“대신… 저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네, 뭐든 말씀하세요.”
“백우진 배우 다큐멘터리 완성되면, 편성 나는 대로 기자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맨입으로는 아니지.
심현석이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띠며 말을 맺었다.
“방영 전에 홍보 기사요. 거하게 한 번 써주시죠. 이왕이면 메인에도 걸어주시고.”
“하하하! 부탁이라고 하기엔, 저한테 너무 좋은 제안인데요? 그 또한,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민상은 두말할 것 없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렇게 한쪽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 식의 새로운 비즈니스 관계가 생겨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WMAC를 찾아온 손님들 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코리아의 스낵 먹거리는 정말 맛있군!’
이라며 ‘쩝쩝-’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선물로 받자마자 착용한 운동복 핏을 자랑하기도 했다.
웨스트엔드 본토 관계자들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진 한국의 팬 문화.
훗날의 여담이지만.
맥 오브라이언과 루카스는 이를 두고, ‘우진 이펙트’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최종 리허설 현장은, 이렇게 ‘우진 효과’ 덕에 웃음꽃이 만개하고 있었다.
* * *
“끄으아아-!”
“배우님이 연기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서 관람하다니!”
“저는 때 가까이서 봤었다만, 실제 공연이 아닌 연습 장면을 보니까 너무 색달라요!”
“진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게, 한이다! 마음 같아서는 몰래라도 찍고 싶은데!”
“그건 절대 안 되지! 우린 성숙한 팬 문화를 보여주기로 약속을 했다고!”
최종 리허설.
초연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최종 연습이 시작되었다.
WMAC 해외사업본부에서 선물의 답례로써, 우진의 응원단을 위해 자리를 제대로 마련한 뒤였다.
현장 분위기는 김태곤 팀장과 다섯 명의 팬, 거기에 오민상 기자까지 해서 오직 일곱 명을 위한 단독 공연을 펼친다는 느낌을 뿜고 있었다.
좋은 현상이었다.
오늘은 겨우 일곱 명의 관객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반응을 통해 내일부터 두 달 동안 보게 될 수천·수만 명의 뮤지컬 팬들의 반응을 가늠해볼 수 있을 테니까.
“데렉, 시작하지.”
“예, 암전 들어가겠습니다.”
총괄 연출 부스 안에는 긴장감이 넘쳐흘렀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찰나.
25년이 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음에도, 맥에게는 언제나 막이 오르는 순간이 제일 떨렸다.
자신이 내리는 사인이 곧 작품의 시작을 뜻하니까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하고 진지한 목소리를 내뱉은 맥의 눈빛에서는 안광이 맺혔다.
이윽고, 그는 매의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 시각.
무대 뒤에서는,
“우진, 행운을 빌어요!”
“릴리도요. 파이팅.”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를 전하는 두 명의 주연 배우가 출격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팬들 앞에서 최종 리허설이라….
우진은 평소보다 더 떨리는 마음을 안은 채, 백스테이지를 벗어났다.
* * *
전작에서 맡았던 오르페우스가 음악의 ‘매개체’ 역할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 맡은 헤파이스토스는 그냥 음악, 그 자체다.
왜냐하면.
에서 우진이 헤파이스토스로서 불러야 할 노래 가사들은 전부 그의 현 상태와 심정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원망·한탄·비관 등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해서, 멜로디 자체가 기본적으로 무겁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 [으악, 뜨거워!그나저나, 대체 이게 뭐야?!
이 아이가 정녕….
최고의 여신인 나, 헤라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이야?] [아아아-!
불꽃에 휩싸인 채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네.
불길이 사그라들자마자, 여신 헤라의 시선이 아이의 두 눈에 맞닿았다네.
아이는 방긋 웃고 있거늘.
어미의 입가는 그렇지 못하도다.
아이의 못생긴 외모가… 어머니의 고개를 끝내 돌리게 하네.
…어린 헤파이스토스여.
태어나자마자 어미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곧장 올림포스 밖으로 내던져졌구나.
무려 9일 동안이나 추락한 끝에 땅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절름발이의 꼽추.
불과 대장장이의 신은 그렇게 태어났도다.]
헤파이스토스가 후대에도 절름발이에 꼽추 이미지를 갖게 된 이유로, 두 가지의 대표적인 설이 존재한다.
1. 하늘의 신 제우스가 전쟁의 여신 아테나를 낳았다는 사실에 질투가 난 헤라가 자신도 혼자서 헤파이스토스를 임신하였는데, 낳고 보니 흉한 모습이라 올림포스 밖으로 던져버렸다는 설.
2. 헤파이스토스는 본디 사지가 멀쩡하게 태어났다. 하루는 제우스가 바람기 때문에 아내인 헤라와 부부싸움이 났는데, 아들인 헤파이스토스가 어머니의 편을 들었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가 아들을 올림포스 밖으로 차버렸으니, 땅에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설.
맥의 극본은 1번 설을 따랐다.
안 그래도 어머니가 복수의 목적으로 낳은 아이라는 점 자체도 안타까운데, 태어나자마자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림까지 받는 설정까지 더해진다면….
헤파이스토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한(恨)이 더욱 극대화되는 전개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오프닝 곡인 ‘대장장이의 탄생’이 흘렀다.
멜로디가 끝나자마자,
– 터벅터벅.
한 남자가 무대 위에 등장했다.
한쪽 발을 질질 끌면서 나타난 그의 허리는 보기만 해도 안타까울 정도로 굽어 있었다.
얼굴 외에 모든 부분은 조명 빛이 비치고 있는 상태.
모두의 시선이 쏠린 찰나,
– 탁!
무대 전체가 밝아졌다.
덩달아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찌하여, 나는! 나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은 채로 외치는 헤파이스토스의 얼굴은,
“…이렇게 태어났을까. 대체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내가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이거늘, 전생조차도 알 수 없는 신이니 그저 한스러울 따름이다!”
초장부터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또한, 단번에 보더라도 온갖 수십 가지 감정이 집약되어있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을 뽐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배우의 등장만으로, 무대 전체가 꽉 들어찬 압도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
“…….”
관객들은 물론이거니와, 현장에 있는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그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232화
오프닝 직후에 곧바로 이어지는 첫 장면에서부터 온몸으로 절규하는 배우의 연기가,
“…….”
“…….”
스튜디오 현장 곳곳에서 지켜보는 중인 시선들을 그야말로 ‘압도’하고 있었다.
[♪] [인간들은 이렇게 믿고 있지.세상에서, 신이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말이야.
불과 대장장이의 신!
나, 헤파이스토스가 너희 인간들에게 묻고 싶구나.
대체 언제부터인가?
‘거짓’된 정보가 ‘진실’로써, 너희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것이….]
모두가 휘둥그레진 눈과 ‘떡-’ 벌어져 얼어붙은 입으로 놀라운 표정을 짓고 있는 상태.
신의 무기력하고도 절망스러운 감정들이 고스란히 노랫말에 담겨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최종 리허설이 시작되자마자 지켜보는 모두의 감탄을 단숨에 자아낸 무대 위 연기는 우진이 셀 수 없이 많은 고민을 되뇐 끝에 구축해낸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작품은 특히나 분석이 어렵고 까다롭기로 가히 최고봉이었는데, 물리적인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거니와.
무엇보다, 애초에 캐릭터에게 부여된 설정의 복잡도(complexity)와 난도(difficulty)가 굉장히 높았던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신화적 요소가 가득한 서사물의 스토리 전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당, 당신은?」
「인간이여. 앞으로 찾아올 고난과 역경에도 절대 굴하지 말고 너의 길을 꿋꿋하게 가려무나. 나의 위대한 권능이 너를 끝까지 도울 것이며, 지켜줄 것이로다.」
「또한, 인간이여. 너에게 두려울 것이란 없단다. 너는 반드시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야. 내가 너에게 약속한다. 나의 이름으로.」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도 위와 같은 유형의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주인공(대체로는 영웅인 인간)이 어떤 묘수도 떠오르지 않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절망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갑자기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면서 나타난 신이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 장면 말이다.
이런 장면들은 신이 주인공을 어떻게 도와주냐에 따라 전체적인 연출만 달라질 뿐, 기본적인 흐름 자체만 놓고 보면 이미 수없이 봐온 기존의 작품들과 비슷하다.
이렇듯 신이 등장해서 해결사 역할을 담당하는 현상을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주로 사용됐던 극작술의 용어로는, ‘신의 기계적 출현’.
즉,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machina)’라고 한다.
극의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가 도저히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리고 꼬여버린 탓에 파국(catastrophe) 직전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무대의 꼭대기에서 기중기 같은 기계 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의 대명(大命) 하나로 전부 해결되는 기법이다.
이미 익숙한 클리셰(cliché)이므로, 우진도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