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95
“물론 우리 회사 소속 배우라고 해도, 해외 활동은 전적으로 에이전시에 일임하기 때문에 요즘은 우리가 백우진 배우의 활동에 딱히 개입할 일이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대표님.”
“그러나….”
이은철이 자세를 고쳐앉았다.
양손으로 턱을 받친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을 본 팀장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기가 무섭게, 이은철이 말했다.
“그저께 내가 김태곤 팀장에게서 구두로 보고받은 내용이라면, 얘기가 많이 달라지지.”
대표의 귀에 들어간 내용은, 다름 아닌 9회차 촬영이 끝난 후에 있었던 숀 라이트와의 해프닝.
현재 영화 촬영은 70회차를 ‘훌쩍-’ 넘기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한참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준안을 통해 뒤늦게나마 우진이 숀 라이트의 팔꿈치에 가격당해 왼쪽 눈두덩이가 찢어졌었음을 알게 된 이은철은 크게 분노했다.
특히나, 그가 우진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었다는 대목에서는 더더욱 참을 수가 없었고.
동양인이 어쩌고저쩌고를 짓궂은 농담이라며 포장까지 했다고?
이게 말이야, 똥이야?
“우진 배우와 지금 이 자리에서 사인한 계약서를 주고받았었습니다. 그때 나는 분명, 우진 배우에게 이렇게 말했었어요. 아티스트와 회사가 상호 간에 발휘하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함께 성장하자고.”
그 말인즉슨, 당사자인 우진이 조용히 덮었어도 소속사 차원에서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음을 의미했다.
“우리 플라워도 최대한 할 수 있는 선에서 우진 배우를 서포트해왔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나는 우진 배우가 우리한테 해준 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혹시, 여기에 대해서 저와 의견이 다른 분 있습니까?”
팀장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의견이 다르기는 하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표와 반대되는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모두가 진심으로, 그의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 5년 차밖에 되지 않은 배우가 국내에서 온갖 기록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이요, 수상 기록도 빛이 나거니와.
웨스트엔드에서 세계적인 뮤지컬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이제는 모두가 염원하는 할리우드에서 세계 최고의 거장들과 함께 작업까지 하고 있다.
보여준 것들이 너무나도 많을뿐더러, 전무후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고.
우진은 죽을 때까지 연기하겠다고 숱하게 밝혀왔으니, 앞으로 못해도 50년은 더 하지 않을까.
5년 만에 이 정도를 보여준 배우라면, 앞으로 50년 동안 그가 보여주는 행보는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러니 우진이 ‘플라워’라는 이름으로 회사에 해준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잠시 흐르는 정적.
이윽고,
“저도 20대 초반에 로드 매니저로 시작했고, 여러분들처럼 대형 기획사의 팀장 자리를 거쳤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와 보니, 어느새 이렇게 대표라는 직함을 달고 있네요. 현장 일에서는 손을 뗀 지 좀 됐지만, 업계에서 몸담는 동안 본 연예계 지망생들이 만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이은철이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 소속 배우들은 누구든지 항상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합니다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특별하게 애착이 더 가는 배우들이 몇몇 있어요. 백우진 배우는 단연, 그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배우입니다.”
그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저를 포함해 여기 계신 분들 전부 우진 배우에게 해준 것보다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리턴 해야죠. 김태곤 팀장.”
“네, 대표님.”
“어제 내가 UTA 담당자와 직접 얘기 끝낸 사안입니다. 회사 법무팀과 같이 숀 라이트 측에 정식으로 항의하세요. 그리고, ‘원더브라더스 필름’ 측에도 똑같이.”
“…저기, 대표님. 숀 라이트 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제작사 쪽까지 항의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넉 달 가까이 지난 일인데, 좋게 작업 중인 배우에게 되레 부담을 줄까 염려됩니다.”
“이해되는 의견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그것까지도 에이전트와 합의한 사안이니까.”
“네?”
“어차피 에이전트 쪽에서도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속 논의 중이었다는군요. 우진 배우가 워낙 착해서, 현장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냥 없던 일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누누이 피력했기에 시간이 걸렸을 뿐이었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김태곤에게, 이은철이 설명을 덧붙였다.
“개인의 의사와 별개로, 회사가 나설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서는 게 맞습니다. 약간 냉정하게 말하자면, UTA 쪽도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요.”
“아….”
그제야 이은철의 말이 이해가 된 김태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UTA는 지금도 계속해서 자사의 배우 풀을 할리우드 바깥 영역까지 넓히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 시장이 아시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거기에, 에릭 크리스토퍼 혼 감독의 제작 중단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 시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들이 나옴에 따라.
자연스레 초점이 한국과 일본 배우들에게로 모이고 있었으며, 우진은 그런 UTA 프로젝트의 첫 시작점이었다.
그런 배우가 인종차별적인 사태를 넘어서 폭행(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까지 당했다는 것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다.
우진을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은 아시아권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하게 된다면, 우진이 겪은 일들이 몇 번이고 더 일어나게 될 것인데.
그때마다, 자사 배우들이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되레 제작사나 할리우드 기성 배우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펼쳐져야 한다?
그럼 누가 UTA를 찾겠는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할리우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부는 중이다.
그 변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맞는 것은, 비단 연예계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이 그렇듯.
비즈니스, 즉 ‘자본’과 연관된 사람들인 법.
법에서 판례가 중요하듯, UTA도 프로젝트의 시발점인 우진을 통해 제대로 된 선례를 확립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이은철은 직접 확인한 바였다.
하여,
“어차피 UTA 측에서 나설 거라면, 우리가 선수를 뺏길 수 없죠. 우진 배우는 엄연히 우리 배우니까요. 그래서, ‘플라워’의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못을 박아두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바로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몇 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니… 우진 배우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아직 우리 플라워의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음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여전히 많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네요.”
이은철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맺었다.
반면에, 김태곤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오랜만에, 내면에 잠재우고 있었던 전투 본능(?)이 불타오르는 기분이 드는 참이었다.
‘우리 우진이를… 다 죽었어.’
잔보다 큰 주먹을 꽉 쥐는 것은 덤이었다.
“참, 그리고 팀장님들께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의가 마무리되려는 찰나,
“백우진 배우의 전속계약 기간이 올해까지인 거, 다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은철이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하하, 제가 이런 말까지 하는 때가 오네요. 저는… 백우진 배우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플라워’가 계속 서포트하길 바라요.”
“……!”
“……!”
처음 보는 대표의 모습에, 팀장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대응해주시길 바랍니다. 우진 배우가 작품 외적으로 불필요한 신경을 쓰는 일이 없도록 말이죠.”
나지막하게 말하는 그의 눈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 * *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슬슬 초가을의 계절로 접어드는 할리우드.
우진에게 속마음을 한껏 털어놓은 오웬 바넷사는 이후 180도 달라졌다.
매일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진과 액션 아카데미에서 자주 훈련을 했고, 현장에서도 개인 트레일러에 머무는 것보다 스태프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과연, 스태프들이 저와 친해지고 싶을까요?」
라던 그녀의 걱정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주연 배우와 친해지기 싫은 스태프가 어디 있겠는가.
다만, 헤더급이 아닌 이상에야 먼저 다가가기 힘드니까 어려워했을 뿐이었지.
우진이 물꼬를 틀어주자마자, 오웬은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니, 스태프들이 마음을 안 열래야 안 열 수가 없었고.
“오웬, 점심 저희랑 먹어요!”
“어허, 배우님 오늘 무술팀하고 선약 있으시답니다~”
“무술팀은 어제도 같이 먹었으면서, 무슨!”
“억울하면 먼저 잡으셨어야지~”
“됐고, 우리랑 먹어요. 네?!”
“하하,! 그러지 말고, 공평하게 다 같이 가요.”
왠지 모르게 겉돈다는 느낌이 강했던 그녀가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멀리서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라, 우진이 ‘피식-’ 웃었다.
“A-yo, 우진!”
그런 그에게, 마이클 오버렛이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양팔을 벌리고서.
“마이클, 끝나셨어요?”
“그럼, 그럼! 오늘도 한 방에 오케이를 받았다고.”
“테이크를 세 번 이상 가는 일이 없네. 역시, 마이클!”
“무슨 소리야. 너는 많아봤자 두 번이고, 그마저도 거의 원샷 원킬이면서. 네 별명이 원샷맨인 건, 알고나 하는 소리야? 노래하는 시인이 아니라, 원샷의 시인이었구먼!”
마이클이 너스레를 떨며 우진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밥 먹으러 가자. 감독님이 같이 먹자고 하시네.”
“네, 좋아요.”
“여름이 지나가니까, 현장이 이렇게나 좋을 수가 없다~”
“그러게요. 다들 더위 먹어서 쓰러지고 그래서 걱정이었는데, 선선해져서 좋네요.”
우진과 마이클이 수다를 떨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78회차 촬영이었다.
289화
순탄히 진행되는 촬영.
어느덧 7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현장에서, ‘원더브라더스’와 에릭 크리스토퍼 혼 감독을 비롯한 헤드급 스태프들이 작품 외적으로 가장 크게 신경을 쓰는 부분은 다름 아닌….
촬영 극 초반부에 있었던 숀 라이트와의 불화설과 관련된 이슈가 외부로 절대 유출되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거니와, 사건의 당사자인 우진과 잭 콜린이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왔기 때문이었다.
공식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캐스팅 보드가 이전에 숀에서 ‘?’ 표시 처리가 된 검은 실루엣으로 바뀌었다가 종장에는 마이클 오버렛의 사진으로 변경된 사실 하나만으로 온갖 추측성 보도들이 쏟아져 한 차례 시끌시끌했던 탓에, 제작진은 내부 입단속에 주의하고 또 주의했다.
냄새를 맡자마자 하루가 멀다고 달려드는 파파라치(paparazzi)들이나, 어디서든 이슈가 터지기만을 기원하는 연예지 혹은 방송국 놈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덤이었다.
물론 영원히 숨길 수는 없는 일이므로, 프로덕션 기간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촬영장의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여온 셈이었고.
그런데,
[보조출연 후기 풉니다.]각별하게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바가지가 오히려 밖에서 새게 된 원인은 참으로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꺼져가던 장작의 불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지핀 것은,
[나는 ‘원더브라더스 필름’ 신작인 영화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했었어. 40회차 넘게 나갔었고, 궁금한 거 질문하면 아는 선에서는 다 얘기해줄게.]바로, ‘인스타 월드’ SNS에 올라온 하나의 글.
가계정으로 올라온 글의 작성자는 본인이 장기간 보조출연자로서 작품에 참여했었음을 밝힘과 동시에,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 개봉만 기다리는 중인데, 아직도 촬영 중이야?
└ Re : ㅇㅇ 언제 끝나는지는 나도 몰라. 원래 보조출연자한테는 언제 크랭크업 하는지 안 알려주거든. 오늘 무슨 장면 찍는지도 현장에 가서 설명을 들으니까, 뭐.
└ 페이는 잘 챙겨줘?
└ Re : 여기는 다른 현장들보다 페이를 더 챙겨주는 편이야. 제작비가 9천만 달러라고 얼핏 들었는데, 돈이 많아서 그런가? 확실히 보조출연자들도 꼼꼼하게 챙겨주긴 하더라고. 물론 감독의 성향 차이겠지만, 여기는 현장 여건이 다른 데보다 확실히 좋아. 기본적으로 재난물은 보조출연자들 입장에서 별로 내키지 않는 장르거든. 고생을 워낙 많이 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보조출연자들도 티테이블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주니까 계속 나가고 싶긴 하더라.
└ 여기에다가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들 다 말해도 되는 거야? 그러면 안 되는 거로 알고 있어서, 난 좀 걱정이 되네;;
└ Re : 뭐, 어때? 스포일러만 안 하면 되지. 내용 유추할 수 있는 사진 같은 거는 올리지 말라고 설명 듣긴 했었어. 그 외에는 괜찮지 않을까? 친해진 친구들끼리 현장에서 찍은 셀카만 안 올리면 되겠지. 나도 분장한 사진은 가족들한테만 슬쩍 보여줬어.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가벼운 질의응답들은 괜찮았다.
다만, 문제는….
└ 갑자기 배우가 왜 바뀌었는지, 혹시 알고 있는 거 있어?
└ 저도 이게 제일 궁금했어요! 항간에는 숀 라이트 배우가 촬영장에서 너무 심한 스타병에 걸려서 배우가 바뀔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 있던데….
└ 맞아, 맞아. 갑자기 캐스팅 보드가 바뀌었더라고요! 숀 라이트가 3년 만에 복귀한다면서 홍보할 땐 언제고, 갑자기 바뀌는 게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정작 제작진은 아무 말도 없으니까 이상한 소문만 나돌게 되는 거고. 뭐, 괜찮은 소스 없나요?!
작성자가 가계정을 생성해 글을 올렸듯, 당연히 가계정으로 질문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프로필 사진조차 설정되지 않아 기본 아이콘을 유지 중인 가계정들이 쏟아내는 질문들은 상당히 직설적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서,
‘뭐 하나만 걸려라!’
라는 식의, 2주 만에 갑작스럽게 캐스팅 보드가 바뀐 이유에 대해 조금의 힌트라도 되는 단서라면 가리지 않고 모조리 물어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묻어나는 뉘앙스였다.
그런 질문들을 던지는 가계정들의 본모습은,
“빨리, 빨리….”
“아, 이 새끼 진짜… 타자 X나게 느리네. 기다리다 속이 터져서 죽겠구먼, 쉣!”
키보드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쉴 틈 없이 움직이는 한편, 마우스로는 연신 ‘새로 고침’을 클릭하며 입맛을 다시는 하이에나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 띠링.
“어, 댓글 달렸다!”
“어디? 봐봐!”
이렇게, 알림음이 반가울 때가 또 있을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작성자는,
└ Re : 그거, 안 그래도 현장에서 화제였었어. 내가 두 번째인가, 세 번째로 현장 나갔을 땐데….
역시나, 일말의 의심 없이 미끼를 물고야 말았다.
뭐, 하긴….
자신이 쓴 글에 파파라치들이 언제든 따라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글을 쓰진 않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 혹은 극소수만 알고 있을 거로 확신하는 정보를 괜스레 남들에게 뽐내고 싶어 하는 법이지 않은가.
└ Re : 나이트 촬영 마치자마자 보조출연자들은 바로 숙소로 이동해서 잘은 모르는데, 아무튼 배우들하고 제작진들은 남아서 회식했다고 들었어. 그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싶은데? 왜냐하면, 그다음 날부터 숀 라이트가 갑자기 현장에서 안 보이기 시작했었거든.
└ 그게 다야?
└ Re : 그리고, 그 날 오전부터 현장 분위기가 좀 안 좋긴 했었어. 보조출연자들이 화장실 드나드는 세트장 입구 쪽에 배우들만 쓸 수 있는 컨테이너가 있는데, 화장실 갈 때 숀 라이트가 크게 화를 내는 소리를 들었었거든. 뭐 때문에 화난 건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보출 반장이 그때부터 우리한테 뒤쪽 쓰지 말고 앞문으로만 나가라고 했었던 게 기억이 나. 스태프들 막 난감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었던 것도 기억나고.
└ 소문이 맞았나 보네….
└ Re : 또 이상했던 게, 주연 배우 중에 백우진이라는 유일한 동양인 배우가 있거든? 내가 보조출연 갈 때마다 현장에서 본 배우인데, 항상 연습하는 모습만 봤었어. 우리 보조출연자들 사이에서도 되게 열심히 한다고 얘기가 많았지. 그런데, 숀 라이트가 크게 화를 냈던 그 날 이후로 백우진이 3주 정도 안 보이더라고? 내가 그 이후로도 10번을 더 나갔었는데, 한 번도 못 봤어. 늘 있던 배우가 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했었던 기억이 나.
└ 설마, 숀 라이트와 그 동양인 배우가 마찰을 빚었었나?
└ Re :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지? 현장에서 스태프들이나 보출 반장이 하는 얘기들을 옆에서 들어본 사람이면 알 텐데, 백우진이라는 배우는 정말 열심히 한다고 소문이 자자해. 나도 그 배우가 매일매일 현장에 나오는 거 봤다니까? 그런 배우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안 나오고, 숀 라이트가 교체되었다면… 뭔가 확실한 인과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
80회차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거쳐 간 보조출연자는 수백 명.
그 중, 한 명에 불과한 출연자의 SNS 글이었으나… 금세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에는 충분했다.
그만큼, 가 2016년 개봉을 목표로 하는 현 라인업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작품임을 방증하는 현상이기도 했다.
원글은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삭제되었지만, 이미 주어진 ‘떡밥’은 널리 퍼진 후였다.
그렇게, 숀이 하차하게 된 배경에는 동양인 배우 ‘백우진’이 중심에 서 있다는 얘기가 기정사실화처럼 돌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과거 숀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었던 몇몇 사례들에 빗대 우진에게도 동양인 차별 발언을 했기 때문에 하차하게 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낳았다.
[숀 라이트, 3년 만에 재점화된 인종차별 논란에 침묵… 소속사 WCAA 측, 경위 파악 중] [흑인에 이어 아시아계 차별 발언까지… 할리우드가 나아갈 길은 아직 멀었다] [인식의 답보… 할리우드가 풀어가야 할 숙제]단순히 본인이 경험한 것을 풀어놓는 내용으로 시작했을지언정,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식의 추측이 가미되는 순간, 눈덩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이다.
별안간 생성된 논란 속에서, 그 중심에 선 인물이 지난날에 보여줬었던 모습들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 꼴이었으니.
기사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