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
최후의 생존자
태양계 화성 L2 포인트.
아무것도 없어야 할 이 막막한 공간에 수많은 금속 파편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수십 대의 탐사정들이 그 파편들 사이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들이 찾는 것은 인류의 흔적이다.
정확히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인류의 생존자다.
탐사정들은 3년 동안 이 주역을 샅샅이 뒤졌으나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인인 인공지능은 여기에 생존자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약하지만 신호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
비록 신호의 세기가 약해서 발신지 추적이 어려웠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인공지능 아르마의 제 1목표는 인류를 보호하는 것이었기에.
「C32구역 수색 종료」
수색을 끝낸 탐사정들이 모함으로 속속들이 복귀했다.
세틀러호.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거대한 우주선이며 외계로의 이주를 위한 방주선이다.
전장은 700미터를 넘었고 배수량은 무려 100만 톤에 가까웠다.
하지만 탐사정의 시각센서에 나타난 세틀러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메인 데크가 송두리째 함몰되었고 선체 여기저기가 뜯겨나가 폐선을 연상케 했다.
심지어 에테르 융합로까지 큰 손상을 입어 기동이 어려웠다.
인공지능 아르마는 해치를 열고 탐사정들을 받아들였다.
「이온 충전 중···다음 수색구역은 B16」
아르마는 각 탐사정들에게 수색구역을 할당했다.
최후의 전투가 끝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구의 신호는 끊겼고 태양계 내의 각 우주기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르마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인류는 멸망했다.
전성기 100억을 바라보던 인구가 송두리째 증발했고 수십 세기 동안 쌓아올린 인류의 유산이 와르르 무너졌다.
남은 것은 반신불수 상태인 세틀러호와 존재조차 의심스러운 생존자뿐이었다.
하지만 아르마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만약 그 생존자를 발견하기만 한다면, 인류 재건도 꿈만은 아니었다.
물론 전성기와 같은 성세는 힘들겠지만 인류의 후예를 자처할 정도는 되었다.
아르마는 그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해 오늘도 화성 주역을 수색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주공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탐사정들이 일제히 신호를 수신했다.
「어설트 아머의 콕핏 신호 포착」
거리가 꽤 멀었기에 탐사정 몇 대가 결합되어 커다란 로켓의 형상으로 변했다.
「트랜스폼 완료. 이온 추진기 최대출력」
노즐에서 플라즈마가 뿜어졌고 고속탐사정은 신호의 진원지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르마는 약한 신호를 발하며 우주공간을 떠다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형식 판독···4세대 어설트 아머의 콕핏으로 확인. 파일럿 판독···」
결과는 놀라웠다.
콕핏의 주인은 그녀의 인명 데이터베이스에서 최상위에 위치한 존재였다.
인류연합이 건재하던 시절에도 그를 아래로 둘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메가시티 시드니의 완전시민」
「최고평의회 의원」
「통합우주군 개척선단 대령」
「유물해석기관 수석연구원」
「어설트 아머 우버 파일럿」
「오메가 레벨 사이커」
이 타이틀이 가리키는 사람은 하나였다.
유지하.
인류의 구원자이던 그가 금속덩어리에 감금된 채 우주공간을 떠다니고 있었다.
「구조 개시」
고속탐사정이 분리되며 콕핏에 접근했다.
.
.
.
콕핏이 도크에 들어왔다.
그러나 세틀러호 내부에 인간이 맨몸으로 버틸 수 있을만한 공간은 거의 없었다.
아르마는 즉시 치료실 확보에 나섰다.
「격벽 폐쇄, 대기 주입 개시」
「기압, 온도 안정화」
작업용 로봇 워커 몇 대가 단단히 봉인된 콕핏을 강제로 개방했다.
그렇게 실려 나온 사람은 숨이나 붙어 있는지 의심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하나씩 사라진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워커들이 그를 침대에 뉘였고 아르마는 즉시 바이탈 사인 분석에 들어갔다.
「의식불명, 호흡저하, 신진대사 이상」
그 좁은 콕핏에 3년 동안이나 처박혀 있었는데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하다.
어쨌든 살아있긴 하므로 아르마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영양액 투여, 각성제 투여 준비」
가사상태에 빠져 있었던 인간을 깨우는 작업은 매우 길고 조심스러웠다.
아르마는 각고의 노력 끝에 침대 위의 인간을 깨우는데 성공했다.
남자, 유지하는 눈을 떴다.
「정신이 드십니까?」
“···”
「최고평의회 소속 인공지능 아르마입니다. 인공지능 코덱스 4항에 의거, 유지하 대령님을 마스터로 등록하겠습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희미한 눈으로 천장의 스피커를 바라보던 유지하가 겨우 입을 열었다.
“···개척선단은?”
「와해되어 최종방어선 부근을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중파상태의 세틀러호, 단 한 척입니다」
“플레이그는?”
「최종방어선에서 통합우주군의 마지막 공세를 뚫고 지구로 향했습니다」
그 후에 지구가 어찌되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지하는 직접 듣고 싶었다.
“지구는···인류는 어떻게 됐지?”
「3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아무런 신호도 송출되지 않습니다」
지구 정도의 행성에서 아무런 신호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멸망을 의미한다.
그 빌어먹을 외계 생명체들이 기어코 인류를 끝장낸 것이다.
유지하는 먹먹해져서 눈을 감았다.
플레이그.
1세기 전부터 태양계에 출몰하기 시작한 금속생명체다.
22세기 들어 태양계 행성에 영향력을 뻗으려던 인류는 그들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안타깝게도 플레이그의 힘은 인류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했다.
인류는 지구의 자원을 바닥낼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으나 전력차를 뒤집을 순 없었다.
선지자의 유물이나 9번째 행성 녹스의 워프게이트 등 반전을 꾀할 요소는 있었으나 결정적이진 못했다.
그렇게 인류는 끝까지 싸우다 멸망했다.
침묵하고 있던 유지하가 입을 열었다.
“생존자는 나뿐인가.”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나만 살아남았다 이거지···나만···”
유지하는 동지와 부하들의 최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플레이그와 싸우다 내뱉은 유언과 비명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했다.
―단장님! 먼저 갑니다!
―우린 죽어도 돼! 단장님만 저쪽에 보내자고!
―거기 도착하면 안부나 보내주십쇼!
부하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플레이그 군단은 건재했다.
개척선단은 최종방어선을 통과하지 못했고, 플레이그 군단은 거침없이 태양계 깊숙한 곳까지 밀고 들어왔다.
그 치열한 전투에서 유지하 대령은 치명상을 입고 모함으로 후송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모함을 포함한 개척선단 전체가 플레이그 군단의 포격에 녹아내렸다.
유지하는 정신을 잃기 직전, 창밖을 통해 우주 전체가 환하게 물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멸망의 신호탄이었다.
“···”
고뇌는 길었고 결정은 짧았다.
유지하는 무거운 목소리로 지시했다.
“아르마, 나를 마스터로 등록해라.”
「시민번호 확인되었습니다. 유지하 대령님, 앞으로 제가 당신을 보좌하겠습니다」
그는 낭랑한 목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환자 수송용 워커에 올라탔다.
“이 배, 지금 움직일 수 있나?”
「권장하지 않습니다. 에테르 융합로의 출력은 한계선까지 내려갔고 보조엔진 6기 중 5기가 오버홀을 필요로 합니다.」
“움직일 수 있냐고 물었다.”
「가능합니다」
“생존구역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선수 돌려. 지구로 간다.”
「마스터」
아르마는 말리려 했지만 그는 지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어두운 공간 어딘가에 지구가 있다.
비록 플레이그에 침식되어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서.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의견을 제시하려는 건지 안다. 이대로 도망가서 배를 수리하자는 거겠지.”
「개척선단의 기함 세틀러호는 방주선입니다. 시간과 자원만 있으면 개척선단 전체를 복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있으니까 인간을 생산하는 데에도 지장은 없고 말이지?”
「그렇습니다. 바이오백만 가동되면 마스터의 팔다리도 재생할 수 있을 겁니다」
“필요 없어. 배 돌려.”
「물론 저는 마스터의 지시에 따릅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비상시에는 마스터의 생존을 우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지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명령 불복종도 불사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물끄러미 콘솔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플레이그 놈들이 태양계에 들어왔다. 지금쯤은 지구가 침식됐겠지. 더 이상 인간이 살지 못한다는 건 네가 더 잘 알 거다. 하나 물어보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꼭 지구가 아니더라도 마스터가 살아갈 곳은 많습니다. 방주선에는···」
“가는 곳마다 플레이그가 몰려올 거다. 그때마다 도망가야 하나? 내가 지쳐서 포기하는 순간까지?”
「저로서는 가급적 확률이 높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0%보다는 0.0001%가 높지만 유지하에게 그런 숫자놀음은 큰 의미가 없었다.
“나는 지쳤다···”
묵직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젊은 외모를 가졌지만 수십 년 동안 플레이그와 싸워온 노장이다.
사선을 넘은 것은 셀 수도 없고 우주군을, 인류를 두 번이나 구해냈다.
하지만 그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지하는 착잡하게 되뇌었다.
“수십 년을 싸웠지만 내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도망친다 해도 같은 일이 벌어지겠지. 차라리 지구로 가서 죽음을 마주보겠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라면 더 이상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쪽이 맞을 것이다.
인류가 멸망한 이 상황에, 홀로 구차한 생명을 이어가봐야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유예조차 얼마 가지 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플레이그는 그만큼 지독하고, 강하다.
아르마는 인공지능이지만 그가 겪고 있을 고뇌를 아주 모르지는 않았다.
그녀는 주인에게서 연민 비슷한 무엇을 느꼈다.
「마스터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지구로 가도록 하죠」
“미안하군. 간신히 나를 찾아냈을 텐데.”
「마스터를 보좌하는 것이 저의 의무입니다. 다만 메인 엔진의 상태가 극히 좋지 않아 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
“가기만 하면 돼. 마지막으로 지구를 보고 싶은 것뿐이니까.”
「침대에 누우시면 곧장 출발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얼마 지나지 않아 선체가 부서질 듯 요동치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지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융합로가 폭발해 깔끔하게 죽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틀러호는 천천히 우주공간을 나아가고 있었다.
지구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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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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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0년 가을 현재 화성 최종방어선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는 2억 2천만km에 달한다.
통합우주군의 정규순양함으로는 5일이 걸리지만 개척선단의 세틀러호는 최대 1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에테르 융합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때의 얘기였다.
현재의 융합로는 최대출력의 1%도 내지 못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대부분의 추력을 우주공간에 뿌리고 다녔다.
만약 지구에서 세틀러호의 항해를 관측했다면 꽤나 장관이었을 것이다.
마치 혜성처럼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틀러호의 항해를 책임지는 인공지능 아르마는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형편이 못 되었다.
그녀의 마스터인 유지하 대령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크···윽!”
의식불명인 상황에서도 발작할 정도면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고통의 유발점인 오른쪽 가슴에는 그 어떤 생체기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아르마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의료용 모듈을 단 워커를 투입했다.
진정제가 투여되었지만 통증 호소는 여전해 침대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급기야 그의 가슴, 아니 전신에서 눈부신 광채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르마는 워커의 센서를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관측하고 있었다.
「에테르」
에테르로 추정되는 빛은 의료실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세틀러호 전체를 덮었다.
빛의 꼬리가 선미에서부터 수천km나 늘어지는 장관이 펼쳐졌다.
세틀러호 전면이 크게 일렁이며 푸른 공간이 나타났다.
「역추진 개시」
급히 속도가 줄어들었으나 우주선은 푸른 공간에 빠져들었다.
그 공간에선 빛, 태양풍, 방사선, 자기장 등 있어야 할 것들이 전혀 관측되지 않았다.
심지어 아르마마저 잠시 작동을 멈췄다.
그녀가 다시 연산을 시작한 것은 세틀러호가 이상한 공간을 빠져나온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수십 개의 센서와 카메라가 푸른 행성을 발견했다.
아르마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푸른 행성은 단 하나였다.
「지구」
뭔가 이상하다.
현재 세틀러호의 위치좌표는 화성과 지구의 중간 즈음이었다.
아르마는 항법 컴퓨터를 점검했지만 아무런 오류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세틀러호의 통신망이 잡다한 전파신호를 필터링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잡음 하나 없이 깨끗한 지구였는데.
아르마가 이를 분석하려 했을 때 갑자기 선체 후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세틀러호는 급격히 밸런스를 잃고 지구 중력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기권 강제 돌입, 위치 확인 중···」
옅은 대기가 섭씨 2,000도에서 플라즈마로 변해 관측을 방해했다.
세틀러호는 마치 운석처럼 일직선으로 지구 대기권을 뚫고 들어갔다.
거대한 우주선이 해수면에 낙하하면 그 충격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세틀러호엔 1회용이긴 하지만 비상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역추진 최대출력」
세틀러호 곳곳에 추진기가 생겨나 이온화된 에테르를 분사했다.
초속 30km에 이르던 속도가 0에 가깝게 떨어지자 선체 곳곳에서 굉음이 터졌다.
「비상착륙 10초 전, 9, 8, 7···」
100만 톤에 육박하는 우주선이 해수면에 비상착륙했다.
순간 주변의 바닷물이 밀려나갔고 그 여파로 높이 10미터가 넘는 해일이 생겨났다.
그 해일은 독도 근처에서 시위 중이던 일본 순시선들을 덮쳤다.
“쓰나미! 쓰나미다앗!”
“모두 아무거나 붙잡아라!”
해일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어서 천 톤이 넘어가는 순시선이 낙엽처럼 내팽개쳐졌다.
독도를 방패삼아 버텨낸 한국 해경들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와 방금 해일 뭐였죠? 황천 1급은 장난이었네.”
“함장님! 저기 사람들 빠졌습니다! 우리 쪽 인원은 아닙니다!”
“구조해라. 측량선 핑계로 난리친 건 아니꼽지만 사람은 살리고 봐야지.”
경비함이 구조에 나서는 동안 독도 근처에 착륙한 세틀러호는 모든 동력을 잃고 해저 깊숙이 잠겨들었다.
과거로 돌아오다
독도 해상 동쪽 100km에 착륙한 세틀러호는 해저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손상된 구역으로 바닷물이 밀려들었지만 아르마는 주인의 안전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호흡안정, 바이탈 사인 이상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