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79
제 279화
“더 강해진다……?”
“세림 교국의 무예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끼시지 않으셨습니까. 기존에 배운 것과 상성에 맞는 무공들을 전수해 드리지요.”
“…….”
말이 너무 달콤했다.
그녀는 눈을 다시 감는다.
귓바퀴 안으로 공기가 느껴진다. 엄마의 목소리가 웅얼거린다.
“그리해서… 그리해서…… 백의신룡 형제님이 얻는 게 무엇입니까?”
“차크라탄트와 그 몸을 투명하게 영체화하는 주술의 연구를 도와 주시겠습니까?”
“하핫, 안타깝군요. 형제님. 이 기술은 어릴 때 옛 신에게 영혼의 일부를 바쳐야만 가능한 일. 어른의 영혼은 받지 않을뿐더러 사후에는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아, 암살 교단의 천국이 이교도들에게는 지옥일 테니 그리 표현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냥 이론만 좀 연구하게요.”
“네?”
“원래 뭐든 공부하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쓸모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형제님?”
“인류의 진보와 인류의 번성. 그리고 나아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천희는 아까와 다르게 엄숙한 얼굴로 선언했다.
“도셨습니까?”
인류의 진보와 뭐? 일카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저는 보시다시피 의원이죠.”
그런 일카나에게 진천희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의원의 본분은 사람을 치료하는 겁니다.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고,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만드는 직업이죠. 그리고 저는 제 직업을 아주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상관인데? 갑자기 뭔 개소리냐?’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일카나에게 진천희는 열변을 토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한 겁니다. 당신의 기술도 그런 인류 진보의 초석이 되겠죠. 알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답에 그녀가 멍하니 진천희를 바라본다.
‘이놈…… 정상인의 눈이 아니다. 제갈가의 사람들은 다 저런 눈인가?’
진천희가 약간 짜증이 났는지 손을 뻗었다.
“지금보다 딱 다섯 배 강하게 해 드릴게요.”
“다섯 배씩이나?”
“대신 그거 이론만 좀 가르쳐줘 봐요. 어떻게 구동하는지 좀 확인하게. 제가 가설은 세웠는데 검증은 이런 거 말고는 할 방법이 없잖아요.”
“…….”
제갈가의 놈들은 다 이런 놈들인가?
진천희가 다시 말했다.
“고용 계약서는 제대로 챙겨 줄게요. 퇴직금까지 전부. 대신 연구실에 주 1회 와 주세요. 추가 수당 줄게요.”
“……아니…… 형제님…… 미친…….”
그렇게 궁귀에게는 쓸 만한 신참이.
유호에게는 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 * *
어깨의 점혈을 풀고 계약서에 지장을 찍고.
“두 장 겹칠 테니까 여기도 찍어 주세요.”
꾹.
“반으로 접을 테니까 낱장에도 지장을.”
꾸욱.
일카나가 알게 된 게 있다.
이놈이 미래를 본다는 말은 어쨌든 사실인 거 같다.
그녀의 진짜 정체는 암살 교단조차도 모르는 일.
아무도 알 수 없는 것들을 알아냈다는 건 미래를 읽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하지만…… 미친…… 이놈은 진짜 미친…….’
왜 중원인들이 굳이 ‘광룡’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백의광룡. 형제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차크라탄트랑 영체술 이론을 파악하여 정립, 관련 연구 논문을 작성 발표하여…….”
“……아니. 그런 개소리 말고 진정한 목적 말입니다. 그런 걸 하는 궁극의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아하!”
“아니, 무슨 처음 들은 것처럼 답하시는 겁니까.”
이 잘생긴 청년은 도무지 속을 알기가 어려워서.
그녀 같은 베테랑 살수도 이 청년의 행동 원리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다.
교국의 광신도들 중에서도 이만큼 미친 자를 찾기가 어렵다.
더 웃긴 건 이놈은 종교가 없다는 거다.
하다못해 십만대산에서 내려온 마교만 됐어도 이해가 됐을 터다.
진천희는 턱을 문지르다가 이렇게 답했다.
“음…… 사람을 살리는 것이겠죠. 감상적인 것을 빼고 말하자면 불특정 다수를 살리는 것.”
“살린다?”
“네. 아프지 않게, 죽지 않게. 가급적이면 오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 아픈 사람이 싫습니다, 저는. 특히 아이가 아픈 게 가장 싫어요.”
계약서를 찍기 전 했던 이야기가 더욱 자세히 튀어나오고 있었다.
“…….”
어릴 때 생각이라도 난 걸까. 일카나가 이마를 찌푸린다.
그런 그녀의 눈을 담담히 마주하며 진천희는 말을 이어 나갔다.
“비누라고 알고 있습니까? 단순히 손을 깨끗하게 하고 향기가 나는 게 목적인 게 아니라 병을 예방하기 위해 있는 거죠. 그게 보급될수록 인류의 수명은 자연히 길어집니다. 환자의 수도 줄어들 거고요. 최근에 만든 라이프 스트로우…… 아…….”
그 단어는 중원에서는 쓰기가 어려운 말이다. 진천희는 바로 말을 중원식으로 바꾸었다.
“정수흡관(淨水吸管). 정수흡관도 같은 원리고요. 그런 이유로 일단 세림 교국과 화 제국의 전쟁을 막고 싶어요. 지금 술탄께서는 전쟁을 은근히 원하셔서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죠.”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겠죠. 형제님. 저희 고명하신 술탄께서 전쟁을 원한다는 걸 모르는 교국민들이 없으니까요.”
“하하하. 그렇죠. 그리고 혈선교를 저지하고 싶기도 하고요.”
진천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었다.
묶지 않은 긴 머리카락이 청년의 손가락 사이로 흘러 내려갔다.
“그냥…… 그러네요. 아픈 게 싫고, 전쟁이 싫고. 그런데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테니까. 그냥…… 그런 겁니다.”
“…….”
그녀는 그런 진천희를 보더니 참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형제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그런가요?”
“네. 치밀한 것 같아 보이다가도 빈틈이 있고. 분명 찾는 건 큰 선인데 위선은 없고. 한 가지는 확실하군요. 형제님.”
“무엇인가요?”
진천희의 질문에 그녀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백의광룡. 사람을 살리는 것에 집착하다 미쳐 버렸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하하…….”
부정을 하고 싶어도 마땅히 부정할 말이 떠오르진 않는다.
지금까지 보여 준 행적들이 그 말이 사실임을 알려 주었으니까.
일카나는 생각에 잠기다가 결국 가식적인 표정을 완전히 거두었다.
그 말은 그녀가 가식을 버렸다는 뜻, 또한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말은…… 계산을 놓았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저는 형제님을 완전히 믿지는 못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있으니까요. 무수히 보아 온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형제님.”
“…….”
“인간은 연약합니다. 유약하지요. 금은보화로 몸을 가려도 짐승의 한입거리도 안 되는 게 바로 인간입니다. 몸도 마음도 말랑해서 어찌 변할지 모르지요. 그건 형제님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형제님. 곧 저를 죽이려는 추격자가 붙을 겁니다.”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일카나에게 큰 의미였다.
살고자 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금기의 말.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저는 형제님을 믿지 않습니다. 형제님을 믿기에는 형제님은 너무나도 미친 사람이지 않습니까. 다만…… 그래요. 저도 형제님과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군요. 한때는 말이죠.”
흉터가 생기기 전.
여린 날개는 언젠가 스스로가 이 세상에 도움이 될 거라 믿은 적이 있었다.
“형제님이 오 년 동안 저를 거두어 강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니 알 수밖에 없겠죠. 자살하지 않은 칼을 죽이러 교단은 올 겁니다, 형제님. 그건 형제님의 부담이 되겠죠. 괜찮겠습니까?”
“중원으로 떠나면 되지 않나요?”
“네. 형제님. 중원은 세외와 다르지요. 그들이라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허나, 틈이 있다면 반드시…… 저는 배교자니까요, 형제님. 그런 제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일카나는 되묻는다.
자신의 가치를.
진천희는 그녀의 눈에서 일카나가 여하륜과 함께하는 미래를 보았다.
그녀의 분노에 공감했고, 죽음에도 공감했다.
짧은 삶이었다.
불꽃같은 삶이기도 했다.
그만큼 쉽게 꺼져 버려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면…….
독자로서 있다 말하겠다.
그것은 그가 지불해 왔던 자그마한 동전 몇백 원이 그녀의 자취였고, 그 시간 동안 함께한 매일이 그 발자국이었으니까.
“그게 뭐가 어렵다고 가치까지 따지는지 모르겠군요.”
외과의는 허세를 담아 씨익 웃어 주었다.
“그러면……?”
“오면 작살 내면 그만입니다.”
여하륜과는 방향은 다르나 그 또한 패도였다.
컹!
황구가 자기를 잊지 말하는 듯 크게 짖는다.
“이 녀석이 있기도 하고요. 백린의각을 너무 얕보시는 거 아닙니까?”
그녀는 몰랐다.
흑도도 백도도 아닌 회색 길을 걷는 무인치고 사연 없는 무인이 없고.
그 궁귀단은 그런 사연 있는 무인들이 그런 사연에 대처하는 데 있어 전문가들이라는 것을.
“아…… 좀 적응이 힘들 수도 있겠군요.”
지옥의 훈련이 기다리기는 하겠다.
그래도 오 년. 다섯 배를 강하게 해 주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겠지.
* * *
며칠 시간이 더 흘렀다.
일카나도 삼왕자도 전부 호전되었고.
은왕야께서 찾아와서 따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냥 두셨다.
대신 꼬박꼬박 저녁을 만들어 바치고는 있다.
‘먹을 거 때문에 안 묻는 건 아니실 거고. 도리어 찔리는데, 이거?’
네가 뭐라고 말하든 붙잡아다가 심문한다고 길길이 날뛰지 않으신 건 다행이지만…….
속을 모르겠는 건 여전하다.
‘일단 은왕야께서 갓 튀긴 감자튀김에 환장하신다는 건 알겠어.’
그냥 심기나 거스르지 않게 열심히 감자를 튀겨 진상하고 있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은왕야께서 상을 주시기로 한 날짜가 되었다.
이번에는 일카나도 동행하라는 명 때문에 그녀도 함께 왔다.
진천희와 일카나가 나란히 부복을 하자 은왕야는 그런 둘을 삐딱하게 바라보신다.
“그래. 포상을 주려고 했는데…… 혹도 하나 생겼구나.”
“하하하…….”
그 혹도 부르셨잖습니까.
은왕야의 양옆에는 동창들이 서 있었고, 그의 뒤에는 가면을 쓴…… 제독태감도 계셨다.
‘뭐, 정보가 전달이 안 됐을 리가 없지.’
그동안 일카나에 대한 조사나 진천희 자신에 대한 감시 및 조사를…… 추가로 하셨을 거고.
겸사겸사 세림 교국 정세에 대한 조사도 하셨을 거고.
“그 혹을 내가 떼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 떼고자 하신다면 진즉에 떼셨으리라 사료되어…….”
“오랜만에 부복한 주제에 말은 잘도 하는구나.”
“엄…… 예를 그래도 표하는 게…….”
“됐으니 일어나라.”
“헤헤헤.”
“내 앞에서 이렇게 긴장을 푸는 놈은 네놈뿐일 거다.”
‘모르시는군. 속은 얼마나 바짝 긴장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