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003
01006 1006화
그는 바로 차트를 펼쳤다.
그 순간, 박성민의 얼굴에 가득한 장난기가 사라졌다.
환자의 병세를 확인하는 박성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의사였다.
빠르게 제임스의 차트를 확인하며 그가 말했다.
“우선 사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총 6일이 지난 상태라는 거네.”
“그렇습니다.”
“출혈이 몇 번 있었는데 지혈제로 일단 막아 둔 모양이고. 그 때문에 혈압하고 맥박이 계속 불안했었고.”
“네.”
태수는 조금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박성민은 차트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라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네. 폐부종의 원인이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아.”
“그게…….”
정곡을 찔린 태수가 머뭇거릴 때였다.
박성민은 스스로 답을 찾아냈는지 태수의 말을 끊었다.
“딱 보니까 간 때문이네. 이 정도면 부분 간경화가 진행되고 있는 거 같은데, 간 때문에 폐에 물이 차는 경우도 있잖아.”
“그렇긴 합니다.”
“좌우간 뭐든지 간 때문이라니까. 그건 그렇고, 담낭이나 담관에는 문제가 없다는 거 같은데…….”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속까지 속속들이 본 게 아니라서 확실하지 않지. 그런데 알부민을 투여한 기록은 없어.”
알부민은 간에 이상이 있을 때면 꼭 투여하는 약이다.
그걸 투여하지 않았다는 건 간 자체에는 역시 큰 문제가 없단 뜻이다.
태수는 더 중한 병세를 알고 있지만 제임스의 부탁대로 아직은 침묵하고 있었다.
대신 다른 부분으로 넘어갔다.
“소장과 상행결장에 문제가 보이고 있답니다.”
“이건 닥터 슈미트가 직접 확인했던 모양이야. 여기 보니까 수면마취를 한 상태에서 환부 내부를 어느 정도까지 들여다봤다는 기록이 있고.”
“깊이 확인은 못한 거 같습니다.”
“어떻게 확인을 해. 내부까지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는 건 진짜 우리 외과 계열 의사들밖에 없는데.”
“그건 그렇죠. 그리고 당장 수술을 할 순 없어서 응급처치로 속을 비운 게 전부라고 하네요.”
태수가 먼저 확인한 걸 말하자 박성민이 바로 그 이유를 추측해서 이야기했다.
“음식물이 흘러나와서 썩어 버리면 그때는 진짜 골치 아프니까.”
“제임스의 속은 완전히 비어 있는데 그동안 음식 섭취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게 최선이었을 거고요.”
“대신 영양제와 수액으로 버틴 거지. 저 몸은 살이 찐 게 아니라 부은 거고.”
박성민의 말에 태수도 동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우선순위에 들어갈 수 있나? 다른 환자들 상태를 좀 더 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지?”
“…….”
태수가 침묵하자 박성민이 얼른 뒷말을 이었다.
“나도 빨리 수술했으면 좋겠는데. 좌우간 다른 환자들 상태도 확인한 후에 확실하게 결정 내리자고.”
“그러시죠.”
“먼저 시작해 볼까나.”
턱.
박성민이 다른 환자의 차트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동시에 다시 집중한 얼굴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태수도 바로 다른 환자의 차트를 펼쳤다.
그러나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제임스의 병세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하지만 다른 환자들을 등한시할 순 없었다.
애써 자신을 다독인 태수는 다시 차트에 집중했다.
소요된 시간은 단 10분.
수술이 필요한 여러명의 환자 차트를 모두 비교한 시간이었다.
태수와 박성민은 그만큼 1초도 낭비하지 않고 수술이 필요한 모든 환자들을 확인했다.
탁.
차트 확인을 마친 순간 박성민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이건 좀 심한데. 내가 CT나 MRI는 바라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X-ray도 없으면 어쩌자고.”
“여기 그런 시설을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알아. 나도 아는데 아쉬운 마음에 말이 먼저 튀어나온 거잖아. 그래도 외과 의사들이 아픈 몸 이끌고 확인은 다 해 준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태수가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박성민이 빠르게 뒷말을 이었다.
“그런데 확인된 거라고는 골절이나 찰과상, 열상이 대부분이네. 내부가 어떻게 됐는지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어.”
“…….”
“다행히 내과에서 큰 문제는 없다고 소견을 보였으니까 믿어야지. 그래도 천만다행인 게 CBC(혈액검사) 기계는 살아 있어서 염증 수치나 백혈구 수치는 파악이 된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제임스 CBC 기록은 없는 거야? 제임스가 또 자기는 괜찮다고 밀어낸 거야? 하여간 저분도 참 어지간하시다.”
박성민이 절레절레 고개를 털며 말했다.
태수는 그 이유를 알지만 지금은 모르는 척했다.
“일단 피검사 결과만으로 보면 당장 응급수술을 요하는 환자는 없는 거 같습니다. 여기 티엔이란 분도 2, 3일 정도 시간이 있고요.”
“무슨 소리야? 저기 한 분 계시잖아.”
“전 제임스는 제외하고 말한 겁니다.”
“자식이. 농담하는데 참 거칠고 까다롭게 듣네. 야, 너 왜 그래? 조금 전에 제임스랑 진짜 무슨 일 있었어?”
박성민은 그동안 궁금한 걸 이번 기회를 빌려 진지하게 물었다.
하지만 태수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진 대답할 수 없었다.
“일단 제임스를 최우선으로 수술하는 방향으로 해야겠습니다.”
“마, 형님이 묻잖아, 인마. 무슨 일이야? 설마 이 날카롭고 느낌 좋은 형님의 촉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수술실 들어가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째 네 말을 들어 보니까 최대한 빨리 수술실로 밀고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
태수가 침묵하자 박성민의 눈빛이 더욱 가늘어졌다.
“당장 밀고 들어가?”
“안 됩니다.”
“왜, 상태가 좋지 않은 거 아니야?”
“우리가 못 견딥니다.”
태수는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몸 상태?
솔직히 말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밤새 무거운 짐을 지고 쉬지 못한 채 걸어온 여파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수술을 한다면 1시간도 집중하지 못할 터였다.
그 말의 뜻을 대번에 이해한 박성민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다른 분들은 며칠 여유가 있는 거 같습니다. 물론 가급적이면 빨리 수술을 진행하는 게 좋고요.”
“그래도 최소한 내과에서 계속 관리해 주고 있으니까 시간을 좀 더 끌 순 있잖아.”
“저도 그 점을 생각하고 말씀드린 겁니다.”
태수의 대답에 박성민이 덧붙여 말했다.
“좌우간 외과 의사들의 상처도 가볍지가 않아. 물론 아주 심각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수술만 하면 며칠 사이에 순차적으로 일선에 복귀할 정도라도 수술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
“그러고 보니 NGO 의사들을 수술한다. 이거 뭔가 좀 멋지지 않냐? 우리가 한국에서 비행기에 또 비행기에 또 비행기 타고, 그다음에는 물 건너 언덕 넘어 온 보람이 팍팍 느껴지는데 말이야.”
“의사들도 수술한다라.”
태수가 그 말을 곱씹자 박성민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뭐야, 너 여태까지 다른 의사들은 뒷전으로 빼 둔 건 아니겠지? 아무리 환자가 우선이라 해도 그러면 안 된다. 사람이 공평해야지.”
“아니요.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순서를 이렇게 바꾸자는 겁니다.”
슥슥.
태수가 빈 종이에 환자들 이름을 아래로 나열했다.
제임스가 첫 번째였다.
그리고 두 번째 수술은 내일 오전 중에 진행하기로 하고, 그 상대는 가장 병세가 심한 타머 주민이었다.
특이한 점은 두 번째 수술에 이어서 세 번째부터 일곱 번째 수술까지가 모두 의사였다.
박성민은 그걸 확인하고는 또 한 번 태수를 나무랐다.
“태수야,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 의사들만 수술하면 환자들은 어떻게 하자고.”
“선배님이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수술 후 며칠이면 일선에 복귀한다고요.”
“아차차! 그렇지. 그러면 동시에 더 많은 환자들을 수술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또, 또……. 좌우간 1타 2피 하자는 거 아니야.”
“네.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닥터 슈미트와 한 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니, 지금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태수의 의견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박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했으니까 빨리 움직이는 게 좋긴 하지. 그런데 우리는 언제 쉬냐? 아니, 쉬긴 쉬냐?”
“제임스를 수술하려면 쉬어야죠. 그 시간도 만들어 오겠습니다.”
“그래야지. 아 참, 그리고 미안하다.”
갑작스러운 박성민의 사과에 태수가 깜짝 놀랐다.
“왜 이러세요?”
“전에 너희들이 숨 쉴 시간도 없이 수술했단 이야기에 콧방귀 뀌었는데, 내가 여기 와 보니까 사실이잖아. 나도 곧 그렇게 될 건데 미리미리 사과해 둬야지.”
“선배랑 저 사이에 무슨 사과입니까. 전 잊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렇지? 태수는 역시 마음이 넓다니까. 뭐, 그렇다면 흠흠, 빨리 닥터 슈미트한테 다녀와. 우리가 쉴 시간도 좀 상의해 보고.”
박성민이 다시 원래대로 목소리를 경쾌하게 바꿨다.
앞으로 산재한 수술을 생각하면 이런 말들이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역시 박성민은 무거운 분위기를 싫어했다.
병실을 벗어난 태수는 닥터 슈미트를 찾아 박성민과 나눈 내용을 한 번 더 이야기했다.
닥터 슈미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닥터 제임스를 수술하고, 그다음에는 타머 주민, 그 이후에는 의사들을 수술하고 싶다는 건가?”
“맞습니다. 의사들이 빨리 회복하면 정체된 수술이 활성화될 수 있으니까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제가 마음대로 정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태수가 겸손하게 묻자 닥터 슈미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집도를 할 수 있는 의사는 닥터 최밖에 없어. 닥터 최의 결정이 곧 수술팀의 결정이란 이야기야.”
“어깨가 더 무거워지네요.”
“그걸 가볍게 만들어야지.”
“그렇게 해야죠. 그보다 수술실들이 모두 공습에 피해를 입었다는데, 따로 수술할 장소가 있습니까?”
태수의 물음에 닥터 슈미트가 바로 대답했다.
“2층 오른쪽 끝에. 그러니까 샤워실 옆에 임시 수술실을 우선적으로 하나 만들어 놓았어. 건물 잔해를 걷어 내며 기존 수술실에 있던 장비를 모두 모아 놨으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럼 다행입니다. 그럼 어시스던트를 보조해 줄 간호사 지원 좀 부탁드립니다.”
“수술 간호사들은 충분하니까 그건 문제 될 게 없는데, 닥터 최하고 일행들은 쉬지 않아도 되나? 안색이 꺼매.”
닥터 슈미트가 걱정하자 태수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3시간 정도 쉬었다가 제임스의 수술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하긴 지금 그 컨디션으로 무슨 수술을 하겠나.”
“더 짧게 쉬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 줘서 마음만 급합니다.”
태수의 솔직한 이야기에 닥터 슈미트는 고개를 저었다.
“쉴 때는 쉬어 줘야 해. 그리고 닥터 최와 일행들이 쉬는 동안 닥터 제임스는 걱정하지 마. 컨디션부터 끌어올려 놓도록 하지.”
“부탁드립니다.”
태수의 말에 닥터 슈미트는 여러 말 하지 않고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병실로 돌아온 태수는 제임스에게도 결정된 상황을 이야기했다.
“실은…….”
제임스는 긍정도 부정도 표시하지 않았다. 태수가 내린 결정이기에 존중해 줄 뿐이었다.
그건 집도의에 대한 예의다.
선후배를 떠나 당연한 매너이기도 했다.
곧 제임스의 병실에 닥터 슈미트와 신혜미를 포함해서 몇몇 간호사들이 들어왔다.
닥터 슈미트가 약간 걱정스런 기색으로 태수에게 말했다.
“가서 쉬게.”
“그럼.”
태수는 두말없이 몸을 돌렸다.
체력이 올라와야 수술도 쉬워진다.
그 하나의 명제만 가지고 움직여야 했다.
태수와 박성민, 김혁권은 같이 수술하게 될 간호사인 로렌스의 안내를 받아 의사 휴게실에 도착했다.
의사 휴게실이라고 해 봐야 야전 침대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덥고 건조한 지역이지만 선풍기 하나가 전부이기도 했다.
에어컨, 냉장고는 전력난으로 꿈도 꿀 수 없었다.
지금은 이런 허접한 휴게실도 감지덕지였다.
태수가 더운 날씨에 하얀 얼굴이 더욱 상기된 로렌스 간호사에게 신신당부했다.
“꼭 3시간 후에 깨워 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준비해 달라고 부탁드린 건…….”
“기억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좀 주무세요. 진짜 얼굴이 말이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그럼 3시간 후에 뵙죠.”
태수가 인사하자 로렌스 간호사도 눈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그제야 박성민과 김혁권이 야전침대에 누웠다.
이 자리의 주인이 누군지는 관심도 없었다.
“으아아아, 내 허리.”
“후우.”
두 사람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