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154
01157 1157화
오는 길은 말썽이었지만 가는 길은 그래도 비교적 수월했다.
그건 도로를 달리는 구급차 이야기였고, 내부 상황은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었다.
환자는 엎드린 상태였고, 구급차 속에는 태수와 김혁권, 서영우가 타고 있었다.
경찰차에 송현미 간호사와 황경석, 그리고 노지연 간호사가 탑승해 길을 트는 중이었다.
문제는 구급차 내에 구비된 ECG(심전도 모니터) 수치가 너무도 좋지 않았다.
“최 팀장, 혈압하고 맥박이 또다시 떨어지고 있어. 그리고 oxygen saturation(산소포화도)도.”
“산소포화도요? 역시.”
“왜? 뭔데.”
“왼쪽 폐에 hemopneumothorax(혈기흉)도 있을 거라 추측했는데…… 역시 맞는 거 같습니다.”
태수의 말에 서영우의 눈살이 확 찌푸려졌다.
“그럼 pleural cavity(흉막강)에서도 출혈이 있다는 거잖아. 게다가 기흉까지 겹친 거고.”
“갈비뼈 골절로 피해를 입었겠죠. 이럴 때가 아니라 일단 피부터 좀 빼내야겠습니다.”
“또 피? 수혈팩이 얼마나 남았더라…….”
서영우가 뒤적거리는 사이 태수는 메스를 들고 공우혁에게 말했다.
“카테터하고 니들홀더 좀 준비해 주세요. 거기 서랍에 보면 봉합사가 있을 겁니다.”
“잘 아네.”
“좀 타 봤으니까요. 그럼 바로 시작할 테니까 준비해 주세요.”
태수는 시간 끌 상황이 아니라 바로 메스를 엎드린 환자의 옆구리 쪽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최 팀장, 스톱!”
“네?”
“수혈팩은 없고, 지금 연결한 것도 거의 다 떨어져 가. 지금 그거 터트리면 수습 불가라고.”
“…….”
태수가 멈칫한 얼굴로 바라보자 서영우가 다시 입을 열어 강하게 탄식했다.
“출발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럴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젠장.”
서영우가 자책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위로하기보다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생각해야 했다.
태수는 우선 운전기사에게 물었다.
“병원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한 3킬로미터, 시간상으로는 7분 정도요.”
“좀 더 시간을 단축해 주세요, 어떻게든.”
“알겠습니다. 앞에 달려!”
빵!
운전기사가 경적을 강하게 울리며 경찰차를 뒤에서 압박했다.
경찰차가 그 신호를 알아들은 건지 구급차가 좀 더 빨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로 만족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대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태수가 휴대폰을 꺼내 든 순간 공우혁의 전화가 왔다.
바로 받아 든 태수가 먼저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병동, 수술실은 모두 준비 중이래. 도착하는 대로 바로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쪽은요?”
“지금 막 출발했어. 현장은 알아서 정리하라고 했고.”
“수술 끝나고 뵙겠네요. 수고하십시오.”
“그러자고.”
공우혁과 통화를 마친 태수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공간을 이용해 어디까지 왔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서울 지리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태수였지만 병원으로 가는 대로에 올라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번뜩이는 생각에 태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이럴 때는 정관영이 제일 생각났다.
“선배님.”
“네, 선생님. 지금 수술 준비 마치고 과장님들하고 현관에서 대기 중입니다. 환자들은 두 명만 이쪽으로 오고, 나머지는 신속대응센터로 향하기로 얘기가 됐습니다.”
잔뜩 긴장한 정관영 목소리에 태수가 급히 부탁했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고, B형 수혈팩 좀 준비해 주십시오.”
“수술실에 모두 준비해 놨습니다.”
“아니요. 도착하자마자 수혈해야 할 상황입니다.”
태수의 말에 정관영의 목소리가 바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최소한 세 팩,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5분 내로 도착할 겁니다.”
“바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정관영의 목소리를 끝으로 태수는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서영우와 김혁권에게 생각한 걸 얘기했다.
“정문 통과하면 바로 찌를 겁니다.”
“그래서 준비를……. 알았어.”
“바이탈은요?”
“일단 억지로 유지는 하고 있는데, 조금씩 떨어지는 중이야. 아무래도 흉강과 복강에 출혈이 계속 있는 거 같아.”
“이제 곧입니다. 곧 도착합니다.”
태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초조한 마음을 억눌렀다.
태수뿐만 아니라 서영우와 김혁권도 마찬가지인지 구급차 내 분위기는 심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환자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서영우가 코데인을 투여해 놓아 기도로 피가 역류하진 않았다. 하지만 혈기흉이 계속 진행 중이라 호흡이 떨어져 치아노제(청색증)도 일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만 더 지체된다면 산소 부족으로 큰일 날지도 모른다.
태수도 알고 있지만 대책 없이 손을 쓸 수가 없어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중이었다.
그때 운전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문이 보입니다.”
“혁권 씨.”
태수가 부르자 김혁권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통해 앞을 바라봤다.
“준비해요. 사인 보낼게.”
“…….”
태수와 서영우는 대답하지 않고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리고 곧 구급차가 속도를 줄여 우회전을 했다.
다시 직진으로 달린단 느낌이 든 순간이었다.
“캡틴, 지금!”
김혁권은 소리를 치고 곧바로 태수의 옆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태수는 들고 있던 메스로 환자의 왼쪽 갈비뼈 사이를 깊이 찔렀다가 뺐다.
그러자 그 자그마한 틈에서 피가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푸아악!
얼마나 피가 많이 쏟아지는지 구급차 내부에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동시에 ECG(심전도 모니터)의 수치가 사정없이 춤을 췄다.
“아쉬운 대로 수액부터 퍼부을게.”
서영우는 그렇게 얘기하고 IV를 최대한 열었다.
하지만 혈액과 수액은 엄연히 성분이 달랐다. 수액을 아무리 많이 붓는다고 해도 피가 보충되는 건 아니었다.
태수와 김혁권은 억지로 막지 않았다.
피가 흐르는 대로 놔두며 배액관을 상처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러자 무차별적으로 터지던 피가 카테터 내부를 따라 일정하게 흘러내렸다.
삑삑!
ECG의 소리가 너무 요란해 신경이 쓰였지만, 태수와 김혁권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배액관과 살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물론 겉으로만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실은 목이 바짝바짝 말라 갔다. 이 정도로 피가 맺혀 있었다면 흉부에도 만만치 않은 상처가 있단 뜻이다.
억압된 폐가 부풀며 호흡만 좋아지고 있을 뿐, 출혈은 계속되었다.
체내 혈액이 빠르게 줄고 있어 치아노제(청색증)이 점점 짙어졌다. 이젠 심장으로 돌아가는 혈액의 양조차 부족하단 뜻이다.
그걸 지켜보고 있는 태수와 김혁권, 서영우의 입속도 타들어 갔다.
결국 태수가 운전기사에게 소리쳤다.
“기사님, 좀 더 빨리!”
“30초!”
“더, 더, 더 빨리!”
“에라이, 비켜, 비켜!”
빠앙!
앞서가는 경찰차가 갑갑했는지 운전기사가 버럭 소리쳤다.
급가속에 따른 굉음이 들렸다.
하지만 원내를 달리는 중이라 속도가 확연히 차이 날 정도로 올라가진 못했다.
지켜보던 김혁권이 걱정할 정도였다.
“일단 다시 막아 놓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미 혈관에서 나온 피를 어떻게 돌려보내시게요.”
“그걸 누가 몰라요? 그래도 흉막강 안에 좀 더 머물게……. 제기랄, 그래도 소용없잖아.”
“빨리, 제발.”
태수도 서서히 뒷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아차하면 심장이 멈추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
1미터를 가는 게 천 리보다 멀게 느껴지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앞으로 나와 있으라고 할 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늦었기에 더더욱 가슴만 졸였다.
삐비빅!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급격하게 울려 왔다.
혈압은 이미 수치가 표시되지 않았고, 맥박은 치솟을 대로 치솟았다.
진짜 심장이 멈출지도 모를 상황!
그때였다.
끼익!
구급차가 급히 멈추고 동시에 트렁크 문이 열렸다.
트렁크 문을 연 건 정관영이었다. 그 옆에 이성혁이 혈액팩을 3개가 아니라 품에 최대한 많이 안고 있었다.
“선생님!”
“던져!”
태수가 외치자 이성혁이 손을 빼 집히는 수혈팩을 아무거나 던졌다.
김혁권이 날아오는 수혈팩을 잡아채 태수와 서영우에게 바로바로 전달했다.
서영우는 팔과 연결된 IV에, 태수는 경정맥과 연결해 놓은 IV에 각각 혈액팩을 달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달자마자 손으로 빠르고 강하게 반복적으로 쥐어짰다.
착착착.
구급차 내부에 ECG의 따가운 소리 외에 그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태수와 서영우는 양손을 이용해 혈액팩을 2개씩 짰다.
짜고 또 짜고.
폐와 연결된 배액관에서 피가 계속 새어 나왔지만 그보다 들어가는 양이 더 많았다.
정관영과 이성혁은 구급차에 올라가진 못하고 그 모습을 눈이 빠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수혈을 이어 가고 또 이어 가던 중이었다.
삑삑.
귀를 따갑게 울리던 ECG(심전도 모니터) 소리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태수와 서영우는 그걸 느끼고 동시에 ECG를 바라봤다.
전체적인 수치가 조금은 안정되었다.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언제까지 시간을 소모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경찰차로 앞서 달렸던 황경석과 송현미 간호사, 노지연 간호사가 도착했다.
구급차 내부가 피바다가 된 걸 본 그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왜 그렇게 재촉했는지 이제야 알게 된 탓이다.
다들 도착하자 태수와 서영우가 시선을 마주쳤다.
끄덕.
동시에 같은 고갯짓으로 사인을 주고받았다.
그 후, 바로 태수가 김혁권에게 말했다.
“이동 준비하시죠.”
“후우. 이거 쉽지 않겠는데. 아자!”
김혁권이 스스로를 독려하며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CG 패드를 떼고, 인공호흡기에서 엠부백으로 바꾸는 일까지 신속하게 진행됐다.
그사이에도 태수와 서영우는 한시도 손을 쉬지 않았다.
김혁권은 인공호흡기를 대신한 엠부백을 손으로 쥐어짜며 구급차 밖에서 쳐다보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말했다.
“한 명은 가서 승강기 잡아요. 그리고 다들 몸 풀어요. 달려가야 할 거 같으니까.”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알지만, 평소 어떤 응급 상황에서도 태연한 김혁권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긴장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이성혁은 얼른 몸을 돌려 병동 건물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활짝 열려 있는 현관문을 본 순간 태수가 말했다.
“가시죠.”
“그러자고.”
스륵!
말과 동시에 스트레쳐카를 구급차 밖으로 밀었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황경석과 정관영, 그리고 간호사들이 재빨리 스트레쳐카의 다리를 펴며 땅에 안착시켰다.
그사이 김혁권이 엠부백과 함께 구급차에서 내렸다.
“달려!”
“7번 수술실입니다!”
황경석이 외치며 스트레쳐카를 밀자 정관영이 뒤따라 소리치고 달렸다.
타다닥!
그들이 멀어지는 사이 태수와 서영우도 구급차에서 내렸다.
서영우가 허리를 억지로 한 번 뒤로 젖힌 후 태수에게 말했다.
“우리도 달려야지?”
“우선 수술실에 들어가서 바이탈부터 안정시키고, 다시 준비하고 수술 시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젠 그 정도 눈치는 있다고. 그보다 달려 볼까?”
“먼저 갑니다.”
태수가 먼저 달리기 시작하자 서영우가 아차 한 얼굴로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수술실 층에 도착한 태수와 서영우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수술실로 직행했다.
정관영에게 들었던 7번 수술실에 들어서자 환자는 수술대로 옮겨져 있었다.
옆에는 숨을 헐떡거리는 외과 레지던트들이 보였다.
아는 척 할 여유는 없다.
그들도 인사할 상황이 아니란 걸 알고 정관영, 이성혁과 함께 빈 스트레쳐카를 끌고 얼른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남은 건 다시 그 수술팀원들이 전부였다.
환자는 여전히 엎드린 상태로 척추도 골절된 상태였다.
해당 의과 전문의가 확실하게 확인하기 전까지는 얼굴이 하늘로 향하게 눕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칫 상황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면 수술을 이대로 진행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