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259
01262 1262화
그때 임진호가 정유현에게 물었다.
“정 선생도 병원장님 따라서 잠깐 저기 들어갔다 오지 않았어?”
“…….”
정유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태수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사실이야?”
“……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죄,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서.”
정유현은 뭔가 쫓기듯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태수가 자신이 소속된 화이트엔젤 팀장이란 걸 알면서도 대답을 피했다.
그 모습에 태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저 녀석이 말만 나와도 사색이 되는 건데요?”
“최 팀장이 들어가서 확인해 보든가.”
“임 선배가 대신 해 주시면 안 됩니까?”
“싫어. 절대. 나도 바빠서 이만.”
임진호는 상상만으로도 질색한 얼굴로 멀어져 갔다.
그제야 옆에 있던 김혁권이 말했다.
“도대체 병원장이 뭘 어떻게 하는데 저러는지 좀 궁금하긴 하네요.”
“저도 궁금한데, 별로 들어가 보고 싶진 않네요.”
“그건 나 같아도 마찬가지일 거 같습니다.”
“그럼 우리도 슬슬 일하러 가실까요?”
태수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환자를 향해 걸어가는 순간 태수와 김혁권의 눈빛은 비장하게 바뀌었다.
몇몇 환자들을 살피고 치료한 후 해당 의과로 트랜스퍼시킨 후였다.
언제나 신기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진료 시간인데도 신속대응센터에는 환자가 많았다.
신속대응센터는 엄연히 응급실로 구분되어 있다.
진료 시간에 응급실을 이용하게 되면 응급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치료비가 더 비싸게 책정된다.
성호종합병원은 그런 개념이 크게 없다지만 약간의 차이는 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진료시간에도 신속대응센터를 찾아왔다.
정말 아파서 오는 경우도 있었고,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게 싫어서 찾아오는 환자들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동네 병원에서 진단서를 가져와 바로 검사를 받고 입원하러 신속대응센터로 들어오기도 했다.
의료진들은 그런 환자들을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속대응센터에만 환자가 많은 게 아니었다.
여기보다 훨씬 많은 환자들이 외래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환자에게 이동하던 중 김혁권이 태수에게 말했다.
“오늘은 유독 의사들이 조용하네.”
“아무래도 병원장님이 계시니까 눈치 보이는 모양입니다.”
“왜 눈치를 보냐고. 자기 일에 당당하면 눈치 볼 일이 뭐가 있다고.”
“원래 윗사람이 있으면 좀 눈치도 보이고 그러는 겁니다.”
태수의 말에도 김혁권은 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분이 외국만 나가면 위아래 없이 행동하시더만.”
“제가 여기서는 뭐 누구 눈치 봅니까?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그거야 그렇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참 눈치 안 보고 할 거 다 하고 다닌단 말이야.”
“방금 말씀하셨잖습니까. 제 일에 당당한데 왜 눈치를 보겠습니까.”
“정답. 저 의사들이나 좀 눈치 안 봤으면 좋겠는데, 그거야 알아서 하겠지.”
김혁권이 스스로 말하며 답을 찾아가자 태수는 미소만 지었다.
두 사람의 말대로 의료진들은 황석찬 병원장의 눈치를 상당히 많이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두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였다.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새로운 환자에게 도착했다.
입고 있는 얇은 남방과 면바지에 먼지가 가득 묻어 있었다.
척 봐도 건설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는 스트레쳐카에서 몸을 웅크리고 발목을 잡은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끙끙.”
태수는 심각해진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환자분, 제 말 들리십니까?”
“끄응. 네.”
“정확하게 어디가 아프신 거죠?”
태수가 묻자 환자가 가까스로 말했다.
“발목을 다쳤…… 끄응, 다쳤습니다.”
“어떻게 다치신 겁니까?”
태수가 질문을 하며 발목을 가볍게 쥔 순간이었다.
“그…… 그러니까 크읍!”
그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 고통을 억지로 참아 냈다.
반면, 태수는 그런 그의 표정을 흔들림 없이 지켜봤다.
잠깐 만져 봤지만 부러진 건 아니었다.
부러졌다면 아마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을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아무래도 어딘가에 부딪쳐 타박상을 깊게 입은 것 같았다.
뼈에 실금이 간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그때 태수의 뒤로 누군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저기…… 어떻습니까?”
“누구신지요?”
“같이 일하는 공사장 반장입니다. 접수하고 오느라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오셨네요.”
반장은 말을 하면서도 태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알 것 같단 표정이었다.
그사이 김혁권이 차트를 내밀었다.
방금 신속대응센터 간호사가 작성해서 가져다 준 차트 같았다.
태수는 차트를 보며 반장에게 물었다.
“환자분 성함이 채민석 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일하다가 발목에 로프가 묶였다고 적혀 있네요. 바로 발견한 게 아니고 기계가 당기자 비명을 질러서 얼른 풀었다고요.”
“제가 현장에 있던 도끼로 로프를 찍어서 끊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태수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차라리 무언가에 발목을 맞은 게 더 나을 터였다.
로프에 묶인 발목이 전체적으로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면 문제가 조금 심각했다.
“일단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김 간호사, scissors(가위).”
“여기.”
“소독약 좀 준비해 주세요.”
태수는 이야기를 하며 반장을 슬쩍 쳐다봤다.
그는 눈치챘는지 얼른 채민석의 양손을 맞잡았다.
고통에 겨운 채민석은 쉽게 손을 주려 하지 않았지만 반장의 힘이 더욱 셌다.
“채 씨, 조금만 참아. 최태수 선생님이 봐주시니까 참으라고.”
“최…….”
“그래. 기사 보면서 멋진 의사라고 했던 그 선생님 말이야. 그러니까 참아.”
“끄응!”
반장의 말이 사실인지 채민석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도 억지로 웅크린 몸을 폈다.
태수도 사람인지라 이런 순간이 편했다.
자신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상대가 자신을 안다.
자신을 신뢰해 주는 상대를 만나면 조금 더 힘이 나기 마련이었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너, 너무 아프…….”
“김 간호사, 압박붕대 좀 입에 물려 주세요.”
태수의 말에 김혁권은 바로 행동에 옮겼다.
압박붕대를 채민석의 입에 물려 주며 나지막이 말했다.
“최 팀장이 알아봐 줘서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원래 진료 볼 때 열심히 하는데 좀 더 신경 쓸 거 같네요.”
“김 간호사.”
“네네. 조용히 하고 있겠습니다.”
태수의 부름에 김혁권이 입을 다물었지만 채민석에게 찡긋거리는 걸 잊지 않았다.
의사가 자신을 더 신경 써 준다는 말에 채민석도 고통을 이길 힘이 나는지 압박붕대를 물고서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프지만 한결 편안한 채민석의 얼굴을 본 태수도 자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바로 의술이었다.
치료를 하고 수술을 하는 것도 의료고 의술이지만, 서로가 신뢰하고 또 환자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부터가 의술의 시작이었다.
태수는 밝아진 기분만큼 더욱 정성을 들여 아픈 발목을 덮고 있던 바지와 양말을 잘라 냈다.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채민석은 크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드러난 발목을 내려다보던 태수와 김혁권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음.”
“쓰읍.”
김혁권은 입만 살짝 벌린 채 공기를 소리 나게 빨아들였다.
안타까움을 최대한 억눌러 표현한 것이다.
김혁권이 그럴 정도로 상처는 가볍게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발목을 기준으로 로프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고, 온통 보라색으로 변색된 상태인 데다 피딱지도 보였다.
이런 경우에는 근육 손상도 문제였지만 아킬레스건이 멀쩡한지도 확인해야 했다.
“혁권 씨, disinfection(소독)부터.”
“이건 거즈나 솜으로는 안 되고, 소독약을 들이부어야겠는데요.”
“여기 좀 부탁드릴게요.”
태수는 김혁권에게 소독을 일임하고 상체로 올라갔다.
그리고 의료 카트에서 포도당이 연결된 IV(정맥주사) 세트를 꺼내 들었다.
“링거부터 연결하겠습니다. 팔 좀.”
“으음, 여, 여기.”
“따끔합니다.”
태수는 그 말과 동시에 IV 바늘을 팔뚝에 찔렀다.
채민석은 다가올 통증에 눈을 꼭 감았지만 느껴지는 건 포도당의 시원함뿐이었다.
눈을 뜬 그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태수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약을 연달아 투여하며 말했다.
“지금 진통제하고 염증약을 투여하는 중입니다. 소독되는 대로 발목도 자세히 살펴볼 거고요.”
“끄응.”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으니까 곧 고통도 많이 줄어드실 겁니다.”
태수는 친절하게 말하며 김혁권을 쳐다봤다.
그 눈길을 느꼈는지 그는 바로 대답했다.
“소독 끝.”
“어디 보자.”
태수가 다시 내려가서 김혁권이 소독한 발목을 다시 살필 때였다.
그르륵.
뒤에서 스트레쳐카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비어 있던 옆자리에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119 구급대원의 손에 의해 도착했다.
그는 배가 아픈지 앓는 소리를 심하게 냈다.
“아이고, 나 죽는다!”
그 소리에 태수가 힐끔 쳐다봤다.
요란한 고함 소리만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119 구급대원이 태수에게 다가왔다.
“어? 최 팀장님.”
동부간선도로 사고 때 만났던 덩치 좋은 구급대원이었다.
강현철.
덩치만큼이나 강인한 이름이 인상적이라 태수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엔 반가움과 다급함이 공존했다.
태수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환자는…….”
“이름은 김병수라고 합니다. 자택에서 본인이 직접 신고해서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급성복통인가요?”
태수가 묻자 강현철 대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프다고만 하고 정확한 이야기는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맥박이 좀 약하고 열이 조금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식은땀도 흘리고요.”
“혹시 특이사항은요?”
“집에 술 냄새하고 음식 냄새가 상당히 많이 나던데요. 어젯밤에 파티라도 했는지 정원 곳곳에 빈 술병도 많았습니다.”
강현철 대원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울에 정원 딸린 집이 많진 않은데요.”
“상당히 부촌에서 모셔 온 분입니다.”
“돈 많아도 병은 못 피하나 봅니다. 좌우간 알겠습니다. 모셔 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별말씀을. 그럼 전 접수실에 인적 사항 기입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안전.”
척.
강현철 대원은 가볍게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서서 얼른 달려갔다.
밥 한번 먹자고 하고 싶어 하는 아쉬운 눈빛을 봤지만 끝내 부르지 않았다.
서로 할 일이 있기에 그런 여유로운 대화를 나누기가 애매했던 탓이다.
“끄응.”
“으윽.”
태수를 기준으로 좌우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2명의 환자를 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도움을 청하러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금 여기까지 신경 써 줄 의료진이 없었다.
태수가 나타나면 의료진들은 대부분 주변으로 오지 않았다.
정말 급한 일이면 태수가 부를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경상 환자는 태수가 능히 대처할 수 있단 믿음도 있었다.
태수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의료진들을 탓하진 않았다.
여유가 없는데 억지로 여길 봐 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태수가 2명의 환자를 모두 봐야 할 상황이었다.
태수는 채민석에게 미안한 얼굴로 양해를 구했다.
“옆의 환자분 때문에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진통제가 퍼지는 중이고, 제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혹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진통제 효과가 발휘되고 있는지 채민석은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는 그런 채민석이 고마웠다.
살펴본 상처의 아픔은 이렇게 순순히 대답하기 힘들 정도였다.
자신이 직접 살폈기에 확실히 알았다. 그런데 진통제로 조금 아픔이 줄어들었다고 다른 사람도 생각했다.
“이런 분들이 많아야 하는데.”
“내 말이요.”
어느새 옆에 도착한 김혁권이 태수의 중얼거림에 대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