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288
01291 1291화
태수가 과하게 움직인 만큼 전병수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맥박 유지. 더 안 떨어지고 있어!”
“cardiotonic(강심제)!”
“오케이. 바로 투여할게!”
전병수의 목소리가 조금은 되살아났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좋아지고 있는 환자 상태에 마음이 크게 들썩이는 모양이다.
반면, 투약을 부탁한 태수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
누구도 그 외에 말을 하지 않았다.
귀로 듣기만 했지, 대답할 정신은 없었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단 말만 다급한 마음 한구석에 떠오를 뿐이었다.
그걸 태수가 이렇게 직접 보여 주고 있었다.
그렇게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반면, 비장과 췌장을 오가며 응급처치를 이어 가던 태수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너무 무리하고 있었다.
리듬을 타고, 호흡을 같이 하며 속도를 올린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근육이 삐걱거릴 정도로 빨리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게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근육을 키워 체력을 길렀지만 무리한 움직임이 언제까지 계속될 순 없었다.
흐르던 땀조차도 서서히 말라 갔다.
신체에 이상이 생기고 있단 걸 몸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 순간 태수의 시선이 손정환에게로 향했다.
생사가 오가는 응급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성인도 힘든 대수술이다.
그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터였다.
저 자그마한 몸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 왔다.
태수는 머릿속에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의 웃는 모습은 어떨까.’
그걸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꼭 봐야겠다.
미소 지으며 당당히 두 발로 서 있을 모습을, 상상이 아니라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 순간 태수가 느끼던 뻐근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더, 좀 더.
난 할 수 있다.
지금 나에게 한계는 없다.
태수는 그렇게 속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쳤다.
그럴수록 정말 한계를 벗어나는지 점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태수가 모든 걸 잊고 수술에만 집중할 때였다.
그릉!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의료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태수가 그토록 기다리던 화이트엔젤팀이었다.
모두 들어서자마자 수술 가운과 수술 장갑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준비를 마친 박성민이 김수진 간호사와 함께 달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좋지 않은 상황을 알고 있던지 박성민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수술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던 탓이다.
양손이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걸 본 박성민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태수가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는 상태란 걸 직감했다.
지금은 방해하면 안 된다.
그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때 박성민은 김혁권과 시선이 마주쳤다.
끄덕.
김혁권이 고개만 끄덕였다.
박성민은 더 묻지 않고 낮고 빠르게 의료진들에게 말했다.
“각자 전문 분야로 흩어져! 김 간호사, 우리는 흉부로.”
“준비하고 올게요.”
김수진 간호사가 의료 카트를 향해 달려갔다.
그사이 박성민은 손정환의 흉부에 도착했다.
뚫어지게 살펴보던 박성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육안으로 봐도 심박수가 확연히 떨어진 탓이다.
시선을 돌려 ECG(심전도 모니터)를 확인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수가 왜 이렇게 수술에 집중하고 있는지 이제 제대로 알아챘다.
그때였다.
드르륵!
“왔어요.”
김수진 간호사가 의료 카트를 끌고 다가오자 박성민이 바로 손을 내밀었다.
“센리트렉터, 반사경.”
“여기!”
탁.
그걸 받아 든 박성민은 곧장 심장과 폐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태수가 분명 확인했을 터였다.
하지만 한 번 더 확인하며 확신을 갖는 게 중요했다.
박성민은 센리트렉터로 아주 조금씩만 폐를 움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반사경을 이용해서 확인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태수가 수술해 놓은 모든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자신이 도착한 줄도 모르는 태수를 힐끔 쳐다본 박성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자식이. 이렇게 다 해 놓고 난 왜 들어오라고 한 건데.”
그런 투정이 절로 나올 정도로 흉부는 깔끔하게 수술된 상태였다.
그렇다고 박성민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할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태수의 부담을 줄여 주는 게 선배 된 도리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꿋꿋하게 버텨 준 환자에 대한 예의였다.
심박수가 천천히 떨어지는 건 환자가 버티고 있단 증거다.
그런데 의사인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두 손을 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리트렉터 하나 움직이는 일이라도 좋았다.
아직 세상의 단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이를 이대로 떠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최태수, 나도 할 일 좀 주라!”
박성민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태수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방해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성민은 땀마저 말라 버린 태수의 상태를 이대로 지켜만 볼 수 없어서 나섰다.
태수도 김혁권 외에 누군가 바짝 다가온 느낌을 받고야 시선을 돌렸다.
박성민을 두 눈으로 확인한 태수의 표정이 얼떨떨하게 변했다.
“선배, 언제…….”
“한참 됐으니까 각설하고. 그래서 난 뭐부터 하면 돼?”
“흉부는…….”
“다 확인했다니까. 응급 상황이니까 따지지 말고 시켜만 달라고.”
박성민은 마치 수술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재촉했다.
그게 결코 수술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니란 건 누구보다 태수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박성민이 그동안 신속대응센터와 화이트엔젤에서 활약한 걸 잘 안다.
흉부외과 외의 외과 질환 수술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춘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할 일?
차고 넘쳤다.
태수는 바로 서강재 쪽을 턱짓하며 말했다.
“저 녀석 좀 밀어내고 비장부터 수습해 주세요.”
“바로 그거지. 서 선생은 그만 뒤로 빠져. 김 간호사, 리트렉터 인계받아요.”
그러면서 박성민은 직접 손을 뻗어 메젠바움 베이비와 디바키를 집어 들었다.
그사이 서강재는 김수진 간호사의 잡아먹을 듯한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발 물러섰다.
김수진 간호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빠르게 인사했다.
“양보 고마워요.”
“별…… 말씀을.”
“이것도 실례할게요.”
탁.
양손에 쥔 리트렉터를 강탈하듯 빼앗아 간 김수진 간호사는 비장 주변을 넓게 벌렸다.
박성민은 그 환부를 바로 확인했다.
“쯧. 쉽지 않겠네.”
“빌어먹을 인간아, 왜 지금 와서 잔소리야!”
꾹 참고 있던 김혁권이 소리치자 박성민이 날카롭게 노려봤다.
“누군 지금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
“잔소리 그만하고 수술부터 좀 진행합시다.”
“말은 자기가 먼저 걸어 놓고!”
“빨리 시작하라고.”
“알았다고. 김 간호사, 시작합시다.”
박성민은 격하게 소리친 것과 달리 바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런 변화는 모두에게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한다면 해내는 박성민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박성민이 본격적으로 비장 수술에 들어가자 태수에게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언제나 수술에 적극적인 선배가 고마울 뿐이었다.
흐름이 끊어진 태수는 잠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손을 놀렸는지 알 수 없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직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단 것만 신경 쓰였다.
그런데 변화는 이쪽에만 일어난 게 아닌 것 같았다.
어느새 반대쪽에는 성재경이 소연정 간호사와 함께 임은상의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태수와 성재경이 잠시 눈빛을 마주쳤다.
“…….”
“…….”
오가는 말은 없었다. 끈끈한 눈빛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고 난 후 성재경은 더욱 적극적으로 환부를 확인하고, 수술 도구를 양손에 쥐며 임은상에게 빠르게 말했다.
“임 선생, 일단 계속 진행해. 내가 보조할게.”
“누구…… 신지……?”
“성재경.”
“아!”
“인사는 나중에. 우선 하나씩 나한테 넘기는 거야. 내가 주도할 테니까 보조 좀 부탁해.”
성재경은 거침없는 목소리만큼이나 손놀림에 망설임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같이 수술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임은상은 그런 성재경의 행동과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
화이트엔젤팀의 모든 의사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던 탓이다.
개인별로 기사가 난 만큼 이력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가 얼마나 많은 수술에 참여했는지 임은상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성재경에게 조금씩 주도권을 넘겼다.
그렇게 주도권을 완전히 넘긴 순간 임은상의 옆으로 황경석이 다가왔다.
“임 선생, 교대. 이제 내가 보조할게.”
“황 선생?”
“맡겨 줘. 난 지금 힘이 넘친다고.”
황경석의 눈빛이 너무도 단단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임은상과는 확실히 대조적이었다.
임은상은 깔끔하게 뒤로 물러섰다.
수술에 누가 더 도움이 되는지 아는데 고집을 피울 순 없는 탓이다.
빈 공간을 황경석이 메우고 성재경의 보조를 자연스럽게 이어 갔다.
그렇다고 임은상은 그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했다.
지금 자신의 상태로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어시스던트가 아니라 보조였다.
그걸 직시한 임은상은 리트렉터를 들고 황경석이 보조하기 수월하게 좀 더 환부를 넓게 벌리며 할 수 있는 걸 도왔다.
수술대만 분주한 게 아니었다.
서영우는 도착과 동시에 전병수에게 투약 사항을 전달받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맥박이 유지만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 선생, 수고했어.”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부족하네요.”
“그게 아니지. 스타일이 다른 거잖아. 일단 이 상황부터 타개하자고. 잠깐만 맡아 줘. 금방 올게.”
그 말과 동시에 서영우는 자리를 비웠다.
그가 향한 곳은 수술대였다.
그리고 팔을 뻗어 손정환의 심장에 직접 손을 댔다.
전병수와 달리 서영우는 수술 장갑을 착용한 상태라 문제 될 건 없었다.
심장의 움직임을 손으로 느낀 서영우는 곧바로 서강재에게 말했다.
“서 선생, 혈액 좀 더 추가하고 electrolyte(전해질)하고 serum(혈청)도 부탁해.”
“아, 네!”
“그리고 서 선생 자리 거기 아니잖아. 밀려났으면 빨리 이쪽으로 오라고. 바로 투여해 줘.”
서영우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심장에서 손을 떼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보통 마취의는 수치로 모든 걸 판단한다. 그런데 서영우는 지정된 자리까지 벗어나며 직접 확인했다.
형식이 파괴된 모습이었지만 그게 어색하거나 부적절하진 않았다.
그사이 서강재는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와 서영우의 오더대로 전해질과 혈청을 차례로 추가했다.
서영우도 어느새 자신의 자리에 서서 노지연 간호사로부터 전달받은 약을 투여했다.
사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니 어딘지 모르게 산만하고 부산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행동하는데도 결코 수술실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지, 전체적인 분위기를 방해하는 의료진이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잠깐 상황을 지켜본 태수의 시선은 손정환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게 무리해서 움직였는데 버틸만 했다.
‘너지?’
태수가 뜬금없는 물음을 속으로 건넸다.
손정환이 힘을?
말도 안 된다.
그래도 태수는 그렇게 믿었다.
살고 싶은 손정환의 열망이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직 맥박 저하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태수의 눈빛은 단 한 차례도 흔들리지 않았다.
환자가 아직 어린 녀석이 최선을 다해 버텨 주고 있다.
그거면 됐다.
꽈악!
태수는 수술 도구를 더욱 강하게 쥐었다.
어느새 다시 강인한 눈빛으로 변한 채 수술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