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326
01329 1329화
조금 더, 조금만 더.
1초마다 시간을 마음속으로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그런다고 시간은 빨리 흘러가지 않았다.
모두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혀 봤지만 초조함에 금세 또 말라 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으으…… 으으으.”
임보현의 숨소리는 신음 소리와 섞여 끊어질 듯이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뭔가 수술실이 조용해진다 생각됐다.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려는 순간이었다.
삑삑삑!
ECG(심전도 모니터)의 소리가 또다시 요동쳤다.
간당간당하게 유지되던 혈압이 사라지고 맥박은 미친 듯이 솟구쳤다.
“어어? 이거 왜 이래, 왜!”
갑작스러운 변화에 다들 당황했다.
태수 또한 놀란 얼굴로 임보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식을 놓쳤다.
눈이 까뒤집어져 있고, 목에 불룩불룩 튀어나온 혈관들도 사라졌다.
말 그대로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심실세동은 아니었다.
이젠 버틸 의지가 있지만 체력이 없단 것이다.
마취하고 수술이 진행되지 않는 이상 여기서 더는 방법이 없었다.
태수가 생각하는 사이 박성민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어쩌지? 일단 CPR부터!”
서영우도 마찬가지였다.
“cardiotonic(강심제) 하나 더.”
“과다 투여돼요.”
“지금 그게 뭐가 문제야! 노 간호사, 빨리!”
노지연 간호사는 고집 부리지 않고 주사약을 준비했다.
이성혁과 김수진 간호사는 환자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일단 뭐라도 해 보겠단 모습들이었다.
그건 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출혈을 잡는 게 능사도 아니었다.
“respirator(인공호흡기)!”
태수는 직접 임보현의 입에 인공호흡기를 댔다.
“산소 더 올리고, spasmolytic(연축억제제) 투여해 주세요.”
“팀장, 근육에 힘을 빼겠다고?”
“일단 뭐라도 해 봐야 할 거 아닙니까.”
“알았어, 알았다고!”
태수의 말에 서영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정말 이젠 뭐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라진 의식이 다시 돌아오기 힘들었다.
심장이 멈추는 극단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지금이 환자에게는 더 위험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다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일 때였다.
벌컥.
임시 수술실 문이 급격히 열렸다.
외부 공기가 갑작스럽게 유입되는 걸 느낀 태수와 의료진들이 인상을 팍 찡그리려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문을 닫으며 안으로 들어오는 도성민의 모습 때문이었다.
온몸이 땀이었다.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목덜미, 수술복의 가슴 부분도 땀으로 색이 짙어져 상체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 그의 안색은 노랗다 못해 하얬다.
도성민은 손을 덜덜 떨며 자그마한 종이 상자를 내밀었다.
“헉헉! 약…… 배달이요.”
“…….”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를 딱 보는 순간 알았다. 여기서부터 병원까지 뛰어갔다 왔단 사실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왕복 6킬로미터가 좀 넘는 거리다.
그 거리를 15분 만에 주파하려면 전속력으로 쉬지 않고 달려도 가능하다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해내고 자신들의 앞에 서 있었다.
모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엉망진창인 도성민의 모습을 보니 입이 저절로 닫혔다.
“헉헉헉.”
도성민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렸다.
그런 그는 묘하게 조용한 임시 수술실 내부를 빠르게 둘러보며 표정이 일그러졌다.
“느…… 늦었어? 나 늦은 거야?”
그때 태수가 도성민에게 다가갔다.
턱.
약상자를 받아 든 태수가 낮고 힘차게 말했다.
“나이스 타이밍.”
“진짜?”
도성민의 눈빛이 밝아지는 사이였다.
태수는 상자를 노지연 간호사에게 바로 건네며 낮게 소리쳤다.
“오픈해서 바로 마취 들어가세요!”
“네!”
치직!
노지연 간호사가 상자를 거의 쥐어뜯어 버리듯이 거칠게 손을 움직였다.
다들 도성민에게 더 이상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박성민이 빠르게 이야기했다.
“마취 들어가니까 세팅부터 바꿔. 이성혁, 뭐 해! 너도 움직여!”
“다급해. 다급한 거 아는데 다들 마음만 다급해하지 말고 손을 빨리 움직이라고!”
김혁권의 날카로운 목소리도 함께였다.
뒤에서 마취가 진행되는 소리가 요란하게 진행되는 사이였다.
태수는 계속 거칠게 숨 쉬며 가슴을 들썩이는 도성민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야 도성민.”
“왜?”
“너 지금 의사같아.”
“태수야, 헉헉, 나 진짜…… 진짜 안 늦었지?”
“…….”
태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엄지를 세워 보였다.
그 표현 하나만으로 도성민은 긴장이 풀렸는지 비틀거렸다.
턱.
“흐, 흐흐, 후우우.”
복잡한 웃음소리 끝에 내쉬는 숨소리가 거칠게 흔들렸다.
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살릴게.”
“…….”
“무조건.”
태수의 결심 어린 목소리에 도성민이 가볍게 어깨를 잡았다.
턱.
그 어깨에 의지해 다시 몸을 곧추세운 도성민이 양쪽 입꼬리를 올려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식. 당연하지. 그럼 다들 수고하세요.”
도성민은 덤덤하게 인사하며 돌아서서 차분한 손길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힌 순간이었다.
우당탕!
뭔가 넘어지는 소리.
“도 선……. 젠장. 알았어. 조용히 한다고. 이강목, 빨리 이쪽으로.”
유병태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다들 밖의 상황이 어떤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그때였다. 돌아선 태수가 모두를 둘러봤다.
“…….”
“…….”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태수가 서영우를 찾았다.
“서 선생님.”
“마취 완료. neuromuscular blocker(신경근육차단제)로 통증이 차단됐어!”
“다들 준비됐습니까?”
태수가 묻자 가볍게 고갯짓하는 모두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강하게 빛났다.
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환부와의 싸움.
지금까진 환부가 이기고 있었다.
이젠 전세를 뒤집기 위해 의료진들이 반격할 차례였다.
태수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낮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당한 고통을 저 개새끼에게 되돌려 줍시다.”
태수는 곧 흉부 쪽에 섰다. 이젠 마취가 된 환자를 수술하기에 혈흉을 먼저 해결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 선생!”
태수가 크게 외치자 임시 수술실 문이 열리고 유병태가 들어왔다.
“찾았어?”
“최 간호사랑 들어와서 복부 출혈 좀 잡아 줘.”
“공간이 돼?”
유병태가 차분하게 묻자 태수가 대답했다.
“우리가 흉부 쪽에 몰려 있어서 가능해.”
“알았어. 바로 들어갈게.”
문을 닫고 나간 유병태가 최소현 간호사와 준비하는 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그사이 태수의 시선은 임보현에게로 향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의료진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위기를 넘어 여기까지 왔다. 2차 응급수술이 시작되면 생명의 위협은 분명히 사라질 것이다.
상처가 끔찍했지, 상황 자체가 최악은 아니었다. 특히 간이나 심장 같은 장기에는 타격이 없었다.
태수가 이미 확인한 거였고,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수혈량이 출혈량보다 많단 것만으로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내 준비를 마친 유병태와 최소현 간호사가 들어와서 복부 쪽에 자리를 잡았다.
태수는 흘러가는 듯한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도끼는?”
“쓰러져 자고 있어. 이강목 선생이 옆에서 포도당 투여하면서 지켜보고 있고.”
“약골 새끼.”
“덩치만 커다랗다니까.”
그렇게 투덜거리는 듯한 대화도 곧 잠잠해졌다.
임시 수술실이었지만 그 속에 흐르는 긴장감은 정규 수술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지원 인력도, 지원 물품도 이젠 없다. 이 인원으로 생명에 위협이 되는 모든 걸 정리해야 한다.
잉여 인력은 없다.
모두가 이 수술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임시 수술실 내부의 공기가 더욱 비장하게 변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 단단한 눈빛들을 확인한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수술 순서는 hematothorax(혈흉) 제거, 상복부 penetrating injury(관통상) 정리와 지혈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그리고 추가로 이동이 가능해질 때까지 가용한 수술은 모두 여기서 진행합니다.”
“알겠습니다.”
“살립시다.”
태수의 낮고 확고한 말에 의료진들도 힘차게 대답했다.
“네!”
“수술, 시작.”
태수가 비장한 목소리로 선언하자 김혁권이 메스부터 건넸다.
턱.
메스를 받아 든 태수는 차갑지만 따스한 특유의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임스에게 심도 깊게 배웠던 야전 의술과 스미스와 카프레네에게 배운 의술을 더해야 했다.
그렇게 수련한 게 바로 자신이다.
스스로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자만심이 아니었다.
살리기 위한 자기 최면일지도 몰랐다.
태수가 마음으로 크게 소리쳤다.
‘난…… 아니, 우리는 할 수 있다.’
모두의 화합으로 진행되는 수술이었다.
그걸 잊지 않았고, 이 안에 있는 의료진들 모두 믿어야 했다.
환자가 마취된 이 순간에서야 진짜 응급수술이 시작되었다.
태수는 앞서 결정한 대로 박성민과 혈흉이 일어난 오른쪽 폐에 집중했다.
그동안 박성민이 응급처치를 계속 이어 와서 환부 주변이 말끔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마취가 되지 않은 환자의 살을 가를 수 없었기에 그 정도가 전부였다.
박성민의 배려를 생각만 해도 고마운 일이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자식.”
박성민은 평소와 달리 말을 아꼈다.
얼마나 숨 막히는 시간을 보냈는지 서로 안다.
그저 눈빛으로 마음을 나눌 뿐이다.
다시 시선을 돌린 태수가 수술 준비를 서둘렀다.
이젠 마취가 되었으니 본격적인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태수는 쥐고 있던 메스를 드레인 쪽으로 가져갔다.
짧게 심호흡한 후 드레인을 기준으로 위아래 쪽으로 5센티미터 정도 갈랐다.
박성민은 태수의 움직임을 유심히 본 후 썩션과 보비로 출혈을 빨아들이고 또한 지지며 말했다.
“김 간호사,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 말고 디버를 준비해 줘요.”
“잠시만요.”
김수진 간호사가 수술 도구를 교체해 준비하는 사이, 박성민은 신중한 얼굴로 처치를 이어 갔다.
태수는 힐끔 그 모습을 확인하며 메스를 옆으로 넘겼다.
“혁권 씨, 아미네이비(리트렉터의 일종).”
“여기.”
탁.
수술 도구를 교체한 태수는 아미네이비를 방금 가른 환부에 넣고 뒤로 강하게 젖혔다.
어느 정도 공간이 만들어지자 태수가 김혁권에게 수술 도구를 다시 건넸다.
“이것 좀 잡아 주시고, 믹스터. 선배, 보비 좀.”
“여기. 자, 나도 걸어 볼까.”
보비를 태수에게 건넨 박성민은 빈손에 디버를 잡고 환부에 걸어 아래쪽으로 당겼다.
김혁권이 위로 당기고 박성민이 아래로 당기니 환부가 훨씬 더 많이 벌어졌다.
김수진 간호사는 조명으로 어두운 환부 속을 밝혔다.
그때 디버를 당기는 박성민의 입에서 자그마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뒤로 물러서면서 차체에 부딪힌 부위에 적잖은 통증이 왔다.
“끙.”
“선배, 팔 정말 괜찮으십니까?”
태수가 걱정스런 얼굴로 한 번 더 묻자 박성민이 더욱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할 건데?”
“교대해야죠.”
“누구랑? 물론 밖에 있는 이강목 선생 실력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지금은 내가 더 나을 텐데.”
물러서지 않겠단 그 목소리에 태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보조 효율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바로 교체합니다.”
“내가…… 저 새까만 후배한테……. 아자! 이제 좀 제대로 당겨졌네. 좌우간 저 자식한테 이딴 소리나 듣고 말이야.”
박성민은 힘든 만큼 더욱 크고 시끄럽게 투덜거렸다.
태수는 그저 웃었다.
나가란다고 곱게 나갈 박성민도 아니었고, 지금은 이강목보다 박성민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었다.
이렇게 모든 게 부족한 임시 수술실에서는 효율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태수는 다시 환부로 시선을 돌렸다.
김수진 간호사가 비춘 조명에 환부 내부가 훤히 보이자 바로 믹스터와 보비를 움직였다.
그러자 박성민도 들고 있던 썩션을 환부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콰륵콰륵.
썩션이 출혈을 빨아들이자 환부 내부가 좀 더 정확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