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662
01665 1665화
서영우는 태수와 다시 호흡을 맞추자 즐거운 얼굴을 숨기지않았다.
“최 팀장이 화이트엔젤로 돌아오고 같이하는 첫 수술인가?”
“그러게요. 몇 번 수술했는데 선생님과 일정이 맞지 않았습니다.”
“혹시 응급 출동만 한다고 손이 굳은 건 아니겠지?”
“저야말로 서 선생님을 걱정하고 있습니다만.”
태수가 유들거리며 받아치자 서영우가 진하게 미소 지었다.
“그럼 이 수술에서 피차 확인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요.”
태수는 대화를 끊고 수술대에 누운 김민성을 바라봤다.
김민성의 눈빛은 평온했다. 세 번째 수술, 그 모든 수술의 집도의가 태수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김민성에게 물었다.
“엄마랑은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대화가 진짜 중요한 거였나 봐요.”
“물론이지. 그럼 이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한숨 잘까?”
“네. 이따가 봬요.”
김민성은 자진해서 눈을 감았다.
그 모든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수술이란, 위험성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불안함이 보이지 않았다.
그건 바로 믿음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잠시 맡겨도 좋단 그 믿음.
그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신뢰이기도 했다.
태수 또한 그렇게 믿어 주는 김민성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라 간단한 수술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했다.
휙휙.
태수가 손을 머리 위로 크게 돌리자 서영우는 바로 전신마취에 들어갔다.
“마취 시작합니다. 하나, 둘…… 마취 됐습니다. 이어서 근이완제 투여합니다.”
그는 수술 준비를 차분하게 이어 갔다.
그사이 태수는 반대편에 선 이성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 거침없고 당당하던 그가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다.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태수와 눈이 마주치자 멈칫하며 얼른 다시 피했다.
그 모습에 태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게 자신 없나?”
“아니요.”
“그럼 수술 자체가 두렵나?”
“아닙니다. 그저 팀장님과 처음 하는 수술이라서 긴장이 좀 됩니다.”
이성혁의 대답에 태수가 옅게 미소 지었다.
“같이 수술하는 건 처음이 아니잖아.”
“제가 어시스던트하는 건 처음입니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눈치 보고 불안해할 건가?”
태수가 묻자 이성혁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닙니다.”
“웃으며 얘기하는 건 지금까지야. 수술 시작하면 그땐 얄짤 없다.”
“알고 있습니다.”
“머리가 아는지, 가슴이 아는지는 두고 보자고.”
태수는 도발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큰 위험이 없더라도 수술이다.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거나 방심할 수 없었다.
곧 서영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술 시작해도 돼.”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환자를 향한, 그리고 서로를 향한 인사가 끝난 후 태수가 옆으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메스.”
“여기 있습니다.”
탁.
다소 딱딱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소현 간호사였다. 유병태가 외국으로 떠난 후 잠깐 힘들어 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김수진 간호사가 칭찬할 만큼 실력도 좋아졌다고 했다.
태수의 수술이란 소식에 간호사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이렇게 지금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시선은 잠시뿐이었다.
수술 시작이다.
개인감정은 일체 뒤로하고 수술에만 집중했다.
스윽.
메스로 흉부를 가르고 발포어(고정형 리트렉터)로 벌려 고정하는 작업이 빠르게 이어졌다.
그런 과정들 속에서 태수는 이성혁을 다시 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려워하던 모습이 수술에 들어간 순간 말끔하게 사라진 탓이다.
흉부외과 수술에 몇 번 보조로 들어갔다더니 척척 진행했다.
눈썰미가 좋은 모양이었다.
이내 다시 튼튼하게 자라난 김민성의 갈비뼈까지 들어냈다. 그러고 나자 펄떡이는 심장과 크게 부풀었다가 줄어드는 양쪽 폐가 보였다.
이성혁이 태수와 가까운 폐 쪽으로 수술 도구를 이동시키는 사이였다. 태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스톱.”
“…….”
스윽.
이성혁이 말없이 수술 도구를 다시 거뒀다.
그사이 태수는 최소현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에드손, 엘리스.”
“아, 네.”
턱.
들고 있던 수술 도구를 바꿔 주는 그녀의 표정도 조금은 의아하게 변해 있었다.
그러나 태수는 그런 반응들은 개의치 않고 양손에 각각 쥔 수술 도구로 심장부터 확인했다.
그 당시 수술할 때 김민성은 어레스트(심정지)가 몇 번이나 왔었다.
그런 기억까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태수였기에 심장 확인을 거르지 않았다.
테수도 5년 만에 같은 환자를 재수술하는 건 처음이었다.
자신을 믿고 일부러 찾아와 준 환자였기에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태수가 심장으로 손을 뻗자 이성혁도 수술 도구를 교체하고 보조에 나섰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옆으로 살짝 돌려.”
“네. 이렇게…….”
이성혁이 후크로 심장을 걸어 돌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태수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낮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
“심장을 그렇게 크게 움직이면 어쩌자고. 너 이 새끼, 정신 있어?”
태수의 호된 질책에 이성혁은 당황했다.
“죄, 죄송합니다.”
“손 떼.”
“뗐습니다.”
“내가 말할 때까진 그대로 있어.”
태수의 목소리가 투박하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이성혁도 자신의 잘못을 알았는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태수는 놀랐을 심장부터 조심스럽게 살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태수가 CT나 MRI로 앞서 확인한 김민성의 심장은 또래보다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사소한 부분일지 몰라도 태수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민감함은 절대 과한 게 아니었다.
태수는 그렇게 신중하고 민감한 손길로 김민성의 심장을 세세하게 확인했다.
그 시간이 상당히 길게 이어진 후였다.
얼마나 신중하게 확인하는지 태수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게 확인을 마친 태수가 수술 도구를 옆으로 내밀었다.
“서 선생님, 맥박이 한 번씩 뚝뚝 끊어지는 느낌은 없습니까?”
“있긴 있는데, 불규칙적이고 타이밍도 너무 들쭉날쭉해.”
“음.”
“그래도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야. 보아하니 심막에 지방이 약간 낀 거 같던데.”
서영우의 눈썰미가 정확했기에 태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엄청나게 보호하고 있으니까요.”
“그럴 만하겠지. 그때 그렇게 수술했는데. 자식.”
서영우의 머릿속에 과거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마취의도 서영우였던 탓이다.
김민성은 전혀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마취의의 애로 사항 중 하나였다. 수술실에서 짧게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누가 마취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거기에 불만은 없는지 서영우는 별다른 감정 변화가 없었다.
태수는 가만히 생각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막의 지방은 수술적인 제거보다 운동을 권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강심제야 얼마든지 쏟아부을 수 있지만, 그게 원론적인 해결은 되지 않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부탁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물론. 천천히 주입할게. 노 간호사, 강심제.”
서영우가 노지연 간호사와 함께 투약을 진행했다.
그사이 시선을 돌린 태수는 이성혁에게 말했다.
“이제 시작하지.”
“네.”
“지금도 긴장하고 있나?”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성혁이 강하게 대답하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충고를 이어 갔다.
“다음에 수술할 땐 환자의 이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파악해.”
“네.”
“예전에 수술했으니까 괜찮을 거란 생각도 하지 마. 그 작은 방심이 엄청난 결과를 만드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폐부터 시작한다. 보조 확실하게 하고.”
태수는 한 번 더 강하게 경고한 후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폐 수술은 바로 진행됐다.
5년 동안 유려하고 세련되게 다듬어진 태수의 손길이 폐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물론 태수는 한 번의 손길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절대로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게 수술이다. 익숙함이 불러오는 나태함이 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탓이다.
수술에 들어가니 태수의 말수가 극히 적어졌다. 그럴수록 수술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짙어졌다.
이성혁도 그 긴장감에 물이 든 듯 손길이 신중해졌다.
그렇게 폐를 가르자 자잘한 구멍들이 몇 개 보였다. 그 구멍 속엔 먼지같이 자그맣고 하얀 뼛조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2차 수술까지 해 가며 잔뼈를 걷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뼛조각이었다.
정말 작았다.
대충 보면 절대 알아챌 수 없을 정도였다.
태수도 확대경을 통해서야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에드손의 가느다란 끝으로 뼛조각을 집어 든 태수가 말했다.
“밧드(철제 그릇).”
최소현 간호사가 밧드를 내밀자 태수가 그 위에 뼛조각을 조심히 올려놓았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작고 가느다란 뼛조각이었다.
뼛조각을 걷어 낸 후에는 큐렛으로 일부러 구멍에 상처를 냈다.
약간의 출혈이 발생하자 이성혁이 바로 보조에 나섰다.
“썩션, 액상 지혈제.”
“여기요.”
보조 간호사가 차례로 건네자 이성혁이 직접 출혈을 걷어 냈다.
그 손길이 상당히 유연하고 빨랐다. 레지던트 2년 차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움직임이 깔끔했다
하지만 수많은 응급 상황을 경험한 화이트엔젤의 팀원으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출혈이 걷히자 태수가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구멍에 똑같은 방법으로 수술을 진행했다.
미세한 뼛조각으로 만들어진 구멍은 양쪽 폐를 합쳐 10개도 되지 않았다.
구멍이 작고 아직 폐 조직이 성장할 나이였기에 흉부 수술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흉부를 1차적으로 마무리한 후에 복부로 내려왔다.
그 당시 엉망이었던 복부는 깨끗했다. 그런데도 태수는 심장과 같이 수술했던 장기들을 세세하게 확인했다.
수술에도 애프터서비스가 존재한다.
신중하게 확인을 마친 후엔 문제가 있는 신장으로 향했다.
신장은 보통 사람보다 위아래가 좀 더 길었다. 짓이겨졌던 신장을 되살려서 그런지 변형된 모양으로 자라 있었다.
다른 신장에 비해 약간 하얗게 변한 색깔도 특징이었다.
태수는 그 신장이 기능을 하고 있단 것 자체만으로도 솔직히 뿌듯했다.
이젠 좀 더 뿌듯할 때였다. 옅어진 신장의 색을 진하게 바꾸려면 신동맥과 신정맥을 살펴야 한다.
태수는 이성혁에게 오더했다.
“신장을 좀 더 위로 들어 올려. 이번에도…….”
“조심하겠습니다.”
이성혁은 최대한 짧게 말한 대신 직접 행동으로 보여 줬다.
확실히 외과 레지던트가 맞았다. 심장을 다룰 때와 달리 신장은 좀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조심스럽게 다뤘다.
태수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확보한 신장을 좀 더 자세하게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신장에 큰 문제는 없었다.
태수도 그 점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다.
사실 검사 영상에서도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문제를 짐작하게 된 계기는 각종 검사 결과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
사실 수술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황이기도 했다.
태수가 이틀이란 시간을 미루며 약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지난 일을 다시 떠올려 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
태수는 신장의 외적인 모습에 계속 집중하며 어떤 문제인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이상이 없는 만큼 역시 쉽게 문제를 찾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신장을 갈라 볼 순 없는 노릇이었다.
태수가 생각하는 사이 이성혁의 눈빛이 자꾸만 어디론가 향했다.
그걸 발견한 태수가 물었다.
“왜 그러지?”
“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말입니다.”
“말해 봐.”
“장기의 모습이 달라지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신장을 수술하셨던 것도 알지만 혹시나 해서요.”
그 소리에 태수가 머리를 굴려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