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86
00187 187화
현재 오연택의 간 기능은 거의 상실된 상태였다.
지금 그 와중에 가장 문제되는 것을 처리한 상태였다.
이론상으로 최소한 명줄은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세상의 정론일 뿐이다.
카프레네의 임상사례들을 떠올려 봐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순전히 오연택 환자의 의지만이 세상의 정론을 뒤집을 수 있다.
‘제발.’
태수뿐이 아니라 정민수와 조현정 간호사도 간절한 마음으로 오연택을 바라볼 때였다.
“푸우우.”
오연택의 입에서 기나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태수는 같이 한숨을 돌리기보다 오연택의 의식 상태부터 확인했다.
“오연택 환자분.”
“으으으.”
“오연택 환자분?”
“흐음.”
조금 더 괴로워하던 오연택이 억지로 실눈을 떴다.
그 또한 의지를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본다는 걸 직감한 태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알아보시겠습니까?”
“선…… 생님.”
정말 억지로 내뱉는 말이다.
허나 태수는 우선 안도감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에요.”
“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태수는 계속 사과했다.
오연택이 쇼크를 일으키기 직전은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할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방해받지 않아야 할 시간.
그만큼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자리에서 지켜봐야 했다는 걸 뒤늦게 자책했다.
그때였다.
“지금 사과할 시간이 어디 있어?”
문득 들려온 소리에 뒤를 돌아본 태수가 깜짝 놀랐다.
하석준 과장이 수술복을 입고 있는 모습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하석준 과장을 보조하는 건 수술실 전문간호사인 김수진 간호사였다.
“과장님.”
“사정은 이미 들었으니까 됐고, 바로 Amotio biliary tract(담도박리)들어간다. 복강경 그대로 유지하고 정 선생 뒤로 빠져.”
하석준 과장이 빠르게 다가와 정민수의 자리를 차지했다.
태수가 멈칫했다.
“이쪽으로 오셔야…….”
“뒤에서 보니까 잘하던데. 계속해.”
“오늘은 거부하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할 시간 없다니까. 정 선생 Urine(소변) 연결하고 카테터 삽입해서 담도 확장시켜, 조 간호사는 알부민하고 해파린(혈액응고방지제) 준비해 줘요.”
하석준 과장의 빠른 오더에 정민수와 조현정 간호사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김수진 간호사는 혈액을 추가하고 인공호흡기를 가동시켜 오연택의 코로 산소가 흡입되도록 유도했다.
신속한 조치 후에 김수진 간호사가 태수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잠도 못자고 나왔으니까 밥 한 끼로는 어림도 없어요.”
“꼭 보답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다음 이야기는 나중에. 수술 진행하세요.”
김수진 간호사의 목소리가 화끈했다.
태수는 순간 울컥했다.
두말없이 이 자리에 와 준 하석준 과장과 김수진 간호사.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응급수술실이 꽉 차는 느낌이다.
두 사람은 태수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도 모두 메워줬다.
응급수술실에 순간적으로 활기가 도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들 시간이 없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태수도 감정적인 마음을 다시 지운 후 아직 오연택의 배 속에서 꺼내지 않은 처치라인의 컨트롤러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 사이 하석준 과장은 카메라를 움직여 간 밑에 있는 담낭을 비췄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하석준 과장은 인상부터 썼다.
“이거 유착이 너무 심한데? 자칫하면 식도정맥류로 토혈할 수도 있겠어.”
“그래도 최대한 해 볼 겁니다.”
“얼마든지. 이젠 내가 뒤를 봐 줄 수 있으니까 질러.”
하석준 과장의 허락과 동시였다.
눈빛을 번뜩거린 태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진짜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진짜라니.”
하석준 과장 얼굴에 의아함이 스칠 때였다.
컨트롤러를 양손으로 잡고 있는 태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 손길이 얼마나 신속한지 모니터에 비추는 처치라인들이 잠시도 쉬지 않았다.
아차 한 순간 보조할 타이밍을 놓친 하석준 과장이지만 얼른 뒤따라 보조 처치라인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석준 과장의 손놀림이 태수를 따라가지 못했다.
안간힘을 쓰면서 쫓아가는 하석준 과장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이 자식 뭐야?’
절로 태수에게 시선이 갔다.
간문맥과 간동맥의 혈전을 제거하고 문합할 때와 또 다른 움직임이다.
그때는 신속함만이 가득했다.
허나 지금은 그때보다 속도가 늦어진 데 비해 처치하는 꼼꼼함이 능수능란했다.
유착된 담도가 박리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러는 태수뿐인가?
어느새 다가온 정민수의 손놀림도 예사롭지 않았다.
담도와 연결된 정맥을 잡고 카테터를 삽입하는 솜씨도 빠르고 정확했다.
“니들 도대체.”
“나중에요.”
태수가 짤막하게 대답하면서도 모니터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순간 하석준 과장의 머릿속에 여러 영상이 스쳐갔다.
그동안 태수가 어시스던트하면서 왠지 모르게 편했던 수술들.
수술의 성공률도 확실히 높아졌다.
태수의 어시스던트가 좋아서 수술 진행이 수월하다는 건 하석준 과장도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그동안 태수가 자신의 수준에 맞게 수술을 진행했다는 느낌이다.
지금 태수의 실력은?
하석준 과장이 아주 냉정하게 봤을 때 적어도 이 수술만큼은 최소한 서울 대형 종합병원 외과 과장급이다.
이런 녀석이 자신의 밑에 있다?
시샘과 부러움보다 앞서는 건 소유욕이었다.
잡아야 한다.
그래야 병원 내 자신의 입지가 더욱 굳어진다.
오연택이 위중한 상황이지만 하석준 과장은 자신의 욕심 또한 포기하기 힘들었다.
이내 담도 박리와 확장 수술이 끝났다.
‘환자의 상태는?’
태수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ECG(심전도기계)로 향했다.
우선 혈압과 맥박 수치가 높았다.
그런 반면 혈중산소농도는 안정적이다.
전신마취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수치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간 기능이 나빠지면 혈청이 부족해져 피가 잘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다 헤파린까지 추가했으니 지혈은 거의 안 된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최소한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조치밖에 할 수 없었다.
다들 오연택의 몸 상태를 알려 주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응급수술만 여러 번 진행했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오연택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으으으.”
오연택은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정말 조만간 숨을 멈출지도 몰랐다.
전신마취로 편하게 해 주고 싶지만 다시 눈을 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러지도 못했다.
“빨리. 조금만 빨리.”
누군가 마음속의 소망을 입으로 뱉어냈다.
허나 환자가 듣는다고 누구도 비난하지 못했다.
모두 같은 마음이다.
그때였다.
띠리릭.
휴대폰 소리가 갑자기 응급수술실을 울렸다.
다들 움찔하더니 각자의 휴대폰을 빠르게 꺼내 바라봤다.
허나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친 모든 의료진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태수가 한 쪽에 놓아둔 오연택의 휴대폰을 살폈다.
역시 오연택의 전화가 울리는 중이다.
-아들.
발신자를 확인한 태수가 빠르게 휴대폰을 연결시켰다.
“지금 어디십니까?”
그런데 대답하는 목소리는 오연택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실례합니다. 천안경찰서 교통과 이진호 순경입니다. 실례지만 지금 전화 받으시는 분이 누구시죠?”
“경찰이라니요?”
“오지석 씨가 천안 IC를 과속으로 통과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이진호 순경의 말에 태수는 순간 왈칵 짜증이 났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지금 오지석씨 아버지가 위독하단 말입니다.”
“도대체 오지석씨도 그러고, 그보다 전화 받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동성종합병원 외과 최태수입니다. 지금 오지석씨 아버지는…….”
태수가 빠르게 상황을 설명하자 이진호 순경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 왔다.
“진짭니까?”
“이렇게 통화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보다 지금 위치가 도대체 어딥니까?”
“북공주 JC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추격하다 보니 저희도 여기까지 왔네요.”
이진호 순경의 말에 태수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경찰이 쫓아오는 걸 알면서도 100여 킬로미터를 말 그대로 쏜살같이 달린 모양이다.
어쩌다가 경찰에게 따라잡혔는지는 관심도 없었다.
태수는 빠르게 말했다.
“빨리 와야 합니다. 정말 생명이 위독한 상태란 말입니다.”
“혹시 이 말씀이 거짓말이라면…….”
“직접 데려오시던지요! 지금……. 젠장, 끊습니다!”
태수는 소리쳐 통화를 종료하고는 빠르게 오연택에게 다가갔다.
오연택의 입에서 주르륵 흐르는 피를 발견한 탓이다.
태수의 통화에 집중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깜짝 놀랐다.
“갑자기 왜 입에서 피가 나와?”
“멈추지 않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피가 멈추는 게 이상하지. 일단 Hemostatic(지혈제) 가져와!”
“네!”
하석준 과장과 정민수의 대화를 듣던 태수가 얼른 나섰다.
“안 됩니다.”
“그럼? 이렇게 피가 흐르면 말을 하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못 쉬게 된다고!”
“자칫하면 혈전이 다시 생길 수 있습니다. 원인을 제거하는 게 차라리 좋겠습니다.”
“음. 최 선생, 씨암 다룰 줄 안다고 했지?”
“네, 씨암 가져오세요!”
대답 후 태수가 외치자 조현정 간호사가 빠르게 납복과 씨암을 가져왔다.
태수는 납복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씨암으로 오연택의 입 쪽을 촬영했다.
구강은 문제가 없어 빠르게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위에 천공이 보였다.
스트레스로 인한 위산 분비 증가가 원인인 듯 했다.
간부전의 합병증 중 하나다.
식도를 완전히 차단하는 방법, 그리고 위장을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지금 개복수술을 한다는 건 절대 옳지 않았다. 그렇다고 식도를 차단하는 것도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다.
더 지체하면 아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숨이 넘어갈 상황이다.
태수는 복강경에 시선이 갔다.
혹시?
최대한 오연택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법이 번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복강경으로 위를 그냥 꿰매야겠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지!”
“시작하겠습니다. 정 선생이 어시스던트 봐 줘. 과장님은 전신관리 좀 부탁드립니다.”
태수의 말에 하석준 과장과 정민수가 빠르게 움직였다.
지금은 누가 더 직위가 높고 영향력이 있는지는 모두 관심 없었다.
처치를 최대한 잘할 수 있는 의사.
그 의사의 말이 곧 법이다.
하석준 과장은 이미 마음속으로 태수를 인정했기에 그런 오더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수의 빠른 상황 판단에 더욱 만족한 표정뿐이다.
봉합했던 부위를 다시 뜯고 복강경을 재투입했다.
위 아래쪽에 검은 구멍이 보였다.
산성이 강한 위액에 절로 녹아내린 모습이다.
태수는 주변에 있는 위장 조직을 끌어당겨 꿰매기 시작했다.
하석준 과장도 질세라 빠르게 관리를 이어갔다.
“혈액, Antacid(제산제, 위액중화제) 추가.”
“바로 추가하겠습니다.”
“아트로핀(승압제)도 준비해 되는대로 바로 투여해 줘요.”
“네!”
하석준 과장의 오더에 조현정 간호사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런 반면 김수진 간호사는 태수와 정민수 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수술기구를 내밀거나 교체해 주기에 바빴다.
구멍 난 위장을 꿰맸고, 그 외에 조치도 신속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오연택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승압제를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혈압이 점점 떨어져 간다.
호흡이 빨라지는 반면 혈중 산소농도는 옅어지고 있다.
의학적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증상.
즉,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