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970
01973 1973화
듣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시선이 흔들렸다.
하지만 태수는 한 마디, 한 마디 신경 쓰며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이어진 태수의 말이 끝을 맺었다.
“……그런 상황이라 본의 아니게 오해가 먼저였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꾸벅.
태수가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그러나 사과를 받는 김재민의 눈동자는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폰…… 좌우간 희귀병이라고요? 한국에서는 특히나 드문 병이고요?”
“맞습니다.”
“아, 이게…….”
휘청거리던 김재민은 병상을 짚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빛이 정말 공허했다.
오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눈빛은 절망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허탈감이 가득했다.
“일신아, 두진아, 세미야.”
세 자녀의 이름이 그의 입 밖으로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에게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을 터였다.
태수는 오히려 그런 그를 냉정하게 바라봤다.
우선 그가 힘을 내야 한다.
보호자가 기운이 없으면 환자의 의지 역시 약해진다.
희망이라는 건 그만큼 병이 낫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걸 잘 알기에 태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희귀병이고 난치병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네?”
“이 순간이 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태수가 조금 더 강하게 말하자 김재민의 허탈한 눈빛이 점점 또렷하게 변해 갔다.
다리가 풀린 그는 병상을 잡고 겨우 일어나 물었다.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우선 검사를 해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이상이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
“그리고 수술이 이어져야겠죠.”
“그러면요? 그다음에는요?”
“회복해서 병원 생활을 마무리 지은 후에는 댁과 병원을 오가며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집에 웃음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태수가 희망을 불어넣어 주자 김재민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해야죠. 검사고 수술이고 다 해야죠!”
“문제는 모든 일이 잘 풀렸을 때 행복이 찾아온단 겁니다.”
“…….”
“그렇게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아서 어떤 확신도 드리기 힘듭니다.”
그 소리에 김재민의 번뜩이던 눈빛이 다시 떨려 왔다.
“그럼…….”
“최악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말씀…… 저도 드리기 힘듭니다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하니까요.”
“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그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태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태수의 침묵에 김재민이 얼른 손을 뻗어 소매를 부여잡았다.
어느새 그의 눈시울은 붉게 변해 있었다.
그런 그가 고선미 환자를 가리켜며 더듬더듬 말했다.
“저기, 저기 누워 있는 선미요, 제가요, 진짜…… 진짜 제가 몇 년 동안 쫓아다니면서 간신히, 진짜 간신히 결혼한 사람이거든요.”
“…….”
“제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4년 동안 삼남매를 낳았습니다. 진짜 사랑해요. 너무 사랑한다고요. 지금도…… 지금도 사랑한다고요.”
“…….”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게요……. 살려 주세요……. 우리 애들이 지금도 엄마 없다고 울어요. 선생님, 애들이 울어요. 네?”
김재민의 목소리가 억눌려 있었다.
울컥울컥 솟구치는 눈물을 죽어라 참고 있었다.
태수는 더욱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태수가 말이 없자 김재민의 감정이 점점 격해졌다.
“이 사람이! 여기 누워 있는 이 사람이 내 새끼들 엄마라고……. 그런데, 그런데 우리 애들은 어쩌라고! 그리고 나는 어쩌라고!”
“…….”
“선생님이 말도 안 되는 오해 한 거 용서할게요. 사과도 하지 마요. 그냥 살려만 줘요. 이 사람 살려만 줘요. 네?”
“아직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태수가 어렵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김재민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하게 다그쳤다.
“당신 의사잖아. 유명한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할 수 있잖아. 내 말이 맞지? 맞잖아! 왜 대답 안 해, 왜!”
“…….”
“당신이 책임져. 당신이 저 사람 살려 내라고. 돈? 다 줄게. 내 새끼들……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있는 내 새끼들 좀 봐 달라고. 으아악!”
감정이 북받친 그가 태수의 팔을 잡아당겨 그대로 얼굴을 묻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레지던트들이 달려오려고 움찔거렸다.
태수는 레지던트들을 쳐다보며 가볍게 고개 저었다.
그때였다.
“선생님…… 흐윽, 제발요……. 제발 살려 주세요……. 흐으윽!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으니까…… 저 사람만 살려 줘요. 제발요.”
울음이 뒤섞인 그의 애원이 태수의 가슴을 후볐다.
태수뿐만이 아니다.
주변에 있던 레지던트들은 물론 조금 멀찌감치 서 있던 성남철도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태수도 고개를 들었다.
‘푸우.’
살린다.
그 말을 내뱉는 건 쉽다.
실천이 너무 어려운 게 문제였다.
그렇다고 세 아이의 엄마를, 또 남편에게 이토록 사랑받는 아내를 무심히 떠나보낼 순 없는 일이다.
검사조차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아직은 태수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울음으로 갑갑함을 풀어 낸 김재민이 안정을 찾았다.
멍한 눈빛으로 고선미 환자를 바라보는 그의 손은 부인의 손을 덮고 있었다.
“후우.”
가만히 있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일이 반복됐다.
그때까지 지켜본 태수가 말했다.
“일단 검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일을 의논할 수 있습니다.”
“……확률이 얼마나 되죠? 그냥 보통 경우예요.”
“0퍼센트…….”
“음.”
그가 투박하게 탄성을 쏟아 내자 태수가 뒷말을 이었다.
“그리고 100퍼센트.”
“네?”
“어떤 병이든 똑같습니다. 확률, 0퍼센트와 100퍼센트.”
태수가 똑같이 말하자 김재민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게 무슨…….”
“환자, 그리고 보호자, 또 주변 사람들까지 서로가 어떤 마음인지에 따라 확률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달라집니다.”
“…….”
“정말 사랑한다면 웃으세요. 아마 곧 깨어날 겁니다. 그때 웃음을 보여 주세요.”
태수의 말에 김재민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 그게 가능하겠어요?”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말씀하시네요.”
“전 제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수술했습니다. 그러고도 저 멀리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태수가 신혜미를 언급했다.
덤덤함 속에 깃든 그때의 처절한 아픔이 느껴졌는지 이번에는 김재민이 움찔했다.
그러나 태수는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전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웃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순간에도 웃었습니다.”
“…….”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왜 웁니까? 아직은 울 때가 아닙니다.”
태수의 진심 어린 조언에 김재민 기세가 누그러들었다.
“선생님, 지금부터 이 사람이 퇴원할 때까지 웃을 수 있을까요?”
“퇴원이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면 전 무조건 낫는다는 쪽에 걸어야죠. 그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김재민이 똑바로 바라보며 이어서 물었다.
“도와주실 거죠?”
“저에게 온전히 맡기신다는 겁니까?”
태수가 묻자 김재민이 목이 부러져라 끄덕였다.
“아기 구하러 아프리카까지 가신 분이잖아요. 여기 바로 앞에 있는 우리 선미……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잖아요.”
“…….”
“도와주세요. 저 안 울게요. 절대 안 울게요. 그러니까 도와주세요.”
김재민의 눈빛이 단단했다.
모든 걸 믿고 맡기겠단 결심이 느껴졌다.
태수는 잠시 생각하고 물었다.
“의학에 무조건은 없습니다.”
“함께 노력하면 100퍼센트라면서요.”
“…….”
“전 이제 몰라요. 선생님이 살려 주신다는 것밖에 몰라요. 진짜 그거밖에 몰라요.”
그 소리와 동시였다.
“으음.”
고선미 환자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눈꺼풀도 꿈틀거렸다.
바로 대화를 멈춘 두 사람의 시선이 고선미 환자에게 집중됐다.
조금씩 움직임이 커지던 고선미 환자가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김재민이 손을 더 강하게 잡으며 불렀다.
“선미야, 내 말 들려? 선미야.”
“후으. 후.”
고선미 환자는 기도삽관이 되어 있어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대신 눈을 깜빡이며 표현했다.
태수는 나서서 관찰하지 않고 눈으로만 확인했다.
ECG 반응?
처음보다 훨씬 좋아졌다.
평균 수치에 한참 모자랐지만 정신착란이 올 정도는 아니다.
눈빛?
선명했다.
남편을 보고 다른 곳을 둘러보는 시선 또한 명확했다.
아직 인공호흡기를 뗄 순 없지만 신체반응들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렇게 태수가 살피던 동안 김재민이 고선미 환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래. 검사하고, 좀 안 좋으면 수술하고, 그리고 집에 가면 된대.”
“…….”
“애들? 울지. 지금 울고 있지. 엄마 보고 싶다고……. 장모님이 봐주고 계시니까 걱정 말고.”
“…….”
“그래그래. 진짜야. 진짜 괜찮으니까 한숨 더 자. 내가 이렇게 꼭 옆에 붙어 있을게.”
김재민은 혼자 말하고 있었다.
한 번도 울컥하거나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드럽고 평온한 목소리였다.
그에 고선미 환자는 안도했는지 다시 눈을 감았다.
그걸 본 태수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고선미 환자의 눈빛을 김재민은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건 연습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위해 줘야 가능한 감정의 교류였다.
고선미 환자는 곧 다시 잠들었고, 김재민은 그 옆을 꼼짝하지 않고 지켰다.
옆에서 본 김재민의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걸 확인한 태수는 곧 돌아서서 응급실 레지던트들에게 차분하게 지시했다.
“검사 준비 좀 서두르자.”
“네!”
레지던트들이 아련한 눈빛으로 재빨리 움직였다.
반면 돌아선 태수의 눈빛은?
쇠라도 뚫을 듯 강하게 빛났다.
시간이 흘러 아침 컨퍼런스 준비가 한창이었다.
태수도 컨퍼런스실에 들어섰다.
바지런한 의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젠 태수가 나타나도 의사들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가볍게 목례를 하는 등 가볍게 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는 걸 이렇게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태수는 여러 의사들에게 인사하며 단상에서 진행을 준비 중인 조태성에게 다가갔다.
조태성은 인쇄된 종이를 보며 입을 풀고 있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매번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태수가 곧 다가서자 조태성이 힐끔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마주했다.
“안색이 왜 그렇게 꺼매?”
“새벽부터 나와 있었거든.”
“응급실 호출?”
“응. 그리고 이거.”
태수가 종이를 내밀자 조태성이 의아한 얼굴로 받아 들었다. 바로 확인한 조태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VWD 환자? 그리고…….”
“뭐, 대충 그래. 지금 흉부외과에 입원시켜 놨고.”
“그래……. 이따가 이것도 언급할게.”
“그래. 부탁 좀 하자. 수고.”
태수는 가볍게 미소 짓고 돌아섰다.
그리고 오늘은 흉부외과 의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태수는 마침 비어 있는 도성민의 옆자리에 앉았다.
도성민이 바로 물어 왔다.
“VWD 환자가 입원했다며?”
“응.”
태수의 대답이 너무도 단출했다.
앞만 바라보고 있는 태수의 모습에 도성민이 뭔가 눈치챈 얼굴로 말했다.
“그래. 컨퍼런스 시작하면 알 테니.”
“나 잠깐만 눈 좀 붙일게.”
“얼마든지.”
도성민이 대답하자 태수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곧 컨퍼런스가 시작될 터였기에 잠을 잘 시간은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피곤을 털어 내고자 눈을 감았다.
곧 컨퍼런스가 시작됐다.
태수도 어느새 눈을 뜨고 조태성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몇 가지 전달 사항이 발표된 후 환자들에 관한 내용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