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019
02022 2022화
청화대교의 구조는 현수교였다.
현수교는 탑을 곳곳에 세우고 그 탑 사이를 주 케이블로 연결하는 구조를 말한다. 또 보조 케이블들이 교면을 잡아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버텨야 할 다리의 가운데 상판이 떨어져 있었다.
상판이 떨어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원인이 되어 다리 전체의 균형이 깨졌다.
끊어진 주 케이블과 보조 케이블들이 교면 위의 차량들을 덮쳤다.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부서진 차량들의 모습.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잔해들이 주변에 흩트려져 있었다.
그 옆에서 피를 흘리며 절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다.
그랬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하지만 절망만이 가득하진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다리 위를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바로 소방대원들과 구조대원들이었다.
끊어진 다리를 기준으로 좌우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강에선 특수 제작된 소방용 선박에서 두꺼운 물줄기를 쏘아 올리고 있었다. 다리 곳곳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 중이었다.
하늘은?
투다다다!
구조 헬리콥터, 응급 헬리콥터, 심지어 경찰 헬리콥터까지.
여러 헬리콥터들이 상공을 배회하며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하는 모습도 보였다.
끝이 아니다.
경찰들도 있었다.
교통 통제만 하는 게 아니라 위험을 감내하고 구조대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또 수면을 가르는 자그마한 모터보트를 이용해 다리 주변을 꼼꼼하게 수색하기도 했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었다.
이 지옥 속에서도 노력으로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살펴보던 중이었다.
“5초 전!”
하강할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로프를 잡고 레펠 할 자세를 잡았다.
저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희망에 한 손 보탤 시간이다.
등을 밖으로 향한 채 로프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도성민도 마찬가지였기에 곧 시선이 마주쳤다.
헬멧을 착용 중이라 험악한 인상만 가득 보였다.
어디서든 마주 걷게 되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 줄 인상이었다.
그런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두려움?
없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자신도 무언가 할 수 있단 의욕으로 가득했다.
태수 또한 그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단호한 눈빛이 오갔다.
그때 빠르게 날아가던 헬리콥터가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밑은?
한강으로 떨어진 상판이 보였다.
다리 위보다 더 처참하고 끔찍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도착했다.
이젠 정말 저 지옥에 뛰어들 순간이다.
부서지고 깨진 자동차로 가득해 마땅히 안착할 장소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강에 뛰어들 순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젠장.”
고민이 길어졌다.
두 눈이 빠르게 좌우로 굴러갔다.
그사이 헬리콥터는 속도를 줄이며 고도를 낮췄다.
태수와 도성민이 안전하게 강하할 수 있는 높이를 맞추는 과정이었다.
점점 상판과 가까워지니 끔찍한 광경이 선명해졌다.
고개를 돌리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더욱 눈을 부릅뜨고 강하할 장소를 빠르게 둘러봤다.
불과 2초나 지났을까?
“태수, 오른쪽 아래!”
도성민의 목소리에 태수가 빠르게 방향을 돌렸다.
그나마 천장이 평평한 승용차가 보였다.
한 사람이 강하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그 생각을 하던 중 도성민의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네가 저리 가.”
“넌?”
“봐 둔 데가 있어.”
도성민의 목소리에 태수가 멈칫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없던 탓이다.
태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까지 잃고 싶지 않아.”
“개새끼. 말하는 꼬락서니하곤. 난 안 죽어, 새꺄.”
“지랄.”
“걱정 마. 너보다 더 안전한 곳을 찾았으니까.”
“알았어.”
태수는 기운 넘친 도성민의 말을 신뢰했다.
동료를 위한 염려는 당연했다.
송민규의 일이 있은 후 첫 레펠인 탓이다.
하지만 떨리진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아비규환에 이미 머리끝까지 긴장감이 가득해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후!”
태수가 짧고 굵게 숨을 뱉으며 남은 복잡함까지 털어 버렸다.
그와 동시였다. 속도를 줄이던 헬리콥터가 멈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호버링이다.
그걸 느낀 순간 오민석 기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태수와 도성민은 동시에 로프를 풀며 힘차게 허공을 갈랐다.
촤아아악!
태수와 도성민의 몸이 떨어진 상판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강하하는 시간은 불과 10초도 되지 않았다.
텅!
태수는 앞서 도성민이 알려 준 승용차 천장에 무사히 안착했다.
빠르게 안전장치를 벗고, 또 줄줄이 엮은 가방을 풀었다.
그때였다.
퉁!
뭔가 투박한 소리가 들렸다.
정상적인 착지 소리가 아니다.
깜짝 놀란 태수가 얼른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스포츠형 SUV 적재함에서 몸을 일으키는 도성민의 모습이 보였다.
“끙, 감이 떨어졌나.”
헬멧을 통해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성민은 신체에 큰 문제가 없는지 빠르게 가방을 풀기 시작했다.
그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태수는 놀란 간담을 쓸어내렸다.
“저 새끼가.”
순간 울컥했지만 일단 가방부터 풀었다.
그 시간은 짧았다.
헬리콥터는 곧 기다랗게 늘어진 로프만 흩날리며 높이 떠올랐다.
그 와중에 오민석 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헬멧 무전기로 웬만한 곳은 연결이 될 겁니다. 아, 주파수 2개 낮추는 거 잊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성호종합병원으로…….”
“그쪽으로 갈 겁니다. 홍 선생이 모두 소집해서 옥상에서 대기 중이랍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십시오.”
“안전!”
오민석 기장의 목소리는 씩씩한 인사를 끝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투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멀어진 후였다. 그 공백을 느낄 틈도 없었다.
“아으으으.”
“살려…… 살려 주세요!”
사방에서 아우성이 가득 들려왔다.
태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얼마나 커다란 상판인지 왕복 8차선에 가득한 차의 행렬 끝이 쉽게 보이지 않았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의 차량만 계산해도 8대다.
그 안에 한 명씩만 있어도 8명.
혼자만 타고 있으란 법은 없었다.
그러니 현재 이 상판 위에 몇 명이 있는지도 계산이 되지 않았다.
둘러보는 건 잠깐이었다.
태수는 승용차 천장에서 내려왔다.
도성민도 적재함에서 내렸는지 빠르게 다가왔다.
살짝 인상을 찌푸린 얼굴을 본 태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괜찮아?”
“떨어지면서 살짝 발목을 접질렸어.”
“얀마…….”
화를 내려고 해도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도성민은 그런 태수를 마주보며 빠르게 말했다.
“아주 살짝이야. 약간 삔 정도.”
“…….”
“진짜라고. 그리고 지금 다리 삔 게 문제야?”
도성민이 따지고 들었다.
옳은 소리기에 태수도 일단 그 문제는 뒤로했다.
“일단 그건 넘어가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
태수는 순간 침묵했다.
의사만 2명.
그게 이 상판 위에 있는 구조 인원의 전부였다.
이상하단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태수는 일단 도성민에게 말했다.
“보이는 사람들부터 응급처치 들어가.”
“오케이.”
턱!
도성민은 몸집처럼 커다랗고 묵직한 가방 중 하나를 낚아챘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피를 흘리는 환자에게 접근했다.
“일단 소독부터 하겠습니다. 손 내리시고요.”
“……누구?”
“응급의료대입니다!”
소리치는 도성민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피가 끓는 이름이다.
태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확인할 단계가 아니었다.
우선 눈앞에 가득한 환자들부터 일차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턱.
태수도 묵직한 가방을 하나 낚아채 가까운 환자에게로 달려갔다.
40대 초반의 남자다.
오른손으로 피가 흐르는 머리를 누르고 있고, 왼팔은 축 늘어진 채 자동차에 기대어 있었다.
그 외에도 옷이 찢어지고 핏물이 흘렀다.
“크으, 으으으.”
그의 신음 소리가 너무 작게 들려왔다.
태수는 가방을 펼쳐 청진기부터 귀에 꽂으며 몸을 낮췄다.
가장 먼저 할 건?
의식 확인.
“이보세요! 저 보이십니까? 보여요?”
“하얀……. 의사?”
그가 가물가물한 눈으로 말하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응급의료대입니다.”
“응급……. 하아.”
환자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응급의료대란 말만 했는데도 하얗게 질린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한 느낌이다.
반면 좋아할 줄 알았던 태수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아직 긴장을 놓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얼른 청진판을 심장에 대며 다그쳤다.
“숨부터 쉬세요. 숨부터 쉬라고요!”
“후우.”
“더, 더, 더! 더 빨아들여요. 더!”
태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환자의 숨소리가 조금씩 커져 갔다.
두근두근.
심장 소리도 청진판을 통해 생생히 들려왔다.
커다란 충격에 심장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반면 숨소리는 양호했다.
그렇다면 일시적으로 심장의 움직임이 저하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판단과 동시에 청진판이 복부로 향했다.
간, 위, 췌장, 비장 순으로 빠르게 핵심만 딱딱 짚어 내려갔다.
‘약간의 간 출혈, 비장은 괜찮고…….’
실시간으로 증상을 머릿속에 입력하며 처치할 방법까지 떠올렸다.
다행히 충격이 컸지, 내부 장기는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대신 축 늘어진 팔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Winged Scapula Fracture(날개견갑골골절)이다.
거기에 Humerus(상완골, 어깨와 팔꿈치 사이의 뼈)도 부러졌다.
다행히도 응급수술의 우선순위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응급 환자임엔 틀림이 없었다.
“음.”
태수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방금 진단한 환자의 상태가 모두 맞는지 스스로 확신이 부족했다.
너무도 각박한 주변 상황이 계속 신경 쓰인 탓이다.
침착하려고 해도 마음만 급했지, 현실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상황이다.
“으으윽!”
“아, 아윽. 사…… 살려…….”
사방에서 들려오는 아우성들.
누가 중상자고 경상자인지 구분할 판단조차도 서지 않을 정도였다.
그걸 자세히 파악하는 시간에 누군가의 상처는 악화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격언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우선 눈앞에 있는 환자부터.
그를 보고 있다면 그에게 충실하는 게 옳았다.
가방 덮개를 열어젖힌 태수는 진통제부터 찾았다.
평상시라면 준중상자에 버금가는 증상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경상으로 분류하는 게 옳았다.
주사기에 옮겨 담은 약을 팔에 주입했다.
“으…… 으, 흐으.”
진통제가 빠르게 퍼지는지 그의 숨소리가 약간 편해졌다.
조금이나마 흐리던 눈빛도 초점이 잡혔다.
그사이 태수는 추가 응급처치를 진행했다.
골절된 날개 뼈는 당장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두툼한 압박붕대로 흉부를 감쌌다.
너무 강하게 조이면 부러진 뼈가 폐나 심장을 공격할 수도 있다. 적당한 힘으로 고정만 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골절된 팔도 움직이지 않게 깁스 팔걸이로 목에 둘러 움직임을 최소화 했다.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골절로 인한 통증을 완화해 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환부의 움직임이 덜하기에 근육과 신경 손상을 줄여 줄 수 있다.
태수는 한 번 더 그를 살피며 물었다.
“제 말이 조금 전보다 좀 더 잘 들리십니까?”
“끄으응. 네……. 후우. 네. 아까보다는…….”
“좋습니다. 지금 환자분은 왼쪽 팔과 날개 뼈가 부러진 상태입니다.”
“그렇…… 군요.”
“이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이 정도면 완전 럭키죠.”
“…….”
환자는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