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269
02272 2272화
“100퍼센트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름만큼 호흡은 좋으시죠.”
“오늘만큼은 100퍼센트가 될 겁니다. 왜? 우리는 성공할 거니까. 안 그러냐? 성민이란 축복받은 이름을 부여받은 대머리여.”
끝까지 놀리는 박성민의 짓궂은 농담에 도성민이 울컥한 마음을 억지로 억눌렀다.
“후우! 선배만 아니었으면.”
“아니면 뭐? 너 그러다가 한 대 치겠다?”
“아니요. 밀어 버릴 겁니다.”
“뭐?”
“제가 집도할 테니까 선배가 어시스던트하시라고요. 제가 오늘 선배 밀어내겠단 말입니다.”
도성민의 배포 큰 선언에 박성민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음음, 우리 성민이는 아직 아니야. 딱 10년만 더 수련하고 도전해. 그때는 받아 줄게.”
“폐 수술은 제가 더 강한데요?”
“이런 덩치만 크고 시야는 좁은 아이 같으니라고. 수흉 또한 하나의 증상일 뿐, 우리가 수술할 부위는 흉부 전체야.”
박성민의 날카로운 설명에 도성민이 갸웃거렸다.
“왜요?”
“태수가 나서기 전까지 환자의 전체적인 바디 컨디션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니까. 그러려면 심장은 필수로 살펴야 하니까 내가 집도의네.”
박성민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득의만면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를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제가 왜 나중에 들어갑니까?”
“그럼 또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사물놀이 하다가 픽 쓰러져서 골골거리려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 태수, 오늘은 형 말 듣자. 옳지, 착하다. 우쭈쭈.”
박성민이 아기 다루듯이 어르자 태수가 황당하게 바라봤다.
“농담할 때 아니거든요? 지금 준비 시작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니가 신속대응센터 내려가서 신속하게 환자 받아. 받아서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하고 기본적인 투약을 더해서 힘을 실어 줘.”
“…….”
“그동안에 우리는 준비하고 있을게. 서로 최대한 부담 줄이고 효율적으로 가자고. 이해해?”
박성민의 조리있는 말에 태수가 침묵했다.
“…….”
“네 환자 아니고 우리 환자야, 우리. 여기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의료진들이란 말이다, 이 욕심꾸러기 팀장님아.”
“출동이 문제 되면 안 됩니다.”
태수가 딴죽을 걸자 어디선가 불쑥 손이 올라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소지훈이 잘생긴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다.
“나 오늘 야간 조장이야. 내가 있고 모두 내려갈 것도 아닌데 상관없지 않아?”
“…….”
태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서영우도 한마디 했다.
“마취는 내가 할 거고, 내과 쪽은 공 선생을 호출할 거야. 화이트엔젤 넘버원 내과의라면 최 팀장도 불만 없지?”
“…….”
태수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였다.
탁.
김혁권이 이목을 집중시킨 후 말했다.
“간호사는 1차로 현미하고 수영이가 들어가. 나하고 선정이가 2차로 들어갈게. 예비 인원은 대기하고 있다가 호출하면 내려가고. 질문?”
“없어요.”
“좋아. 간호사들 선별 끝. 캡틴, 더 오더할 게 없어 보이네요.”
김혁권까지 간호사들을 말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그때였다.
턱.
박성민이 다시 태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지막이 물었다.
“우리는 응급의료대다. 맞지?”
“……네.”
“모두의 결정에 이의 있어?”
“없습니다.”
“그럼 결정, 땅땅땅. 자, 판결 나왔으니까 움직입시다. 도끼야, 씨암 챙겨라. 1시간 안에 수흉부터 심장까지 싹 다 해결하고 훑어 버리기까지 하자고.”
박성민이 세부 오더를 하며 멀어져 가자 도성민이 얼른 그 옆에 따라붙었다.
“씨암……. 그럼 PCI도 챙길까요?”
“음, 넘어온 EMR에 혈전은 없어 보이던데. 차라리 대동맥, 대정맥의 이상을 싹 훑는 게 좋을 거 같아.”
“그렇게 세팅하겠습니다.”
두 사람 뒤로는 브레드 김과 유병태가 움직이며 대화했다.
“닥터 유, 나하고 캡틴하고 먼저 신속대응센터에서 1차로 환자를 볼게. 닥터 유는 준비할 게…….”
“아, 네. 그거요. 준비하겠습니다. 혹시 간이 너무 안 좋으면 이식자 명단에 올려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것도 준비할게요.”
“그래. 우선순위를 뒤집는 게 쉽진 않겠지만 가능성은 열어 두자고.”
그들의 바로 뒤에선 서영우가 통화하며 걸어갔다.
“어, 공 선생, 오랜만에 응급의료대하고 콜라보레이션 어때? 무슨 일이냐고? 그러니까…….”
그다음으로 간호사들 또한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상황실을 나갔다.
그들을 지켜보던 태수의 입꼬리에 가느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아는데도 누구 하나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응급의료대였다.
상황실을 나선 모두는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태수는 브레드 김과 같이 신속대응센터로 향했다. 곧 두 사람이 나란히 신속대응센터 1층 뒷문을 통해 들어간 순간이었다.
“여기 좀!”
“갑니다!”
“영상의학과 전화했어?”
“5분 후에 올라오랍니다.”
“무슨 소리야! 응급이라니까!”
여기저기서 의료진들의 따가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 속에 각자 담당하는 환자에 대한 걱정과 다급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펼쳐진 풍경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르릉.
스트레쳐카와 의료 카트가 정신없이 오가고.
촤르륵!
가림막이 쳐지며 방금 도착한 환자의 응급처치 모습을 최대한 가렸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차라리 모르는 게 속이 편했다.
뒤에서 앞으로 가로질러 가며 둘러본 브레드 김이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전이나 서울이나 ‘신속’이란 말이 들어간 곳은 항상 똑같은 거 같아.”
“변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게 말이야. 왜 매일매일 누군가는 아파야 하는지.”
브레드 김은 안타까운 눈빛을 보였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던 중이었다.
하얀 가운에 빨간 핏물이 곳곳에 물든 서강재가 땀을 훔치며 다가왔다.
“퇴근……. 아니다. 태수야, 지원 좀 해 주라.”
“몰렸어?”
“딱 보면 몰라? 여름밤이라 그런지 왜들 그렇게 시원하게 달리시다가 다치는지.”
“교통사고?”
“요즘 상당히 많아졌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좀.”
서강재가 재촉했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오늘은 선약이 있어.”
“브레드 선생님하고? 야, 그럼 현관으로 나가지, 왜 이리로 나가는데. 놀리는 것도 아니고.”
“선약이 환자야.”
태수의 대답에 서강재가 무안한지 과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런 일이……. 그런데 신속대응센터로?”
“경찰지정병원에서 이쪽으로 환자 보낸단 연락 못 받았어?”
“그게 응급의료대로 보내는 환자였어? 난 화이트엔젤인 줄 알았지.”
“하긴 우리 쪽으로 오는 환자는 극히 적으니까. 그보다 바쁘다며.”
태수가 상기시켜 주자 서강재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젠장. 그래, 나 바빠. 괜히 설랬잖아. 헷갈리게 하지 말고 얼른 볼일 보고 사라져 버려. 아, 브레드 선생님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럼 바빠서 이만.”
타다닥!
서강재는 잊지 않고 브레드 김에게 인사한 후 서둘러 멀어져 갔다.
그 모습에 태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브레드 김이 나지막이 말했다.
“닥터 서도 꽤 밝고 활달한 성격 같아.”
“인턴 때도 저렇게 해맑았다가 겁나 깨졌죠.”
“그래도 저런 여유를 부리는 성격이 더 좋지.”
“맞습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아니니까 간호사실 쪽으로 가죠.”
태수가 권하자 브레드 김이 같이 움직였다.
여전히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신속대응센터를 가로지른 두 사람은 곧 간호사실에 도착했다.
저쪽이 전쟁이니 여기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방금 도착한 환자 차트 만들어졌어?”
“지금 하고 있어요.”
“박 간호사, 약재실에서 포도당 한 상자 꺼내 놓자!”
“갈게요!”
“여기 간호사 한 분 지원 좀 부탁합니다!”
“가요!”
잠깐 사이에도 간호사들 대여섯 명이 들락날락거렸다.
그녀들은 그 짧은 사이에도 태수와 브레드 김에게 눈짓으로 가볍게 인사하며 지나쳐 갔다.
태수와 브레드 김도 가볍게 고개 숙여 아는 척만 했다.
그렇게 오픈된 간호사실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던 간호사가 태수와 브레드 김에게 묵례만 하고 바로 본론을 말했다.
“경찰지정병원에서 출발한 구급차는 20분 후쯤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어요. 한 2분 전에 통화했고요.”
“예상 시간보다 늦는 거 같습니다.”
“한강 다리 넘어오는데 좀 막힌다네요. 운전자들이 협조를 해 주는데 차량이 워낙 많아서요. 다리만 통과하면 그때부터는 속도가 좀 나겠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경 써 준 간호사에게 인사한 후였다.
고개를 돌린 태수가 브레드 김과 마주 보자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브레드 김도 마찬가지 심정인지 먼저 입을 열었다.
“5분 정도 더 늦어진다니. 1분도 아까운데.”
“진짜 서울 교통 문제 있습니다.”
“나도 그래. 뉴욕하고 런던, 파리와 버금가는 교통 체증이니까.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을 정도로 차량이 많다고.”
브레드 김의 말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일단 준비부터 하고 있어야죠.”
“그래야지. 그런데 어떤 상태인지를 모르겠으니 그것도 막막하네.”
브레드 김이 걱정을 보였다.
치료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강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태수도 동감이었다.
“오는 동안 환자에게 어떤 변화가 있고, 또 어떤 처치를 했을지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뭘 준비해야 하냐고.”
“전화해 볼까요?”
“아차, 그렇지. 방금 통화했다고 들었는데도 이 모양이니.”
브레드 김이 머쓱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나 태수는 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NGO에서는 이송 중에 통신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무니까요.”
“아직 적응이 덜 된 거 같아.”
“오랜만에 들어오신 거니까 차분히 적응하세요. 일단 전화부터.”
태수는 다시 간호사실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대 구급차와 통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브레드 김은 천천히 신속대응센터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렇게 선진화된 응급시스템은 여기밖에 없어.”
그의 목소리에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브레드 김 또한 오랫동안 동성의료재단의 성장을 함께하고 또 지켜본 의사 중에 한 명이었다.
NGO의 특성상 세계 곳곳을 전전한 그였기에 더욱 냉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둘러보는 브레드 김에게 어여쁜 여의사가 다가왔다.
“브레드.”
“오! 닥터 김, 화이트엔젤에 있어야 할 닥터 정의 천사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브레드 김이 환하게 웃으며 반긴 의사는 김아름이었다.
김아름은 통화하는 태수의 안색부터 살폈다.
가까이서 태수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네. 그리고요? 음, 잠시만요. 제가 부탁 좀…….”
태수가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더욱 가까이 다가온 김아름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브레드 김에게 물었다.
“치프…… 아니, 팀장님 괜찮으세요?”
“닥터 김이 캡틴을 치프라 부르는 건 정말 오랜만에 듣네요.”
“저렇게 심각하실 때면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요.”
“역시 캡틴을 경험한 의사들은 뼛속 깊이 공포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브레드 김의 농담에도 김아름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공 선생님께서 보내신 이유가 있네요.”
“닥터 공이 닥터 김을 이쪽으로 보냈습니까?”
브레드 김이 놀라 묻자 김아름이 서둘러 대답했다.
“네. 가면 도와 드릴 일이 있을 거라고요. 먼저 수술실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 뒷일을 부탁하신다고요.”
“닥터 공은 확실히 철저하고 치밀한 의사네요.”
“그런데 어떤 환자예요?”
“이건 비밀을 좀 지켜주셔야 합니다. 난 당연히 닥터 김을 믿고요. 그러니까…….”
브레드 김은 이송되어 올 이정배 상경에 대해 자그마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을수록 김아름의 고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아니 심각해져갔다.
한편 태수는 자신의 입에서 풍겨 오는 단내를 느끼며 수화기를 내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생각하던 태수가 수화기를 다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재발신 버튼을 누른 후 신속대응센터 2층 수술실에 전화했다.
“저 최태수입니다. 박성민 팀장님이 계신 수술실로 연결 좀 해 주십시오.”
정중한 태수의 부탁이 끝난 후였다.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7번 수술실 송현미예요.”
“저 태수입니다. 선배님 좀 바꿔 주십시오.”
“잠시만요.”
송현미 간호사의 목소리가 바로 멀어지고 박성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