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3
00023 23화
허나 태수는 눈빛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이대로 다시 이송하면 저 사람 죽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여기서 죽일 거야? 네 눈앞에서 저 사람이 죽어야 네 속이 시원해?”
“살릴 겁니다.”
“인턴 주제에 무슨 재주로!”
이필영이 씹어먹을듯한 기세로 소리쳤지만 태수 또한 물러서지 않았다.
“전 못 살립니다. 하지만 다음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숨이 붙어 있게 하고 싶습니다.”
“야이 새끼야!”
“선배님이 말씀하셨잖습니까, 사람 살리는 곳이 병원이라면서요!”
태수가 벼락같이 소리쳤다.
같이 병동환자를 돌볼 때 이필영이 직접 했던 말이다.
스스로도 그 기억이 떠오른 건지 이필영이 잠깐 멈칫했다.
태수는 더 입씨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초 단위로 생사가 오가는 순간이다.
태수가 옆에서 눈치보고 있던 응급실 간호사를 향해 소리쳤다.
“morphine(모르핀, 마약성진통제), codeine(코데인, 기침억제제) 빨리!”
“저기 선생님.”
두 사람의 말다툼을 지켜봤기에 간호사가 주춤거리자 태수가 재촉했다.
“빨리 가져와요!”
“네!”
태수가 버럭 소리치자 간호사가 흠칫한 얼굴로 얼른 대답하며 멀어져갔다.
간호사는 의사가 내리는 처방대로 약만 준비해오면 된다. 그 뒤의 일까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기에 하라는 대로 할 뿐이었다.
응급을 다투는 환자만 다루는 응급실 간호사라 그런지 돌아오는 데는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주사약을 정맥에 주사하려는 사이 이필영의 손이 가로막았다.
“야이, 새끼야. 너 그거 찌르면 돌이킬 수 없어.”
“죄송합니다.”
“야!”
“병원부터 빨리 알아봐 주십시오. 살려야죠.”
휙!
태수는 이필영의 손을 뿌리치고 두 가지 약물을 빠르게 정맥 주사했다.
이필영 안색이 꺼멓게 죽어가는 순간이다.
“저런 미친놈.”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이필영은 그저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제발.’
이젠 이필영도 환자가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살기만 하면.
그나마 덜 깨진다.
죽는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이필영이 죽일듯한 시선으로 태수를 노려봤다.
그러나 태수는 오로지 환자만 주시하던터라 미처 보지 못했다. 이 판국에선 차라리 모르는 편이 약이다.
둘 다 마약성진통 효과를 갖는 약물이라 그런지 다행히 환자 얼굴이 빠르게 안정적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통증만 느끼지 못하게 한 것일 뿐, 아직 내부의 응급 상황은 그대로 진행 중이다. 이대로라면?
생명을 건지기 힘들었다.
태수는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을 필사적으로 짜냈다.
이런 복합적인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생명을 조금이나마 유지시키는 방법이 필요했다.
가슴을 열지 않는 한 출혈점을 찾는 건 힘들었다.
태수 눈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방법을 떠올려봤다.
그때 태수의 눈에 환자 입가에 흘러내린 핏자국이 보였다.
intraperitoneal bleeding(복강내출혈)이 확실하다.
내출혈이 지속되면 혈맥을 따라 돌아야할 피가 모자라 환자가 쇼크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
일단 수혈과 생리식염수 투여가 시급했다.
“혈액, 수액 달아요.”
태수의 말이 끝나자 혹시 몰라 준비했던지 간호사가 빠르게 움직였다.
태수도 손을 거들어 같이 준비했다.
혈액과 수액으로 부족한 피가 보충되는 지 환자 얼굴이 조금 더 좋아졌다.
그때 응급실 당직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정희의료원에서 환자 보내래.”
“앰뷸런스는요?”
“밖에 대기 중이야.”
“미시죠.”
태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당직의사와 함께 환자 침대를 이동했다.
털컥.
환자가 앰뷸런스에 무사히 탑승하고 응급실 레지던트가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동승했다.
트렁크 문이 닫히자마자 앰뷸런스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도 태수는 움직이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한 걸까?
차라리 피를 밖으로 빼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많았지만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앰뷸런스는 떠났다.
만약 환자가 다시 자신의 눈앞에 있더라도 더 이상 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지금은 무사하기만을 기도하는 게 최선이었다.
태수가 밤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더 식히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별안간 날아온 주먹이 태수 얼굴을 가격했다.
퍽!
“큭!”
아픔도 아픔이지만 어디서 날아온 주먹인지 몰라서 얼떨떨함이 더 태수를 당황하게 했다.
욱신거리는 부위를 손으로 대며 태수가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이필영이 노려보다 못해 극도의 흥분에 가볍게 몸까지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 너 이 새…끼.”
말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이필영의 불같은 시선으로 노려봤다.
태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미 이필영은 몸을 돌려 병원 안으로 사라진 후였다.
순간 태수는 앞일이 상상됐다.
레지던트 지시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환자를 케어한 인턴이 된 셈이다.
상하관계가 명확한 병원에서 특히 인턴과 레지던트 사이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뿐이 아니라 흉부외과 레지던트 지원에 대한 이야기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실수한건가?’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큰 일을 저지른 셈이기에 태수 얼굴이 순간 먹구름이 낀 듯 어두워졌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최소한 다시한번 가슴을 칠 자책감은 없다.
내가 한 행동, 책임은 진다.
태수 눈이 번뜩였다.
날이 밝자마자 간밤의 소식은 온 병원으로 퍼졌다.
“인턴이 레지던트를 물 먹였다며?”
“흉부외과 개판이네.”
“인턴이 당돌한 거야? 레지던트가 멍청한 거야?”
지시를 무시한 태수야 당연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지만 이필영도 마찬가지였다.
그 소식들은 당연히 흉부외과 과장을 포함한 전 써전에게 번졌다.
이추명 흉부외과과장은 바로 조교수를 불러 지시했다.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고, 파악 되는대로 보고하고 최태수 데려와.”
“네.”
조교수가 방을 나가자 이추명 흉부외과과장 낯빛이 어둡게 변했다.
“뭐 이런 개같은 경우가.”
도대체가 금시초문인 경우였다.
인턴이 레지던트를 무시하고 처치했다!
기가 막혀도 한참 막혔다.
한편 같은 시간 태수는 박성민 치프와 면담 중이었다.
그 자리에는 이필영도 같이 자리한 상태였다.
허나 말이 면담이지 분위기는 시베리아 겨울 추위보다 더욱 살벌하게 싸늘했다.
박성민 치프가 태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네가 한 말이 그 일의 전모다 이거지?”
“네.”
“이 선생. 빠지거나 누락된 사항이 있나?”
박성민 치프 질문에 이필영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솔직하긴 더럽게 솔직하다는 얘긴데, 태수야. 내가 좀 묻자. 네 눈에는 우리가 병신 핫바지로 보이냐?”
박성민 치프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태수가 할 말은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죄송? 지금 그 입으로 씨불이는 게 겨우 죄송? 대가리를 이 바닥에 찍어서 부셔버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죄송이면 끝이야?”
“살리고 싶었습니다.”
태수의 대답에 박성민 치프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니가 살리고 싶으면 살아? 간, 폐, 신장, 쓸게 할 거 없이 니가 살리겠다면 멀쩡해 지냐고!”
“아닙니다.”
“아닌데 왜 건방을 떨어? 왜 니 멋대로 죄다 밀어내고 나대? 다 병신 만들고 혼자 잘난 체하니까 우월감 느끼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태수가 고개까지 저으며 질색했지만 박성민 치프 닦달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인턴, 레지 다 겪고 치프까지 달면서 이런 개 같은 경우는 처음이야! 아주 기분 더럽고 성질 뻗쳐서 뒷골잡고 넘어가시겠다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럼 그 주둥이로 무슨 소리를 더 지껄이려고? 아주 아가리 묵념하고 대가리 팍 숙여, 이 새끼야!”
박성민 치프가 사정없이 찍어 눌렀지만 태수는 묵묵히 고개만 숙인 채 서있을 뿐이었다.
그때 당직실 문이 열리더니 조교수가 들어왔다.
“야, 그만하고. 최태수.”
“네.”
“따라와.”
조교수는 할 말을 끝내자 바로 몸을 돌려 당직실을 나갔다.
태수가 머뭇거리자 박성민 치프가 으르렁거렸다.
“어제는 보이지도 않던 레지던트들이 이제야 보이시나? 얼른 따라가지 못해?”
“다녀오겠습니다.”
“웬만하면 오지마라. 너 얼굴 보면 나 혈압 올라 쓰러지겠으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질책에도 태수는 빠르게 당직실을 나섰다.
조교수가 자신을 데리고 간 곳은 과장실 앞이었다.
태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흉부외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귀에 소식이 들어갔단 소리다.
그 뒤에 펼쳐질 일은 안 봐도 뻔했다.
태수의 암담함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조교수가 차갑게 재촉했다.
“뭐해? 안 들어가?”
“들어가겠습니다.”
“젠장. 어디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조교수는 태수를 진하게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혼자 들어가란 뜻이다.
어차피 도망갈 생각은 없으니 들어가야 했다.
“후우.”
태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추명 과장이 집무실 안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는 태수를 바라보자 손짓부터 했다.
“들어와 앉아.”
“실례하겠습니다.”
태수는 조심히 문을 닫고 들어가 소파에 자리했다.
소파 테이블에는 이미 멋들어진 찻잔에 따뜻한 차가 놓인 상태였다.
이추명 과장이 먼저 말했다.
“들지.”
“감사합니다.”
태수는 가볍게 입술만 축이고는 다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사이 이추명 과장은 그윽하게 한 모금을 마신 후 말했다.
“꽤 구하기 힘든 설록차인데 입맛에 안 맞는가 보군.”
“상황이 상황이라 차 맛을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야기는 들었으니까 생략하고, 왜 그랬는지부터 들어볼까?”
의외로 차분한 이추명 과장 목소리였지만 태수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답했다.
“살리고 싶다는 생각 하나뿐이었습니다.”
“생명을 살린다. 흉부외과 의사로써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할 사명이지. 그게 비록 인턴이라도 말이야.”
“감사합니다.”
“하지만 자네의 행동 하나 때문에 일어난 파장이 너무 커. 응급실 과장도 항의전화를 한 상태고 말이야.”
나지막하게 조목조목 따지는 그 음성이 더욱 태수를 긴장하게 했다.
“직접 해명을 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
태수가 침묵하자 다시 차를 한 모금 들이켠 이추명 과장이 말했다.
“그보다 그 동안 자네 인턴 생활을 살펴보니 꽤 성실했다고 하더군. 수술방에도 자주 들어가고 레지던트들과도 사이가 좋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의사란 말이야, 백 번 잘해도 한 번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면 그걸로 끝이야.”
단호한 이추명 과장 말에 태수는 아찔함을 느꼈다.
“그럼 나가야 합니까?”
“나간다?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자네야 그냥 나가면 되는지 몰라도 흉부외과는 인턴에게 무시당하고 내쫓았다는 이미지 밖에 심어주지 못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습이 얼마 안 남았던데, 그 사이에 스스로 이미지를 회복시켜. 그게 자네가 실수한 흉부외과와 선배인 이필영을 위한 길이니까.”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 동시에 태수는 눈앞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짐을 싸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난관 하나를 넘어선 기분이다.
태수가 빠르게 표정을 정리했지만 이추명 과장은 이미 봤는지 나지막이 물었다.
“계속 일하려면 다른 선생들이 곱지 않게 볼 텐데, 그래도 좋나?”
“지금까지도 깨지면서 배워왔습니다.”
“강도가 다를 텐데?”
“밤새 수도 없이 각오했습니다.”
태수의 말에 이추명 과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고 보지.”
“감사합니다.”
“내 할 말은 끝났으니까 나가 봐.”
이추명 과장의 축객령에 태수는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쿵.
과장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자 뜻밖에도 동기인 정민수가 서 있었다.
태수는 우선 과장실 문부터 닫고 정민수에게 물었다.
“나 기다렸어?”
“미친. 아주 면상을 뜯어버릴 수도 없고.”
“상황이 그랬다.”
태수의 말에 정민수가 고개를 털며 말했다.
“아, 몰라. 나도 지금은 네 얼굴 보기 싫으니까 백성현 부교수님한테 가 봐.”
“부교수님?”
“찾으신데. 빨리 가기나 해.”
정민수는 할 말이 끝났는지 뒤돌아보지 않고 멀어져갔다.
“연타로 깨지겠네.”
태수 입에서 한숨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