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31
00232 232화
봉합을 마친 태수의 시선이 김민성의 오른쪽 손으로 향했다.
부러진 뼈로 퉁퉁 부은 손을 casting(석고분대고정)해 놓은 상태였다.
일차적으로 뼈의 위치를 잡아 놓았지만 정형외과에서 한 번 더 제대로 맞춰야 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수술할 일이다.
한 번에 하지 않는 건 이번 2차 수술도 어린 김민성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될 수 있던 탓이다.
또 다시 아이가 수술대에 올라가야 하지만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분들은 다소 안도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뿐이었다.
그 외에 봉합한 부분을 한 번 더 확인한 태수는 수술 종료를 선언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동시에 들려오는 의료진의 목소리와 인사에 태수도 같이 고개 숙여 예의를 보였다.
수술이 끝나고 김민성의 아버지가 태수를 찾아왔다.
다가오자마자 보호자는 태수의 손을 잡았다.
“민성이 얼굴이 많이 편안해진 거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무사히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수술해주신 것도 너무 감사드리고요.”
김민성 아버지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억누르는 듯이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상태였다.
만의 하나라는 경우가 계속 마음에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마취 상태였지만 김민성이 ICU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표정이다.
표현하는 방법은 약간 거칠고 투박했다.
여자들과 같이 감정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절제된 감정과 거목 같은 든든함이 아버지의 정이 아닐까 태수는 얼핏 생각했다.
김민성의 아버지와 헤어진 태수는 정민수와 함께 의국으로 향했다.
네 시간에 걸친 수술.
쉽다는 게 거짓말이다.
수술 중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살이 내린다고 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기에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휴식을 위해 의국으로 가던 중이었다.
무심코 걸어가던 태수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멈칫했다. 그때 정민수가 한 걸음 앞서 걸어가다 멈칫하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따가 보자.”
“갑자기 어디 가시는데요?”
“일단 쉬고 있어.”
태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계속 걸음을 움직였다.
GIST 환자.
아무래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항악성종양제를 투여해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수술 날짜가 결정된 건 아니었다.
당장이야 문제가 없다고 해도 언제 급변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하석준 과장이 GIST에 대해서 심도 있게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태수는 나름대로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하고 움직이는 중이다.
우선 먼저 방금 같이 수술한 마취과 서영우에게로 향했다.
태수를 맞이한 서영우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쉬지 않고.”
“도움을 좀 청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나한테? 일단 앉아.”
서영우가 자리를 권하면서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내 자리한 두 사람 중 상석에 앉은 서영우가 여전히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인데?”
“GIST 환자 때문입니다.”
“수술하기로 결정 됐어?”
“아니요.”
태수의 대답에 서영우는 더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런데 나한테 무슨 부탁을?”
“혹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수술실에 들어와 주실 수 있습니까?”
“그거야 당연한……. 24시간 언제라도 콜하겠다는 거야?”
서영우가 콕 집어 묻자 태수는 편안하게 대답했다.
“만약의 경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도 마취과 당직이 있을 텐데.”
“응급상황에서는 선생님이 해주신다고 해야 제가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태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막말로 서영우의 실력이 동성종합병원 마취과의 최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동안 여러 차례 같이 수술한 경험을 무시하지 못했다.
또한 오늘과 같이 성공한 수술도 많았다.
그 점을 이야기한다는 걸 눈치 챘는지 서영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최 선생 부탁인데 그 정도는 얼마든지.”
“염치없는 부탁인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전에 최 선생 집도 하는 수술에 레지던트 투입한 건 사과해야지.”
“그거야 예전 일 아닙니까.”
태수가 손사래를 쳤지만 서영우 표정은 오히려 단단히 굳어졌다.
“빈 말이 아니라 그때 이해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그리고 신종원 선생도 그 이후로 참 많이 변했고 말이야.”
“좋게 변했다는 소식이면 더 좋겠습니다만.”
“그거야 물론이지. 3년차 중에서는 탑이야.”
“진짜 좋은 소식이네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신세 갚는다고 생각하라고. 그리고 내 번호는 알지?”
서영우의 말에 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단축번호까지 지정해 놓으려고 합니다만.”
“하하. 그러든지.”
서영우는 끝까지 태수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약간의 이해관계가 뒤섞인 대화였지만 태수는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해관계 또한 환자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서영우를 만난 후 태수는 수술실 김수진 간호사에게 향했다.
태수가 수술실 복도에서 잠시 기다리자 김수진 간호사가 잰 걸음으로 다가왔다.
환한 얼굴로 다가온 그녀가 먼저 장난스럽게 물었다.
“방금 수술 끝난 분이 무슨 일이실까?”
“저희 외과에…….”
태수가 대략적인 설명을 이어가려 운을 띄웠다.
같은 말 반복하는 걸 그리 즐기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김수진 간호사는 수술실 담당이었기에 외과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알 수 없던 탓이다.
그러나 태수의 생각은 보기 좋게 무시당했다.
“GIST 환자 말하는 거 같은데, 그 환자 왜요?”
“알고 계십니까?”
“요즘 외과 간호사들하고 좀 친해졌어요.”
그 말이면 됐다.
태수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제가 요청하면 언제든지 수술실 열어주실 수 있습니까?”
“언제든지?”
“언제든지.”
태수가 재차 같은 말을 반복하자 김수진 간호사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내 김수진 간호사는 제안했다.
“나도 참여하는 조건이라면 이야기해 놓을게요.”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콜.”
김수진 간호사는 화끈한 대답과 함께 찡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수술에 필요한 가장 두 사람에게 확답을 받은 후에야 태수는 외과 의국으로 돌아왔다.
끼익.
태수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당직용 침대에 늘어져있던 정민수가 고개만 돌려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건데?”
“마취과, 수술실.”
“환자 상태가 그렇게 안 좋지는 않은데.”
정민수의 물음에 태수가 눈빛을 반짝였다.
“사람 일 모르는 거니까.”
“그건 그렇지. 그보다 허락은 받았고?”
“양쪽 다 오케이야.”
“그럼 좀 안심이 되네.”
정민수 얼굴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사이 태수는 다른 당직용 침대에 등을 뉘였다.
“에그그. 딱 30분만 더 쉬자.”
“성은이 망극합니다. 치프.”
“잠이나 자.”
태수가 핀잔을 줬지만 정민수는 피곤한 얼굴과 달리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알람을 맞춘 두 친구는 뿌듯한 마음으로 동시에 수면을 취했다.
수술까지 태수에게 미룬 하석준 과장은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의 책상에는 GIST와 관련한 온갖 사례들이 가득했다.
태수가 가져온 사례뿐이 아니라 김기훈 과장은 물론 주변 인맥을 모두 동원해 수술 케이스들을 모두 수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례들을 살펴보고 김명식 환자의 경우와 대조해보며 머릿속에 지식을 쌓아갔다.
하석준 과장에게도 이번 수술은 발전의 기회였다.
그만큼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침 의국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상석에 자리한 하석준 과장의 안색이 꺼멓게 죽어 있었다. 그러나 눈빛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며칠사이 뭔가 만족할 성과를 얻은 모양이다.
그러는 사이 오늘 스케줄에 대한 송민규의 발표가 끝났다.
“……그렇게 진행될 거 같습니다.”
“예정대로 진행하고, 치프.”
하석준 과장의 부름에 태수가 바로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GIST 환자 검사 후에 내 방으로 오도록.”
“알겠습니다.”
태수는 대답과 동시에 노트에 적힌 자신의 오늘 스케줄을 조율했다.
오더대로 검사를 마친 태수는 결과지를 들고 곧장 하석준 과장의 방으로 향했다.
“검사 끝났습니다.”
“어떻지?”
하석준 과장이 묻자 태수가 말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적기라니?”
“수술하기에 딱 좋은 상태란 이야깁니다. 여기 보시면…….”
태수는 검사결과를 증거로 내보이며 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석준 과장도 그 결과를 보니 정말 수술하기 좋았다.
항악성종양제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다.
하지만 계속 항생제를 투여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항악성종양제가 종양의 크기를 줄여주지는 않는다. 정말 작은 종양이라면 모를까, 두 개의 주먹만한 종양을 줄여줄 항악성종양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종양의 조직이 부드럽게 변해 떼어내기 좋은 상황이다.
하석준 과장도 태수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내 수술스케줄은 어떻지?”
“내일 오후, 그리고 모래 아침이 비어 있습니다.”
“내일 오후로 스케줄 잡아서 수술계획서 만들어. 오후부터 김명식 환자 금식 시작하고.”
“알겠습니다.”
태수는 노트에 빠르게 오더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수술계획서는 언제 누가 어떤 수술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수술계획서는 여러 곳으로 향한다.
수술실, 마취과가 그 대표적인 장소다.
수술실에서는 수술계획에 맞춰서 간호사를 배치하고 수술도구를 준비한다.
마취과 또한 어떤 마취를 준비할지,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예측하며 수술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두 장소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이 수술계획서는 또 한 곳으로 향한다.
그건 바로 병원장이었다.
매일 어떤 수술이 계획되어 있는지 결재서류가 올라온다.
병원장은 계획된 수술들을 확인하며 병원의 전체적인 스케줄을 확인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올라온 수술계획서를 확인하던 병원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사락.
수술계획서를 내려놓은 병원장의 손에 수화기가 들렸다.
“외과장인가? 잠깐 내 방으로 오지.”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병원장의 시선은 계속 수술계획서로 향해 있었다.
잠시 후 병원장의 방에 하석준 과장이 도착했다.
“찾으셨습니까?”
“앉지.”
병원장은 자리를 권했다.
하석준 과장이 소파에 앉자 병원장은 성격답게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물었다.
“내일 수술 자신 있나?”
“어떤 수술이든지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험도는?”
“그리 적진 않습니다.”
하석준 과장의 대답을 들은 병원장이 바로 이어서 질문했다.
“그런데도 진행한다는 건가?”
“철저히 준비 했습니다.”
“실패하면 자네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아.”
“성공해도 저에게만 이득이 되진 않을 겁니다.”
망설임 없이 받아치는 모습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병원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
“실망시키진 않겠습니다.”
하석준 과장은 끝까지 어깨를 좁히지 않았다.
병원장과 이야기가 끝난 후 하석준 과장이 태수를 찾았다.
매번 마주하는 과장실이 아니라 이번에는 병원 내 공원 벤치에 자리한 두 사람이다.
“분위기를 좀 바꾸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괜스레 한마디 건네는 하석준 과장의 모습에 태수가 먼저 물었다.
“병원장님 만나고 오셨다면서요.”
“그렇지.”
“뭐라고 하십니까?”
“진행하라시더군.”
하석준 과장의 말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장님이라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보다 문제는…….”
“내과죠.”
“그렇지.”
하석준 과장은 쓴 미소를 지으며 음료수를 입으로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