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444
02447 2447화
혹시나 싶은 태수는 슬쩍 늘어 둔 줄을 당겨 어망을 꺼내 봤다.
펄떡, 펄떡.
물고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 수와 크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멸치 파티도 아니고.’
실제로 그보다 컸지만 태수 눈엔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도 들어가지 않고 밤새 두 눈 벌게져 가며 이러고 있었다.
다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인 탓이다.
또 밤바다 낚시의 독특한 매력도 한몫했다. 문제는 이제 슬슬 식사를 준비해야 할 때란 거다.
곧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아무리 놀자 판이라 밤새 술 마시고 떠들었대도 점심 때 즈음엔 부스스 일어날 터였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어망이 절로 차오르지 않는다.
그게 걱정이었다.
“쩝.”
태수가 텅텅 빈 어망을 보며 쓴 입맛을 다셨다.
그때 옆에서 졸다가 깼는지 김혁권의 꽉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뭐 잡았어요?”
“아니요. 확인이요.”
“나 혼자 먹기도 부족한 걸 계속 눈독 들여 뭐합니까. 으으, 몸이 찌뿌듯하고 두들겨 맞은 거 같네.”
“들어가서 쉬세요.”
“그럴 거였으면 진즉에 들어갔겠지……. 어? 저기!”
김혁권이 놀라 손짓했다.
그곳을 바라보니 하석준 팀장의 낚싯대가 격동하고 있었다.
태수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팀장님!”
“어, 어?”
“물었습니다.”
“음? 아!”
하석준 팀장은 잠에서 덜 깬 얼굴인데도 반사적으로 낚싯대에 손을 뻗었다.
낚시꾼의 본능이었다.
이어서 낚아챈 낚싯대가 크게 휘어지자 하석준 팀장의 얼굴이 순간 환하게 바뀌었다.
“손맛 죽이고. 이거 제대로 물었어!”
“오오!”
다들 잠이 확 달아난 얼굴로 기대감을 보였다.
한 마리라도 큰 놈을 잡아야 핑계라도 댈 수 있을 터였다. 또 이젠 고통이 되어 버린 낚시에서 벗어날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훈수도 거침없이 날렸다.
“당겨요, 당겨!”
“잠깐 풀어야 할 때 같은데요.”
“일단 힘을 빼 놓고! 좋습니다. 잘되고 있어요.”
시끄러울 정도로 오가는 목소리에 하석준 팀장이 작게 신경질을 냈다.
“내가 하고 있잖습니……. 어이쿠, 힘이 너무 좋은데요!”
“이거 한 방으로 제발 끝냅시다. 딱 60센티미터짜리 월척 하나만 낚자고요. 핑계라도 좀 대고 쉬게.”
“이젠 엉덩이가 아파요.”
다들 앓는 소리로 간절하게 빌었다.
하석준 팀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더욱 잔뜩 긴장한 채 휘어진 낚싯대와 사투를 벌였다.
그러길 1분여 정도 지났을까?
하석준 팀장이 눈빛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
“좋아, 온다!”
릴을 감는 그의 손길이 빨라졌다.
물고기가 이제야 지친 모양이다. 릴을 감는 속도가 점점 빨라질수록 모두가 거는 기대감 또한 급격히 상승했다.
이윽고 하석준 팀장이 소리치며 낚싯대를 뒤로 크게 당겼다.
“왔다!”
그렇게 힘찬 목소리를 터트린 순간 바다 속에서 무언가 불쑥 올라왔다.
그런데…….
“…….”
“…….”
낚싯대에 걸린 무언가를 본 모두의 황당한 시선이 하석준 팀장에게로 향했다.
하석준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턱.
손에 쥐어진 건 다름 아닌 손바닥 하나 정도 될까 말까 한 광어였다.
그걸 본 김혁권이 나지막이 한마디 꺼냈다.
“월척?”
“…….”
“손맛이 죽여주셨다고요?”
“크흐흠.”
하석준 팀장의 얼굴에 무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태수를 비롯해 다들 시선을 슬그머니 돌려 못 본 척했다.
이런 게 바로 사회생활이란 거였다.
그런데 김혁권은 그 사회생활과 동떨어진 인물이란 게 문제였다.
“베테랑 낚시가 어째요?”
“…….”
“프로로 전향할까 생각도 하셨단 분이 고만한 광어와 사투를 벌이시던데요.”
“김 간호사님.”
태수가 슬쩍 눈치를 줬지만 김혁권에겐 소용없었다.
“참 광어가 그렇게 엄청난 생선인지 이제 알았네.”
“흠흠. 조, 졸다가 깨서…….”
“그냥 앉으세요. 할 말도 없어 보이시는데.”
“…….”
하석준 팀장은 결국 무안한 얼굴로 슬그머니 다시 낚시 의자에 앉았다.
그때였다.
띠리릭.
김혁권의 휴대폰이 울렸다.
뚱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김혁권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여보세……. 어? 응. 그, 그래. 잘 잤어? ……내 모, 목소리야 밤새 낚시를 해서 잠긴 거지……. 어, 잠시만.”
김혁권은 얼른 태수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 상대가 누군지 뻔히 짐작한 태수가 움찔했다.
“어, 어쩌라고요.”
“일단 받아요.”
“꼭 받아야 할까요?”
“거참, 빨리.”
김혁권도 난처했는지 얼른 태수에게 휴대폰을 떠밀었다.
얼떨결에 받아 든 태수는 일단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네, 송 간호사님.”
“밤새 고생하셨어요. 이제 슬슬 물 끓여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그…… 그렇죠.”
“왜 목소리에 힘이 없으실까? 설마 못 잡았어요?”
그녀의 물음에 태수가 간밤에 호언장담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여기서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면 개망신이다.
그 생각에 태수는 일단 저질렀다.
“겁나게 잡았으니까 물 많이 끓이십시오. 회도 좀 떠야겠고요.”
“정말이요? 어머, 역시! 준비 많이 해 놓을게요.”
송현미 간호사가 신이 난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태수가 휴대폰을 내린 순간 김혁권의 비난이 살벌하게 들려왔다.
“뭐가 있다고 물 끓이고 회 뜰 준비를 하랍니까?”
“이럴 때가 아닙니다. 가시죠.”
“어딜?”
“시장이라도 가야죠.”
태수는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그 소리가 옳았는지 다들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쯤 되면 자존심 문제였다.
“그래. 시장이라도 쓸자.”
“최소한 쪽팔리진 말자고.”
꼼수라고 해도 좋았다.
일단 팀원들은 먹여야 할 거 아닌가.
그 생각에 시장으로 달려갈 열의를 불태웠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뒤에서 트럭이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무슨 트럭?
다들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1톤 트럭에서 박지석과 김동석이 노란 컨테이너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어느새 다가온 그들이 노란 컨테이너 상자를 태수 앞에 내렸다.
텅.
내려다보니 각종 어류들이 컨테이너 상자 안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어?”
태수는 물론 모두가 놀라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한 김동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일 안 잡힐 때 와서 고생이 많아.”
“…….”
“그래도 빈손으로 들어가면 되나. 이거라도 가져가서 무용담 좀 늘어놓고 해.”
그 말을 마친 김동석이 돌아섰다.
그때 박지석이 한마디 했다.
“최 팀장이 회는 기가 막히게 뜨잖아. 회도 좀 먹이고. 매운탕 거리도 많으니까 든든하게 먹어.”
그리고 박지석도 떠나갔다.
이어서 1톤 트럭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부웅.
그 모습을 모두 멍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때 태수가 트럭을 향해 엄지를 내밀며 말했다.
“저분들이 천사였어.”
“인정.”
다들 뜻하지 않은 횡재에 엄지를 내밀기에 바빴다.
잠시 후.
그 컨테이너 상자는 마을 회관 부엌에 도착했다.
텅.
태수를 비롯한 하석준 팀장, 김혁권과 공우혁 등 전문의들의 어깨가 떡 벌어졌다.
컨테이너 상자를 내려다본 송현미 간호사가 눈을 크게 떴다.
“어머머, 이걸 전부 잡으셨어요?”
“하하. 이 정도는 기본이죠. 안 그렇습니까?”
태수가 슬쩍 동조를 구하자 모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 간호사님이 잘 모르셔서 그렇지, 제가 프로까지 생각한 낚시꾼입니다.”
“나도 어제는 좀 잡았지.”
“낚싯대가 바다에 1분 이상 있었던 적이 없다니까요.”
확실히 남자들이라 허풍이 더해졌다.
그때 컨테이너 상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유심히 살펴보는 여자가 있었다. 어제 느지막이 따로 도착한 이선정 간호사였다.
그녀는 빤히 살펴보다 슬쩍 하나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요새는 앞바다에서 오징어가 잡혀요?”
“…….”
“이건 명태네요. 문어도 작은 게 하나 있고…….”
“…….”
모두 침묵했다.
그러자 이선정 간호사가 힐끔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상하네. 어째서 이런 애들이 코앞에서 잡혔을까요?”
“그, 그건…….”
“그렇지 않아요? 최 팀장님이 보건의 할 땐 한 번도 못 잡았던 것들이 이렇게 잡히는 게 이상하잖아요.”
“수…… 수온이 변한 거죠.”
태수가 억지 핑계를 대자 모두가 뜨끔한 얼굴로 동조하기 바빴다.
“그렇지. 어제 유독 추웠지.”
“그 자리에서 맨날 같은 것만 잡히나요. 다른 것도 잡히고 그러는 거지.”
“그게 낚시의 묘미죠.”
그들의 핑계에 이선정 간호사가 빤히 바라봤다.
“…….”
“…….”
찔리는 게 있는지라 모두 그 시선을 슬쩍 피했다.
그때 송현미 간호사가 이선정 간호사에게 눈치를 줬다.
“선정아, 식사 준비해야지.”
“언니, 이상하잖아요.”
“됐어.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아서 항구에 다녀왔다고 해도 어쨌든 이렇게 먹을 건 있잖아.”
송현미 간호사의 날카로운 지적에 김혁권이 반발했다.
“한 마리도 못 잡진 않았어!”
“다 잡은 건 아니란 소리시네요.”
“……아, 아이고, 이상하게 덥네.”
“밤새 낚시하셨는데 더워요?”
송현미 간호사가 꼬투리를 잡자 태수가 얼른 김혁권을 나무랐다.
“이 타이밍에 왜 더우십니까?”
“마, 말이 헛 나온 거라고요.”
“당황하시면 어쩌자고요.”
“그러는 캡틴 얼굴은 아주 태연한 줄 아시나? 그리고 막말로 먼저 시장 가자고 말한 건 누굽니까?”
김혁권의 반격에 태수가 되받아쳤다.
“안 갔잖아요.”
“갈 필요가 없었던 거지. 동석 씨하고 지석 씨가 떡하니 가져다줬으니까!”
김혁권이 으르렁거릴 때였다.
태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저기, 김 간호사님?”
“왜요? 뭐……. 헙!”
김혁권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의 눈빛은 이미 가늘어져 있었다.
“오호,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줄 몰랐네요.”
“1분에 한 마리? 프로가 어째요?”
그녀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동시였다. 태수가 좌우를 빠르게 둘러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튀어요.”
그 말과 동시였다.
타다닥!
일제히 돌아선 모두가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갔다. 이 순간은 하석준 팀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송현미 간호사와 이선정 간호사는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어쩜 다 저렇게 똑같은지.”
처음부터 짐작한 일이라 그런지 도망가는 모두를 흘겨봤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식사가 끝난 후였다.
태수가 벽에 등을 기대고 소화를 시키고 있었다.
나른한 이 순간을 즐기던 중이었다. 갑자기 그림자가 드리워진 느낌에 눈을 뜬 태수가 이성혁을 발견하고 옅게 미소 지었다.
“어제 퍼마시던데.”
“지금도 알딸딸합니다. 회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커피 가져왔습니다.”
“오호, 그건 고맙지. 앉아.”
태수가 바로 커피를 받아 들고 옆자리를 권했다.
이성혁이 나란히 앉자 주변에서 슬금슬금 눈치 보는 게 느껴졌다.
태수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손짓했다.
“눈치 보지 말고 올 놈들은 빨리 와.”
“하하, 이거 참.”
어색한 웃음을 지은 팀원들이 다가왔다.
대부분 레지던트들이었다.
남자들이 월등히 많지만 여자들도 함께 섞여 있었다.
다들 태수를 어려워하진 않았다.
다만 쉬는 시간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런 모두를 둘러본 태수가 툭 터놓고 물었다.
“그래서 커피 한 잔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냥요.”
다들 슬쩍 얼버무렸다.
그러나 이성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