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594
02597 2597화
그사이 김준혁 탐장의 발언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랬던 저는 대전으로 옮겨 가……. 그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
모두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리자 김준혁 팀장이 강렬한 눈빛으로 천천히 둘러보며 각오를 말했다.
-여기 계신 최 팀장님과 박 팀장님이 어렵게 쌓아 온 초석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강원도만의 특색과 이점을 십분 활용하는 응급의료대로 자라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꾸벅.
김준혁 팀장이 단상 옆으로 나와 깊게 고개 숙였다.
그 모습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 셔터를 쉼 없이 눌렀다.
그렇게 공식 발언이 끝난 후에는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다.
“먼저 엄 차관님께…….”
“저 또한 삼척의…….”
“삼척 응급의료대에 대한 기대…….”
“이미 모두가 똘똘 뭉쳐…….”
질문과 답변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그리고 기자들은 엄수찬 차관뿐만 아니라 유승원 과장부터 김준혁 팀장에 이르기까지 자리한 모두에게 폭넓게 질문했다.
자리한 모든 이들은 기자들에게 대답하는 한편, 그 대답 속에 기자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기도 했다.
그렇게 입이 아프다 못해 마를 정도로 말을 하고야 모든 행사가 마무리됐다.
그건 공적인 시간이었다.
삼척종합병원의 응급실 주변에선 안면이 있는 기자들과 사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입이 아프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건 사람들의 시선이 그만큼 쏠려 있고, 또 좋은 일이라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자리엔 오늘 발언한 모두가 함께했다.
그중 박성민이 저 멀리 누군가가 보이자 손을 번쩍 들며 반겼다.
“아, 조 기자님,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아이고, 박 팀장님, 내가 아까 막 손 흔들고 인사했는데.”
“제가 또 단상에 있을 땐 진지 박성민 아닙니까. 으하하! 그래서 오늘 우리 기사 좀 예쁘고 아름답게, 살살 양념 좀 버무려서…….”
박성민은 특유의 넉살로 아는 기자들이 많았다. 유쾌한 대화를 나누며 슬쩍 홍보를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건 박성민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무리를 이뤄 공적인 자리에선 말하기 껄끄러운 대화들이 소소하거나 화기애애하게 오갔다.
태수도 물론 함께였다.
한 무리의 기자들과의 개별 인터뷰가 슬슬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진행될 거라고 봅니다.”
“산악과 해상을 중심으로 하는 응급의료대는 좀 신선하네요.”
“김 팀장이 그 특성을 잘 살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이건 좀 더 다듬어서 기사에 포함시킬게요. 더 좋은 소식도 줄줄이 이어진다는데, 그때 또 뵙겠습니다.”
기자들은 충분한 답을 들었는지 미소 띤 얼굴로 멀어져 갔다.
태수도 이제야 주변이 한가해져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여기, 한 모금 해.”
불쑥 다가온 물병에 태수가 무심코 잡으며 답했다.
“감사합……. 형님!”
태수가 이렇게 반색하는 상대는 다름 아닌 김성국 기자였다. 그런데 밝은 태수와 달리 김성국 기자의 표정이 약간 뚱했다.
“동생이라더니 이탈리아 다녀와서 코빼기도 안 비추냐?”
“선물은 보냈습니다. 아주 튼튼하고 멋스러운 가죽 제품 일체로요.”
“그래. 네 형수 입은 엄청 찢어졌더라.”
“다행이네요.”
태수가 머쓱하게 답하자 김성국 기자가 슬쩍 흘겨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제야 얼굴 보는 건 잘못한 게 맞지?”
“깔끔하게 인정합니다.”
“오늘 합동 만찬인가는 저녁이라고 했으니까, 차 한잔하러 가지?”
김성국 기자가 반 강제로 권했다.
태수는 잠시 주변부터 둘러봤다. 여기저기 개별 인터뷰를 명목으로 다과 시간처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딱히 찾을 분위기가 아닌 느낌이다.
그때 태수와 박성민의 시선이 마주쳤다.
스윽. 힐끔.
태수가 마시는 손짓과 함께 고개 돌려 이동할 뜻을 비쳤다.
박성민은 손가락을 오므려 알았단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사인이 오간 후에야 태수가 김성국 기자에게 말했다.
“가시죠.”
“참 순서 복잡하네.”
“어른들과 함께라서 독단은 곤란하죠.”
“그래. 사라지더라도 알리고 사라지는 게 맞지. 좌우간 여기는 커피 맛있게 하는 집이 있나?”
“제가 또 삼척은 제 손등만큼 잘 알고 있습니다.”
태수의 신선한 표현에 김성국 기자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하단 표현은 들어 봤는데 손등 같단 소린 처음이네.”
“보건의 할 땐 손바닥이었는데, 시간이 지났으니까 손등 정도가 딱 맞죠.”
“하여간 동생은 만나기 어려운데, 만나면 즐겁다니까. 일단 가 보자고.”
“음, 그럼 이쪽으로.”
태수가 안내하자 김성국 기자가 환한 얼굴로 뒤따랐다.
잠시 후.
태수와 김성국 기자는 자그마한 커피숍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여기저기서 태수를 기웃거리는 시선들이 많이 느껴졌다. 삼척에 응급의료대 개소 소식을 시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탓이다.
그래서 알고 있지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김성국 기자 앞에 놓인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고급 카메라 덕분이었다.
척 봐도 기자 느낌이 물씬 풍기는 김성국 기자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래서 한가한 이 분위기를 태수가 슬쩍 언급했다.
“그런데 형님이 언제부터 카메라 들고 다니셨습니까?”
“가끔 들어. 기왕이면 비싸고 큼직한 놈으로. 그래야 인터뷰해 주는 분들이 실력 좋은 기자인 줄 안다고.”
“하하! 그거 재밌는 용도네요.”
태수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사이 커피 한 모금을 마신 김성국 기자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제주 응급의료대는 언제 개소식한다고?”
“아직 일정 안 잡혔는데요.”
“또 왜 이래. 내가 엄 차관님 성격을 몰라, 아니면 최 팀장 성격을 몰라?”
“흐음.”
“……그 반응으로 보면 다음 주쯤인 거 같은데…… 아닌가?”
김성국 기자는 말하면서 계속 태수의 반응을 살폈다.
태수 또한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였다. 절대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흐음, 커피 맛은 여전히 좋네.”
“거참.”
“식으면 맛없습니다.”
“에헤이……. 알았어. 오프 더 레코드!”
그가 먼저 백기를 들자 태수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보름 후입니다.”
“왜 보름이나 걸려?”
“동시 개소 하려고요.”
“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감질나게 하지 말고 좀 시원하게 말해 봐라. 나만 알고 있는다고.”
김성국 기자가 애원하다 신경질로 변해 가자 태수가 얼른 두 손을 가볍게 내리며 말했다.
“알겠으니까 진정하세요.”
“진정시켜 놓고 진정하라고 하든가.”
“알았다니까요. 서해에 섬이 많잖습니까. 그래서 당진이나 나주 쪽으로 한 군데 더 개소하려고 합니다.”
태수의 계획을 들은 김성국 기자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럼 광주 쪽하고 출동 범위가 겹치지 않아?”
“또 헬기가 앉을 만한 섬이 많지 않죠.”
“문제가 좀 있네.”
“그래서 해안 경비대 쪽과 연계해서 고속정을 함께 운영할까 하는데, 그게 조율이 쉽지 않네요.”
태수의 말에 김성국 기자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지들 손해 본단 느낌이 들면 바로 뒤로 빼는 인간들이 있다니까.”
“오해는 마시고요. 지원은 결정이 됐는데, 몇 가지 세세한 부분들에서 이견을 보이는 중입니다.”
“그것만 조율 끝나면 좀 더 폭 넓은 응급의료대가 된다, 이거네?”
김성국 기자의 질문에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거기서 늘리는 건 멈출 겁니다.”
“왜?”
“더 늘어나면 또 예전 꼴 나니까요. 인적 자원의 한계가 있는데 무리하게 늘리면 또 내부에서 갈라집니다.”
태수가 우려를 보이자 김성국 기자는 바로 이해했다.
“그건 피해야지. 브레드 김이 총괄 팀장 자리에서 골머리 썩는 거 같던데.”
“언제 만나셨습니까?”
“……뭐야, 아직 그 소식 몰라?”
김성국 기자가 외려 묻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야! 이거 이렇게 무심해도 되나 싶네.”
“그러니까 뭐가요.”
이번엔 태수가 답답해했다.
슬슬 눈빛이 가늘어지자 김성국 기자가 두 손을 얼른 들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말할 테니까 째려보진 말자.”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송 선생 어머니 말이야.”
“어머니요?”
태수가 나지막이 질문을 건넨 순간이었다.
싸아악.
주변 공기가 갑자기 묵직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태수가 최근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 그 속도가 무척 빨랐다.
그런 분위기 변화를 이미 경험해 본 김성국 기자는 긴장하지 않고 나지막이 되물었다.
“한 달에 한 번씩 검사하신다지?”
“네. 저번 달에도 검사했고, 결과는 정 선생이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지내시는데 문제가 있다면 그게 이상하지.”
“형님.”
태수가 인내심의 한계가 다가옴을 알린 반면 김성국 기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안 불러도 되니 다 말해요.”
“…….”
“내 말보다 이게 알아듣기 편할 거 같은데. 잠깐만.”
김성국 기자는 휴대폰을 꺼내 조작하더니 불쑥 내밀었다.
받아 들어 보니 아직 송고되지 않은 기사 초안이었다.
몇 번 기사 내용을 수정한 적이 있는 태수라 바로 알아보고 내용을 확인했다.
-‘민규네 집’이라 쓰고, ‘대박집’이라 읽는다.
응급의료대의 명예 팀원인 고 송민규 선생의 모친이 운영 중인 한식당이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다.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게 된 그 이유는…….
쭉 초고 내용을 살핀 태수의 두 눈이 환하게 반짝였다.
“우와! 이거 정말입니까?”
“당연히 정말이지. 난 직접 발로 뛰어서 취재한 거 아니면 안 쓰는 주의야.”
“알죠. 아는데……. 이야, 이거였네.”
태수의 반응을 김성국 기자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어째 알고 있었단 반응인데?”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이거일 줄은 몰랐습니다.”
“음.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된 일이었다고 정정 해야겠네.”
“그래도 문제없을 겁니다. 그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지?”
태수는 정말 기가 막힌 표정으로 다시 기사를 읽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꿈나무 카드 사용 식당으로 등록 후 구청과 함께 직접 홍보에 나서는 일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이들이 반신반의하며 찾아왔고, 이젠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룬단 내용이었다.
그 밑에 송민성이 흘린 말인지 인터뷰 형식으로 작성된 내용이 있었다.
-한창 먹고 자랄 아이들입이다. 당연히 풍족하게 먹어야 하고, 맛과 영양도 항상 신경 쓰고 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음식으로 장난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말도 있었다.
-고인이 된 형은 의사로서 사람을 살리는 데 행복을 느꼈다고 합니다. 나와 어머니는 그럴 재주가 없지만 손맛이 있습니다. 만병의 근원은 부족한 영양이라고 했으니 그 뿌리를 바로 잡겠습니다.
포부도 좋고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그 행동도 멋있었다.
태수가 그 초고를 읽고 또 읽을 때였다.
스윽.
김성국 기자가 갑자기 휴대폰을 가져가자 태수가 멈칫했다.
“아니, 좀! 보는데…….”
“있어 봐……. 자.”
김성국 기자는 휴대폰을 조작 후 다시 건넸다.
그건 사진이었다.
식당 내부 사진.
그 속은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그리고 김선미가 음식 카트에서 공깃밥을 건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에게 공깃밥을 건네는 그녀의 얼굴엔 더없이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태수는 그 미소를 보며 김성국 기자가 앞서 한 말을 떠올렸다.
‘그렇게 지내시는데 문제가 있다면 이상한 거지.’
그 말이 옳았다.
이런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는데 어떤 병이 찾아올 수 있을까.
암이 아닌, 암 할아비라도 절대 범접할 수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