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2789
02792 2792화
태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절대로 흘려 넘길 문제가 아니다. 그 느낌이 이제 확신으로 굳어졌다.
모두가 감추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정체부터 파악해야 할 터였다.
혹시?
태수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혹시 진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진호는 잘 놀고 있다더라. 그리고 환자한테 무슨 일이 있는데 우리가 여기 있겠어?”
“그게 아니면…… 혜민병원에 혹시 큰일이 생겼습니까?”
태수가 재차 묻자 박성민이 구겨진 얼굴로 잔뜩 째려봤다.
“거 자식, 진짜. 그냥 신경 끄래도!”
“…….”
순간 태수 표정이 굳어졌다.
진심 어린 짜증이다.
스트레스 지수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단 의미다. 그 추측이 맞는지 박성민이 다시 입을 열더니 화를 냈다.
“인마, 넌 지금 눈앞에 닥친 발표하고 토론만 신경 써!”
“선배.”
“너 지금 밖의 상황이 어떤 줄 알아? 네가 어제 줄리앙 협회장 물 먹인 게 소문 쫙 퍼져서 분위기 살벌해.”
“…….”
“살벌하다 뿐이야? 이번 토론이 아니면 네가 전면에 나서는 발표가 없으니까 다들 이를 갈고 있다고!”
박성민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싸늘하게 으르렁거렸다.
태수는 내심 놀랐다.
괜히 밖을 배회한 게 아닌 모양이다.
박성민이 알고 있다면 다들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 문제로 이렇게 날카로울까?
그럴 리가 없었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파이팅하자며 장난스럽게 독려할 성격이었다.
그럼 결론은 이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태수의 표정이 어느새 진지하게 굳어졌다.
“선배, 토론 때문에 무슨 일인지 말해 주지 않으신다고요?”
“그래. 넌 그거만 신경 써!”
“그럼 토론을 안 하면 지금 바로 들을 수 있겠네요.”
“뭐?”
박성민의 찌푸려진 얼굴 속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태수는 그를 마주한 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 손길이 비장했다.
그걸 본 박성민은 등골이 오싹했다.
태수는 한다면 한다.
그걸 알기에 박성민이 낮게 소리치며 다급히 손을 뻗었다.
“뭐 하는 짓이야!”
턱.
박성민의 손이 태수 팔목을 잡았다.
그만큼 빨랐을까? 아니, 태수가 일부러 손목을 내어 줬다.
그건 이 말을 위해서였다.
“발표와 토론 때문에 말씀 못 하시겠다면서요. 그럼 원인을 없애 버리면 들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 녀석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곧 알게 되시겠죠. 그럼.”
스윽.
태수가 붙잡힌 팔을 빼내려 했다. 그 순간 박성민은 더 힘을 줘 막아서며 인상을 거칠게 구겼다.
“최태수, 너 자꾸 이럴래. 이 발표와 토론이 왜 중요한지 몰라?”
“네, 모릅니다.”
“다시 말해 봐.”
“알아도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태수가 굳은 눈빛으로 대답을 반복했다.
박성민은 눈에 불을 켜듯 사납게 노려보며 따졌다.
“다들 이 갈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물러나면 최태수는 겁쟁이가 된다. 뒤에서 큰소리치면서 앞에선 도망 다니는 비겁한 놈이 된다고. 난 그 꼴 못 본다. 절대로.”
“전 제가 겁쟁이가 되는 것보다 선배의 고민이 더 중요합니다.”
“네가 안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없으니까 말하지 않는 거야. 그냥 여기만 집중하라고. 그게 너한테, 그리고 우리한테! 또 아버님에게……. 흠.”
흥분해 버럭버럭 소리치던 박성민이 순간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태수가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눈빛을 번뜩인 태수가 나지막이 물었다.
“장관님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니야.”
“오늘이 인사청문회 마지막 날이라고……. 혹시?”
태수는 뭔가 짐작되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예상한 일이 맞는다면 박성민과 팀원들이 이렇게까지 숨기려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휴대폰은 들고 있다.
박성민의 손에 손목이 잡혀 있어 움직임이 제한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수는 교묘하게 팔목을 비틀며 자신 쪽으로 당겼다.
박성민이 눈치채고 얼른 힘을 줬다.
하지만.
툭.
태수의 손목은 금방 자유를 찾았다. 그대로 몸을 돌린 태수는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려 했다.
그걸 본 박성민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휴대폰 뺏어. 빨리!”
대기실을 따갑게 울리는 오더였다.
어쩔 수 없단 얼굴로 정민수와 유병태, 도성민이 나서려 했다.
“미치겠네.”
“일단 가야 되나?”
“가야지. 막긴 막아야 되니까.”
그런 그들이 다가오려 하자 태수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지금 나 막으려면 그만큼 각오하고 들어와라.”
“야, 너 좀!”
“그럼 너희들 입으로 말해.”
“…….”
말하지 못하자 태수는 휴대폰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며 경고했다.
“괜히 서로 힘 빼지 말자.”
“아, 진짜.”
동기들은 난감한 얼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렇게까지 태수와 박성민이 감정적으로 부딪친 경우가 처음이라 더욱 답답했다.
동기들을 막은 태수가 휴대폰을 만졌다.
스윽.
소리 없이 누군가 가까이 다가섰다.
이렇게까지 조용히 접근할 수 있는 인물이야 뻔했다.
태수는 바로 그를 부르며 말했다.
“김 간호사님, 저도 알 건 알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왔잖아요. 대충 예상하는 거 같은데, 그 일이 맞습니다.”
김혁권의 답과 동시에 박성민이 날카롭게 불렀다.
“김 간호사!”
“나 부르면 뭐요. 지금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캡틴 한 사람 바보 만들자는 거야 뭐야.”
“내가 언제 그러겠답니까? 최소한 토론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박성민이 거칠게 항의하는 도중 김혁권이 인상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그게 너무하는 거라고요. 이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게 제대로 되겠냐고.”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있어요!”
“그럴 거면 애초에 닥터 박이 처신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아무 일도 없단 듯이 행동했어야지.”
“그게…… 그게 됩니까?”
박성민은 울컥하다 이내 힘 빠진 목소리를 툭 던졌다.
그런 그의 표정이 울상이었다.
따끔하게 말할 줄 알았던 김혁권은 의외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게 안 되는 걸 내가 왜 몰라요. 나는 아는데, 캡틴 입장은 생각해 봤어요? 캡틴 성격상 이렇게 될 걸 예상 못 했냐고.”
“…….”
“캡틴이 닥터 박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그런 캡틴에게 이딴 발표가 중요하겠어? 나도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는데!”
답답함을 풀어내던 김혁권이 돌연 버럭 화를 냈다.
박성민을 향한 시선이 너무도 날카로웠다. 계속 미루기만 하는 그 모습이 답답하단 의미였다.
그 시선을 마주하기 어려웠는지 박성민이 고개를 돌렸다.
다른 뜻으로 해석하면?
이젠 알아서 하란 의미도 된다.
그렇게 박성민의 입을 막은 김혁권이 태수에게 말했다.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데,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어젯밤 일 때문이겠네요.”
“맞아요. 아주 좋은 건수 잡았는지 살벌하게 비난하더라고.”
김혁권은 차갑게 눈빛을 번뜩이며 이죽거렸다.
이렇게 감정을 내보이는 건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박성민을 바라볼 땐 걱정이 가뜩 내비쳤다.
그사이 태수는 휴대폰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남은 시간은 대략 10분.
곧 대기실을 떠나야 할 때다.
하지만 그런 건 안중에 없었다.
지금은 엄수찬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더 중요했다.
그때 정민수가 태수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클립 영상이야. 이렇게 된 거 네가 봐야 직성이 풀리겠지.”
“편집된 영상이 벌써?”
“오전 내용을 편집한 거니까. 그리고 청문회 정도 되면 여러 매체에서 다룰 만하잖아. 그런 데 비해선 조용한 느낌이지만.”
“아무튼 일단 보고.”
받아 든 태수는 동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방송사의 로고가 먼저 보이는 걸 보니 방송국에서 편집한 영상인 모양이다.
곧 달라진 화면은 증인석에 선 엄수찬 장관만 비추고 있었다.
화면 밖에서 날이 선 질문들이 들려왔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모든 게 전부 사실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거 직권남용에 월권 맞죠?
-그…….
-‘네, 아니요.’로만 대답하세요. 다시 묻겠습니다. 월권에 직권남용 맞잖아요. 그렇죠?
-네. 맞긴 합니다만…….
-변명은 됐습니다. 다음 질문은…….
이어지는 영상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구의 질문인지, 어떤 의도의 질문인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수찬 장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 가느다랗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발언조차 허락되지 않은 상황이다.
속수무책인 상황에서도 미소를 짓고 있다?
마치 숨을 죽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이 절대 가볍게 보이지 않았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멈춘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본 태수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어제 신약을 무리하게 들여온 일들이 문제라는 거네.”
“퇴근한 공무원들 다시 출근시키고 밤새 일 시킨 거. 그리고 인천 세관에 압력을 넣어 통관시킨 일 등등을 걸고넘어지는 거야.”
“그럼 어쩌라고. 애가 웃고 있다고 무한정 기다릴 여유가 있어? 아니면 당장 아침에 도장만 탕탕 찍어서 통과시켜 줄 거였냐고!”
태수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대기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다들 쓴 미소를 지었다.
이럴 걸 예측해서 알리는 걸 미루려 했었다. 하지만 이미 알게 된 상황이라 더 말릴 수가 없었다.
그때 태수가 싸늘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민수야, 네가 발표해라.”
“어?”
“저건 내 탓이야. 당연히 책임져야지.”
청문회 상황을 눈으로 본 이상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닌지 태수는 진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턱.
뒤에서 손이 잡히자 태수는 상대를 확인도 하지 않고 흔들며 말했다.
“놔.”
“…….”
“정민수, 놓으라고 했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다 뒤집어 버릴 거니까.”
태수의 살벌한 목소리와 동시였다.
정민수 목소리가 들려올 거라 생각했는데 박성민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럴까 봐 말하지 않은 거야.”
“선배, 이건 너무하잖습니까. 장관님이 괜히 그러신 것도 아니고, 사익을 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모르는 거 아니니까 그만해.”
“선배.”
태수가 억울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박성민은 고개를 가늘게 좌우로 저으며 답했다.
“김 국장님이 연락 왔었어. 혹시라도 우리가 볼지도 모르니까 아버님이 모두에게 전해 달란 말씀이 있으셨다고 말이야.”
“어떤 말이요?”
“청문회에서 문제 삼는다고 장관 자리가 위험할 일은 없다고. 처음부터 깎아내리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과의 만남이라 예상하고 있다고.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일에 충실하자고 말이야.”
박성민의 말에 태수가 울컥했다.
“그걸 듣고 그냥 그러겠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어쩔까. 너 같으면 어째야겠어. 내가 가서 증언을 해? 초대받지 않고 저 자리까지 갈 수 있을 거 같아?”
박성민이야말로 답답하고 짜증 가득한 얼굴로 태수에게 몰아쳐 물어 왔다.
태수도 그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었다.
그리고 박성민이 한 말이 모두 옳았다.
저기까지 찾아간다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건 박성민의 입장이었다.
태수는 달랐다.
그걸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막무가내로 수입 허가를 요청한 당사자의 말은 들어 주겠죠.”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
“너라면 더 들여보내지 않을 거야. 그랜드 타워 내사가 이제 막 끝난 시점이야. 아직 최태수란 이름에 새겨진 열기가 식지 않았다고.”
“흐음.”
태수는 쓴 탄성만 내뱉었다.
엄수찬 장관에게 최근에 들었던 말이었다.
스스로는 그리 체감하지 못하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들으니 더욱 와 닿긴 했다.
박성민은 조금 더 담담하게 할 말을 이어 갔다.
“그래. 우리 모두 어떤 사익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니야. 그건 아버님도 확실히 알고 계시고, 그러니까 그냥 이 시간만 지나가면 된대.”
“지나가면 그냥 끝입니까? 이런 영상이 돌아다니면 오해만 커지고 사실로 굳어져 버립니다.”
“그럼 나중에 따로 김 기자, 아니 김 차장이랑 독점 인터뷰 해. 김 차장이라면 새벽이라도 쫓아 나올 테니까.”
박성민은 애써 싱겁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