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5
00308 308화
뿐만 아니라 태수와 정민수 또한 멈칫했다.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표정이 점점 어둡게 변해 갔다.
“……어쩌지?”
정민수의 물음에 태수가 잠시 생각했다.
백성현 교수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울에 올라갔을 때 언제든 전화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기에 확신했다.
그렇다면?
태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김수진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거기 이기준이라고 저장된 번호로 연락해 주세요.”
“잠시만요.”
김수진 간호사가 다시 휴대폰을 조작하는 사이 정민수가 의아하게 바라봤다.
“기준이는 갑자기 왜?
“그쪽 치프잖아. 당연히 교수님 소식도 알겠지.”
“연락하고 있었어?”
“가끔.”
태수가 이야기를 그쯤에서 멈췄다.
지금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닌 탓이다.
정민수도 같은 생각인지 더는 궁금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뚜루루.
몇 번 통화연결음이 들리더니 통화가 연결됐다.
-오랜만이야. 최 선생.
“인사 나눌 시간 없고. 백 교수님 혹시 수술 들어가셨어?”
태수가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자 눈치 빠른 이기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심장 쪽 수술중이야? 외과에서?
“시간 없다니까.”
-그럼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교수님은 지금 응급 수술 중이셔.
“부탁 하나 하자. 죄송하지만 연락 한 번만 해 달라고 전해 줘.”
태수의 말에 이기준 목소리가 묘하게 변했다.
-최 선생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바로 연락할게.
그 목소리를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정민수가 의아한 눈빛으로 태수에게 물었다.
“기준이 목소리 들으니 왜 기분이 찝찝하냐?”
“지금은 수술만 생각하자.”
“그래.”
정민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이야기한 태수도 썩 유쾌하진 않았다.
백성현 교수에게 전화를 부탁했지만 그때까지 놀고 있을 순 없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심장의 상태를 자세히 파악했다.
정확하게 상황을 알아야 설명하기도 좋은 탓이었다.
그렇게 파악을 마쳐갈 즈음이다.
띠리릭!
태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김수진 간호사는 반사적으로 연결하며 소리쳤다.
“백성현 교수님 전화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수술실을 울린 직후였다.
-치프에게 소식 듣고 연락하는 거야. 수술 중이라지?
“교수님도 수술 중이신데 정말 죄송합니다.”
-알면서도 연락을 부탁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 일단 들어보자고.
“그러니까…….”
태수는 얼른 현재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마음속으로는 백성현 교수가 자세히 알려주거나 수술할 수 있다고 확신 어린 대답하기를 기대했다.
태수뿐이 아니라 정민수 또한 마찬가지다.
잠시 후 백성현 교수의 무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후. 정말 힘든 수술이네. 그래도 가보겠네.
“정말이십니까?”
-여기 수술 마무리 짓는 대로 출발하지. 늦어도 두 시간 안에 끝날 거 같은데, 그쪽은 어떻지?
“심정지액 투여한 지 대략 20분 정도 지났습니다.”
태수의 대답을 듣고 뭔가 계산을 하는지 잠시 뜸을 들인 백성현 교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쪽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출발하지. 지금부터 심장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도록 해. 차라리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좋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런 말은 나중에 얼굴 보고 하지. 그럼.
백성현 교수가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그쪽 수술에 이어 이쪽 수술까지 이어가려면 통화할 시간도 아까운 모양이다.
태수와 정민수는 그런 백성현 교수에 대한 감사함만이 가득했다.
그도 자신이 없단다.
그래도 온단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자들을 위해, 그리고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위해 온단다.
가슴이 울린다.
그러나 태수는 이내 시선을 돌려 예종혁을 봤다.
이 상태라면 태수와 정민수 둘만으론 심장 수술은 당장 이어갈 수가 없다.
그래도 응급조치는 해야 했다.
30여 분 후.
그나마 심장이 당장 멈추지 않을 정도로 조치했다.
그것만으로도 태수와 정민수 두 사람 모두 초죽음 상태다. 태수도 카프레네가 준 지식을 총동원해서 여기까지 왔다.
덕분에 당장 큰 이상이 발생할 일은 극히 희박해 보였다.
설령 있다 해도 다시 응급조치 정도는 충분히 할 능력이 있기에 안도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봉합해 놓는 걸로 일단 마무리를 지었다.
지금은 여기까지다.
물론 그 외에도 진행해야 할 수술은 너무도 많았다.
태수와 정민수는 서로 시선을 마주한 순간 바로 의견을 내보였다.
“폐 먼저.”
“폐가 우선이지.”
역시 같은 의견이다.
자잘한 뼛조각이 군데군데 박힌 폐를 수술하기 위해 태수와 정민수는 수술 도구부터 바꿨다.
“믹스터, 모스키토 클램프.”
“엘리스, 티슈포셉.”
양쪽에서 두 사람을 보조하는 간호사들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수술 도구를 받아든 태수와 정민수는 신속하게 폐 곳곳에 박힌 뼛조각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외국에서 많이 경험한 일이었기에 그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
수술 과정을 지켜보는 참관실 분위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다만 한 가지 희망은 보였다.
“서울에서 백성현 교수님이 바로 내려오신다고 하시다니…….”
일전에 수술로 방문한 적이 있기에 다들 그 이름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분명히 좋은 일이다.
문제는 백성현 교수가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처치를 하는지가 관건이다.
그걸 알기에 지켜보는 다른 과 의사들의 표정이 밝아질 수가 없었다.
다만 태수와 정민수의 속도는 경탄했다.
“저 자식들 속도는 하여간…….”
“외과라며 흉부외과 쪽은 또 왜 저렇게 잘 봐.”
“진짜 얄밉다. 얄미워.”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지만 수술이 조금이라도 순탄하게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같았다.
***
그 뒤로 수술이 길게 이어지던 중 하석준 과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재 어때?”
“힘듭니다. 연성대학병원에 계시는 백성현 교수님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다행이네. 이거 길이 막혀서 정확한 도착 시간이 안 나와.”
“괜찮습니다.”
“미안해. 하필 이럴 때 자리를 비워서.”
하석준 과장은 목소리 가득 미안해하고 격려도 들려줬다.
그런 목소리가 수술하는 레지던트들에게 또 한 번 힘을 내게 해줬다.
그러는 사이 태수와 정민수는 폐에 박힌 뼛조각들을 90퍼센트 이상 걷어냈다.
나머지는 너무도 자잘한 조각이라 자연적으로 사라지거나 폐가 밀어내길 기대해야 할 거 같았다.
1차 수술을 마친 태수와 정민수의 몸은 땀범벅이다.
헤어캡과 마스크가 온통 젖어 있고 수술 가운까지도 흥건하게 땀이 보일 정도였다.
그 속에 입은 수술복은 어떨지 상상도 안 됐다.
“헉헉.”
정민수의 거친 숨소리를 들은 태수가 말했다.
“지쳤으면 잠깐 쉬었다가 와.”
“미친놈. 너 같으면 나가겠냐?”
“아니.”
“그럼 헛소리 말고 저쪽으로 가자.”
정민수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휘청.
면박을 준 말투와 달리 몸은 크게 휘청거렸다.
“의욕만으로 수술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몸을 움직인 태수 또한 순간 다리가 풀렸다.
얼른 균형을 잡았지만 자신의 몸 또한 정민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의욕만으로 할 수 없다고 해 놓고.’
정작 의욕만으로 수술을 진행하겠다고 하는 게 자신은 아닐까 생각됐다.
그러나 태수와 정민수는 휴식 따윈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송민규와 안성훈 쪽으로 다가갔다.
태수가 확인하니 복부를 뒤덮은 위액과 음식물 찌꺼기는 거의 걷어낸 상태였다.
그다음으로 짓이겨진 위장을 수습해 봉합하는 상태였다.
“훌륭해.”
태수의 칭찬에 송민규와 안성훈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좁은 공간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쏟아내 지친 상태다.
동시에 송민규와 안성훈은 넓은 환부를 식염수로 몇 번이고 씻어내고 협착된 부분들을 걷어낸 후라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후욱. 후욱.”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유지하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에 힘을 줄 뿐이었다.
수술하고 있는 그들도 문제지만 리트렉터를 당기고 있는 홍진만과 김명철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일정한 힘으로 계속 환부를 잡아당기고 있다 보니 팔 근육이 찢어질 듯이 딱딱해진 상태였다.
“끄으응.”
“조금만. 조금만 버텨.”
“버틸 거야. 무조건 버틸 거라고. 떨어져 나가면 정형외과에서 끼워주겠지.”
실없는 농담이 아니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자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두 사람은 근육이 찢어지는 느낌도 무시하고 억지로 이를 악물며 당겼다.
그들뿐이 아니다.
마취의 서영우는 필수 호르몬과 바이탈을 수시로 체크하느라 진이 빠진 모습이었고.
체외순환사는 인공심폐기를 원활하게 돌리기 위해 온 신경이 집중되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 틈도 없었다.
간호사들도 죽을 맛이다.
쉴 새 없이 바뀌는 수술 도구들을 건네고 집도의들과 어시스던트들을 보조하느라 맥이 쭉 빠진 상태였다.
그런 그들보다 처절하게 이 수술실에서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예종혁 대원이다.
아무리 의사가 세계적인 명의이고, 수술하는 인원이 많다고 무조건 수술이 잘되진 않는다.
스스로 이 상황을 이겨내겠다는 굳은 마음이 수술을 받는 환자에게 있어야 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예종혁 대원은 상상 이상으로 잘 견뎌내고 있었다.
지금은 누가 더 고생했고, 고생하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예종혁 대원이 죽음과 처절하게 싸우는 그 생명력에, 의사들이 이끌려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 수술은 처절했다.
살고자 하는 환자.
살리고픈 의료진.
그리고 땅으로 데려가려는 운명.
그들끼리 벌어진 치열한 사투의 현장이었다.
***
그 사이 참관실은 지켜보는 의사들이 늘어났다.
너무도 커다란 수술을 레지던트가 집도하는 중이라 각 의과장도 연락을 받고 속속들이 도착한 탓이다.
전문의들은 일부 물러났고 그 자리를 의과장들이 채우고 있었다.
외과 인턴들은 그 사이 의국으로 밀려난 건 당연했다.
수술을 지켜보는 의과장 중 내과장의 표정이 심각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지금 저 수술실 속 의료인들의 모습이 계속 시선을 잡아 끌은 탓이다.
허나 당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다른 의과장도 마찬가지였는지 참관실은 고요하기만 했다.
***
외과 의국의 커다란 TV를 통해 그 모습을 참관하던 인턴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외과 의사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전에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진짜 다들 존경스럽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아니, 나도 해야지. 나도 저렇게 해야 한다고.”
걱정을 보이거나 감탄을 보이는 인턴이 있는 반면, 스스로 각오를 다지는 인턴도 있었다.
그 인턴 중 김아름은 어느새 두 손을 꼭 맞잡은 모습이다.
‘힘내세요.’
수술에 참여한 모든 의사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민수에게 좀 더 마음이 쏠린 건 사실이다.
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응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조금은 미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수술하는 의사들을 향한 응원은 진심이었다.
***
시간은 덧없을 정도로 매정하게 흘러갔다.
이젠 땀도 흐르지 않는다.
그만큼 지쳤다는 이야기다.
금방이라도 나가떨어질 듯이 힘겨운 수술을 이어갔지만 누구 한 사람 먼저 두 손을 들지 않았다.
자신이 조금 쉬는 그 시간에 다른 의사들의 부담이 너무도 많이 늘어난다.
그걸 서로 알기에 조금씩 완급을 조절할지언정 수술에서 손을 떼진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태수의 손은 더욱 침착하면서도 정밀하게 움직였다.
“……!”
그런데 순간 태수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쌓인 피로가 서서히 도드라진 모양이다.
“음?”
살짝 놀란 태수가 빠르게 고개를 털었다.
그 모습에 반응한 건 항상 태수만 바라보고 있는 홍진만이었다.
“끄으응. 치프.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아니기는 요.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민수 형도요. 요즘 계속 잠을 이상하게 주무셔서 그런 거 아닙니까?”
얼굴색이 변한 홍진만의 걱정 어린 물음에 태수가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홍 선생 상태가 더 안 좋아.”
“전……. 끄응. 전 괜찮습니다. 진짜로요. 그런데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자신이 쉬려고 건네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술을 이끌어가고 있는 태수와 정민수가 조금이라도 기력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이야기다.
태수도 그 마음이 고마웠지만 지금은 냉정해야 할 때다.
“쉬고 난 후에 또 수술할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홍진만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억울하고 성질나지만 지금 태수가 한 말이 사실이다.
지금은 태수와 정민수가 아니면 이 수술을 이어갈 수가 없다.
더불어 조금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는다면 다시 수술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