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4
00307 307화
띡띡.
갑자기 ECG(심전도 기계)가 요동쳤다.
“이거 왜 이래? 갑자기 혈압이 왜 떨어져?”
“선생님.”
“기다려 봐!”
마취의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면서도 각종 기계를 만지는 손을 쉬지 않았다.
“혈액도 잘 들어가고, 마취 상태도 좋은데……. 가만있어 보자. 또 뭐가 안 좋은 거지?”
그러나 그도 이미 지쳤다.
너무도 상태가 좋지 않은 예종혁 대원의 숨을 붙잡기 위해 너무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수술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1등 공신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도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할 냉정한 시선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대단히 좋지 않다.
이대로 혈압 저하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심장이 멎을지도 모른다.
태수를 비롯한 의료진들의 시선에 불안감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수술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아주 난리네.”
익숙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수술실 입구로 향했다.
들어서는 의사의 눈매가 너무도 익숙했다.
마취과 서영우 전문의였다.
서영우는 들어서자마자 환자의 이상을 감지하고 빠르게 마취의에게 향했다.
“무슨 일입니까?”
“혈압이 너무 떨어졌는데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
지금까지 마취를 담당한 의사 말에 서영우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손으로 투여하고 있는 약물을 살피고 눈으로는 각종 수술 기계의 수치들을 파악했다.
그러던 그가 해결책을 제시했다.
“Platelet(혈소판), Opsonin(옵소닌, 면역 세포 기능 강화)부터 추가해야겠습니다.”
“아, 그랬나?”
비장에서 분비하는 가장 중요한 용액들이다.
비장 파열이 심각한데 너무 힘든 나머지 잠깐 놓친 모양이었다.
서영우가 혈소판과 옵소닌을 추가하자 떨어진 혈압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 길로 서영우가 마취의 자리를 건네받았다.
“선배님, 나머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후우. 괜찮겠어?”
“저 친구들하고 여러 번 손발 맞춰봤으니까 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배님은 너무 지치셨습니다.”
“솔직히 힘들어서 판단이 잘 안 되네. 서 선생이 저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왜 살이 빠졌는지 이제야 알았다니까. 그럼 좀 교대하자. 대신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해 보다가 힘들면 언제든지 SOS 청하고.”
서영우에게 순순히 자리를 비켜준 마취의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수술실 문으로 향했다.
그 사이 간호사들도 추가됐다.
“심장 쪽은 저희가 할게요.”
“김수진 간호사, 아까 퇴근하지 않았어?”
서영우가 묻자 김수진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 병실에 있었어요.”
“피곤하잖아. 낮에 세 건이나 수술했는데.”
“좀 쉬었어요. 어서 자리부터 바꿔요.”
김수진 간호사가 태수 보조 자리를 꿰찼다.
그녀가 이러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김수진 간호사에게는 외과에 빚이 있다.
평생 갚아도 모자랄 빚.
그렇기에 그녀에게도 외과가 총동원된 이 수술은 너무도 중요했다.
또한 예종혁 대원은 그녀도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다.
살리고 싶다.
그 마음은 김수진 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정민수의 옆자리도 그동안 다양한 수술을 함께한 간호사가 자리했다.
물론 그녀가 수술실 간호사 중 최고 실력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태수와 맞춰온 호흡이 있기에 서로에게 편안하게 녹아들 수 있는 간호사였다.
마취의가 바뀌고 간호사들이 추가되자 수술실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 증거로 수술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수술하는 의사들을 각각 전담하는 간호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수와 정민수도 다시 힘을 내 인공심폐기를 연결할 준비를 이어갔다.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던 태수는 이마가 간지러운 느낌을 받았다.
그때였다.
“땀, 심장 집도의부터.”
안성훈의 말에 보조하는 수술실 간호사들이 얼른 손을 움직였다.
가볍게 두드리며 땀을 닦아내자 뭔가 불편한 느낌이 싹 사라졌다.
태수는 힐끔 안성훈을 쳐다봤다.
진중한 눈빛으로 수술의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안성훈은 묵직하게 대답했다.
그게 안성훈의 장점이다.
눈에 띌만한 특출한 재주는 없다.
하지만 센스 있게 주변 정리에 나서는 능력만큼은 레지던트 중에 가장 뛰어났다.
조금 전 혼란스러움을 털어버리니 특징이 더욱 도드라진 모습이었다.
태수가 안성훈을 송민규의 어시스던트로 수술에 참여시킨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송민규가 집도의 스타일이라면 안성훈 또한 어시스던트에 걸맞은 센스가 있다.
똑같은 수련을 시켰지만 각자 발전해 가는 방향이 달랐다.
각자 스스로의 장점을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태수에겐 미래 동성종합병원 외과 발전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
잡생각은 찰나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수의 양손은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인공심폐기 연결이 어느덧 끝을 보였다.
“이쪽은 준비 끝!”
“여기도!”
정민수가 화답하자 곧장 체외순환사에게 부탁했다.
“기사님. 펌프 돌려주세요.”
“돌렸습니다!”
위잉!
묵직한 기계음이 수술실을 메운 순간 태수가 서영우를 불렀다.
“서 선생님.”
“Cardioplegic solution(심정지액) 투여!”
서영우의 외침과 동시에 심정지용액을 투여했다.
심장이 멈추는 사이 태수와 정민수는 얼른 심장으로 향하는 혈관을 차단했다.
그리고 시선이 체외순환사에게로 향했다.
두근두근.
자신의 심장이 귓가를 자극할 정도로 크게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체외순환사가 태수와 시선을 마주했다.
“펌프는 제대로 돌아가는데 혈액 방출량이 조금 더딥니다.”
“혈액을 좀 더 넉넉하게 추가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체외순환사가 혈액의 양을 좀 더 늘리는 사이였다.
서영우가 모니터를 살핀 후 말했다.
“저체온 오케이. 저혈압도 좋고. 산소도 이 정도면 안정권이야. 수술 이어가도 돼.”
“후우.”
조금은 안도됐다.
인공심폐기가 가동된 시간부터 최대 6시간.
심장을 멈출 수 있는 한계 시간이다.
시간을 벌었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태수의 시선이 바로 송민규에게 향했다.
“그쪽은 어때?”
“음식물 찌꺼기로 인한 협착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그리고 간도 부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드러나지 않은 내출혈이 있는 거 같습니다.”
송민규의 목소리가 밝지 않다.
태수도 직감하고 있던 부분이기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면 송민규가 해결할 거라는 기대를 해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어쩌면 태수가 계속 자리를 오가며 수술을 진행해야 할지도 몰랐다.
일단 심장을 먼저 수술해야 한다.
그 뒤에 간, 비장, 위의 순서로 수술을 이어가야 할 거 같았다.
결정을 내린 태수가 지시를 내렸다.
“송 선생. 간 내출혈부터 잡아.”
“어떻게 진행하면 됩니까?”
송민규가 빠르게 물었다.
어시스던트로 여러 번 수술에 참여했지만 집도의 자리에 선 지금은 판단력이 약간 흐려진 모양이다.
아니, 당황하기도 했고 스스로의 판단에 아직 확신을 가지 못한 모습이다.
태수도 그런 경험이 있기에 질책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우선 피부터 뽑아내. 홍 선생이 간 상태를 주시하고 있고, 그 사이에 두 사람은 위액과 찌꺼기부터 완전히 걷어내.”
“알겠습니다.”
“김명철. 너는 리트렉터 당기면서 비장과 장 상태에 주시해. 뭔가 이상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보고하고.”
태수가 레지던트들에게 일일이 할 일을 지정해 줬다.
심장 수술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했지만 가용할 의사들을 효율적으로 이끌어야 조금이나마 걱정이 줄어들 상황이다.
태수의 지시를 들은 네 명의 레지던트들은 각자 할 일에 몰두했다.
그제야 태수와 정민수는 심장 수술에 집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태수가 환부를 내려다보며 정민수에게 물었다.
“최상의 상황이 뭘까?”
“심근만 건드린 경우지.”
“최악은?”
“심근과 판막이 비스듬하게 찔린 경우.”
정민수의 대답에 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의견이다.
그리고 그 최악의 상황은 절대 아니길 바랐다.
태수는 한 번 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김수진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스.”
“여기요.”
턱.
메스가 손에 들린 순간 태수는 그 차가운 감촉에 온 신경이 날카롭게 변하는 걸 느꼈다.
이 메스 아니, 태수에게 쥐어지는 모든 수술 도구들은 제임스의 선물이다.
이 수술 도구에게 절대 부끄럽지 않게 하자.
마음속에 큰 바위처럼 강한 결심이 섰다.
그 후에야 태수는 메스로 뼛조각이 박힌 심장을 가르기 시작했다.
스윽.
날카로운 메스가 지나가자 심장의 근육이 좌우로 벌어졌다.
이어서 정민수가 자그마한 리트렉터로 심장을 더욱 벌린 순간이었다.
“…….”
“…….”
태수와 정민수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입으로는 어떤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심장을 찌른 뼛조각의 위치가 너무도 좋지 않았다.
심방과 심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판막까지 관통한 모습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심장이 버텼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니,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심장이 크게 수축했기에 그나마 수술대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봉합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카프레네의 지식으로 본다면 뼛조각을 걷어내고 심실, 심방, 그리고 판막을 각각 봉합해야 거의 완벽하게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허나 태수는 카프레네가 아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환자를 보살폈지만 이런 경우는 태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후우.”
태수와 정민수의 입에서 동시에 기나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예기치 못한 복병으로 인해 수술실이 뒤숭숭해지고 있을 무렵이다.
참관실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참관실에는 외과 인턴들 외에 많은 의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응급실에서 1차로 조치한 이중원과 다른 의과 의사들이었다.
이중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고요한 참관실을 울렸다.
“저건 힘들어…….”
“흉부외과에서 왜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알 거 같네요.”
“그래도 저 두 사람은 수술할 모양인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러다가 테이블 데드 합니다.”
한 의사의 말에 이중원이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멈춰도 죽어.”
“…….”
“어쩔 수 없어. 지금 수술실은 브레이크 고장 난 폭주기관차야. 끝까지 달려야 한다고.”
이중원의 판단은 소름끼치도록 냉정했다.
허나 그게 사실이다.
이 수술의 위험성은 외과적 지식이 부족한 다른 의사가 보기에도 극히 높았다.
수술은 이미 시작됐다.
멈출 수 있는 건 딱 두 사람뿐이다.
태수.
그리고 환자의 사망.
그 두 사람이 끝까지 서로를 붙들고 있다면 절대 끝나지 않는다.
환자가 수술실에서 죽는다면 피치 못할 사정이라 할지라도 병원에 불이익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무턱대고 수술을 진행한 태수를 원망할 순 없다.
지금 태수를 원망한다면 자신들은 의사로서 자격이 없다.
참가할 자신이 없어 참관실에서 바라보고 있지만 이 수술이 실패하라고 기도하는 의사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들이 지금 할 일은 이 수술을 끝까지 지켜보며 기적을 바라는 일뿐이었다.
평소의 감정?
그건 참관실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
내심 어떤 마음일지 모른단 의미다.
다만 설령 그런 마음이 있다 해도 참관실에서 내뱉을 의사는 없다.
***
한편 태수는 기적을 바라고 싶지 않았다.
기적은 말 그대로 기적일 뿐이다.
이 수술을 진행하는 태수와 다른 레지던트들은 기적이라는 허무맹랑한 바람보다 현실을 직시했다.
태수가 잠깐 멈춘 사이에도 송민규와 안성훈은 부지런히 위액과 음식물 찌꺼기들을 걷어냈다.
속도도 느리고 정교함도 떨어진다.
얼마나 날카로운 감각으로 수술을 하는지 이마에서는 땀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순간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리트렉터를 당기는 홍진만과 김명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순 작업을 하면서도 시선은 각각 간과 비장에 향해 있었다. 조금의 이상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보고할 준비도 끝난 상태였다.
레지던트들이 각자 최선을 다하는 사이에도 시간을 흘러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멈춰 있던 태수와 정민수도 이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건 박성민이 내려온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때 두 사람의 머릿속에 동시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얼마 전 서울에 답례차 올라가 인사도 드리고 진하게 한잔 걸쳤던 백성현 교수가 그 인물이었다.
태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수님께 연락드려 보자.”
“그게 좋겠어.”
“제 휴대폰에 백성현 교수님이라고 저장된 번호가 있습니다. 바로 연결해 주세요.”
태수의 말에 김수진 간호사가 빠르게 움직였다.
수술실을 나간 그녀는 휴대폰을 소독하고 돌아와 수술실 음향 장치와 연결했다.
뚜루루.
통화연결음이 수술실을 가득 울렸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 뒤로도 통화연결음은 계속 울렸지만 백성현 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연결이 되지 않아…….
그 안내 멘트가 들린 후에야 김수진 간호사가 통화를 종료했다.
그녀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