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3
00306 306화
태수는 내심 그들이 기특했다.
그저 리트렉터를 당기라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 당기는 모습도 그렇고 그들을 조율하는 송민규도 훌쩍 컸단 사실이 느껴졌다.
그건 말 그대로 생각뿐이다.
태수는 지금 레지던트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너무 광범위하게 퍼진 유착 부위를 문제없이 제거하려면 온 신경을 동원해야 했다.
시간은 늘 양면성을 지닌다.
급한 사람들에겐 아이러니하지만 너무도 빨리 간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 태수와 수술팀이 그러했다.
수술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손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썩션과 거즈를 이용해 위액과 음식물 찌꺼기의 일부를 걷어낸 정민수도 포셉과 멧젠바움을 들고 태수를 보조했다.
광범위한 병변을 걷어내는 데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때였다.
드르륵.
수술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태수와 정민수의 귀에 가득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수술실 문으로 시선을 향한 두 사람의 아니, 수술실 모두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들어온 건 단 한 명.
체외순환사였다.
그는 배건형과 김덕현 등. 여러 환자를 태수와 함께 수술한 경험이 있는 체외순환사였다.
하지만 반가움보다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흉부외과 선생님은요?”
“그게…… 말입니다.”
체외순환사가 조금 머뭇거리자 태수가 빠르게 말했다.
“지금 눈치 보고 따질 때가 아닙니다. 사실대로만 말씀해 주세요.”
“자신의 실력으론 도무지 살리긴 무리랍니다. 미안하다고 전해 달랍니다.”
체외순환사의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하.”
태수의 얼굴에 허탈함이 떠올랐다.
배신감은 아니다.
흉부외과 전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너무도 가망성이 낮은 수술이다.
더 냉정히 말한다면 태수가 알기로도 이 정도 심장 수술을 감당할 만한 실력을 지닌 의사가 동성종합병원엔 없다.
역으로 말한다면 밀고 들어온 태수와 정민수가 누구라도 무모하게 보일 법 했다.
실제로 다른 의과 의사들 또한 응급실에서는 어떻게든 숨을 유지시켜줬지만 수술실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지금 실수란 곧 예종혁의 죽음이다.
태수는 더 이상의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수술만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흉부외과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체외순환기를 돌릴 수 있나?
고속버스에서 오재욱과 통화할 때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흉부외과장은 태수가 수술에 들어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걸로 충분했다.
현재 인공심폐기를 관리해 줄 체외순환사가 있다.
그리고.
태수는 수술실을 한 번 크게 둘러봤다.
그동안 동성종합병원의 그 어떤 레지던트들보다 열정적으로 환자를 대하고 자신을 갈고 닦은 이들이 주변에 있었다.
이젠 그들을 믿을 때다.
결심을 굳힌 태수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수술실을 울렸다.
“수술 방법을 전환한다. 나와 정 선생은 심장을 맡도록 할 테니까, 송 선생하고 안 선생이 복부를 담당하도록.”
그 말은 수술실에 있던 모든 의료진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우선 지목받은 송민규와 안성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치, 치프.”
“저희 보고 이걸…….”
당황한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둔 태수가 조용히 말했다.
“자신 없다는 말, 겁난다는 말. 만약에 마음속 한구석에라도 있다면 당장 나가.”
“…….”
“난 그런 나약한 후배는 둔 기억이 없다. 기사님은 펌프 준비해 주십시오. 정 선생. 일단 심장부터 펌프로 우회하자.”
태수는 두 사람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지시를 내렸다.
태수의 말에 정민수와 체외순환사가 바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송민규와 안성훈은 계속 가늘게 몸을 떨고 있었다.
태수는 그런 두 사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정민수와 심장 쪽으로 선회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건 계속 낮아지는 맥박과 혈압의 조치였다.
인공심폐기를 연결해야 언제 멎을지 모를 심장을 잠깐이라도 쉬게 할 수 있고 수술도 이어갈 수 있다.
태수와 정민수는 인공심폐기 수술 경험이 있다.
일전에 박성민과도 몇 번 경험했고 그 전에는 외국에서 경험했다.
하지만 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다 그 임상경험조차 관상동맥을 우회하는 수술도 아니고 심장판막을 교체하는 수술도 아니다.
이건 말 그대로 구멍 뚫린 심장을 최대한 온전하게 되돌리는 수술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상처가 났는지도 확인되지 않았기에 더더욱 성공 확률이 낮다.
허나 태수가 무턱대고 수술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최후의 보루를 믿었다.
태수 머릿속에는 카프레네의 기억이 있다.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
그가 경험한 수많은 임상사례가 태수와 함께했다.
물론 머릿속에 있다고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해보지 않았다고 이제 와서 수술을 포기할 순 없다.
수술을 멈추는 순간 예종혁 대원은 죽는다.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부족한 실력을 어떻게든 메워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태수는 그 생각 하나로 심장 수술을 결정 내렸다.
태수의 지시에 따라 체외순환사는 인공심폐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된 게 아닌지라 그 시간이 조금은 소요됐다.
태수와 정민수는 그 사이 심장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폐에 박힌 갈비뼈 조각은 나중 문제다.
좌우에 있는 갈비뼈를 이어주는 연골을 조심스럽게 걷어냈다.
다음으로 심장 주변에 나뒹구는 날카로운 갈비뼈 조각을 걷어냄이 우선이었다.
“티슈포셉, 엘리스.”
“Saline(식염수), 거즈, 썩션이요.”
태수가 조금 커다란 갈비뼈 조각을 수술 도구로 집어내는 사이 정민수는 또 한 번 식염수를 이용해 심장 주변을 청소했다.
그때까지도 송민규와 안성훈은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태수의 배려로 여러 수술을 집도했다.
다른 종합병원 레지던트에 비해 훨씬 많은 수술 경험치가 있단 의미였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인 수술들이었다.
그렇다고 허투루 수술한 적은 없다.
다만 갑자기 이런 대수술에 스텝이 아니라 집도와 어시스던트를 해야 하는 자신들의 상황이 믿기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걱정이 있다.
혹시 수술이 잘못되어서 환자가 죽는다면?
정민수가 10퍼센트도 높다고 예상한 수술이다.
자신들의 자그마한 실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는 게 몸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였다.
“아, 젠장. 할 거면 빨리 달려들고 아니면 빠져요!”
홍진만의 따끔한 질책에 송민규와 안성훈이 멈칫했다.
그러나 홍진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어서 속사포처럼 내질렀다.
“선배. 나 선배 좋아하거든요. 내년에 치프 되셔야 하니까 잘 보이고 싶고요. 그런데 이건 아닙니다. 어떤 외과 의사가 환자 두고 망설입니까.”
“홍 선생!”
“왜요? 안 할 거면 빠지라고요. 차라리 내가 할 테니까. 치프는 내가 여기 떡하니 있는데 왜 소심한 선배한테 맡겼나 몰라. 안 선생도 마찬가지야.”
홍진만은 송민규를 앞에 두고도 살벌한 말투를 멈추지 않았다.
평소 성격대로 떠들 뿐이다.
졸지에 한마디 들은 송민규의 눈빛에 짜증이 돋아났다.
하지만 송민규도 안성훈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그 소리를 듣고 있던 태수가 홍진만을 제지했다.
“홍 선생은 안 돼.”
“왜요?”
“네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태수가 딱 자르자 홍진만이 흥분했다.
“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아직은 못 믿어.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는 거 같으니까 그만 하고. 송 선생, 안 선생.”
태수가 호명하자 두 사람이 움찔거리며 동시에 대답했다.
“네. 치프.”
“아무 생각도 말고 일단 자리에 가서 서 봐.”
태수는 입으로만 떠들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에도 손은 계속 예종혁 대원의 심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잠깐 우물쭈물거렸지만 송민규와 안성훈은 태수가 지정해 준 자리에 섰다.
활짝 벌어진 환부 속은 짓이겨진 위에서 흘러나온 위액과 음식물 찌꺼기로 너저분했다.
태수와 정민수가 잠깐 정리했다고 하지만 걷어낸 부분은 극히 드물었다.
“음…….”
두 사람의 침음성이 들린 순간 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은 스스로 깨라.”
“…….”
“…….”
송민규와 안성훈은 침묵했다.
하지만 태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고 정민수에게 말했다.
“이쪽은 얼추 걷어냈어.”
“조금만 더 씻어내면 됩니다. 치프, 한마디만 해도 됩니까?”
정민수가 힐끔 눈짓하자 태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승낙을 받은 정민수가 송민규와 안성훈에게 말했다.
“언제 치프랑 너희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어. 솔직한 이야기로 이런 순간이 좀 더 늦게 왔으면 싶었어. 우리와 다르게 니들은 좀 더 순차적으로 배우게 하고 싶었으니까.”
“…….”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경우라는 게 있잖아. 갑자기 대수술에 참여하게 된 너희가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이해된다. 하지만 이렇게 손을 놓고 있는 시간에도 환자는 죽어가. 민규야, 그리고 성훈아.”
정민수의 부름에 송민규와 안성훈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선배라고 호칭했을 송민규도 이름만 불렀다.
그만큼 중요한 상황이라는 걸 그 말투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정민수도 잠깐 손을 멈추고 두 사람과 마주 보며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내가 알고 있는 의사란 달려들어야 할 때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거야. 혹시 모를 실수가 물론 두렵겠지. 헌데 니들 옆에 있는 우리를 믿는다면 달려들어.”
“…….”
두 사람은 끝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보는 사람이 갑갑할 정도였다.
그 증거로 홍진만은 리트렉터를 당기면서도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송민규와 안성훈의 양손이 서서히 예종혁 대원의 짓이겨진 위장으로 향했다.
먼저 느껴지는 건 체온이다.
체온이 내려가 따뜻함보다 미지근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함께 엄습하는 건 두려움이다.
전에 듣기로 태수와 정민수는 이런 두려움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수술했다고 했다.
그동안 태수와 정민수에게 배운 것들.
스스로 밤잠 설쳐가며, 또 코피 쏟으며 공부했던 것들.
지방병원의 레지던트라는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던 발버둥들이다.
여기서 멈추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거라는 건 이제 와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알았다.
예종혁 대원의 조금씩 식어가는 몸.
더는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송민규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홍진만을 불렀다.
“홍 선생.”
“왜요?”
“거기서 똑똑히 지켜봐. 왜 치프가 네가 아닌 날 선택했는지. 여기 모스키토 클램프하고 에드손 부탁드립니다.”
송민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성훈도 말했다.
“썩션, 포셉 주세요.”
대기하고 있던 당직 수술실 간호사들이 얼른 몸을 움직여 두 사람의 손에 수술 도구들을 건넸다.
수술 도구들을 건네받은 순간 두 사람의 눈빛부터 변했다.
지금까지 망설였다는 게 거짓이라고 느껴질 만큼 거침없이 손을 움직였다.
태수와 정민수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느린 속도다.
하지만 한 번의 손놀림에도 진중함이 느껴졌다.
의사는 손놀림 하나로도 상대의 실력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까?
“젠장. 치프가 맡긴 이유가 있네.”
홍진만은 자신이 나서지 못한 아쉬움을 투덜거릴 뿐이었다.
태수와 정민수는 그제야 옅은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이제야 좀 알에 금이 갔나?’
그렇다고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산재한 문제는 많았다.
수술이 두 군데서 진행되다 보니 간호사들의 인력이 부족했다.
“간호사들 더 들어오라고 하시고요. 펌프는 어떻게 됐습니까?”
태수의 물음에 수술 간호사는 재빨리 인터폰으로 향했고 체외순환사가 인공심폐기를 살피며 보고했다.
“가동 준비는 거의 끝났습니다.”
“그럼 이쪽도 준비하겠습니다. 정 선생. 시작하자.”
태수의 지시에 정민수가 바로 화답했다.
“알겠습니다. 홍 선생, 잠깐 지원해 줘. 김 선생은 송 선생 쪽으로 좀 더 리트렉터 당기고.”
“네!”
크게 대답한 홍진만과 김명철도 빠르게 움직였다.
태수와 정민수가 신속하게 인공심폐기 연결을 준비할 때였다.
옆에서 보조하던 홍진만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두 분 어떻게 흉부외과 쪽 수술까지 이렇게…….”
“흉부외과도 외과야.”
“…….”
정민수가 한마디 했지만 홍진만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아무리 흉부외과가 외과에서 세분화된 의과라고 해도 엄연히 배우는 과정이 달랐다.
물론 두 사람이 흉부외과 인턴 출신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동안 몇 번의 흉부외과 수술에 참여한 것도 직접 봐서 알지만 이런 신속 정확한 준비 과정은 황당함만 가득하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홍진만의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은 현재 여기에 없다.
순탄하게 인공심폐기 연결 준비가 이어지는 듯 했다.
수술이 시작된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다들 극도의 긴장감에 서서히 지쳐 갔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