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059
03063 3063화
이틀 후 점심 식사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과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태수의 진료실에 정민수와 김명철이 나란히 자리해 있었다. 차 한 잔씩 앞에 둔 세 사람 중 정민수가 입을 열었다.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아침엔 쌀쌀하더니 오후 되니까 좀 풀리네.”
“네. 이럴 때일수록 화재 예방과 낙상 사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김명철의 대답에 정민수가 멍한 얼굴로 바라봤다.
“넌 도대체 감성이라는 게 없냐?”
“환자가 발생하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와, 난 가끔 김 선생이 최 팀장보다 더하단 생각이 드는데……. 어이, 최 팀장, 그쪽 생각은 어때?”
정민수가 기가막힌단 얼굴로 태수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정민수는 스스로 간과한 점이 있단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간과한 건 질문한 대상이 태수란 사실이었다.
태수는 오히려 정민수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며 반문했다.
“김 선생이 정확하게 말했는데, 왜?”
“……그래. 내가 질문을 잘못했네. 너무 잘못했어.”
정민수는 결국 자신을 탓했다.
그런 정민수를 뒤로한 태수는 김명철에게 말했다.
“김 선생이 말한 대로 환자와 보호자들한테 산책 시 낙상 주의, 화재 예방에 대해 한 번씩 얘기하라고 해.”
“말씀 전하겠습니다.”
“사실 주변이 산이라서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어.”
“원내 인트라넷에서 공지 봤습니다. 보호자들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신경 쓰잔 의논도 마쳤습니다.”
“그래. 김 선생이 그런 부분은 잘 챙기니까.”
태수가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칭찬이 무척 고팠는지 김명철의 차가운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며 화답이 들려왔다.
“항상 주위를 살피고, 절대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럼 차도 마셨겠다, 이제…….”
오후 일과를 시작하자고 말할 타이밍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 테이블에 올려 둔 휴대폰들이 울렸다.
띠링, 띠링!
모든 휴대폰 액정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몇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똑같이 메시지를 확인했다.
“음?”
“엇!”
“헉!”
각기 다른 반응.
하지만 당황한 표정만큼은 똑같았다.
같은 메시지란 의미였다.
그 메시지 내용은?
-응급의료대 전원 응급 출동 요망. 오대산 정상 휴게소 인근, 다수의 관광버스가 비탈길에 전복…….
브레드 김이 보낸 메시지다.
전, 현직 응급의료대 모두에게 알리는 응급 메시지였다.
관광버스?
비탈길 전복?
그 속의 사람들은?
태수는 순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찌릿한 그 느낌이 태수의 정신을 바짝 곤두세웠다.
태수뿐만 아니라 정민수와 김명철도 마찬가지였다.
이 순간 본능처럼 하나의 단어가 또렷하게 새겨졌다.
출동!
휙, 휙.
서로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망설임?
언제부터?
절대 없었다.
오히려 눈빛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야 한다.
그럼?
태수는 재빨리 두 사람에게 오더했다.
“정민수, 김 간호사에게……. 김명철, 병원장실에 상황 알리고 비상근무로 전환시켜. 얼른!”
“…….”
대답이 없었다.
아니, 대답할 시간조차 아꼈다.
벌떡!
정민수와 김명철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진료실 문이 부서져라 열고 뛰어나가는 그들의 귀엔 휴대폰이 덧대어져 있었다.
“김 간호사님, 문자 받으셨…….”
“비서실이죠? 지금 응급의료대에서 연락이…….”
타다닥!
바쁜 발소리와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런데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열린 문을 통해 복도에 울리는 또 다른 소란이 고스란히 들려왔다.
“젠장.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빨간 녀석아, 언제 사고가 나 터진다고 경고하고 터지냐?”
“유 선생님,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잖습니까!”
“잔소리 그만하고 뛰어! ……어, 도 선생, 연락받았…….”
타다닥!
유병태와 홍진만 등도 역시 연락을 받고 뛰고 있었다.
그사이 태수는 브레드 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몇 번 신호음이 울렸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휴대폰을 귀에 건 상태로 태수는 진료실 한쪽으로 달렸다.
언제나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가방이 보였다. 응급 출동용으로 준비된 개인용품과 필수 의약품이 든 가방이다.
탁!
그걸 낚아챈 순간 브레드 김이 전화를 받았다.
헬기 속인지 로터음이 들려왔다.
투다다!
그는 뜬금없이 태수에게 타박부터 했다.
“내가 안 받으면 끊어야지. 그래야 다른 녀석이 전화할 거 아니야!”
“그거 생각할 생각이 있겠습니까?”
“자랑이다! 우리는 이제 막 출발했어. 그쪽은?”
헬기 속이라 목소리가 높아진 브레드 김이 다급하게 묻자 태수가 짧게 답했다.
“지금 소집, 준비 중입니다.”
“출발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아?”
“선발대는 늦어도 10분 후면 뜹니다. 후발대는 지원 요청한 헬기가 언제 도착하느냐가 문제고, 본대는 구급차로 이동하니까 좀 걸리겠죠.”
태수의 간결한 설명을 들은 브레드 김은 초조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좀 더 서둘러 주라.”
“그쪽 상황이 어떤데 그러십니까?”
“강원지부 김준혁 팀장이…… 청화대교, 그랜드 타워의 축소판인데, 산불이 날 조짐까지 보인대.”
단편적인 정보였지만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청화대교, 그랜드 타워.
태수는 생생하다 못해 가슴 절절하게 현장을 누볐다.
그런데 산불의 위험까지?
아찔했다.
심한 충격파가 휩쓴 태수의 귀에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그리고 그 관광버스 중에 수학여행 차량만 10대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고 해.”
“네. 수학…… 뭐요?”
“수학여행.”
브레드 김이 다시 말해 주자 태수의 목소리가 대뜸 높아졌다.
“제가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 애들이 왜 거기 있냔 말입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죄송합니다.”
태수가 격해진 심정을 가라앉히며 사과했다.
브레드 김은 어느새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게 말했다.
“최 팀장 때문에 울컥한 거 아니야.”
“…….”
“그 녀석들 고2라더라. 수원 소재 학교에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출발 인원이 340명, 인솔 교사들까지 포함한 숫자라고 해. 뎀!”
브레드 김은 영어로 욕했다.
한국 욕도 넘치게 알지만, 그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엉망진창인 모양이었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고2.
그 나이는 가볍게 흘려 넘길 수가 없다.
수능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신나게 놀기 위한 수학여행일 터였다. 그런 기대 가득하고 행복했을 시간이 피로 얼룩져 가고 있다.
태수도 그 시기를 지나왔다.
대학 진학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직도 기억에 선명했다.
다시 돌아가라면?
죽어도 싫다.
그래서 지금 더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게 가슴속에 자리했다.
그때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애들 차량하고 함께 사고가 난 건 산악회였나 봐. 그쪽도 관광버스가 몇 대 되는 거 같고, 앞뒤로 달리던 승용차들도 말려든 거 같아.”
“그럼 추정 부상 인원이…….”
“아직 몰라. 예상한다면 어마어마하겠지.”
브레드 김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않았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낭떠러지에서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더 이상 통화하면 출동 전에 정신적으로 지칠 것 같았다.
일단 출발이 먼저였다.
“하아! 알겠습니다. 현장에서 뵙죠.”
태수는 가늘게 떨리는 손길로 휴대폰을 내렸다.
집계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사고였다.
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 의료 도구, 그 외에 기타 장비 등등이 폭포수처럼 밀려왔다.
응급처치한 환자의 이송 대책은?
또 수술이 필요하다면 어디에서 어떻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파하고, 또 생명이 꺼져 갈 환자들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폭풍으로 발전해 태수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와 동시였다.
띠잉!
눈에 보이는 진료실이 순간 일그러져 갔다. 극도로 치솟은 짜증과 안타까움이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현상이었다.
얼른 진료 책상을 짚은 태수는 차분하게 숨부터 골랐다.
턱.
“후우, 후우.”
아직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이런 건 중요한 축에 끼지도 못했다.
현재 어떻게 준비가 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억지로 손을 더듬거리며 전화기의 버튼을 찾아 눌렀다.
뚜루루. 찰칵.
연결이 되자마자 부산스러운 웅성거림이 먼저 들려왔다.
스피커로 통화하니 다행이지, 아니면 귀가 따가웠을지도 모른다.
간호사실은 그만큼 어수선했다.
그런 목소리를 뚫고 김혁권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납니다……. 에이씨, 수선 떨지 말고 조용히 챙겨요!”
순간적인 김혁권의 날카로운 반응이 모든 걸 말해줬다.
태수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이 빨간 불로 번쩍이는 전화기에 차갑게 질문했다.
“헬기는요?”
“지금 청주공항에서 시동 걸었다니까 옥상에 도착까지 5분 정도 걸릴 겁니다.”
“선발 출동 인원은 저, 김 간호사, 정민수, 홍진만, 서영우 선생님, 그리고 이선정 간호사, 노지연 간호사입니다. 그렇게 준비시키세요.”
태수가 명확하게 인원을 말해 주자 김혁권이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벌써 다들 몰려와 있는데요. 엄청 반발이 심하겠는데요?”
“여기가 놀이텁니까?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다 따라 줘야 하냔 말입니다!”
가슴이 꽉 막힌 태수는 발악같이 소리쳤다.
그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는지 김혁권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왜 그래요. 그쪽에서 무슨 소식을 들었는데 이래요?”
“수학여행 간 학생들……. 후우! 그 버스들이 사고에 휘말렸답니다.”
태수는 가까스로 소식을 전했다.
그 순간 조금 전 태수보다 더욱 따갑고 신경질적인 김혁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지랄, 뭐 그런 개 같은 일이……. 야, 이 새끼들아, 시끄럽다고! 죄다 아가리 물어!”
주변의 소란과 맞물려 울컥한 김혁권은 모두를 싸잡아 으르렁거렸다.
순간 뒤에서 들려오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만큼 김혁권의 고함이 모두를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 김혁권의 눈에는 의사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젠장.”
“빌어먹을. 진짜 엿 같은…….”
두 사람은 경쟁하듯 욕을 내뱉었다.
그래야 이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은 잠깐이었다.
태수는 한결 차분하게 머릿속을 식히고 김혁권에게 말했다.
“뒷일은 생각 말고 최대한 빨리 옥상으로 올라오십시오. 저도 지금 올라갈 테니까요.”
“흐음, 그럽시다.”
뚝.
김혁권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잠깐 통화하는 사이 치솟은 혈압이 가라앉았는지 태수는 눈앞이 다시 선명해졌다.
어지럽지 않은 것까지 다시 확인한 태수는 지체 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 태수의 귀엔 휴대폰이 올라와 있었다.
“외과장님, 저 태수입니다. 지금…….”
태수는 이영배 외과장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빠르게 옥상으로 향했다. 예정된 수술 스케줄은 이 순간 모두 취소된다.
새로 구성을 짜야 하고, 그 내용을 외과장이 알고 있어야 탈이 없을 터다.
그저 뛰어간다고 출동이 아니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몸만 달려가는 건 동료와 환자들을 등한시하는 행동이다.
아무리 급해도 지킬 건 지켜야 했다.
잠시 후.
옥상에 태수를 비롯한 선발 출동 인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다른 의료진들도 몇몇이 더 보였다.
모두 응급의료대 출신들이었다.
그렇게 출발할 이들은 모두 모였는데 헬기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초조함이 앞섰지만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허비할 시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