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49
03153 3153화
고개를 든 태수의 표정에 억울함이 떠올라 있었다.
“이렇게 감쪽같이 모를 수가 있습니까?”
“아침저녁으로 집에서 보는 사람이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제 출퇴근 시간이 좀 불규칙해서 잘 몰랐습니다.”
태수가 얼떨떨함을 누르고 차분히 이유를 말했다.
그걸 그저 변명이라고 할 순 없었다.
최근 태수와 팀원들의 수술이 상당히 많아진 게 사실이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 그런지 석정현 회장이 가볍게 차로 입을 축인 후 말했다.
“이쪽에 사람이 더 필요했고, 마침 추천을 받은 게야.”
“그 추천 대상이 미성이었고요?”
“똘똘한 조카라고 자랑하려 이리 올라왔나?”
석정현 회장은 태수의 팔불출 같은 모습을 지적했다.
그 모습도 보기 좋은 듯 입가에 가득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한편, 태수는 아차했다.
갑자기 끼어든 주미성의 일로 자꾸 머릿속이 꼬이고 있었다.
탁, 탁.
태수는 옆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주미성의 문제를 다시금 털어냈다.
그 모습이 의아한 백성현 병원장이 묘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나?”
“머릿속을 정리 중입니다.”
“요란하게도 한다.”
“다 됐습니다. 잠시만요.”
툭, 툭.
양해를 구한 태수는 몇 번 더 옆머리를 두드렸다.
그런 태수를 석정현 회장과 백성현 병원장은 잠자코 바라봤다.
그사이 머릿속 정리를 마친 태수가 소파로 가까이 다가갔다.
자리에 앉을 마음이 아니라서 선 채로 찾아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얼추 알고 계시겠지만…….”
병원 소문이 빠르단 걸 감안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내용들은 처음 들을 터였다.
태수는 차분하게 지금껏 전개된 내용들을 알렸다.
태수의 목소리가 아직 집무실을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중국 환자 상황이…….”
내용이 점점 심각해져 갔다.
어느새 석정현 회장과 백성현 병원장의 얼굴에 미소도 지워져 있었다. 웃으며 들을 내용이 아닌 탓이었다.
그 심각함이 계속 이어질 때였다.
띠리링.
집무실 전화 소리가 울리자 태수의 말이 끊어졌다.
“……장이현이란……. 전화 받으시죠.”
“계속 말씀드리도록 해……. 음, 그래요…….”
슥슥.
백성현 병원장이 가볍게 손짓하며 전화기를 들어 통화했다.
상대가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낸 조카같은 주미성인데도, 존대할 만큼 공사 구분은 철저한 성격이었다.
태수는 석정현 회장이 관심을 주고 있어 계속 말을 하려 했다.
그런데 다시 입을 떼기도 전에 집무실 문이 열렸다.
끼익.
김석준 감사관이 유지혁 비서실장의 안내를 받아 들어오고 있었다.
슬쩍 돌아본 태수가 놀라 다시 돌아봤다.
“감사관님.”
“그 얘기 중이시죠?”
“네. 보호자와 통화하던 대목을 말씀드리던 중이었습니다.”
“제가 이어서 하지요. 최 팀장님은 환자를 보시겠지만 좀 더 복잡한 문제라서요.”
김석준 감사관이 태수에게 차분하게 권했다.
태수도 심도 깊은 내용은 모르고 있어 슬쩍 옆으로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시죠.”
“감사합니다……. 우선 이렇게 갑자기 복잡한 일로 뵙게 되어…….”
김석준 감사관이 바통을 넘겨받아 짧게 인사한 후 곧장 설명을 이어 갔다.
태수는 물 한 모금 마시며 같이 듣는 입장으로 변했다.
이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단 걸 직감했다.
태수는 의료에 치우친 데 반해 김석준 감사관은 현 상황에 대해 넓은 관점에서 설명했다.
“……장이현 상무 부위원장은 현 주석을 정계에 입문시킨…….”
같이 듣고 있던 태수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우선 장이현이 상무 부위원장이란 점에 놀랐다.
대단한 권력자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현재 중국 주석의 정치 선배라니.
‘괜히 독대란 말이 나온 게 아니었네.’
태수가 내심 혀를 내둘렀다.
감상은 그게 전부였다.
이번 일이 한국과 중국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지는 관심 밖이었다.
관심은 지금도 오로지 장지용이란 환자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화가 점점 관심 밖의 일들로 향하기 시작했다. 태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입장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태수는 나름대로 바빴다.
진료실에서 짧은 동영상으로 본 내용들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게 있었고…….’
어느새 머릿속이 꽉 차 다른 소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환자가 입원한 장소는 베이징대학병원이다.
태수도 이름 정도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중국 수도인 베이징에서 가장 우수하단 소문이었다.
여러 연구가 진행 중이고, 또 성과도 좋단 걸 여러 의학 잡지에서 봤다.
그런데 태수가 직접 가 본 적은 없었다.
시설은 최상급으로 갖춰져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걸 의심하는 게 아니었다.
VWD 수술은 특수성이 짙었다. 그 특수성에 걸맞은 조금 특별한 수술 기계와 장치들이 필요했다.
장이현 상무위원장이 준비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아버지란 그 이름으로 한 약속은 믿고 있다.
하지만 없는 걸 만들어 낼 순 없을 터였다.
그 부분에 대해 현지에서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걸 미리 생각해 두는 중이었다.
태수의 생각이 길어진다 싶을 때였다.
“최 팀장.”
“네, 네.”
부르는 소리에 태수는 상념에서 퍼뜩 깨어났다.
대답은 했지만 누구의 부름인지 몰라 얼른 고개 돌려 찾았다.
모두 이쪽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어 쉽지 않았다.
그때 백성현 병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야.”
“아, 네, 병원장님.”
“머릿속이 복잡한가?”
“거기 뭐가 있는지 몰라서, 그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태수가 쓴 얼굴로 대답했다.
그때 상석에 자리한 석정현 회장의 커다란 웃음이 들려왔다.
“하하하. 그래, 그래야지.”
“…….”
“그 한결같은 모습이 항상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태수의 질문이 조금 빨랐다.
더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대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의 환자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못했다.
그런 태수에게 석정현 회장이 말했다.
“간다고 했으면 가야 될 거 아닌가.”
“정확하게 허락 떨어지면 간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전 희망병원의 수술팀장이니까요.”
태수는 당연한 대답을 해야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변했다.
그런 태수에게 석정현 회장이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현재 최 팀장의 입지라면 통보해도 될 문제 아닌가?”
“어떻게 그럽니까. 제가 뭐라고요. 저 그렇게 되바라진 놈 아닙니다.”
태수는 눈까지 크게 뜨며 흥분했다.
그걸 본 석정현 회장이 가볍게 손을 저었다.
휙, 휙.
“알았으니까 그쯤 해. 질문 하나 했다고 그리 잡아먹으려 드나?”
“회장님, 제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어허, 알았대도.”
“……네.”
태수는 애써 대답했다.
억울함이 남아 있었지만 석정현 회장에게 말대꾸할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석정현 회장의 얼굴엔 미소만 가득했다.
그런 그가 백성현 병원장을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받은 백성현 병원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최 팀장.”
“네, 병원장님.”
“다녀와.”
“뒤탈 없이 양해를 구하고 출발하겠습니다.”
그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백성현 병원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그럼 저…….”
태수가 점점 말을 흐렸다.
모두 왜 그런지 눈치챘고, 그걸 석정현 회장이 말했다.
“엉덩이만 뒤로 빼지 말고 어서 나가 봐.”
“실례하겠습니다. 아, 잘 다녀오겠습니다.”
꾸벅!
힘차게 고개 숙인 태수는 뒷걸음질 쳐 집무실을 나갔다.
그런 태수의 한결같은 모습에 다들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단 그 수술팀장은 어디 간 게야?”
“잠시 출타 중인 모양입니다. 하하.”
“하하.”
흉 아닌 흉을 본 그들에게서 잔잔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편, 집무실을 나온 태수는 비서실 밖으로 향하다 아차하고 돌아섰다.
“저기, 주미성…….”
그 말을 꺼내기 무섭게 유지혁 비서실장이 앞으로 다가와 철통 방어 했다.
“왜요?”
“몇 마디 하려고요.”
“그런가요? 그럼…….”
스윽.
유지혁 비서실장이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태수는 황당했다.
저런 태도는?
그만큼 주미성이 비서실에서 자기 몫을 잘해 내고 있단 증거일 터였다.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좀 헷갈렸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서 태수는 얼른 다가갔다. 그리고 파티션 너머로 주미성을 내려다보며 얼른 물었다.
“내 출동 가방 어디 놔뒀어?”
“어디 가세요?”
“중국.”
태수의 짧은 대답에 주미성이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갑자기요?”
“언제는 갑자기 아닌 적 있어?”
“그건 그런데……. 그거 사라가 따로 챙길 거 있다고 간호사실에 가져갔어요.”
“알았어. 그럼 잘 다녀올 테니까 일 잘하고 있어. 이 얘기는 나중에 돌아와서 다시 하기로 하고……. 간다.”
탁.
태수는 가볍게 파티션을 두드리며 찡긋거린 후 움직였다.
그런 태수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어떻게 여기서 일하게 됐는지 궁금하단 소리지, 다른 의미는 없었다.
솔직히 지금 듣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지 못한 게 아쉬웠다.
태수는 곧장 외과 간호사실로 향했다.
도착한 그곳은 이미 김혁권의 주도 아래 출동 준비가 진행 중이었다.
“……그거 챙겼으면 됐고, 그다음은…….”
“이것도 챙겨 가야 해요?”
“선정아, 중국 병원 가 봤어?”
“아니요.”
“안 가 봤으면 말을 하지 마. 사실 나도 뭐가 있는지 몰라서 챙기는 거야.”
김혁권은 어설픈 농담을 곁들였다.
갑자기 결정된 중국행으로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 일부러 하는 말이었다.
그때 송현미 간호사가 걱정된 얼굴로 가방을 건네며 물었다.
“나도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성호는 어쩌고. 또 둘 다 나갈 순 없잖아.”
“그게……. 휴우.”
송현미 간호사는 출동 인원에서 제외된 모양이었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마침 태수가 그 소리를 들으며 등장했다.
“저도 김 간호사님 판단이 옳다고 봅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또 사고 쳤네요.”
태수의 사과에 송현미 간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왜 팀장님 잘못이에요.”
“아니야, 언니. 유능한 죄도 죄라고 그랬어. 그렇죠?”
스윽.
이선정 간호사가 얼른 옆으로 다가와 한마디 했다.
타이밍 좋은 등장에 태수도 얼른 동조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유능하니까 너무 피곤하네요.”
그 말에 다들 벙찐 얼굴로 변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다들 마저 짐 챙기자.”
“네.”
휙.
다들 재빨리 흩어지자 태수 혼자 남았다.
그때 태수 옆으로 윤사라가 색이 짙은 실습 간호사 유니폼을 입고 다가왔다. 그녀의 손엔 태수의 출동 가방이 들려 있었다.
“이거 때문에 오셨죠?”
“그래. 다 챙겨 넣었어?”
“그럼요. 귀국하신 다음 날 싹 정리해 놨어요.”
윤사라는 칭찬이 고픈 강아지처럼 눈빛을 반짝이며 기대했다.
하지만 태수는 일과 관련된 문제라 그 선을 지켰다.
“잘했고…….”
“그게 끝이에요?”
“시끄럽고, 내일부터 일주일 정도 VWD 수술팀 외과 수술 스케줄 빨리 뽑아.”
오더하는 태수는 표정부터 달랐다.
윤사라는 그 오더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