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261
Chapter 029화.
삭, 삭.
그때 환자의 다리 쪽에서 정민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발하고 양말은 벗겼어.”
태수는 귀만 열었다.
정민수가 이미 도착해 응급처치를 돕는 걸 알고 있었다. 소심하다면서 이럴 땐 다행스럽게도 적극적이었다.
태수는 소매 단추를 풀며 턱짓했다.
“허리띠.”
“하고 있어.”
척.
옆에서 후끈한 정민수의 열기가 느껴졌다.
어느새 양쪽 소매를 푼 태수가 정민수에게 추가로 부탁했다.
“수술실이나 의료 텐트 좀 알아봐.”
“닥터 슈미트인가? 그 분 텐트는?”
“여기서 저쪽으로 10번째 텐트.”
“허리띠 됐고, 간다.”
파바바박.
정민수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렸다.
그 사이 태수는 환자의 경동맥에 손을 대고 계속 맥박을 체크했다.
협심증이라고 무턱대고 심장압박을 하면 안 된다.
발작이 1분에서 2분 사이에 멈출 가능성이 있던 탓이다.
자기보호 본능에 따라 혈류가 빨라져 막힌 관상동맥의 혈전을 밀어낼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로 5분을 넘어가면 그땐 정말 위험했다.
그런 이유로 2분이 지나 3분대에 접어들면 그때는 무조건 응급처치가 진행되어야 했다.
두두두두두.
요동치는 환자의 심장을 손끝으로 느끼며 손목시계로 초를 잤다.
심장 문제로 인해 환자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쓰으……. 헉, 크으, 헉헉.”
그때 김혁권이 환자의 주머니를 뒤적이며 말했다.
“보호자 맞답니다. 아내가 크게 다쳐 이송되어 왔고, 지금 수술 중이랍니다.”
“주머니는 왜요?”
“보호자카드 꺼내려고. 이름하고 누가 담당인진 알아야지.”
그건 김혁권의 판단이 옳았다.
곧 보호자카드를 발견했는지 불쑥 꺼내 들고 살피며 말했다.
“이름은 오하메드……. 오함마도 아니고, 아무튼 그렇고, 아내를 담당하는 데는 특별외상전담팀?”
“제임스 수술팀 아래 레벨입니다. 그쪽으로 갔다면 엄청 다친 게 분명합니다.”
“빌어먹을, 이거 잘못하면…….”
김혁권이 말하려는 순간 태수가 날카롭게 차단했다.
“아차하면 현실이 됩니다.”
“크흠. 말실수입니다.”
“잘못하셨으니까, 가서 cardiotonic(강심제), thrombolytic agent(혈전용해제) 좀 챙겨오세요.”
“어디서……. 그냥 알아서 털어올게요.”
김혁권은 지은 죄를 인정하는지 순순히 받아들였다.
스윽.
그렇게 김혁권이 일어났다.
“끄으으. 끄으으.”
환자는 발작이 이어지고 있다.
태수는 주시하고 있던 손목시계로 흐른 시간을 가늠했다.
‘1분.’
발작의 과정부터 지켜봤기에 그시간은 정확했다.
지금까지 1분은 그래도 전초전이었다.
이제부터 1분은 더 괴로울 터였다.
빨리 막힌 관상동맥이 뚫리거나, 아니면 그럴 수 있게 도와야할 터였다.
그런데 다녀온다던 김혁권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닥터 정.”
“헉헉헉. 지금 자리가 없데요.”
“그럼 어쩌라고.”
“잠시, 헉헉, 전 잠시 헉헉……. 만요.”
김혁권을 지나친 정민수는 가쁜 숨에 허우적거리며 환자에게 다가왔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온 건 아닌지 주사기와 앰풀이 있었다.
“강심제하고 리도카인.”
“혈전용해제는?”
“당장 없대.”
그 소리에 태수가 멈칫했다.
“어딜 다녀왔는데?”
“헉헉. 닥터 슈미트……. 헉헉 응급수술……. 안 된대.”
끊어서 얘기했지만 태수는 용케 알아듣고 재차 물었다.
“그럼 이건?”
“후우우. 그냥 가져왔어……. 자, 여기 주사기.”
불쑥.
정민수가 그 사이 준비해 내밀자 태수는 얼떨떨하게 받아들었다.
‘소심하다며.’
닥터 슈미트의 수술 텐트에 쳐들어가 강탈해 온게 분명했다.
이런 적극성이면.
최후의 한 끗은 분명히 있었다.
생각은 거기서 그쳤다.
태수의 시선은 이미 환자를 훑고 있었다.
어깨를 쥔 환자의 손에 힘이 가득했다.
부들, 부들.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떨릴 정도였다.
“크으으…….”
식은땀도 흐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사를 놓긴 어려웠다.
그러나 태수는 숱한 야전의 경험과 카프레네의 지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혈관 장소를 몇 군데 알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골반이었다.
허리띠를 풀고 바지 앞부분을 벌려둔 상태였다.
부욱.
태수는 과감하게 옆으로 젖히고 웃옷까지 걷어 올렸다.
곧 골반이 모습을 보였다.
자세히 보면 희미하게 파란 혈관을 발견할 수 있다.
태수는 신중하게 주사바늘을 골반쪽으로 향했다.
그걸 본 정민수가 크게 움찔거렸다.
“그래도 돼?”
“왜 안 돼?”
“아니, 정맥의 굵기도 다르고.”
“그걸 언제 따져. 시간 많냐?”
그 말과 동시였다.
목표를 눈에 담은 태수는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푹.
주사바늘이 얇게 포를 뜨는 느낌으로 살을 가르며 들어갔다.
익숙한 손등이 아닌 터라 태수도 단번에 성공은 힘들었다.
꿈틀꿈틀.
몇 번 움직이던 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쭈우욱.
피스톤을 누르니 강심제가 빠르게 몸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리도카인.”
“응. 여기.”
턱.
태수는 이어서 추가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심장 박동을 보호하고, 또 부정맥에 대비했다.
진통제는 언급도 없었고 부탁도 하지 않았다.
아픔을 느낀다고 진통제가 무조건적인 답일 순 없었다.
특히 관상동맥의 아픔은 약효가 닿기도 어렵고, 만약 약효가 통한다고 해도 문제였다.
심장을 감싼 얇은 동맥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하지 못하게 된 탓이다.
“끄으으.”
식은땀이 점점 늘어나는 환자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태수가 시간을 확인했다.
대략 1분 30초 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뭔가 가시적인 결과는 아무것도 손에 쥐어진 게 없었다.
태수는 점점 초조해졌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태수는 재빨리 좌우를 둘러봤다.
타다닥. 그릉그릉.
전보다 줄었지만 아직 많은 의료진들이 오가고 있었다.
태수는 벌떡 일어나 아무나 붙들었다.
“저기요.”
“네?”
“협심증 환자입니다. 관상동맥이 막혔는데 당장 뚫어야 합니다, 장소가 있을까요?”
“미안합니다. 지금 그거 알아봐줄……. 정말 미안해요.”
상대는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급히 발을 움직였다.
태수는 포기 하지 않았다.
“저기요. 여기 환자…….”
“우리 팀은 자리가 없…….”
“실례합니다, 협심증 환자…….”
“쏘리.”
거절의 연속이었다.
태수는 답답했지만 원망은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태수가 가운을 입고 있었고, 또 응급환자가 있어 잠깐이라도 멈춰서 대답해 주고 다시 움직였다.
정 안될 상황이면 지나가면서라도 대답해줬다.
그들도 생명이 위독한 응급환자를 이송하거나, 응급수술로 달려가는 중이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차마 원망을 할 수가 없었다.
태수는 시야를 넓게 둘러봤다.
저 멀리까지 의료 텐트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진료 텐트, 수술 텐트, 병동 텐트.
각자 모양에 맞는 역할들이 있었다.
그곳을 드나드는 의료진들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에게 목적지가 있었고, 응급환자를 케어할 장소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은 없었다.
이 넓은 의료캠프 안에, 이 많은 텐트들 중에 자신들은 향할 데가 없었다.
그래.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들은 밤이슬을 맞던, 길거리에 나앉던 상관없었다.
그런데 환자는 무슨 죄인가.
그는 보호자로서 크게 다친 아내를 따라왔다. 그 걱정이 스트레스가 되어 심장에 문제가 일어났을 터였다.
이런 협심증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또 관상동맥이 막히는 병도 특별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오하메드의 경우 자연히 뚫릴 가능성이 급속도로 적어지고 있어 수술이 필요했다.
긴 시간도 아니다.
잠깐이면 된다.
1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오하메드의 아픔을 해결해줄 곳이 없음이 비통했다.
“쓰블.”
태수는 답답한 마음을 거칠게 쏟아냈다.
그때 김혁권이 금방 숨이 넘어갈 모습으로 헐떡이며 다가왔다.
“헉헉헉헉.”
“혹시 찾았습니까? 있습니까?”
태수는 항상 답을 내어주는 김혁권에게 기대를 보였다.
그런데 그는 거칠게 호흡하며 고개를 저었다.
“허어억……. 없, 없어……. 헉헉.”
“아으.”
“넓어서……. 헉헉. 일일이 못……. 헉헉. 돌아다녔……. 헉헉.”
“더럽게 넓죠. 넓은데……. 젠장.”
태수는 마음이 썼다.
차라리 어디 빈 의료 텐트라도 있다면 모를까.
이 난리가 난 와중에 그런 텐트가 있을리 없을 터였다.
그러던 태수가 멈칫했다.
있다.
한 군데 있다.
장소를 떠올린 태수는 재빨리 정민수에게 소리쳤다.
“민수야, 업어.”
“어? 어어.”
“혁권씨 도와주시고, 이쪽 방향으로 세 번째 의료 텐트 지나서 오른쪽 두 번째 의료 텐트로 오세요.”
가르쳐주는 걸 머릿속에 담던 김혁권이 바로 반박했다.
“거기 지나왔는데, 수술 중인 거 같던데요?”
“아니요. 비었습니다.”
“어떻게 알아.”
“제임스 수술 텐트니까요, 먼저 갑니다.”
파바박.
태수는 뒤돌아 힘차게 내달렸다.
제임스는 부재중이다.
그리고 NGO의 가장 존경받은 의사였다.
그가 없다고 해도 그의 수술 텐트를 무단으로 사용할 인물은 없었다.
아니, 한 명 있었다.
환자라면 앞뒤 가리지 않는 태수란 인물이었다.
태수는 한 달음에 제임스의 수술 텐트에 도착했다.
가림막이 내려져 있다.
촤락.
열어보니?
역시 비어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수술복부터 수술에 필요한 부수기재들이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됐어.”
태수는 그대로 들어갔다.
막힌 관상동맥을 뚫어야 한다.
그러면?
“필요한 게…….”
태수가 빠르게 선반을 둘러봤다.
휙휙휙.
그 모습이 얼마나 날렵한지 날다람쥐 저리가라였다.
하나 씩 집어 드는 태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것도 있고, 역시 이것도.”
생각하며 찾아보면 반드시 있었다.
이 선반이 마치 요술 주머니 같았다.
제임스의 수술 팀은 외과 중심이지만 외과수술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NGO 최고의 수술팀이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수술할 수 있는 전통 ‘외과’를 지향했다.
각 분야의 전문의들이 포진되어 있으니 당연했다.
필요한 걸 챙겨든 태수가 곧바로 두 번째 가림막으로 향했다.
여긴 수술 준비실이고, 저 안이 진짜 수술실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타다닥.
“저기요.”
가리키는 소리에 태수가 고개를 돌려봤다.
낯선 의료진들이 한 가득 몰려와 있었다.
태수를 가리키며 낯선 의사가 거칠게 소리쳤다.
“저 보세요.”
“이봐, 당신 누구야.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온 거야.”
“다 내려놓고 썩 나가.”
사방에서 으르렁거렸다.
지금 NGO의료진들의 눈에 태수는, 존경하는 제임스의 수술실을 무단으로 침범한 괘씸한 놈이었다.